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97)
콰득, 하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황제 직속의 시녀가 되었을 때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의 포악함은 황태자 시절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외적인 평판을 위해 음지에서 병사나 사고사로 꾸며져 죽어 나간 사용인이 대체 몇인지 셀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시중을 들라는 명을 받아 든 건, 거절하기 무섭기도 했지만 돈 때문이었다. 작위만 있을 뿐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제 아비 탓에 점점 무너져 가는 가문을 유지라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후.”
그녀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시중을 드는 데는 아주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황태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만두지 않은 시녀는 그녀뿐일 정도였다.
다만 최근의 황제는 그녀로서도 다루기 어려웠다.
여름께부터였던가. 그는 몹시도 거칠어져서 시도 때도 없이 물건을 부수고 아랫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러 댔다. 아직 검을 뽑은 일은 없었지만, 요 며칠 사이에는 종종 황궁 주변의 숲이나 후원에 죽은 동물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걸로 보아서 사람에게 향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 보였다.
또 애꿎은 사용인들이 죽어 나가거나 불구가 되어 그만두기 전에 빨리 진정시켜야 할 텐데. 그녀는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황제가 있는 방의 문을 노크했다.
“폐하, 멜리냐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는 대답하지 않는 게 곧 긍정의 답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멜리냐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생각대로 가관이었다.
오랜 경력의 장인이 제 온 힘을 다해 만들어 낸 가구나 장식품이 이런 식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런 주제에 눈은 높아서 값싼 것이 보이면 그 또한 부숴 버린다. 황실 예산 중 황제가 때려 부술 가구나 예술품값으로 따로 떼어 놓는 것만 해도 작은 왕국에서 일 년은 쓸 법할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것조차 올해는 이미 거덜 나서 추가 예산을 편성해야 했지만.
“…치워.”
“알겠습니다, 폐하.”
어떻게 말을 붙여야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이유를 알아야 어떻게 처리를 하든 할 텐데.
힐끔 황제를 곁눈질하며 일단 멀쩡한 물건을 따로 분류하는 그녀를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턱을 괴었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이며 입에서 흘러나오는 짜증 섞인 한숨이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덩치도 큰 놈이 제 감정 하나 주체하지 못해서 저따위로 굴다니. 이럴 바엔 차라리 저 남자가 아니라 왕제 전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게 제국을 위해서는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훨씬 낫겠지.
기량 면에서도, 인성 면에서도.
“젠장.”
멜리냐가 청소하는 걸 뻔히 보면서도,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탁자 위에 있던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 힘은 어찌나 좋은지 허공을 날아 벽에 부딪친 재떨이는 여기저기에 담뱃재를 흩뿌렸다.
카펫은 둘째 치고 벽지에 묻은 건 대체 어찌해야 할지.
까딱 잘못하면 제 머리에 재떨이가 내리꽂혔을지도 모르는데, 멜리냐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기절하면 이걸 굳이 자신이 치우지 않아도 될 테니까.
물론 그랬다간 두엇 정도 죽어 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황제는 자신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더 잔혹해졌다. 황태자 시절, 그에게 겁을 먹어 손을 떨던 하녀가 유리를 치우다가 소리를 내자 시끄럽다며 발로 차 유리 조각 위로 넘어뜨린 적이 있다. 그 탓에 그 아이는 고운 얼굴에 온통 상처가 났었다.
치유 마법 한 번에 수백 골드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가져다 바칠 돈은 없었다. 결국, 보기 흉하다며 짜증을 부리던 황태자는 그녀를 해고했다.
하녀는 제 얼굴을 그리 만든 황태자를 원망하는 것보다도 그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에, 최소한 목숨만은 건졌다는 것에 감사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었다.
멜리냐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이들이 그렇게 들어왔다가 떠났다.
그렇기에 멜리냐는 황제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했다. 아니, 사실 두려울 것도 없었다. 밀리냐가 보는 황제는….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거리에 드러누워 떼를 쓰던 때에서 전혀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니까.
“폐하, 마음이 편치 않아 보이십니다.”
“…….”
으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 팔걸이를 얼마나 세게 쥐는지 뿌드득 뿌드득 무언가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오히려 멜리냐는 그 소리에 안심이 되었다.
최소한 저걸 쥐고 있는 동안은 제게 그의 주먹이 향하진 않을 테니까.
“오랫동안 폐하를 모시며 불편함 하나 드리지 않았던 저입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어든 할 터이니, 감히 제가 들어도 괜찮은 일이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멜리냐는 황제를 향한 불쾌감과 혐오감을 감추고 맑게 웃어 보였다.
흔들림이 조금이라도 있어선 안 된다. 황제는 의외로 눈치가 빨라서 남들이 저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금방 알아채곤 했다. 두려움 한 조각, 혐오감 한 조각이라도 내비쳤다간 제 목 역시 날아갈 터였다.
자신이 그를 섬긴 8년이라는 세월은,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닐 테니.
“…갖고 싶은 것이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찌해야 하느냐.”
그의 말은,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였고 의외라면 의외였다. 그가 이토록 거칠어져 있는 걸 보고 뭔가 일이 있겠구나 싶긴 했지만 설마 무언가를 손에 넣을 수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다니.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
멜리냐는 그게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원하신다면 제가 블레임 대공저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한낱 시녀인 네가 무얼 할 수 있다는 거냐.”
“시녀이기에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저택 내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폐하께서 원하는 것의 동향을 살펴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움직이실 때 저 역시 따르겠습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제안이었지만, 멜리냐에게는 꽤 좋은 이야기였다. 언제 칼이 날아올지 모르는 여기보다는 차라리 낯선 저택에 들어가 있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블레임 대공은, 말투는 밉살스러우나 사람을 해하지는 않기로 유명하지 않던가.
최근에는 거의 황제가 탐내는 보물과 함께 있느라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 같고. 나중에 일을 벌일 때 눈치 빠르게 움직여 주기만 하면 되겠지.
“…….”
황제는 생각에 빠진 듯 턱을 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으스러뜨릴 듯 쥐고 있던 팔걸이를 놓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대신 눈을 감았다. 마치 그의 처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겠다고 말하는 듯.
황제는, 멜리냐가 입이 무거운 고참 시녀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설령 그녀의 이야기를 거부하더라도 그의 의중을 읽어 냈다는 이유로 해하지는 않을 터였다.
물론 어디 가서 입을 여는 순간 목이 베일 테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손 쓸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그의 머리에 대체 무슨 계획이 들어 있는 걸까. 순간 떠오른 궁금증을 흩으며 멜리냐는 고개를 조아렸다.
궁금증은 곧 죽음과 연결된다.
자신이 해야 하는 건 주인의 의중을 살피고 그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는 것뿐이니까.
* * *
“사용인들을 교체해 준다고요?”
뭐지, 이건.
고개를 갸웃하며 눈을 깜빡이자 플리가 머리카락을 타고 올라온다. 처음에는 많이 아팠는데, 이제는 꽤 익숙해져서 그런지 버틸 만은 하다. 물론 안 아픈 건 아니지만.
내 머리 위를 점령한 플리가 엔프리제의 어깨에 앉아있는 셰리를 보며 눈을 빛냈다.
요 며칠 셰리를 볼 때마다 이러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갑자기요?”
“…네. 샤페릴의 생활에는 별로 달라지는 게 없을 겁니다. 당신의 시중은 모두 템버가 들고 있으니까요. 부엌도 따로 사용하고 있고, 청소 도구조차도 따로 사용하고 있으니….”
엔프리제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도 그렇겠지. 아무 의미도 없는데 왜 사용인 전체를 교체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그것도 벌써 몇 주 전의 이야기를 꺼내서.
“제가 한 말 때문에요?”
“…일단, 황실에서 온 사자의 말로는 그렇다고 합니다.”
저번에 직접 만났을 때, 사용인들이 엔프리제에게 하는 행동을 지적하며 당신의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고 했었던 그거. 그 말을 갑자기 들고 나와서는 그동안의 실책에 대해 사과하고 사용인들을 전체 교체해 주겠다고 말했단다.
“흐음….”
“혹시 모르니 가급적 제게서 떨어지지 말아 주세요.”
“방에서 안 나갈 건데요?”
“…….”
엔프리제가 묘한 얼굴로 나를 본다.
그건 안도감 같기도 하고, 죄책감 같기도 하고, 분노인 것 같기도 했다. 이유야 뭐 뻔하지.
그 저택 안에 갇혀 있던 내가 안타까워서, 내가 좀 더 자유롭길 바라서 이런저런 수를 써서 꺼내 왔는데 이번엔 좀 더 클 뿐인 이 저택에 갇혔다. 그런 내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력한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겠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
“아, 큰일 났네요.”
“왜 그러십니까.”
조금 장난칠 생각으로 이불을 끌어 올렸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여전히 뒹굴거리고 있었던 탓에, 해가 중천임에도 나는 아직도 이불 속이었다. 등받이에 앉아 있긴 했지만.
그 상태로 이불 위로 빼꼼 눈만 내밀어 씩 웃었다.
“그럼 이 방에서 종일 엔프리제랑 같이 있어야겠네요…? 둘이서만…?”
장난기 섞인 말이라는 건 엔프리제 역시 알아들었을 터였다. 내가 그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듯 그 역시 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했을 테니까.
그런데.
조금 너무 많이 파악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군요.”
엔프리제의 입가에도 짓궂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는 열린 창문으로 셰리를 날려 보낸 후 창을 닫았다.
그러고는 커튼을 치더니 날 돌아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단둘이서… 뭘 할까요?”
…….
이, 이 남자가! 요망하게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