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Hidden 6
"한 대 태울래?"
선우에게 첫 담배의 맛을 가르쳐 준 사람은 현우였다.
이제 갓 중학교 3학년이 된 주제에, 현우는 권태에 잔뜩 찌든 얼굴로 담배를 태우고는 했다.
늘 잠겨있어야 할 학교 옥상은 점심시간마다 손님을 맞았다. 현우 덕이었다. 어느 당직교사가 잃어버렸다던 옥상 문 열쇠는 현우의 손바닥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콜록콜록.
호기심에 받아든 담배는 맵고 텁텁한 끝 맛을 남기고 바닥에 떨어졌다. 현우가 씩 웃더니 다시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느라 팬 볼우물과 다시 연기를 뱉느라 내뿜는 느린 숨 같은 것들이 퍽 멋있다고 생각했다. 선우는 아무리 해도 현우처럼 멋있게 담배를 태울 수는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좋았다. 타인이 제게 무언가를 권해주어서.
설령 해로운 무엇이라고 해도.
"준비하자. 곧 오겠다."
도착순서는 언제나 같았다. 가장 먼저 현우가 오고, 다음으로 선우가 오고, 마지막으로는 용규 패거리가 왔다. 학교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이들이었다.
일의 진행순서도 언제나 같았다. 용규가 현우에게 손짓을 하면, 현우는 제게 요구된 돈을 망설임 없이 내밀었다. 액수를 확인한 용규가 다음으로 하는 일은 선우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선우에게는 내밀 수 있는 돈이 없었다. 선우는 가난했으니까. 선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돈을 내어주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때부터 폭력이 시작되었다. 선우는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못했다. 그랬다가는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당연하게도 돈을 낸 현우는 폭력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현우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선우와 아이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무심히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리면서.
학교장이 이름을 알 정도로 대단한 집안의 자제라는 현우가, 왜 용규 패거리가 시키는 대로 옥상에 올라와 돈을 빼앗기는지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 것까지 짐작해 보기에는 선우의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웠으므로.
가끔 정신을 잃을 때도 있었다. 의식이 없는 동안에는 사진이 찍혔다. 사진이 찍힌 곳마다 긁힌 상처와 멍 자국, 그 위를 덧씌운 낙서가 즐비했다. 간간이 가래침과 담뱃재가 섞여 있기도 했다. 그들은 선우에게 자신의 사진을 확인하게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선우는 억지로 웃어야 했다.
악몽 같은 나날은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현우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던 날까지는 늘 그랬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오후였다.
용규 패거리에게 불려가 허리나 배 따위를 주먹으로 얻어맞고 정강이를 채이고 담뱃불에 손바닥이 데여야 하는 오후.
녹슨 철 냄새를 닮은 피비린내가 나고 흙바닥에 뒹군 교복 셔츠가 지저분하게 물드는 오후. 집에 돌아가 봐야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또다시 맞게 될지도 모를 그런 오후.
"규석아. 오늘은 네가 처리해라."
우두머리 격인 용규가 규석을 향해 손짓했다. 규석이 눈을 빛내며 선우에게 다가왔다.
용규는 입학할 때부터 불량아로 악명이 높았다지만 규석은 의외였다. 적당히 튀지 않을 정도로만 말썽을 일으키던 규석은 어느 순간부터 용규 패거리에 섞여 적극적으로 선우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규석의 주먹질이 처음부터 매서웠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기세에, 다른 무리들마저 입을 벌리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규석을 말리는 이는 없었다.
"난 좀 더 있을 거니까, 너희 먼저 내려가라."
규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규석과 용규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 옥상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이상하게도 현우는 옥상 난간 근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퍽.
규석의 발길질이 다시 선우의 배를 향했다. 몸이 휘청거렸다. 그래도 애써 균형을 잡으려 애를 썼다. 쓰러지면 더한 폭력이 시작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규석이 실실 웃으며 선우의 목덜미를 쥐더니 다른 손으로 선우의 뺨을 쳤다.
"사는 게 많이 힘들지?"
철썩, 철썩, 양 뺨을 번갈아 때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점점 뺨이 부풀고 찢어진 입가에서 피가 샜다.
"…으응."
신음인지 대답인지 모를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딱, 죽고 싶지?"
피식, 웃음을 흘린 규석이 옥상 가장자리로 선우를 끌고 가려는 시늉을 했다. 장난스러운 표정과 움직임에 용규가 깔깔댔다.
"아, 아니."
하지만 선우는 장난으로라도 죽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남들이라면 죽는 게 낫다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때도, 선우는 늘 살고 싶었다.
풉, 난데없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현우였다. 규석이 현우를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선우에게 눈을 돌렸다.
"이렇게 비굴하게라도 살고 싶어? 넌 자존심도 없냐?"
규석이 다시 선우의 뺨을 때렸다. 아까보다 내리치는 강도가 셌다. 그래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해? 어차피 넌 아무것도 못 될 텐데. 쓰레기처럼 밑바닥이나 전전하며 살 텐데. 그래도 살고 싶다고?"
이번에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러나 규석은 선우를 보고 있지 않았다. 현우를 보고 있었다.
순간 현우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다. 규석과 눈을 똑바로 마주하더니, 제 발치에 있던 쓰레기를 규석에게로 차 보냈다.
"잘 어울리네."
마치 쓰레기는 규석이라는 것처럼.
규석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동공이 커졌다. 순식간에 광기가 스며들더니 이내 번쩍 빛났다. 규석의 분노는 가장 약자인 선우를 향했다. 선우의 목덜미를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컥. 숨을 못, 쉬겠어. 규석아…."
규석에게는 선우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규석이 선우를 제 쪽으로 잡아끌었다.
"쓰레기 새끼는 여기 있으면 안 되지. 그러니까 내가 도와줄게."
규석은 선우의 팔을 제 팔과 몸 사이에 끼우고는 현우가 있는 옥상 난간까지 선우를 질질 끌고 갔다. 선우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발을 동동거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누구 하나 죽어야 이 짓도 끝이 나지. 안 그래?"
현우 옆에 선우를 세워둔 규석이 다시 선우를 때리기 시작했다. 맞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선우는 생각했다.
다 죽어버렸으면.
나 빼고 다 죽어버렸으면.
결국 선우의 몸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쿵,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정신이 흐려지고 귀가 멍멍했다. 와중에도 발길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흐으…."
제 목소리 같지 않은 신음이 흘러나오다가 끊기기를 반복했다. 눈앞이 까매졌다. 신물이 나오고 토기가 치밀었다. 입가에 번지는 축축한 것이 침인지 피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규석이 선우의 몸을 일으켰다. 고통으로 굽어진 허리를 붙들고는, 옥상 난간 아래로 떠밀었다. 버텨보려고 벽을 짚어 보았으나, 힘없이 미끄러지기만 했다.
이대로 죽는 걸까? 살고 싶었는데. 더 살아서 이런 구질구질한 삶 말고, 평범한 삶도 한 번쯤 누려보고 싶었는데.
눈을 꾹 감은 순간, 갑자기 자신을 떠밀던 압력이 사라졌다. 한참을 헉헉대다 부은 눈을 겨우 떴을 때는,
현우가 규석의 두 손을 붙잡고 있었다.
"적당히 해. 진짜 죽겠어."
현우가 빙그레 웃었다.
"네가 진짜 죽이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냐? 왜 얘한테 그래?"
"……."
"선우보다 네가 훨씬 더 비굴하고 초라해 보이는 거 알아?"
난생처음 자신을 보호해주는 타인의 말에, 선우는 어리벙벙해졌다. 반면 규석의 눈에는 당황과 분노가 연이어 스쳤다.
"네깟 게 뭔데 나한테…. 잘난 외가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규석이 현우에게 붙잡힌 두 손을 빼냈다. 그리고 이번엔 현우를 난간 쪽으로 떠밀기 시작했다. 방심한 탓일까. 현우의 몸이 순식간에 옥상 난간 너머로 기울었다. 하지만 완전히 떨어지기 직전에 현우가 규석을 붙잡았다.
규석을 잡고 올라오려는 것 같기도, 반대로 규석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것 같기도 했다.
"놔!"
현우를 떨쳐내려 몸부림치던 규석이 금세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현우에게 허리를 붙잡힌 채, 난간 밖으로 사라졌다.
"붙잡아야지, 뭐해!"
급히 달려온 용규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규석의 한 손이 옥상 난간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규석의 허리에는 현우가 매달려 있었다.
얼른 몸을 굽힌 용규가 규석의 손을 붙잡았다.
"이 XX새끼야! 넌 안 끌어당겨?"
규석이 선우를 향해 악에 받친 소리를 냈다. 낡은 난간이 서서히 옥상 바깥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트득, 난간을 고정한 것들이 튕겨 나오는 소리가 났다.
용규가 규석을 붙잡은 손에 힘을 더했으나,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용규가 다시 한 번 선우를 불렀다.
"도우라고, 좀!"
순간 선우는 망설였다. 내가 왜 구해야 하지? 지금까지 나를 고통 속에 밀어놓은 존재를. 내일이 되면 나를 지옥 속으로 다시 밀어 넣을 게 뻔한 존재를.
하지만 규석에게 매달려 있는 현우는?
처음으로 자신을 향한 폭력을 멈추게 해 준 이였다. 무언가를 먼저 권해준 이이기도 했다.
그제야 몸이 움직여졌다. 선우가 손을 내밀자, 난간을 짚었던 규석의 손이 그 위에 얹혔다. 손이 꽉 붙잡혔다. 조금 전까지 밟히고 채인 손이 너무 아팠지만, 규석에게 매달린 현우를 바라보며 힘을 내려 애썼다. 규석이 위로 끌려오면서 현우가 규석의 다리께로 미끄러졌다.
난간은 바깥쪽으로 더 기울여졌으나, 규석의 몸은 곧 옥상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힘을 주던 순간 선우와 현우의 눈이 마주쳤다. 현우는 선우의 눈을 똑바로 보며 입을 움직였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선우는 눈을 좁히고 입모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현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해석할 수 있었다.
뭐… 라고?
이윽고 선우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고, 새빨개졌던 얼굴이 다시 하얗게 바뀌었다. 규석의 손을 쥔 선우의 손이 움칠 떨렸다. 아니, 정확히는 힘을 잃고 움츠러들었다. 눈을 크게 뜬 규석이 떨어지려는 손을 악착같이 붙잡고 위로 올라오려 용을 썼다. 반동으로 규석의 다리가 크게 바동거려졌다.
쿵.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음이 들렸다. 다리에 매달렸던 무게를 덜어낸 규석이 곧바로 끌어올려졌다. 규석만이, 끌어올려졌다.
낡은 난관도, 현우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혼이 나간 용규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우가 천천히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려던 순간.
"아악!!"
때맞춰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여기저기에서 메아리 같은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를 아래로 끌어당기던 손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선우는 제 몸이 바닥으로 끌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선우의 악몽은, 끝남과 동시에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