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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113화 (113/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113)

엔프리제는,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샤페릴을 데리고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만든 공간이었다. 혹시라도 그녀를 노리는 이들이 찾아오면 샤페릴 혼자서라도 도망가게 하려 했다.

여기에 가두면… 갇힌 그녀가 빠져나가기 위해 스스로 환기구를 찾아 나갈 거라고 예상했었으니까.

인적이 거의 없는 버려진 숲에 도착한 그녀는, 헤매다가 그가 준비해 둔 오두막을 발견하게 되고….

만에 하나의 일이 생기면 템버가 그 오두막으로 가서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예정이었다.

처음엔 그게 약혼자인 제레닉 드 카운의 곁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를 약혼자의 품에 돌려보내는 게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몰락한 카운가에서 샤페릴을 지켜 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영지의 돈이 움직일 때는 항상 황성에 보고가 들어간다. 약을 구하는 거야 엘마레를 통해 구할 수 있었지만, 카운가에 자금 지원해 방비를 단단하게 할 정도의 돈은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런 핑계로 그녀를 가둬뒀던 건지도 모른다. 제 곁에 조금이라도 오래 두고 싶은 욕심에.

지금은… 후회되기도 하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녀가 기억을 잃지 않았더라면 자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게 더럽고 비열한 생각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엔프리제가 죽었을 때 그녀를 맡길 수 있는 곳이라면 역시 카운가뿐이라는 생각에 그가 몰래 이런저런 핑계로 빼돌려 둔 돈을 쥐여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레닉이 바르카에게 샤페릴을 넘길 셈이라는 걸 안 후로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에게 보낼 수 없다면… 남는 곳은 엘마레뿐이었다.

엘마레는 왕제의 신분으로 항상 황성에 머물기 때문에 아무래도 엔프리제보다는 더 들킬 위험이 컸다. 하지만 엔프리제가 믿고 샤페릴의 신병을 맡길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엘마레밖에 없었다.

그라면 자유롭게 자신의 재산을 사용할 수 있으니, 샤페릴이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곳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으리라.

사실 처음부터 엘마레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설픈지,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엔프리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엘마레가 거절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지만….

자신이 죽고 나면 분명 그녀를 지켜 줄 터.

“…후.”

생각보다 긴장되지는 않았다.

샤페릴은 안전할 거라는 믿음 때문일까. 깊은 심호흡은 전혀 떨리지 않고 평온했다.

아니, 어쩌면.

-급한 거잖아요. 그런 설명조차 생략할 정도로.

샤페릴이 그를 믿어 주는 것 때문이 아닐까.

샤페릴은, 엔프리제를 믿어 주었다. 그가 하는 행동이 의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유조차 묻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그가 무사히 돌아와 줄 거라고, 약속을 지켜 줄 거라고 믿어 주었다.

무사히…는 어렵겠지만….

몇일까.

주변을 경계하는 기능이 있는 셰리가 침입자를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계속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날아다니기에 의아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게다가 플리의 이상 행동까지.

동물의 본능은 생각보다 신뢰할 만하다. 두 마리가 그런 반응을 보이며 날을 세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었다.

엔프리제의 머릿속에 얼마 전 샤페릴과 함께 참석한 무도회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바르카가 떠올랐다.

셰리가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 질투로 불타던 바르카의 얼굴. 만약 이게 바르카의 짓이라면 이번에야말로 샤페릴을 빼앗을 생각일 터였다.

무력으로 나온 이상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하겠지.

“…….”

카발레이 기사단.

황제 직속의 기사단. 무력이 뛰어나기로 이름 난 임페리오 제국의 수많은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들이었다.

수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뛰어난 기사였다. 게다가 만약… 카발레이 기사단 말고 다른 기사단까지 왔다면.

아마 살아 나가긴 어렵겠지.

무력으로 나온 이상 바르카의 입장에서는 엔프리제를 죽이고 샤페릴을 데려가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니까.

“샤페릴.”

하지만 엔프리제 역시, 지금은 죽을 마음이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엔프리제는 그녀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그녀가, 스스로 바라서 자신을 바꿀 정도로. 그러니 자신이 다치거나 죽으면 분명 샤페릴 역시 망가져 버리겠지.

게다가 승산이 없지는 않았다.

“…….”

조용히 마력을 끌어 올렸다.

기사가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실제로 마법을 영창 하여 전투에 적용해 사용하는 방법. 혹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치유력을 끌어 올리는 방법.

본디 마력이 거의 없던 엔프리제가 첫 번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마법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선택 가능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엔프리제는 제 검을 고쳐 쥐었다.

얼마 전 측정한 마력량은, 어지간한 전투 마법사들보다도 높았다. 그 수치가… 얼마나 그녀에게 사랑받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던 기억이 났다.

처음 그녀에게서 마력을 건네받았던 그날부터 단 한 번도 마력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샤페릴에게서 건너온 마력은 사용하면 다시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 준 증거를 날려 버리고 싶진 않았지만.

샤페릴.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엔프리제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지하의 홰에는 불을 붙이지 않았다. 밝은 곳에 있다가 지하에 들어오는 이들과 계속 어두운 곳에 있던 자신.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해야만 했다.

엔프리제는 들어오는 입구 바로 근처에 있는 쇠창살에 달린 문을 열었다. 이 감옥은 두꺼운 사슬과 자물쇠로 잠그기 때문에 평소에는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문 바로 옆에 등을 보인 채 서서, 어둠 속에 스며들듯 숨을 죽였다.

제 검은 머리카락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왜 아버지의 백금색 머리카락이 아니라 어머니의 검은 머리카락을 닮은 것일까. 왜 찬란하고 눈부신 황족의 색이 아니라.

하지만 지금은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머리카락은 어둠보다도 더 검다. 그러니 제 기척만 잘 숨기면 누구보다도 더 쉽게 어둠 속에 녹아들 수 있었다.

샤페릴.

내 모든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당신을 만나서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태어나고 존재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그걸….

스읏, 하는 발소리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소리가 들렸다.

엔프리제의 금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싸늘하게 빛났다.

* * *

나를 노리는 건 마탑, 교회, 반란군이라고 했다. 마탑과 교회와는 협력 관계를 맺은 데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실험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딱 하나. 엔프리제가 타인의 마력을 견딜 수 있는 체질인지, 내 마력이 타인에게 건너가도 괜찮은 건지에 대한 실험만 빼고.

그들에게 있어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겠지만, 그 외에도 해야 할 실험이 많다. 애초에 그들은 마법 계약서를 썼기에 나와 엔프리제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는 건 반란군, 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아무리 내가 머리가 안 좋아도 이 상황이 반란군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플리가 계속 경계할 정도로 위험한데 셰리나 엔프리제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상대. 심지어 대공저에 침입할 정도로 담대한 놈들.

그런 식으로 날 데려갈 바엔 차라리 황제를 은밀하게 쓱싹하는 게 더 빠를 터.

결국, 남는 건 하나다.

황제.

엔프리제는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나랑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그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 후가 좀 문제다.

황제는, 나를 순순히 포기할까?

이미 무력이라는 수단을 써서 날 데려가려고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더 선을 넘어서 군대라도 동원하면 엔프리제 혼자서는 어떻게 할 방도도 없다.

상식적으로 내가 황제를 따를 리는 없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엔프리제가 무사히 습격자들을 정리하고 내게 돌아오는 경우. 그 경우 황제는 엔프리제가 날 감금해 두고 있어서 기사단을 보내 탈환하려 했다고 할 셈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놓고 애정 행각을 했음에도 여전히 수군거림은 있지 않았던가.

설령 그런 게 없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나와 엔프리제가 연인이라는 걸 알았더라도 누구도 입을 떼지 못하겠지.

그렇게 결국 무력으로 엔프리제를 해치고 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면… 내 나름의 방법이 있다.

다만, 나는 엔프리제가 살아서 내 곁에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대공저로 가는 게 아니라 누구도 찾지 못할 곳으로 도망치는 게 낫겠지. 혹은….

엔프리제가 자신의 것이어야 했던 자리를 되찾던지.

“…….”

우리에게 있는 건 옷과 말 정도뿐. 이 저택에는 귀중품도 거의 없을 거다. 도망친다면 분명 고생하겠지.

지금까지처럼 느긋한 삶은 꿈꿀 수도 없을 거다. 먹고 살기 위해 매일 일을 해야 할 테고 그 지긋지긋한 집안일도 다시 해야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건 도망자의 신분이 된다는 거다. 매일매일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내는 게 아닌가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하겠지.

반면 황제의 자리를 되찾는 방법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이 나라를 위해서도 그런 또라이보다는 엔프리제가 황제가 되는 게 훨씬 나을 테고 삶의 질 또한 지금보다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뭣보다 추격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지겠지. 하지만 그걸 위해선.

엔프리제가 제 동생의 피를 손에 묻혀야만 한다.

피 도둑놈이 진실 된 후계자를 죽이고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올랐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겉으로는 다들 굽신거리겠지만, 뒤에서는 별별 소리가 다 돌겠지.

어쩌면… 많은 귀족들이 반란군과 협력하게 될지도 모른다. 엔프리제는 지금 이상으로 더 고립되고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나는….”

툭, 하고 문에 이마를 대었다.

마법이 스며든 문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지하라서 그런 걸까. 지독한 냉기가 머리를 차갑게 식혀 주었다.

“당신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어.”

그러니까 엔프리제.

어서 돌아와.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내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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