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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93화 (93/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93)

내 인사에 엔프리제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는.

“…몸은 괜찮으십니까?”

순식간에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마법의 말을 꺼내 버렸다.

이 남자야! 내가 평소처럼 인사했으면, 너도 좀 어?! 센스 있는, 어!? 그런 말을 해 줘야지!

라고 하기엔 나도 센스가 없었지.

“저는 괜찮…은데 엔프리제는 괜찮아요? 어제 그….”

“괜찮습니다. 통증 같은 것도 없고.”

“다행이네요.”

근데 앞으로 엔프리제랑 이, 크흠, 이런 걸 할 때마다 신경 써야 하는 걸까? 최대한 횟수를 조절하면서 해야….

하지만 내가 조절이 돼도 엔프리제는 조절이 안 되던데.

“무리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참는다고 참았는데.”

…아, 그게 조절한 거였어?

그러고 보니 키워드에 절륜남이 있긴 했지. 한 번 씬 나온 뒤로는 거의 씬 범벅이긴 했지. 그랬긴 했는데….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어요.”

“네?”

“엔프리제를 위해서도, 저를 위해서도.”

이런 건 초창기에나 이렇게 불타오르지, 나중에는 시들해지고 의무 방어전으로 가기 마련이라고 들었다. 그러니 지금 불타오를 때 최대한, 그, 크흠. 해 둬야지.

그리고 운동을 하면 욕구 발산도 된다고 하니까… 나중에 엔프리제가 시들해지면 나는 운동으로 해소할 수 있지 않겠어?

“…….”

아, 빨개졌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엔프리제는 무언가 말하는 대신 살며시 나를 끌어안았다. 잠든 내가 깰까 봐 안고 싶은 걸 참고 있….

…….

“엔프리제?”

“네.”

“그, 허리에 뭐가 닿는데.”

“…….”

“설마 아니죠…?”

내가 기억하는 것만 세 번이 넘는데…?

안 돼. 안 해. 아니, 더는 못 해!

나중에 내가 체력을 기르면 모를까 못 한다고! 나름대로 체력을 길렀는데도 마지막에 거의 기절했었는데!

“힘드십니까…?”

“당연하죠! 못 해요! 안 해요! 싫어요!”

단호한 거부에 엔프리제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다.

아니, 설마 아까부터 이 상태였던 거야? 그럼 날 안고 있지 않았던 건 설마 자는 사람 상대로 일 칠까 봐 그랬던 거고?

무섭다, 동정 절륜남!

그렇게 자제력 강하더니 한 번 고삐가 풀리니까 끝을 모르다니!

“샤페릴이 싫어하는 건 절대 안 할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살며시 허리를 휘감는 팔뚝. 그러고 보니 어제 이 성난 팔뚝이 꿈틀꿈트…. 크흠! 아니, 그만 생각하라니까?!

“그냥… 이렇게 안고만 있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면 왠지 내가 뭔가 잘못한 거 같잖아…? 내가 나쁜 놈인 것 같잖아. 괴롭힘당한 건 난데.

그만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한 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놔주지 않은 건 엔프리제인데!

“그… 진짜로 안고만 있어야 돼요?”

“네.”

…끙.

뭔가 찜찜하지만 일단 좀 더 자야 할 것 같다. 아직 몸이 붕 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몽롱한 느낌이라 잠이 더 필요하다.

나는, 별 의미 없다는 건 알지만 이불을 끌어당겨 목까지 덮고 눈을 꼭 감았다.

“잘 자요, 샤페릴.”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 배 위를 감싼, 이제는 익숙한 무게.

잠들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 *

으, 으음….

눈이 무거워. 몸이 무거워. 아까 일어났을 때보다도 더 힘든 것 같은데.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고 쑤신다. 그 탓에 잠은 깼지만, 눈도 뜨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이건 마치 그거 같은데.

레포트 때문에 도서관에서 사악한 두께의 참고 도서 십여 권을 빌려서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집에 가서 밤새 레포트 쓰고 그 책을 다시 학교에 가져가서 반납하고 난 뒤 강의실에서 뻗었을 때의 그 느낌. 요컨대 몸살 난 느낌이다.

특히 골반 주변이랑 허벅지 뒤쪽이 엄청 땅긴다. 끙끙거리며 몸을 웅크려 다리를 주무르는데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잘 잤습니까, 샤페릴.”

응?

돌덩이 같은 눈꺼풀을 들자 바로 앞에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뭐야, 이 남자. 계속 나 자는 거 보고 있었나?

“샤페릴?”

“…엔프리제도 잤어요?”

“아니요.”

“그럼 계속 그러고 있었어요?”

“네.”

뭔가 더 물어보고 싶은데 목이 잠겨서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자 엔프리제가 벌떡 일어나 식탁의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가져왔다.

“일으켜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애기도 아니고 그 정도는 아니지.

라고 생각했지만.

“악…!”

어억.

허리란 이토록 중요한 신체 기관이었던가. 몸을 일으키려고 힘을 줬는데, 도리어 올라오는 통증 탓에 온몸에 힘이 탁 풀렸다.

자도 모르게 악 소리를 내지르자 엔프리제가 침대 옆 협탁에 컵을 내려놓고 내게로 다가왔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부탁할게요.”

크흑, 이런 굴욕이….

엔프피제의 손을 빌려 겨우겨우 침대 위에 앉았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게 해 준 엔프리제가 물컵을 갖다 주었다.

“죄송합니다.”

엔프리제가 시무룩한 얼굴로 내 곁에 앉았다. 슥, 하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부드러워서 가만히 눈을 감고 물을 삼켰다.

차가웠으면 좋았을 텐데. 묘하게 미지근한 물이라 아쉽긴 했지만, 넘어가긴 더 잘 넘어갔다.

“참, 씻어야 하는데.”

몸 여기저기에…, 크흠.

여기도 피임구 같은 게 있겠지? 사 놓으라고 해야겠다. 생각해 보면 피임구를 하면 점막끼리 접촉하는 건 아니잖아. 그러면 마력 이동이 없으려나?

“일단은… 몸을 닦고 침구도 다 갈아 두었는데, 찝찝하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이쪽이 더 익숙해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엔프리제도 평소처럼 옷을 입고 있구나. 나도 그렇고.

둘 다 옷을 안 입고 있는 쪽이 더 어색하다 보니….

“이거, 혹시….”

“몸을 닦아 드리는 건 제가 했습니다. 옷도 제가 입혀 드렸습니다.”

…으으, 어차피 볼 거 못 볼 거 다 보긴 했는데 좀 창피하네.

“혹시… 불쾌하시다면 죄송합니다.”

내 표정에서 묘한 복잡함을 읽어 냈는지 엔프리제가 일단 사과의 말부터 꺼냈다. 딱히 불쾌한 건 아닌데.

“그냥 좀… 창피해서요.”

“예뻤습니다.”

“…….”

아니, 이 남자야!

좋아하는데 뭔들 안 예쁘겠냐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애초에 뭔가… 생각해 보니 자는 얼굴 같은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좀 창피하네?!

“으으.”

“식사는 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 배고파요.”

식사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어제 여러모로 체력을 너무 써서 그런가.

“가져오게 하겠습니다. 혹시 드시고 싶은 메뉴 같은 건 없으십니까?”

“단 거…. 달콤한 초콜릿이 든 쿠키가 먹고 싶어요.”

내 말에 엔프리제가 피식 웃었다. 왠지 되게 오랜만에 이 남자가 웃는 걸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샤페릴은… 초콜릿을 굉장히 즐기시는군요.”

“그런가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으음, 맛있잖아요!”

씩 웃자 엔프리제가 내 뺨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곤 설렁줄을 당겼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템버가 왔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식사를 가져다줘. 나도 오늘은 여기서 먹도록 하지. 그리고 샤페릴이 초콜릿 든 쿠키를 먹고 싶다고 하는군.”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템버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그러면서 눈이 마주쳤다.

침구랑 시트를 다 갈았다는 건, 템버도 어제의 흔적을 다 봤다는 거겠지.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그녀의 미소가 오묘하게 보였다.

으으, 생각보다 더 창피하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가릴 필요도 없는데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까지 가렸다. 기분 탓인지 템버의 옅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 *

“응?”

식사가 차려지고, 템버가 나가고 나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계속 안절부절못하던 엔프리제가 부축해 줘서 일어섰더니 무언가가 다리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쏴아 하고 쏟아지는 건 아닌데 땀방울 하나가 찔끔 흘러내리는 것처럼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이 기분.

뭐지, 이 찜찜함은.

슬쩍 아래를 보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슬립 아래로 무언가가….

“…자, 잠깐만요.”

이거 설마 그건가?

아니, 지금 내 몸 안에서 나올 만한 건 그거뿐이잖아. 아니, 근데 왜?!

“네?”

“저, 그, 어, 엔프리제 먼저 식사해요.”

“배고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이게 왜…. 분명 안에 했을 텐데 밖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거지. 속옷도 입었는데!

“그, 음. 침… 침대에서 먹고 싶어서요.”

고개를 갸웃하던 엔프리제가 다리 쪽을 보기 전에 후다닥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미안해요, 템버. 이불 더럽혀서….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템버에게 사죄의 말을 전했다.

“그럼… 이쪽으로 옮겨 오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가 말하기 싫다는 걸 눈치챈 건지 엔프리제가 순순히 음식을 옮겨 왔다. 협탁 위를 가득 채운 접시 속에는 부드럽게 요리된 닭죽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아.”

닭을 순살로 팔지 않는 이 세계답게 뼈째 요리된 닭을, 포크와 나이프를 요령 좋게 이용해 발라낸 엔프리제가 내게 입을 벌릴 것을 요구했다.

“제가 먹을 수 있어요.”

“…….”

아니, 그러니까 그 시무룩을 그만두란 말이다, 이 남자야!

뭔가 엔프리제를 막아 두던 무언가가 터져 나온 느낌이다. 지금까지 이상으로 날 과보호하고 뭔가 해 주려고 한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싫지는 않은데….

“이번만이에요.”

“알겠습니다.”

근육통이 허리랑 다리에 있는 거지 팔에 있는 게 아닌데. 그래도 뭔가 챙겨 주려는 마음이 갸륵해서 얌전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쏙, 하고 살만 발라낸 닭고기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언제 먹어도 템버의 닭고기 요리는 최고다. 죽으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부드럽게 녹아내린단 말이지. 나중에 배우고 싶네.

입에 있는 걸 삼키기가 무섭게 이번엔 숟가락에 죽을 가득 떠 후후 불더니 내민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에휴.”

결국 그냥 얌전히 받아먹기로 했다.

그 후로도 엔프리제의 과보호는 도를 더해 가서, 저녁때까지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게 하는 통에.

“이제 못 참아! 나가요! 이제 오늘은 제 방에 오지 마세요!”

결국, 폭발한 나로 인해 엔프리제는 방에서 쫓겨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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