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다섯 번째로 맞붙은 입술이 잠시 떨어졌을 때,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뜬 연희가 선우를 향해 눈매를 접으며 웃었다.
다시 사르르 눈이 감기고 부챗살 같은 속눈썹이 다소곳이 내려앉는 모습을, 선우는 홀린 듯 바라보았다.
연꽃 같은 입술 위에 재차 입술을 얹으면서, 역시 별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아름답다고 선우는 생각했다.
전통 문양의 나무로 덧대어진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선우의 입술이 성급하게 연희의 입술을 찾았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젖은 소리가 오갔다. 연희도, 선우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선우가 둥근 문고리를 당겼다. 그 사이에도 연희에게 붙인 입술은 떼지 않았다. 대충 벗어던진 신발이 문 앞에 제멋대로 널브러졌다.
숨이 차도록 긴 입맞춤 끝에, 선우가 연희에게서 얼굴을 떼어냈다. 발갛게 달아오른 연희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다가 아차 하는 얼굴로 반지를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거, 그렇게 막 빼라고 준 거 아닌데요."
연희의 눈이 반지를 숨긴 주머니에 고정되었다.
"너 얼굴 긁히면 어떻게 해."
"그럼 나도…."
연희 역시 손가락에 낀 반지를 빼내려고 하자 선우가 연희의 손을 붙잡았다.
"난 좀 긁혀도 상관없는데. 그냥 끼고 있어주면 안 될까?"
선우가 연희의 네 번째 손가락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손가락에 낀 반지를 바라보는 눈에서 진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선우의 손길이 닿는 부위가 점차 넓어졌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 사이까지 스며든 손길이 간지러워서 연희가 흠칫 숨을 들이마셨다.
"…흣."
그 작디작은 소리에, 선우의 눈빛이 돌변했다.
잠시 호흡을 고르는가 싶던 선우가 다시 연희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허겁지겁 붙였다. 짧은 입맞춤이 폭격처럼 쏟아졌다. 이윽고 선우의 입술이 연희의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선을 따라 내려왔다.
선우의 한 손이 연희의 머리카락 속을 파고들고, 다른 한 손이 연희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내렸다. 어느새 절반쯤 풀어 헤쳐진 블라우스는 뒤로 젖혀지고 구겨져 제 형태를 잃었다. 잠시 허공을 맴돌던 연희의 손이 선우의 어깨에 붉은 자국을 만들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의 감촉을 즐기던 선우의 손이 좀 더 아래로 내려가 연희의 목 위에 머물렀다. 엄지로 뭉근히 문지르는 목덜미가 몹시도 간질거려서, 연희는 어깨를 움츠렸다.
남은 단추를 마저 풀어헤치는 손에 맞추어, 입술도 서서히 아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벌어진 옷 사이로 스미는 한기 때문에 연희가 몸을 떨자, 선우는 섬세한 손길로 입술이 지나간 자리를 쓰다듬으며 열기를 전했다.
볼록한 곳에도, 옴폭한 곳에도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간헐적으로 내쉬는 서로의 숨이 불안정하게 떨렸다.
팔을 엑스자로 교차한 선우가 티셔츠를 단숨에 벗어버렸다. 선이 또렷한 대흉근과 복근이 선우의 성급한 움직임을 따라 굽이쳤다.
매끈한 얼굴과 달리 다소 거칠지만 탄력 있는 살결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연희의 부드러운 살결과 맞닿았다. 연희의 긴 머리카락이 선우의 가슴 위로 사르륵 흩어졌다.
"좋다…."
선우가 연희에게 속삭였다. 선우의 손이 연희의 치마 속을 파고들었다. 가볍게 허벅지를 문지르던 손에 점점 힘이 실렸다. 연약한 살결이 마찰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허리까지 들추어진 치마는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그들의 흐트러진 숨소리와 옷감이 서로 달싹이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했다.
선우가 연희의 귓불을 혀로 느리게 쓸었다. 부드럽게 달래는 듯하던 움직임은, 혀가 지나간 부위를 갑작스럽게 이로 긁어내리며 마무리되었다.
부지런한 입술과 혀는 쇄골로, 가슴 중앙으로, 솟았다 패이기를 반복하는 배로 점차 자리를 옮겼다. 배꼽 부근에 머물다 올라온 입술이 가장 봉긋하게 솟은 곳의 정점을 물었다.
"아…!"
연희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터지자 선우가 부드럽게 정점을 핥았다. 혀가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지그시 누르고, 문지르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지나치게 느긋한 움직임에 연희는 선우의 머리를 꽉 끌어안은 채 허리만 들썩여야 했다.
선우의 혀 놀림에 따라 원을 그리며 방향을 달리하던 유두는, 어느새 꼿꼿해진 채로 선우의 입 안에 다시금 빨려 들어갔다.
가슴에서 시작된 뜨겁고 축축한 기분이, 점차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뱃속에 열기가 고이고, 뜨거운 수증기를 뒤집어쓴 듯 숨이 막혔다. 선우를 끌어안은 손이 땀에 젖고, 가슴은 선우 쪽으로 자꾸만 기울어졌다. 선우가 빨아들이는 힘이 강해서인지, 흥분한 연희가 저도 모르게 가슴을 내민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연희의 몸에서 얼굴을 떼어낸 선우는 배부른 얼굴을 했다. 강아지처럼 연희의 배 위에 머리카락을 부비는 움직임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의 커다란 손이 쉬지 않고 허벅지 안쪽을 훑었다. 입술은 다시 내려가 종아리를 지나고, 발목에서 멈추었다. 복사뼈를 문지르는 혀를 부러 보여주며, 선우가 씩 웃었다. 얼굴은 장난스러웠으나 움직임은 농염했다.
어느새 선우의 바지는 속옷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평소보다 거대해 보이는 전라가 연희의 몸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쓰임에 따라 크고 잘게 쪼개진 근육이 매력적이었다. 다만 탄탄한 복부 아래쪽으로는 시선을 옮기기가 부끄러워서, 연희는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왜 안 봐줘?"
"……."
"어차피 친해져야 할 텐데, 미리 봐두는 게 좋지 않을까?"
피식 웃은 선우가 물었다. 어디에 감춰두었던 건지 모를 콘돔 포장을 뜯으면서.
미리 준비해 온 걸 보면…. 내가 먼저 말 안 꺼냈어도 이렇게 될 거였다는 거잖아?
연희는 뭔가 말려든 기분이 들었으나.
"입, 맞출까?"
선우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모자란 산소를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맞닿는 숨이 간지러워 절로 신음이 샜다. 그 벌어진 입속을 선우가 파고들었다. 두 손으로는 연희의 온몸을 쉴 새 없이 어루만지는 채였다. 아랫배를 쓰다듬는 손길이 간지러워 몸을 뒤채면서도, 연희는 선우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선우의 혀가 연희의 어느 한 부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듯 입 안 전체를 샅샅이 핥고 맛봤다. 단것을 마시듯 쪽 빨아들이는 힘은 예상외로 강하고 집요했다.
입천장을 훑고 볼 안쪽 살을 쓸어내리던 혀의 움직임이 차츰 격렬해졌다. 깊숙이 들어온 혀와 함께 선우의 몸도 연희에게 더할 수 없이 밀착되었다.
맞닿은 배가 눌리고 목이 뒤로 젖혀졌다. 선우의 한 손이 연희의 뒷머리를 완전히 받쳐 들었다. 물러설 곳 없는 몸이 점점 뒤로 젖혀지다 눕혀지기에 이르렀다.
강하게 빨아들이는 행위와 깊숙이 들어오는 행위가 교차되었다. 온기와 한기 역시 교차되었다. 모자란 호흡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등허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 격차에 온몸이 젖어드는 듯했다
맞닿은 입술이 떨어진 사이, 연희의 턱이 살짝 들리자 목과 턱 사이에도 입맞춤이 떨어졌다. 점점이 쏟아진 입맞춤은 가장 약하고 부드러운 곳까지 이르렀다.
"선배!"
유일하게 속옷이 남아있던 부분에 선우의 입이 닿기 무섭게, 연희가 비명처럼 선우를 불렀다. 은밀한 곳 바로 근처에서 선우가 웃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뜨거운 혀가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읏…."
연희가 누르려 애쓰던 신음이 천천히 교성으로 변했다. 어느 순간부터 찰박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흠뻑 젖은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자신의 애액 때문인지 선우의 타액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입…. 좀 떼 봐요."
"그럴까?"
의외로 선선히 입을 뗀 선우가 연희와 눈을 마주했다. 연희의 다리를 들어 반쯤 내렸던 속옷을 아예 완전히 벗기고는,
"윽."
혀 대신 손가락을 넣었다. 그리고 뒤늦게 자랑하듯 말했다.
"나, 손가락 깨끗해. 꼼꼼히 씻고 왔거든."
안이 점점 뜨거워졌다. 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흥분과 떨림 속에서 연희는 선우의 머리카락 사이에 손을 넣고 두피를 꽉 붙잡았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곳까지 온몸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엄지손가락이 부드럽게 클리토리스를 쓸자 연희의 몸이 경련하듯 떨렸다. 선우는 그곳에 인사하듯 쪽 하고 짧게 입 맞추었다. 아니, 입맞춤만 하는 척하다가 혀를 내어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연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지?"
선우가 연희의 벌어진 입 안으로 혀를 넣었다.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연희의 혀를 잡아당기는 힘에, 연희는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고개가 비틀리고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는 행위가 다시 시작되었다.
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하지만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 손길도, 얼굴에 닿는 속눈썹의 간지러움도 좋아서 연희의 눈이 편안히 감겼다. 몸에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맞붙은 하체에서 연희의 안으로 무언가가 훅 파고들었다. 예고 없는 침입에 연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밀고 들어온 게 연희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지 묻는 눈이었다.
"아직 다 안 넣었는데…."
조금만 더 넣고 다시 얘기할까?
눈치를 보는 척하던 선우가 연희의 입술을 다시 삼켰다. 찌푸린 연희의 입술이 다물어져 있자 열어달라는 듯 혀로 입술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