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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103화 (103/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103)

꽁냥거리고 실험하러 가고 꽁냥거리고 실험하러 가고의 반복. 그 속에서 나는 상당한 충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좀 걱정했는데, 새로운 사용인들도 별다른 무언가를 저지르진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일을 더 잘하는 것 같다며 템버가 만족스러워했다. 아무래도 황제가 뭔가 협박을 한 모양이지.

다른 걱정거리가 점점 옅어지고 평온한 일상만이 가득한 매일.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으, 맛있어…!”

오늘은 드물게 엔프리제와 자하, 그리고 템버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혹시나 있을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미안하지만 플리는 밖으로 내보냈다.

아마 주변 숲에서 한숨 늘어지게 자다가 돌아오지 않을까.

“독특한 과자네요. 기름 맛이 살짝 나는 걸 보니 기름에 튀긴 걸까요?”

책 속 세계에서 새우 과자를 맛보는 날이 오다니. 구멍이 퐁퐁 뚫린 하얗고 넓적한 과자를 맛본 템버는 진지하게 과자 분석에 들어갔다. 설마 레시피도 안 보고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겠지…?

템버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전 이 과자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심하게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향이 나서.”

의외네. 자하는 단 걸 싫어해서 짭짤한 과자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계란 과자가 원픽이라니. 얇은, 한국에서 먹던 고구마 스틱만큼이나 얇은 감자 과자를 입에 밀어 넣으며 엔프리제를 보았다.

짐짓 심각한 얼굴로 과자들을 바라보는 얼굴이 꽤 귀엽다. 웃기기도 하고.

“엔프리제는 뭐가 제일 좋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 낯선 맛이군요.”

으음.

은근히 적응력이…. 하긴, 설령 사람들의 대우가 나빴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왕족으로 큰 거잖아. 세상 좋은 건 다 먹고 자랐을 테니.

심지어 템버 음식에 길들여져 있잖아. 그럼 당연한 일이긴 하지.

“샤페릴은 어떤 게 가장 맛있습니까?”

“…안 가르쳐 줘요.”

“왜….”

아니, 그렇게 살짝 맛이 간 눈으로 물어보면 당연히 대답 안 하지!

내가 눈치가 좋지 않아도 바로 알아챌 걸. 지금의 엔프리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한 과자를 매일 쓸어 올 기세다.

“그러고 보니 저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과자를 집으려던 엔프리제의 손이 흠칫, 하고 굳었다.

솔직히 집순이라서 안 나가는 것도 있었지만,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길까 봐 외출을 피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평온한 매일이 이어지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입을 뗀 거였는데 생각보다 격한 반응이 돌아와서 놀랐다.

예전의 그 저택에 있을 땐 나가자고 자기가 먼저 조르더니.

“어딜…?”

“도서관이요.”

나도 할 수 있는 요리가 좀 있긴 하다. 문제는 그게 전부 다 한식이라는 걸까.

단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엔프리제 성격상 의외로 떡을 좋아할 것 같단 말이지. 가래떡이나 절편은 손이 좀 가긴 하지만 쌀가루만 있으면 만들 수 있으니까 여기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다른 것도 뭐… 재료만 있으면야.

문제는 내가 그걸 만드는 방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문제지.

그럴듯한 요리책 여러 권을 빌려서 그 속에서 봤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심산이었다.

“필요한 책이 있으시다면 제가 빌려 오겠습니다.”

“괜찮아요. 직접 가서 보고 고르고 싶어요.”

“……,”

엔프리제가 말이 없어졌다. 찻잔을 든 채 눈치를 보던 템버와 자하 중 자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샤페릴이 나가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치고는 아예 대놓고 팩폭을 하네.

좀 더 조심스럽게 물어봐 주면 어디가 덧나?! 라고 하기엔 뭐, 너무 당연한 말이긴 했다.

“엔프리제가 지켜 줄 거니까요. 괜찮아요.”

“…샤페릴.”

나를 보는 엔프리제를 향해 씩 웃어 주었다. 곤란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 얼굴에도, 내게서 옮았는지 엷은 미소가 스몄다.

“괜찮죠?”

“…네. 샤페릴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리 말하는 엔프리제의 얼굴에는 어쩐지 불안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 * *

오오오오!

수도에 있는 도서관이라서 그런가.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자주 가던 집 근처 도서관이랑은 비교가 안 되네.

근데… 이렇게 위엄 있는 도서관에 요리책이 있을까? 엔프리제 서재에도 몇 권 있어서 여기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샤페릴, 어떤 책이 보고 싶으신 건가요?”

“요리관련 책들이 있는 곳을 가고 싶어요.”

오늘의 길 안내로 따라온 자하가 날 보며 옅게 웃었다. 엔프리제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고, 정작 그 주변은….

“세상에, 피 도둑놈이 왜 여기에….”

“레이디 리베테와 자하 경 아닙니까. 저분들이 왜 저 남자와….”

“저 남자가 레이디 리베테를 감금해 두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었던 걸까요.”

“하지만 자하 경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저분은 왕제 전하의 사람 아닙니까.”

아니, 수군거리려면 안 들리게 좀 하던가. 저렇게 말하면 그냥 대놓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

으으, 가서 한마디 해 주고 싶다. 해 주고 싶은데! 가서 뭐라고 하면 또 엔프리제만 욕먹을 거 아냐. 어떻게 해야 저 인간들을 입 닥치게 할 수 있….

…아!

“엔프리제.”

“네?”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팔방을 노려보고 있던 엔프리제의 눈이 내게로 향한다. 경계심은 햇빛 아래의 눈처럼 순식간에 녹아들고 평소의 부드러운 눈매로 돌아온다.

그런 그를 향해 씩 웃고는 손짓을 했다.

“고개 좀 내려 봐요.”

“고개…?”

의아한 듯 말꼬리를 늘이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내렸다. 주변에서는 보지 않는 척하면서 나와 엔프리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보라지. 나는 그들을 비웃듯 씩 웃곤 엔프리제의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췄다.

“샤페릴…?!”

놀란 엔프리제가 제 뺨을 감싸고 뒤로 물러난다. 설마 밖에서 내가 이럴 줄은 몰랐겠지. 마음 같아서야 찐한 키스라도 날려 주고 싶지만.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엔프리제에게 웃으며 말했다.

“엔프리제가 갑자기 너무 귀여웠어요.”

“…….”

말을 잊은 엔프리제. 그것도 또 귀엽다. 가끔씩 이런 이벤트도 할 만하네.

“그럼 갈까요?”

일부러 엔프리제의 팔에 팔짱을 낀다. 처음 해 본 거라 묘하게 어색하긴 한데, 키 차이가 딱 좋아서인지 그리 어렵진 않았다. 온몸을 딱 붙이며 팔짱을 끼자 주변이 술렁거린다.

봤냐. 나는 감금 당한 게 아니라 좋아서 엔프리제 곁에 있는 거란 걸!

니들이 암만 우리 엔프리제를 까 내리고 업신여겨도 내게는 엔프리제가 최고거든?! 밖에서 막 애정 표현 할 수 있을 정도거든!

…크흠.

유치하다는 건 나도 안다. 그래도 엔프리제가 욕먹는 건 듣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뿐이니.

“저게 무슨… 상스럽기 그지없군요.”

“남들 다 보는 데서 뭐 하는 짓인지.”

“레이디 리베테가 저런 분이었던가요.”

“저 남자가 억지로 시킨 걸지도….”

…아오, 진짜.

까놓고 말해서 상스럽고 천박한 건 지들 아닌가? 배우자가 있으면서도 정부나 애인을 두질 않나, 여러 명이랑 밤놀이를 즐기질 않나!

가치관에 따라 다른 거지, 뭘 상스럽대?

내가 찐한 키스를 하길 했냐, 여기서 노출을 하길 했냐! 뽀뽀 정도로 뭘….

“…샤페릴, 전하.”

“네?”

아차, 자하도 있었구나.

괜히 자하까지 수군거림을 듣게 만들었네. 미안한 마음에 슬쩍 뒤를 돌아보자….

어째서일까.

“요리 관련은 이쪽입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으음…? 자하라면 공공장소에서 그런 행위는 자제해 달라고 말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그, 미안해요, 자하.”

주위에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자 자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그, 흠흠.”

“두 분의 애정 행각이야… 저는 이미 질리도록 봐서 상관없습니다.”

윽.

그, 그렇게까지 애정 행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기껏해야 자하의 앞에서 엔프리제 칭찬을 좀 많이 하거나! 자하보다 엔프리제가 좋다고 하거나! 엔프리제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해 말해 주거나! 있었던 일을 말해 주는 정도였는….

…어라, 나 팔불출인가?

“게다가 시끄럽다고 생각한 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역시 자하한테도 들렸구나. 그랬다는 건 역시 엔프리제에게도 들렸던 거겠지.

“…그래도 다시는 밖에서 이러지 마세요, 샤페릴.”

의외로 말리는 말은 엔프리제에게서 나왔다. 아니, 의외는 아닌가.

아까 들려왔던 상스럽다던가 그런 말은 내게 하는 말이다. 엔프리제는 그런 게 듣기 싫은 거겠지.

“싫은데요.”

그렇게 속삭이면서 팔을 더 꽉 끌어안았다. 일부러 뺨까지 팔에 갖다 대자 엔프리제의 표정이 녹아내려 내 방에 있을 때와 비슷해진다.

아, 근데 이런 표정 남들에겐 보여 주기 싫긴 한데.

“샤페릴.”

“이왕 욕먹을 거면 닭살 커플로 욕먹는 게 좋아요.”

“닭살… 커플요?”

“으음. 그러니까 두 사람이 너무 사이가 좋아서 질투 난다거나, 사람들 앞에서도 애정 행각을 서슴없이 해서 재수 없다거나, 레이디 리베테가 대공 전하를 너무 좋아하던데 대체 얼마나 매력이 넘치길래 레이디 리베테가 저렇게까지 헤롱거리는가! 같은 거요.”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보던 엔프리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표현이 좀 과격하긴 했지만 내 마음이 이해가 간 거겠지.

씩 웃곤 몸을 더 바짝 붙이자 엔프리제의 표정이 다시 곤혹스러워졌다.

“이해했으니까 이제 팔은 놓아주세요, 샤페릴.”

“싫어요. 책 고를 때까지는 계속 이러고 있을 건데요?”

슬쩍, 모르는 척해 주며 앞장서서 가는 자하를 곁눈질한 엔프리제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내 귓가에 입을 가져왔다. 뜨거운 입김에 나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그, 닿고 있습니다.”

“뭐가요?”

“…가슴….”

그야 당연히 닿지! 팔짱 낀 건데!

왜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엔프리제를 보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이러고 있으면… 그, 걷기가 불편해질 것 같습니다.”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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