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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81화 (81/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81)

방에 결계를 쳐 준 후로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나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바깥 일과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생활했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내 일과는 예전 저택에 있을 때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매일. 대부분은 엔프리제와 함께였지만, 종종 그가 나간 후에는 플리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최근의 플리는.

“…….”

도도도돗.

“…….”

도도도도돗.

“…풋.”

도도도도도돗.

내가 방에서 이동할 때마다 쪼르르 날 쫓아와서 주변을 살핀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몸을 휘며 고개를 갸웃한다. 물음표 같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덥석 잡아 올리면 얌전히 목에 감겼다가 지겨워지면 등을 타고 다시 바닥으로 내려간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귀여워 죽겠다.

“왜 그래, 플리?”

“삐?”

“배고파?”

킁킁, 하고 허공의 냄새를 맡던 플리가 내 곁에 자리를 잡고 크게 하품을 했다. 바닥에 누워 있는 녀석을 안아 올려 내 무릎 위에 눕혔다.

“잘 거야?”

“삐.”

대답하듯 소리를 낸 플리가 사르르 눈을 감는다. 그 등과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다가 조심스럽게 앞발을 만지작거렸다.

평소 깨어 있을 때는 만지게 해 주질 않는단 말이야.

놀랍게도, 족제비에게도 핑크색 젤리가 존재한다. 살며시 만져 주면 쫀득쫀득…. 마음이 가라앉는 부드러운 감촉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스민다.

평소엔 예민한 플리지만, 잘 때는 거의 죽은 듯이 잔다. 이래서 대체 어떻게 야생에서 살아남는 거지. 늘 궁금하다.

“흐으…. 힐링 된다.”

몰랑몰랑.

귀여워.

엎드려 자고 있는 녀석의 팔을 괜히 들어 올렸다가 내린다. 살금살금 요상한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가 파드득 몸을 떠는 바람에 멈췄다.

핑크색 코가 킁킁거리며 움직이는 게 귀엽다. 자면서도 경계하는 건가.

“플리-.”

“삐….”

힘없는 대답 소리가 들린다. 물론 잠결이다.

그게 귀여워서 웃음을 터뜨리고 싶은데, 그랬다간 플리를 떨어뜨리거나 깨울 것 같아 배에 힘을 주고 참았다. 아, 눈물 나. 배 아파.

괴롭히는 건 이쯤하고 나도 한숨 잘까. 소파에 앉은 채 녀석을 쓰다듬으며 눈을 살며시 감았는데.

“…응?”

바깥이 시끄럽다.

이 저택은, 제 주인을 닮아서 그런지 대부분 고요하다. 사용인들도 그리 활기차거나 시끄럽지 않고 순찰을 도는 경비병들이나 주둔하고 있는 사병단도 조용하기 때문이었다.

뭐, 물론 엔프리제가 뭘 잘못하지는 않나 다들 감시하느라 그러겠지만.

내가 온 지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이렇게 시끄러운 건 처음 본다. 잠시 망설이다가 플리를 들어 조심스럽게 옆으로 옮겼다.

역시나 녀석은 깨지 않고 다리를 파드드득 움직이는 걸로 끝났다.

조용히 걸음을 옮겨 창가로 가자 사용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종종 누군가가 소리를 치는 것도 들린다.

무슨 일이지?

“어디까지 오셨다고 합니까?”

“두 시간 뒤에는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묻고 싶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나가 볼까? 하지만 저렇게 정신없어서야 내가 뭘 묻는들 대답이나 해 줄까? 차라리 템버를 부르는 게 낫겠다.

그렇게 생각해 설렁줄을 당기자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아가씨, 템버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템버가 느긋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녀는 소파 위에서 대자로 누워 잠든 플리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더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가씨.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밖이 소란스러워서요. 무슨 일이에요?”

아아, 하고 한탄 같은 소리를 흘린 템버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방문하신다는 기별이 와서 그 준비로 조금 바빠서 그렇습니다. 시끄러우시면 커튼을 칠까요?”

황제.

어라, 나 황제랑 만나면 안 되잖아. 도망이라도 쳐야 하나?

“저 나가 있는 게 좋을까요?”

“전하께서는 그런 말씀은 없으셨어요.”

“으음.”

하긴.

이럴 때 밖으로 도망 나가면 딱 내가 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황제가 와서 마주치는 게 정석이지. 그리고 그대로 납치당하면 어떻게 해?

얌전히 집에 있으면 엔프리제가 지켜 주겠지.

“제가 만나야 할 일은 없죠…?”

“없도록 할 겁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겠지. 엔프리제가 나와 황제가 마주치게 둘 리가 없다.

나는 침대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보았다.

“역시 커튼은 쳐 주세요, 템버. 창문도 닫아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창문을 모두 닫고 커튼까지 치자 방 안이 어둑해졌다. 오히려 어두워서 살짝 마음이 놓인다.

마침 낮잠 잘까 싶었으니 잘됐지.

“초를 켜 드릴까요, 아가씨?”

“괜찮아요. 이대로 낮잠이라도 자려구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저는 아가씨를 모시기 위해서 대기 중이니까요.”

오오. 그래서 내가 부르자마자 바로 달려왔던 거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아, 플리도 데려올까?

아니야. 샤페릴의 몸은 잠버릇이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깔아뭉개면 미안하니까. 아무리 마법 생물이라도 아프긴 할 거 아냐.

“편히 주무세요, 아가씨.”

템버는 반쯤 웃는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복잡한 건 내가 생각해 봤자 별 의미도 없다. 난 나답게 있으면 그만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스멀스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용인들의 모습을 창 너머로 바라보며 엔프리제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지난번, 엔프리제는 저택을 방문한 바르카를 둔 채 떠나 버렸었다. 그에 대한 쓴소리 한마디 없이 침묵하던 바르카가 갑자기 다시 저택을 방문하겠다고 말하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설마 군대를 이용해 억지로 샤페릴을 빼앗아 가려는 것일까? 그렇게 되면 손쓸 수가 없어지긴 했다. 하지만….

엔프리제는 샤페릴을 떠올렸다.

그 샤페릴이 얌전히 바르카를 따라갈까?

할 수 있는 수는 다 써 두었다. 그러니 엔프리제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샤페릴을 믿는 것뿐이었다.

살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엔프리제의 눈에 황가의 문양이 붙은 마차가 보였다.

“후….”

맞이하러 가야겠지.

엔프리제는 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밖으로 향했다. 차가운 복도를 지나 현관을 나서자 자신보다도 먼저 사용인들이 나열해 있었다.

엔프리제가 귀가할 때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 표정만은 몹시도 달랐다. 기대에 가득 찬 얼굴.

엔프리제는 낮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차에서 황제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

선황을 닮아 눈부시게 빛나는 백금색의 머리카락. 하늘보다도 더 새파랗고 짙은 눈동자. 짙은 피부색과 단단한 체격조차도 아버지를 꼭 닮은 둘째 동생.

그를 보면 마치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폐하.”

“저희 사이에 무슨 그리 딱딱한 인사를 하십니까.”

매번 벌어지는 촌극.

엔프리제가 굳이 자신을 낮추는 이유는, 바르카가 굳이 그러지 말라 말리는 이유는 늘 같았다. 보여 주는 것이다. 누가 더 우위에 서 있는 것인지.

“오늘은 저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 주시겠지요, 형님?”

“물론입니다. 지난번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폐하.”

은근한 질책.

하지만 엔프리제가 아는 바르카는 이 정도로 넘어갈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약한 질책이 더 의심을 키웠다.

아니, 의심하고 싶을 뿐인가.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폐하.”

“으음.”

엔프리제가 먼저 앞장섰지만, 바르카는 따라오지 않았다. 현관 앞에 서서 가만히 대공저의 외관을 훑던 파란 눈동자가 어느 한 곳에 멈춰 못 박혔다.

날이 좋아 환기를 위해 활짝 열린 창문들 사이 딱 하나만이 닫혀 있었다.

저건가. 저걸로 내 눈을 가릴 수 있다고 믿은 것인가. 아니면 샤페릴이 자신을 볼 수 없도록 가려 둔 것일까.

샤페릴. 드디어 당신을 여기서 꺼낼 수 있어.

“폐하?”

미운 남자의 목소리에 바르카는 정신을 차렸다. 엷게 웃고는 엔프리제의 뒤를 따르는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 샤페릴을 꺼내 올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일단 제 앞에 샤페릴을 세우기만 하면 명분을 붙여 그녀를 여기서 빼낼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해서 이 더러운 피 도둑놈과 함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억지로 갇혀 있는 것일 테니 구해 내면 그만이었다.

본래 리베테 저택의 비극에서 그가 그랬어야 했던 것처럼.

“레이디 리베테가 여기 있다고 들었습니다.”

흠칫, 하고 엔프리제의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피식 웃는 바르카의 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

마탑과 교회에 손을 쓴 것은 바르카였다. 엔프리제에게 그걸 전달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시치미를 떼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엔프리제는 순순히 긍정했다.

“리베테 저택의 비극이 있던 날에는 저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잿더미가 된 저택 안에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는 어찌나 놀랐던지.”

“저 역시도 놀랐습니다. 늦은 밤, 답답하여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불길을 보고 다급히 달려갔더니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기에.”

“그동안 레이디 리베테는 잘 지내고 계시었습니까?”

“물론입니다. 불편함 없이 모시고 있었습니다. 다만 스트레스로 인해 기억에 혼란을 보이시는 데다 폭도들이 그녀를 노리던 것이 떠올라 계속 보호하고 있었습니다만….”

엔프리제가 문득 멈춰 섰다.

아직 응접실에 도착하려면 조금 더 가야 한다. 그런데도 그가 멈춘 이유는.

엔프리제가 빙글 몸을 돌리더니 바르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폐하께서 손을 써 주신 덕에 그 작은 저택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히.

샤페릴은 바르카의 것이었다. 그런데 왜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일까, 이 더러운 도둑놈이.

바르카는 비뚤어지려는 표정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며 웃음 지었다.

“별말씀을. 그보다 형님, 가능하다면 제가 레이디 리베테를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무사를 확인해야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거절하겠지.

그렇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르카의 귀에 의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입니다.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금빛 눈의 남자가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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