<90>
파열음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선우의 것이 연희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희의 목이 뒤로 젖혀지고, 오밀조밀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꽉 조이는 압박감에 선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몸의 일부를 들여 놓았을 뿐인데, 온 몸이 연희의 소유가 된 것만 같았다. 그 속박감이 좋아서, 영원히 이대로 머물러 있고 싶었다.
하지만 제대로 맛보지 못한 부분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니 움직여 나아갈 수밖에.
잠시 숨이 멎은 연희를 배려하기 위해, 선우가 천천히 약하게 몸을 비볐다. 연희의 다리 사이를 조금씩 더 벌려, 연희가 더는 들어갈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안쪽까지 제 영역을 넓혀가기 위해서였다. 선우의 가슴에 닿은 연희의 머리카락이 점차 땀으로 젖어들었다. 어느 한 군데 젖지 않은 곳이 없었다. 피부에 맺힌 물기 때문에 자꾸만 미끄러지는 선우의 팔을 연희가 꽉 붙들었다.
"아…. 앙. 읏."
연희가 작은 동물이 우는 것 같은 가냘픈 신음을 흘렸다. 선우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선우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또…. 하아…. 해 봐."
"뭘, 요. 아으응…."
"소리…. 들려달라고."
조용히 웃은 선우가 연희의 목덜미에 맺힌 땀을 한번 훔쳐 주고는 허리를 천천히 앞뒤로 왕복하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서로의 살갗이 천천히 부딪히며 마찰하는 소리마저 흥분을 더했다. 그리고 다시, 선우의 성기가 깊고 강하게 연희의 안에 처박혔다. 그 뒤에는 다시 부드럽게 문지르는 행위가 이어졌다.
감질나는 행위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끄트머리까지 빠져나온 성기가 또 한 번 연희의 안을 강하게 짓쳐들었다. 연희가 눈물 어린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평소라면 모든 행동을 멈추고 연희의 눈물부터 닦았을 선우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더 젖어들었으면 했다. 연희의 온몸이.
선우는 연희의 눈물을 혀로 핥으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타액을 연희에게 묻혔다. 제 물건을 표시하는 동물처럼 은밀하게.
뒤이어 살짝 벌어진 연희의 입 안으로 자신의 혀를 밀어 넣었다.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격렬해져 왔다. 다양한 각도에서 찔러오는 추삽질에 연희의 교성이 점점 높아졌다. 온 힘을 다한 선우에게서도 낮고 굵은 신음이 끊이지 않고 흘렀다.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어떤 것도 숨길 필요 없는 연인은 기꺼이 서로를 탐하고 받아들이며 전율했다. 강한 체취와 정사의 냄새가 방 안을 휘돌았다.
오늘도 찾았다. 새로운 얼굴. 새로운 움직임.
모르는 모습을 하나씩 지워가는 게 좋았다. 얼른 전부 다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만족스러운 생일 선물이었다. 다만 연희의 체력이 다하는 바람에 정작 생일상은 선우가 차리게 되었는데, 선우에게 손해는 아니었다.
"연희야. 소화시키는 데는 운동이 최고인 거 알지?"
"선배는 안 먹었잖아요."
"너 먹는 것만 봤는데도 배가 너무 부르네. 얼른 소화시켜야겠다. 그지?"
그 사이 체력을 회복한 연희에게서 또 한 번 생일선물을 받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하아…."
선우의 팔에 머리를 벤 연희가 숨을 헐떡였다. 체력 좋은 선우 역시 호흡이 갈라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좋았어요?"
연희가 선우를 보고 물었다.
"나야 좋았지. 그런데 넌…. 싫지 않았어?"
"왜 싫어요?"
연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에서 그러는 거 말이야. 혹시 좀 무서웠다거나 불편했다거나…."
아까는 정신없이 들이치더니 이성이 돌아오니 뒤늦게 맘에 걸리나 보다. 그게 뭐 어떻다고.
"…괜찮아요. 선배니까."
연희가 작게 웅얼거렸다.
"응?"
"선배랑 하는 거는 다 괜찮다고요."
좀 전보다 더 크고 분명하게 건넨 진심에 선우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사색이 되어 외쳤다.
"어! 콘돔 깜빡했다."
정작 연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 어때요. 선배나 나나 별 문제없는데."
"그러다 임신이라도 하면?"
"아…. 선배는 아기 생기는 거 부담스럽죠? 약을 사와야 하나?"
"나 말고 네가 싫은 거 아니었어?"
"아닌데?"
선우와 연희가 두 눈을 멀뚱히 뜨고 마주 보았다. 그제야 서로의 가족계획을 공유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가정이 그리 편안하지 않았으니, 막연하게 상대가 가족 수를 늘리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짐작만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선우와 연희는 아픈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픈 과거를 양분으로 삼아, 더욱 나은 미래를 그리려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대화를 좀 더 나눠야 할 것 같지?"
"그러네요."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자잘한 입맞춤과 몸의 대화가 곁들여졌다. 언제나 그렇듯, 잠들기 전에는 그들만의 인사를 나누었다.
내일은 날 더 많이 사랑해 줘. 나도 그럴 테니까.
물론이죠.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훗날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변화하는 미래에는 더욱 사랑하는 그들이 있을 것이다.
* * *
어린 소년은 아버지의 매질을 견디다 지쳐 가출을 결심했다. 그렇다고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언젠가는 떠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길바닥에 떨어진 오천 원짜리가 순간적인 용기를 주었을 뿐이다.
버스정류장에 오는 가장 빠른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렸다. 낯선 곳에 떨어진 소년은 새삼 실감했다. 떠나는 것은 쉬워도 머무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종일 걸어도 몸을 쉬일 곳이 없었다. 한참을 떠돌다가 너른 주택가에 다다랐다. 커다란 담장과 대문이 즐비한 곳에는 단독주택이 열을 지어 서 있었다. 동화책에서나 보던 2층 집과 넓은 정원이 그곳에 있었다.
길은 깨끗했고 향기로웠다. 지나는 사람은 없었는데 가끔 개 짖는 소리는 들렸다. 새삼 개 팔자가 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걷고 또 걷던 중, 다른 집보다 유독 커 보이는 집의 대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꼬맹이를 봤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꼬맹이 훌쩍이는 소리가 가슴 안쪽을 건드렸다. 집에서 저를 찾으며 울고 있을 어린 여동생이 생각나서였을 지도.
물론 닮은 점은 하나도 없었다. 꾀죄죄한 내복 대신 리본 달린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세 살 배기 여동생보다 훨씬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 튼 자국 없는 피부는 뽀얗기만 하고 긴 생머리에는 개기름 대신 윤기가 흘렀다.
"꼬맹아. 왜 밖에서 이러고 있어?"
집에 들어가 있었으면 내가 신경 쓰일 일도 없잖아.
킁, 킁.
아이가 콧물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턱에 생긴 호두모양 주름이 조금 웃겼다.
"난 엄마 기다리는데?"
"시장 가셨냐?"
"아니."
"그럼?"
"몰라. 그냥 아~까부터 안 들어와."
아이는 하나씩, 하나씩 손가락을 접어보다 마침내 열 손가락을 모두 접었다. 더는 셀 수 없는지 정확한 날짜 셈은 포기하고 '엄청 아까'라고만 했다.
"아무 말도 없이?"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아무래도 이 부분만큼은 자기와 다르지 않은 처지인가 보다. 저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살게 뻔한 데도 안쓰러워 보였다.
"집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
"안 돼. 엄마 오는 거 내가 제일 처음 볼 거란 말이야."
어린애가 고집은 참 셌다.
"너 몇 살이야?"
"여섯 살."
저보다 네 살이나 어렸다. 그러니까 저보다 두 살 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게 된 셈이었다.
울음을 그치고도 꼬맹이는 눈을 찡그리고만 있었다. 햇빛에 눈이 부신 모양이었다. 슬금슬금 선우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가라고 하지 않는 것이, 계속 옆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소년은 꼬맹이 옆에 털썩 앉았다. 어차피 다리도 아프던 참이었다.
한낮의 태양이 제 몸보다 짧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정도 그림자만 덮어쓰고도, 꼬맹이는 찌푸렸던 눈을 바로 했다. 이렇게 보니 새초롬한 눈매가 꽤 길었다.
"넌 엄마가 좋아?"
"응!"
꼬맹이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소년은 생각했다. 넌 어떻게 너를 버리고 간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거니? 난 이제 잘 모르겠어. 엄마가 좋은지, 싫은지.
엄마만 모르겠는 게 아니야. 그냥 모든 사람이 무서워졌어.
앞으로 누군가와 가까워지더라도 '갑자기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다시 혼자가 되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날 괴롭힐 것 같아.
이런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게 될까?
"응."
꼬맹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왜?"
꼬맹이가 한참을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기 위한 건지, 바라던 것을 상상해 내기 위해서인지 헷갈렸다.
"엄마는 내가 잠들기 전에 자장가도 불러주고…."
"또?"
"맛있는 것도 해주고, 식물원도 데려가 주고, 여행도 같이 가고, 또…."
꼬맹이는 연신 눈을 굴리며 어물어물 대답했다. 이제 알겠다. 기억을 더듬는 쪽은 확실히 아니었다.
딱히 더 상상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꼬맹이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런 거 좋아해?"
그런 걸 바라왔구나. 너는.
"응."
꼬맹이의 손이 자신의 치맛자락을 꾹 쥐었다. 멀리서 봤을 때 예쁘기만 했던 치마는, 꼬맹이가 하루 종일 여기저기를 쥐어댄 탓에 잔뜩 구겨지고 더러워져 있었다.
"너 뭐 하나 먹을래?"
소년은 주머니를 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