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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107화 (107/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107)

두근두근.

과연 반응이 어떨 것인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포크를 손에 든 채 엔프리제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빛이 부담스러운 건지 흠칫, 했다가 이내 한입 크기로 자른 떡을 입으로 가져갔다.

“…….”

우물우물.

천천히 씹기 시작하는데 표정의 변화는 없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가래떡이라는 게 단맛이 거의 없기도 하지만 다른 맛도 거의 없는 음식이라…. 그냥 쌀 씹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문제지만.

어떠냐고도 물어보지 못하고 그저 그의 입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색이 엷은, 모양 좋은 입술이 움찔거리는 걸 보니까 뭔가….

으음.

ㅃ…, 아, 아니, 정신 차려!

엄한 생각에 빠지려는 나를 다잡는데 엔프리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맛있습니다.”

“오?!”

“정말로요. 너무 달지도 않고 담백하면서 처음 느껴 보는 식감이라 맛있습니다.”

“처음 느껴 보는 식감…, 아.”

하긴, 제국의 음식에는 저런 쫄깃쫄깃한 느낌의 식감은 없구나. 기껏해야 빵인데 저 정도까지 쫄깃하진 않으니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려는 듯 엔프리제가 하나 더 입으로 가져간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나도 하나를 가져와 입에 넣었다.

우리처럼 밥을 해서 먹진 않지만, 제국의 쌀은 꽤 품질이 높다. 몇 번 쌀알이 들어간 스튜가 나왔을 때 먹어 본 바로는. 그래서 떡으로 만들었을 때도 찰기 있고 달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고소하고 달다.

설탕은 하나도 안 넣었는데.

“맛있어….”

“이런 음식은 처음 먹어 봅니다. 책에서 나왔었나요?”

“어, 음…. 책에 나오는 거 보고 나름대로 이러면 더 맛있을 거 같다는 느낌으로 변형을 해서 해 봤어요.”

완전히 똑같은 레시피는 없을 가능성이 크니까 그렇게 얼버무렸다. 엔프리제는 더 물어보지 않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할머니나 동생은 뭘 해 줘도 늘 투덜거리며 먹었었기 때문에 그럴까. 음식을 할 때마다 짜증 나고 하기 싫고 다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었는데.

엔프리제는 별말을 하진 않지만 오물오물 잘 먹는 걸 보니까 또 뭔가를 해 주고 싶다. 제국의 음식 레시피도 좀 공부해 볼까.

“다음엔 유명한 식당에라도 같이 가 볼까요?”

“가 보고 싶으십니까?”

“으음, 요즘 요리에 좀 흥미가 생겼어요. 여러 음식을 맛보고 싶어서요.”

혹시라도 한식 비슷한 게 있으면 내 식으로 변형했다고 말하면서 또 해 줄 수도 있으니까.

제국의 식생활에 대한 책도 읽었지만, 사실 그냥 책으로 읽는 거랑 실제로 보는 거랑 다르니까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점심때 가도록 하지요.”

“내일!? 괜찮아요? 안 바빠요?”

“괜찮습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우선시 되는 건 샤페릴이니까요.”

아니, 그건 기쁘긴 한데….

황제 그놈, 성격도 더럽던데 일도 안 하고 나랑 놀러만 다닌다고 더 심술부리는 거 아니야…? 지금도 괴롭히고 있는데.

한번, 내가 무도회에 따라가야 하나?

“정말로 괜찮습니다. 샤페릴이 걱정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네?”

“얼굴에 걱정된다고 쓰여 있어요.”

“…어? 진짜요?”

끄응, 그렇게 티를 냈나?

살짝 얼굴을 찌푸리자 엔프리제가 피식 웃었다.

“샤페릴 덕분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누군가가 저에 대해 떠들든, 어떤 눈으로 바라보든… 제게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돌아오면 샤페릴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 어떤 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아, 역시 힘든 건 맞구나.

황제 그 쪼잔한 놈이 계속 불러 대는 이유는 아마도 내게서 떨어뜨려 놓으려는 수작이기도 하겠지만, 엔프리제를 압박하고 괴롭히려는 목적도 있을 거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눈치 빠른 귀족들이 엔프리제를 가만둘 리가 없지.

“다음엔 나도 같이 가요.”

“네…?”

“예법도 잘 모르고 나가기도 싫어서 거절했었지만…, 우리 엔프리제가 욕먹는 건 싫어요.”

“샤페릴….”

“제가 같이 안 가서 듣는 말들도 또 있을 거 아니에요. 역시 가둬 두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안 그러고서야 왜 무도회에 오질 않냐, 뭐 그런 말들.”

정곡을 찔렀는지 엔프리제가 입을 꾹 다문다.

역시나. 반응이 참 뻔한 놈들이다. 그렇게 할 짓들이 없나? 남의 연애사에 이러쿵저러쿵. 하긴, 이게 다 황제 놈이 괜히 엔프리제를 괴롭혀 대는 탓이기도 하겠지.

그놈만 엔프리제한테서 신경 끄면 만사 오케이일 텐데.

“샤페릴.”

“네.”

“이런 말 하면 당신은 제가 유치하고 걱정 많은 남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응?

걱정 많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유치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저는 당신께서 무도회에 안 나가시는 게 더 좋습니다.”

“네?”

엑?

늘 방에만 처박혀 있는 날 걱정하던 엔프리제가…?

눈을 껌뻑껌뻑하며 엔프리제를 바라보자 그가 살짝 시선을 피한다. 그 탓에 살짝 붉어진 귓바퀴가 보인다.

대체 뭐길래 저렇게까지 반응을….

“샤페릴이… 꾸민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습니다.”

…응?

그게 왜 유치해. 나도 그런 말 하지 않았었나?

“저도 엔프리제가 꾸민 거 누구 보여 주기 싫은데요? 그럼 저도 유치해요?”

“아뇨….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엔프리제가 그렇게 생각해 줘서 기뻐요. 엔프리제도 나처럼 질투를 해 주는구나, 나랑 같구나 생각하니까 너무 좋은걸요.”

“…….”

엔프리제가 슬쩍 고개를 돌린다. 입가를 살짝 가리고.

저건, 좋아서 저러는 거구나?

“엔프리제는 제가 질투하는 거 싫었어요?”

“아니요. 정말 좋습니다. 샤페릴이 질투를 해 주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전… 늘 질투하고 유치하게 구니까 샤페릴에게 미움받는 게 두렵습니다.”

아, 혹시 그건가?

엔프리제가 질투할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내게는 엔프리제가 최고라고 하던 그거 때문에?

“제가 엔프리제한테 질투하지 말라고 한 건, 엔프리제가 너무 본인을 몰라서 그런 거였어요!”

“…네?”

“제 눈엔 엔프리제가 제일 완벽한데! 자꾸 저한테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오면 어쩌나 질투했잖아요.”

“…네.”

“제 질투는 달라요! 그냥 엔프리제의 멋진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거 자체가 싫어요. 엔프리제의 멋진 모습은 저만 알고 싶어요. 누구에게도 보여 주기 싫어요. 그런 독점욕에서 나오는 거예요. 엔프리제가 혹시 유혹받아서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엔프리제가 생각에 빠진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걸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엔프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낮게 보는 게 싫으시다는 거군요.”

“맞아요!”

드디어!

“확실히… 그런 생각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아직도 샤페릴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날이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그렇게 낮잡아 생각하진 않게 되었습니다. 그야….”

엔프리제가 날 마주 본다.

금색 눈동자가, 처음에는 그저 흔들리고 일렁이기만 했던 금색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난다.

“저는 샤페릴의 사랑을 받은 남자 아닙니까.”

그게 너무나 눈부셔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다.

* * *

바르카는 빼 들었던 검을 한 번 강하게 휘둘러 맺힌 핏방울을 떨궈 냈다. 그대로 검집에 갈무리한 뒤 소파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붉은 카펫은 피를 머금어도 붉은색인 채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의 눈에 샤페릴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멜리나에게서 온 보고로는, 그녀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으며 나온다고 해도 대부분은 엔프리제가 곁에 붙어 있다고 했다. 엔프리제가 없는 동안에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그래서 접근할 틈이 없다고도 했다.

그 더러운 놈이 설마 그녀에게 족쇄라도 채워 둔 건 아닐까. 아니면 무언가 더러운 수를 써서 그녀를 꾀어 낸 게 아닐까.

더러운 수.

그 단어에 순간 그의 머릿속에 그날의 광경이 떠올랐다.

몇 번 먼발치에서나마 그녀를 보고 싶어 찾아갔던 리베테 가문의 저택. 희고 깨끗한 이미지의 그 저택은 붉게 물들다 못해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바르카는 그녀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널브러진 남자들의 시체. 저택에서 빠져나오려다 살해당한 사용인들의 시체.

그 속에 산 자의 기척은 어느 곳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를 어째…, 이를 어쩌면 좋아….

근처에 사는 이일까. 남자 하나가 불타는 저택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르카는 말을 몰아 그에게 다가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큰 비명 소리가 울리더니 저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들이 리베테 저택의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런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바르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샤페릴…! 이 저택의 영애는 어떻게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말을 탄 자가 뛰어들었다가 나오긴 했는데….

-말을 탄 자?

-모포로 감싼 커다란 무언가를 감싸 안고 나와 그대로 말을 타고 사라졌습니다.

샤페릴이다.

바르카는 분명히 명령했다. 이 저택에 있는 모든 자를 다 죽이라고.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도록.

그리고 또 명했다.

샤페릴 드 리베테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살려서 저택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을 받은 자들은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다는 건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누구냐.

누가 내 샤페릴을 빼앗아 간 것이냐.

바르카는 이를 악물고 불타 무너지는 저택을 바라보았었다.

더러운 짓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짓을 해서라도 그녀를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그 더러운 놈은 손 하나 더럽히지 않고 자신이 연출하고 수행한 극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만을 쏙 빼 가 버렸다.

“반드시….”

되찾고야 말겠다.

설령 그로 인해 샤페릴이 망가진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황제인 자신이 그녀를 가지길 바랐을 때부터….

그녀는 이미 자신의 것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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