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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102화 (102/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102)

요즘 엔프리제가 너무 선비가 됐다.

“엔프리제.”

“네?”

“뽀뽀해도 돼요?”

이 정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내어 주는데. 쪽, 소리가 나게 뺨에 입을 맞춰 주자 엷게 웃으며 뒤로 몸을 당긴다.

아니, 받았으면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야?

“전 안 해 줄 거예요?”

“…그, 나중에….”

“나중에 언제요?”

“나중에요.”

아무래도 요전에 날 너무 무리하게 만든 게 마음에 걸리는 듯하다. 전에는 꼬시면 못 이기고 덤볐는데 이제는 저런 식으로 철벽을 쳐 버린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배려하는 거 아냐?

울컥 치미는 짜증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그 모습을, 평소라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엔프리제는….

“…….”

열심히 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다.

평소엔 날 끌어안고 있는데 오늘은 등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새롭고 좋기는 한데.

뭔가 기분이 좀.

“엔프리제.”

“네.”

“오늘 바빠요?”

“…아, 음. 당분간은… 조금 그럴 것 같습니다.”

“왜요?”

“네?”

엔프리제는 저도 모르게 혼이 나간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나를 보았다. 그 모습도 귀엽긴 하지만!

“왜 바쁘냐구요.”

“어….”

“엔프리제가 영지 운영 직접 안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바빠요?”

“그….”

“오늘은 안아 주지도 않고!”

“…….”

가장 큰 불만 사항을 터뜨리자 엔프리제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제 입가를 싸쥔 게 아무래도 일부러 그러는 건 확실하다.

“바쁘다면… 좋아요. 오늘은 이렇게 합시다.”

애매하게 몸만 돌려 그를 보고 있었던 자세를 고쳐 평소에 그가 날 뒤에서 안고 있던 자세로 바꾸었다. 문제는.

언제나 내 어깨 위에 제 얼굴을 올려놓을 정도는 되었던 엔프리제와 달리 나는 아무리 턱을 뻗어도 그의 가슴께에 해당하는 등에 얼굴이 닿는다는 걸까. 어쩔 수 없이 살짝 고개를 돌린 채 그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뭐랄까.

진짜로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가 된 느낌인데.

“샤페릴…?”

파르르 목소리가 떨린다.

뺨에 등이 닿아서 좀 딱딱하다. 거의 벽에 붙어 있는 느낌 같기도 하고.

“이렇게 있으면… 그, 그림을 그리실 수 없을 텐데.”

“괜찮아요.”

“샤페릴….”

보기보다 두툼한 허리를 감은 손 위에 그의 손이 닿는다. 하지만 떼어 내지도 못하고 쳐 내지도 못한다. 그저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손을 꽉 잡을 뿐.

“놓아 주세요.”

“싫어요.”

“제발….”

“엔프리제도 맨날 이러고 있잖아요. 뭐 어때서요.”

“제가 끌어안아도 샤페릴은… 아무렇지도 않지 않습니까.”

아니, 이 남자가?

누가 그래, 누가!

“아닌데요?”

“샤페릴.”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다. 생각해 보면 늘 그렇긴 하지.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엔프리제가 받아 주고.

“엔프리제는 제가 어린 애로 보여요?”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근데 왜 달래려고만 해요?”

“그런 게 아닙니다. 혹시 샤페릴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슬쩍 고개를 들었다.

길게 뻗은 목선. 그 위에 달려 있는 작은 머리를 앞으로 푹 숙이고 있었다.

…으음. 날 안고 있다가 가끔 목 뒤에 뽀뽀할 때가 있던데 그 기분을 좀 알 것 같다. 되게 맛깔나 보이긴 하네….

시원시원하게 쭉 뻗은 데다가 뽀얘서 뭔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제가 최근 너무 자제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자제요?”

“검을 배운 저와 샤페릴의 체력 차가 큰 걸 알면서도… 자꾸… 당신을 조금 더….”

차마 말을 맺지 못한다. 아니면 맺을 말을 찾지 못한 걸까.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하얀 도화지 위에 물감이 번져 가듯 그의 목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저는 상관없는데요? 그러다 보면 체력도 좋아지겠죠.”

원래 그러더라고, 뽕빨물 보면.

당장 내가 당하니까 좀 힘들긴 한데…, 너무 기분 좋아서 기절하는 거니까 그래도 견딜 만은 하다.

근육통은 좀 아프긴 하지만.

“근육통도 마사지 받고 많이 좋아졌잖아요. 그 시녀한테 또 부탁하면 되죠.”

“저는 이 방에 가급적 다른 사람을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어머, 독점욕?

저절로 씩 웃음이 지어진다. 엔프리제가 내 얼굴을 못 보는 상태라서 다행이다. 지금의 나는 아마 무척… 주책바가지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뻔하니까.

“근육통도 몇 번 겪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샤페릴.”

드디어 마음을 굳힌 듯 그가 허리를 잡고 있던 내 손을 떼어 냈다. 진짜 마음먹고 떼어 내니 어떻게 방어할 도리도 없었다.

이런 힘을 가지고 맨날 나한테 휘둘리고 살다니. 이게 찐사라는 건가.

그런 뻘생각을 하고 있는데 엔프리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조금 전까지의 숫기 없고 부끄럼 많은 모습은 어디 갔는지 진중한 표정이었다.

나도 얼결에 덩달아 바른 자세로 앉았다.

“저는 샤페릴이 샤페릴다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로 인해 샤페릴이 바뀌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렇게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왜요?”

사랑하면 서로 닮아 가는 거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자, 엔프리제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제가 정말로 바라는 것들… 전에 뭉뚱그려 이야기 드리지 않았습니까.”

“네.”

“샤페릴은 그때 두려워하는 얼굴로 절 보고 있었습니다.”

어라, 그랬던가?

무섭다기보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을 뿐인데. 아니, 확실히 무서웠지.

엔프리제가 할 행동이 무섭다기보다는… 그걸 내가 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에. 이기적인 나는 그게 샤페릴이 받아야 할 것이라 두려웠던 게 아니었다. 다만 엔프리제가 상처 입는 것이 두려웠다.

그 모든 행위를 한 게 샤페릴이 아니라 나라는 걸 안 후에 상처 입을까 봐.

끝까지 속이기로 결심한 지금으로서는 그런 두려움조차 없지만.

“저는… 당신을 겁먹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힘으로 당신을 억지로 어떻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남자가 샤페릴을 가둬 두고 억지로 범하기까지 했을 때는 아마 본인이 가장 큰 상처를 입었을 테지. 샤페릴에게 미움받으면 죽는 줄 아는 사람일 텐데. 심지어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행위를 가장 숭배하는 대상에게 했었다니.

원작대로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페릴이 샤페릴답게 있을 수 있는 게 저에게는….”

“제가 변하면 제가 아니게 되는 거예요?”

엔프리제가 놀란 듯, 아예 몸을 내게로 돌렸다. 자신이 말한 게 그런 식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듯.

“아니, 저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가 변하면 엔프리제는 저를 사랑하지 않게 돼요?”

그럴 리가 없지.

알면서도 말을 잇는다.

“제가 체력이 좋아지고 근육통에 덜 시달리면 제가 아니게 돼요? 그러면 엔프리제는 절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게는 샤페릴이 가장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저로 인해 억지로 무언가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왜 억지로라고 생각해요?”

“…….”

엔프리제가 다시 말을 잊었다.

만약 내가 이 장면을 소설로 읽었다면, 분명 이 답답한 남자를 향해 소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지켜봐 왔기에 그의 마음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엔프리제는 내가 자유롭기를 바란다. 다른 요소에 의해서도 물론 그렇지만,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거나 괴롭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로 인해 자신이 괴로운 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그러면서 왜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내가 좋아서 엔프리제를 꼬시는 건데 왜 싫은데 억지로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더 기분 나빠요.”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고.

나도 엔프리제가 괴롭고 힘든 게 싫다.

엔프리제랑 늘 같이 있고 싶다. 항상 붙어 있고 싶다. 그렇게 있다 보면 나도 야한 일을 하고 싶은 기분이 되는데 엔프리제는 오죽할까.

엔프리제와 내 다른 점이라면, 나는 내가 내키지 않는 일은 못 본 척한다는 거다.

“저는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하지 않아요. 기억을 잃고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그렇게 결정했어요.”

“샤페릴….”

“조금 아프고 힘든 건 맞아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도 엔프리제랑 야한 일도 하고 싶고 딱 붙어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자꾸 꼬시는 거예요.”

“…….”

야한 일, 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자 엔프리제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말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들은 사람이 더 부끄러워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제 제가 힘들까 봐 제가 유혹하는데도 거절하는 건 하지 말아 줘요. 엔프리제가 힘들어서 그런 거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

엔프리제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서류를 내팽개친 채 나를 꽉 끌어안았다.

“사실은… 아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나도요.”

나도 마주 안았다.

딱딱하고 근육 울끈불끈한 등도 좋긴 했지만, 역시 가슴이 제일 좋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데다 매끄럽고.

살짝 뺨을 비비자 엔프리제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듯 더 강하게 안았다.

“그래도 당분간은 정말로 자제하는 게 좋겠습니다.”

“으음, 엔프리제.”

“네?”

“생각해 봐요. 매일 하는 거랑 몰아서 하는 거, 어느 쪽이 더 자제가 안 될 것 같아요?”

“…….”

물론 로판 절륜남들은 매일 해도 자제를 못 하긴 하지.

엔프리제도 그렇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뭐, 좀 더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나도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안 생기면 어쩌지.

에이, 모르겠다. 그때쯤에는 내가 체력이 붙어 있겠지, 뭐.

내 말이 타당하다고 느꼈는지 엔프리제의 손이 은근슬쩍 등을 쓰다듬는다. 그 손길을 느끼자마자 나는 엔프리제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러자 의아함 가득한 얼굴로 엔프리제가 날 내려보았다.

“근데 지금은 안 돼요.”

“네…?”

“아까 짜증 나서 붓을 막 휘둘렀는데 생각보다 모양이 예쁘게 잡혔어요. 그러니까 일단 기다려 봐요.”

그렇게 말하고 휙 몸을 돌려 그에게 기댔다. 잠시 움직이지 않던 엔프리제는.

“…알겠습니다.”

왠지는 모르지만 웃음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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