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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에게 물어, 예전에 선우가 살던 곳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다. 수정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선우가 원래 다니던 중학교는 지방 소도시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있었다. 선우가 재학하던 시절 근무하던 교사는 전근이나 퇴직으로 인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물어물어 선우의 2학년 시절 담임이 현재 근무하고 있다는 근처 지역의 중학교를 찾았다.
"처음 뉴스에서 이름을 들었을 때는 그냥 지나쳤지. 흔한 이름이었으니까. 몇몇 애들이 수군거려서 알았어. 우리 학교 다니던 그 애라고."
"친구들이 알아본 건가요?"
"선우는 친구라고 할 만한 애가 딱히 없었을걸. 친구들이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도 않았을 거고."
연희에게 믹스커피가 담긴 컵을 내밀며, 교사는 숨을 골랐다. 과거를 더듬는 얼굴에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다.
"뭐라고 했는데요?"
"그…. 죽다 살아나더니 팔자 폈다고 했지. 대기업 집안에 입양돼서 뉴스에도 나오고."
생각에 잠긴 교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참, 어디까지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네."
"저도 대충은 알아요. 당시에 같은 학교 다녔다는 분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요."
"누구지?"
연희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선우의 식성만이 아니었다. 선우의 족적을 좇으면서, 연희는 제가 선우와 관련된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건너들었던 이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희가 그만두고 나서 청룡각을 거쳐 갔다던, 선우의 중학생 시절을 비참하고 부정적으로 표현했던 배달부의 이름을.
"최용규라는 분이었어요."
갑자기 교사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그 녀석이 제일 많이 괴롭힌 놈 중 하나야. 선우가 죽을 뻔한 데에는 그 자식에게도 책임이 있었다고."
죽을 뻔했다니? 그 정도로 힘들었다는 뜻인가?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길 바랐지만 이어진 말은 연희의 기대를 저버렸다.
"결국 다른 애가 죽었지."
"네?"
"…학교라는 곳이 그래. 겉으로는 일단 아무 일이 없어 보이는 게 중요하거든."
교사가 연희 앞에 놓았던 믹스커피를 가져가 자신의 입에 그대로 털어 넣었다. 누구를 위한 음료인지도 잊을 만큼 화난 기색이었다.
"그런데 그때 옥상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애써 묻어둔 게 수면 위로 튀어나온 거야. 다들 난감해졌지. 학교 이름 기사에 오르내리고, 시설 안전 관리 문제에 학교폭력 문제에…. 당시 교장이 엄청 골치 아파했어. 그래서 그때 목격자 입이라도 막아보겠다고 무진 애를 썼는데 결국 소용없게 되었지."
"목격자요?"
"그날 죽은 애랑 친했던 애가 하나 있었어. 이혜진이라고."
옆에 있던 다른 교사가 황급히 끼어들어 대화를 중단시켰다.
"그런 걸 외부 사람한테 막 말해주면 어떻게 해? 그 집 부모들이 더는 딸 이름이 거론되지 않게 해달라고 방방 뛰었었다며."
이야기는 거기서 끊겼지만 늦은 일이었다. 너무나 잘 아는 이름이 귀에 꽂힌 뒤였으므로.
* * *
선우가 십 수년을 살았다는 곳은 더 이상 쓰러져가는 판자촌이 아니었다. 지역에서 가장 집값이 높다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예전의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곳에 선우가 들르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예전의 자취가 남아있더라도 선우가 이곳을 찾을 이유는 없었다. 굳이 안 좋은 기억을 찾아 되돌아올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이왕 발을 들인 김에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었다. 동네 상점마다 선우의 사진을 보여주며 최근 이런 사람과 마주친 적이 없는지 물었다. 마주쳤다는 사람은 없었지만 의외의 소득이 있었다.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네. 예전에는 비쩍 마르고, 얼굴에 늘 상처를 달고 있었거든."
땅을 팔기 위해 고향에 들렀다는 노인은, 선우의 사진을 보고 무척 놀란 얼굴을 했다.
"혹시 당시 이웃 중에 여기 남아계신 분은 없을까요?"
선우가 신세를 진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선우의 행방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건질 수 있을지 몰랐다.
"그 일대에 살던 사람들은 다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이라 모두 떠나고 없어.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은 근처에 대기업 공장단지 생기면서 새로 들어온 외지인이 대부분이야."
"아…."
연희가 황망한 얼굴로 쳐다보자 노인이 마른 기침을 한 뒤 몇 마디 더 보태주었다.
"그… 동생을 한 번 찾아가 보지 그래?"
"동생요?"
"왜, 그 유명한 사람 몰라? 요즘 TV 잘 나오던데."
"……."
"도영주 모르나? 하긴 이름도 바꾸고 얼굴도 좀 바뀌었으니…. 나도 못 알아볼 뻔했다니까? TV에서 처음 봤을 땐 긴가민가했는데, 그 집 동생이 항상 목을 가리고 다녔거든. 지금도 여전하더라고."
언제나 도 작가 목에 걸려있던 스카프가 떠올랐다.
* * *
□ 도영주
안 관장을 통해 겨우 만나게 된 도영주 작가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게 웃던 얼굴은 다분히 안 관장을 의식한 것이었다. 안 관장이 자리를 뜨자마자 명랑한 표정은 사라지고 공허한 무표정이 남았다. 선우의 가면 같은 웃음이 절로 떠올랐다.
"그쪽이 안 관장님이랑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어요."
"네. 알고 있습니다."
"이수정 실장한테는 이런 일로 나 만났다고 하지 마요."
선우를 걱정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을지 짐작 가시는 곳은 없을까요?"
"잘 모르시는구나."
도 작가가 날카로운 눈매로 연희를 응시했다.
"오빠랑 나는 속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에요. 어디 가서 오누이라고 함부로 얘기하고 다니는 사이도 아니고요. 솔직히 왜 나를 찾아온 건지 모르겠어요."
도 작가는 경계심 가득한 어조로 혹시나 어디서 선우와의 관계를 떠들고 다닌다면, 개인 정보 불법 열람이든 명예훼손이든 무슨 죄목을 붙여서라도 고소할 거라고 미리 못 박았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혹시 남달리 아시는 게 있을까 해서요."
잠시 입술을 깨문 도 작가가 목에 겹겹이 둘린 스카프를 잡아당겼다. 헐거워진 틈새로 희미하게 남은 목 위 흉터가 보였다.
"이게 왜 생겼는지 알아요?"
"……."
"아빠가 던진 소주병에 맞아서 생긴 거예요. 오빠가 입양되고 나서부터는 아빠가 때릴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거든. 둘이 감당하던 폭력을 혼자 감당하게 된 거지."
도 작가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친부보다 그 끔찍한 상황에서 홀로 벗어난 선우를 더 원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댁은 대체 오빠랑 무슨 사이인데 나까지 찾아와서 귀찮게 굴어요?"
글쎄. 우리는 지금 무슨 사이일까?
수정에게 지시를 받아 선우를 찾는 중이라고 대답해도 될 텐데, 연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켜보던 도 작가가 한숨을 푹 쉬었다.
"고모 연락처 줄 테니까 더 물어볼 거 있으면 그쪽에 연락해요. 나한테 이러지 말고."
"감사합니다."
"대신 비밀은 꼭 지켜요. 다시 말하지만, 나랑 오빠랑 오누이라는 얘기는 누구한테도 할 생각 마요. 그동안 내 그림에 투자해 준 이유가 가족애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니까. 오빠는 순전히 예술적 가치를 보고 내 그림 사 준 거라고요, 알겠어요?"
자신의 비밀을 함구하라고 재차 강조한 도 작가가 11자리 숫자를 휘갈겨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