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112)
아침부터 플리가 좀 이상하다.
평소라면 지금쯤 늘어지게 한숨 잘 시간인데 오늘따라 내게서 떨어지질 않는다. 제 아지트에도 들어가지 않고 내 목에 올라와 계속 코를 킁킁댄다.
저럴 때 보면 뭔가 경계할 때던데, 방에 쥐라도 들어왔나?
플리가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쥐 사냥을 해 주는 덕에 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매일 엄청난 수의 쥐가 나온다. 주변이 숲이라서 그런가?
근데 쥐가 숲에서 살던가.
아무튼.
“플리, 내려와.”
아무리 가볍다곤 해도 계속 목에 감겨 있으니 좀 뻐근하다. 내려놓으려고 손을 뻗자.
“삐!”
어림도 없다는 듯 플리가 휙 옆으로 도망친다.
…오늘 진짜 너 왜 그러냐.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슬쩍 손을 내리자 플리가 조금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손을 뻗었다.
“삐-! 삐---! 삐잇!”
…재빨라 가지고!
어렵지 않게 날 피한 플리가 귓가에서 시끄럽게 군다. 우리 플리 목소리가 좀 많이 귀엽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바로 대고 울어 대면 귀가 아프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데 마침 엔프리제가 들어왔다.
“뭔가 불편하십니까?”
내가 찡그리고 있는 걸 본 엔프리제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때까지도 플리는 계속 귓가에서 삐삐 거리며 항의를 했다.
“플리가 안 내려가요.”
“플리가…?”
“오늘 좀 이상해요. 잠도 안 자고.”
엄청난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플리인데, 좀 이상하다. 계속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
“…….”
엔프리제는 물끄러미 플리를 바라보더니 살며시 손을 뻗었다. 최근, 엔프리제에게 별로 반응하지 않게 된 플리였는데 오늘은 손을 뻗기가 무섭게 쉬잇-! 소리를 내며 털을 세운다.
“…오늘은 밖으로 나가도록 할까요?”
“응? 갑자기요?”
“플리도 신경이 곤두선 것 같고…. 전에 머물렀던 그 저택에 잠시 갔다 오도록 할까요?”
으음.
확실히 플리가 적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곳보다야 아무도 없는 그쪽이 더 마음 편하긴 하겠는데….
“오늘은 일할 거 없어요?”
“괜찮습니다. 이제 좀 안정되어서 하루 자리를 비우는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으음.
뭔가 이상하다.
플리도 이상하지만, 엔프리제도 이상하다. 조금 전에 뭔가 곰곰이 생각한 뒤로 어딘지 무서운 느낌이 든다.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얼굴인데.
뭔가.
“알았어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엔프리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분명 나를 위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아래쪽으로 내려가도록 하죠.”
“아래쪽이요?”
“네.”
내 느낌은 기분 나쁠 정도로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엔프리제와 나는, 심지어 템버에게도 말하지 않고 뒷문을 통해 조용히 저택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구간에 아무도 없는 타이밍을 틈타 엔프리제의 말을 타고 달려왔다.
평소라면 날 신경 써서 말을 빠르게 몰지 않는 엔프리제였는데, 오늘은.
-샤페릴, 저를 꽉 잡으셔야 합니다.
-네?
-오늘은… 조금 빨리 달려야 할 것 같아서.
한 손으로는 나를 꽉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삐를 꽉 잡은 채 내달렸다. 채찍질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은 마치 엔프리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예전에 살던 저택이 보였다.
그 이후로 누군가 관리하지 않은 듯 우거진 풀숲과 나무들. 그리고 어딘지 음산한 분위기가 나는 저택 안으로 들어선 엔프리제는, 내가 썼던 방이나 그가 썼던 방이 아니라 지하로 가자고 말을 꺼냈다.
여유가 없는 얼굴에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이해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지금 뭔지 모르지만 급박한 상황인 것 같으니 일단 얌전히 따르도록 하자.
아, 이래서 사기꾼들의 화술에 휘말리면 저도 모르게 따르게 되는 건가. 엔프리제가 아니었다면 나도 좀 경계하긴 했겠지만….
엔프리제의 손에 이끌려 지하로 향했다. 올라가는 계단과 달리 지하로 가는 계단은 엔프리제의 서재 창고 안쪽에 숨겨져 있었다. 카펫을 들춰 나온 입구로 들어가자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뭔가….
비릿한 냄새.
어디선가 맡아 본 적 있는 냄새였다.
“여긴… 뭐예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됩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순 없지만,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순 있는 탈출로이기도 하고 비상물품을 쌓아 놓는 창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갈수록 더 지독해지는 냄새. 코를 막을 정도로 심한 건 아니었지만, 어딘지 기분 나쁜 냄새였다.
이건… 분명.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피 냄새다.
그날, 호숫가에서 나던 것과는 좀 다르다. 좀 더… 기분 나쁜 냄새다.
감옥이라면 죄수가 수감된 적도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때의 침입자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하는 살풍경한 느낌이었다.
제대로 벽도 바닥도 만들어져 있어서 동굴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감옥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났다. 어두컴컴해서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왼쪽에서 뭔가가 언뜻언뜻 빛나는 걸로 봐선….
아마도 쇠창살이 아닐까.
왜 엔프리제는 여기로 날 데려온 걸까. 플리는 왜 여전히 날이 서 있는 걸까.
궁금한 것들을 억지로 밀어 넣고 일단은 빠르게 발을 놀렸다.
“이건 창고의 열쇠입니다.”
엔프리제가 내게 작은, 붉은색의 돌을 넘겼다. 이게 왜 열쇠라는 걸까.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창고는 자물쇠로 잠겨 있는 게 아니라 결계로 잠겨 있습니다. 여기에 걸린 결계는 마탑도 알지 못하는 마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마법이 아니라 주술이라 부르더군요.”
평소처럼 다정하게 설명해 주긴 하지만, 그 말 속도가 좀 빠르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속도로 말을 끝낸 엔프리제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어딘가를 노려보던 그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쪽에서는 이 붉은 돌만 있으면 열 수 있지만, 바깥쪽에서는 다른 열쇠도 있어야 열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가지고 있으니 제가 당신을 부르면 그때 문에 돌을 대시면 됩니다.”
“알았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엔프리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피식 웃었다.
“샤페릴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니 뭔가 이상하군요. 당신이라면 분명 여러가지를 물을 거라 생각했는데.”
“급한 거잖아요. 그런 설명조차 생략할 정도로.”
“…감사합니다.”
엔프리제는 나를 창고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벽에 있는 홰에 불을 붙였다.
환해진 창고는,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좀 달랐다. 일반 방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한쪽에는 보존식과 마실 수 있는 물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창고라기보단… 방공호 느낌 아닌가.
“누군가가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면 책상을 밟고 올라가 저 환기구로 나가시면 됩니다.”
“환기구?”
고개를 들자, 몸집이 작은 샤페릴의 몸으로도 아슬아슬할 것 같은 크기의 구멍이 하나 보였다. 엔프리제는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웃어 보였다.
“저건… 제가 따로 만든 거라 엘마레도 모르는 곳입니다. 나가시면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숲이 나올 겁니다. 커다란 바위가 있는 쪽에는 길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시면 좁은 길이 보이실 겁니다. 그걸 따라가시면 오두막이 하나 나올 겁니다. 거기서 절 기다려 주세요.”
불길한 예감이 계속 들었었다.
사람들이 바뀌었을 때도, 어제 무도회에서 나와 엔프리제를 노려보던 황제를 봤을 때도.
불길한 예감은 들었지만, 아닐 거라고도 생각했다. 내 기우일 거라고. 그렇게나 평온하고 고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침입자에 대해서도, 호숫가에서 보았던 습격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었지만….
그래, 솔직히 알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황제가 내 생각 이상으로 미친놈이라는 것도, 무언가 분명 수를 쓸 거라는 것도.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여전히 조금, 설마 하는 마음이 남아 있지만.
“엔프리제, 전에 했던 말 기억나요?”
“네.”
“엔프리제의 우선순위는 누구예요?”
“…죄송합니다, 샤페릴입니다.”
하여간.
이럴 땐 거짓말이라도 자기라고 좀 해 주면 안 되나? 왜 묻는 건지 알고 있으면서!
하지만 동시에 피식 웃음이 났다. 너무 엔프리제다워서.
“제가 우선순위면 제가 슬퍼할 일을 하면 안 되잖아요. 제가 괴로워할 일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그쵸?”
“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샤페릴의 곁에서 떠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허락해 준 이 자리에서 떠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샤페릴….”
엔프리제의 커다란 손이 내 뺨을 감싼다. 평소엔 부드럽고 따스했던 손길이, 오늘은 부드럽지만 지독히도 차가웠다.
“약속해 주세요.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든 제가 열라고 하기 전에는 절대 문을 열어선 안 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가 말을 걸지 않거나 누가 강제로 문을 열려고 하면 꼭….”
“도망치라는 거죠? 알고 있어요.”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
평소라면 그냥 놓쳐 버렸을 그 작은 소리가 왜 이리도 크게 들리는 걸까.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목에 감겨 있던 플리가 바닥으로 뛰어내려 어딘가를 노려본다. 킁킁거리는 분홍색 코가 바쁘게 움직인다.
“엔프리제도 약속해 줘요.”
내 뺨을 감싼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 차가운 손에 조금이라도 온기가 가기를 바라며.
조금이라도 그에게 내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엔프리제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남은 삶이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다.
처음엔 나를 둘러싼 환경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이 내게 있어 좁은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엔프리제, 당신이 있는 곳이 내 좁은 천국이야.
작은 내게는, 그 좁은 천국만 있으면 돼. 하지만 그걸 빼앗기면 난 분명.
“약속하겠습니다.”
엔프리제가 내 손 위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이내 내 손을 놓고 뒤도 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닫힌 문은… 몹시도 차가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