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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75화 (75/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75)

엔프리제는 자신이 아버지를 전혀 닮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들은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눈앞에서 두 사람을 번갈아서 보고 있는 내게는 그게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엄청 닮았네.”

“…….”

분명 조그만 혼잣말이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두 사람 다 이야기를 멈추고 내 쪽을 보았다.

뭐야, 이 사람들. 무서워.

원래 여주가 혼자 중얼거리는 내용은 아무리 다 들리는 내용이라도 사람들 귀엔 안 들어가는 거 아니었나?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오해와 착각이 빚어졌던가!

그런데 왜 내 말은 다 들어?

“샤페릴?”

“네?”

“뭐가 닮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심지어 ‘…네.’ 이런 식도 아니고 다 들었어. 둘이 이야기 나누는 중이라 당연히 못 들었을 줄 알았는데!

둘 다 나한테만 귀 기울이고 있니…?

문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이 마치 토끼처럼 나한테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돼서.

“…크, 크흠. 두 분이 닮으신 것 같아서요.”

“두 분?”

“엔프리제랑… 엘마레 님이요.”

순간 님을 붙일까 말까 고민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을 하다 보니 붙어 나왔다.

위치가 위치라서일까? 아니면 내게는 도련님…쯤에 속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이상하게 불편하다. 자하처럼 말을 막 놓을 수가 없다.

아니면 흑막으로 의심한 적이 있어서 그런가?

아까는 엘마레라고 불렀었는데.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려나.

“처음 듣습니다, 그런 이야기.”

엔프리제가 씁쓸하게 웃는다. 엘마레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둘 다 ‘엘마레 님’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저도 처음 듣지만, 듣기 좋은 이야기네요.”

엘마레의 말에 엔프리제가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분명 누구도 이런 말을 해 주지 않았겠지.

“그래도 내 눈엔 엔프리제가 제일 잘생겼어요.”

엔프리제의 귓가에 살짝 속삭이자 그가 피식 웃고는 나를 보았다.

살짝 대각선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그 각도는, 평소의 엔프리제에게는 보기 힘든 각도라 그런가…. 가슴이 찡한다. 어휴, 예뻐라.

예쁘고 귀엽고 다 해라, 다 해.

이제 아프고 힘든 건 하지 말고.

“부럽네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엘마레의 얼굴은, 어딘지 가면 같았다. 분명 본래 왕족이라는 건 저런 느낌이겠지.

자신을 감추고, 숨기고. 타인에게 좋게 보이도록 입에 발린 말을 하면서.

“두 분께서 이렇게 다정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직접 보니… 그날, 형님께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날.

아마도 리베테 가문이 불타 사라진 날을 말하는 거겠지. 엔프리제가 나타난 건 이 남자가 말을 해 줘서였구나.

모르는 척하고 멀뚱히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 엔프리제가 내 안색을 살피는 게 느껴졌다. 설마 아직도 내가 기억상실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건 아닐 거고….

무슨 생각인 거지?

“엘마레, 샤페릴은….”

“아, 기억을 잃으셨다고 하셨지요. 죄송합니다. 괜한 말씀을….”

살짝 불쾌해졌다.

뭔가가 있다. 내게서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 저런 말을 했다. 엔프리제는 티가 났고, 엘마레 쪽은 티가 잘 나지 않기는 했지만.

솔직히 저 남자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굉장히 불쾌하다.

“괜찮아요. 별로 관심도 없고.”

그렇기에 도리어 씩 웃곤 엔프리제의 손을 꽉 잡았다. 단순히 불쾌감 때문에 몸이 떨리거나 인상이 찡그려지는 걸 막기 위한 것일 뿐이었지만.

그게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엔프리제는 내 얼굴과 잡은 손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보다 하시던 이야기 계속 하시는 게 좋겠어요. 이제 저택에서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던가요.”

“네. 형님께서 레이디 리베테께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해 드렸다고 들었습니다.”

“제 체질이요?”

설명해 준 건 그거랑 내 이름 정도였지. 그러고 보니 리베테 가문에 대해서는 일부러 말하지 않는 걸까.

하긴.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굳이 끄집어내어 내게 더 스트레스 줄 필요는 없다고 느꼈겠지. 스트레스 때문에 기억을 잃었다는 사람에게.

“네. 레이디 리베테를 노리고 있는 세력은 크게 세 곳입니다. 교회, 마탑, 반란군.”

“반란군…?”

다른 데는 이해가 가는데 반란군은 뭐지. 그런 설정 있었나?

“선황, 그러니까 저희 아버지께서는 여러 왕국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크게 넓히신 정복왕이기도 하셨습니다. 거기에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마법사들이었지요. 제국은 타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 군단을 앞세워 겨우 며칠 만에 적의 손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는 난공불락의 요새조차도 모두 함락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급격한 영토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반란군의 세력 역시 불어났겠지.

“그래서 반란군은 마법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에 대해 연구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력을 과잉 생산해 낼 수 있고, 그걸 타인에게 넘겨줄 수 있는 레이디 리베테는 절호의 연구 소재겠죠.”

…아. 이해했다.

“그럼 제가 그들에게 잡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한의 공포를 수없이 맛보면서 여성으로서는 수치스러운 짓을 당하게 된다는 뜻이군요.”

엔프리제가 굳이 샤페릴을 이렇게 감금해 둔 이유. 족쇄를 채워 가면서까지 나가지 못하게 한 이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이유.

이 하나로 다 설명이 되었다.

“샤페릴.”

그의 손을 잡은 내 손 위에, 엔프리제의 다른 손마저 올라왔다. 내 손을 꽉 쥐는 그의 움직임에 씩 웃어 보였다.

“걱정 안 해요. 엔프리제가 지켜 줄 거잖아요?”

“당연합니다.”

굳은 결의가 담긴 눈동자.

그게 사랑스러워서, 안타까워서, 슬퍼서. 나는 가만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크흠, 하면서 엘마레가 헛기침을 했다.

“이번에 현 황제 폐하인 제 둘째 형님과 이야기를 해서 마탑과 교회와는 합의를 보았습니다. 레이디 리베테에게 동의를 받아 위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연구를 도와주시는 대신 레이디 리베테를 지키는 일에 도움을 주겠다고 합니다.”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게 어느 정도려나. 어느 쪽이건 실험 대상이 된다는 건 썩 내키지 않는데.

“엘마레. 그건….”

엔프리제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입을 열었지만, 엘마레가 더는 말하지 말라는 듯 손바닥을 보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형님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더없이 소중한 분이시니 그것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요. 다만 레이디 리베테의 체질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제국의 마법 연구사에 영구히 남을 업적이 될 겁니다. 무엇보다 마탑과 교회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레이디 리베테를 지키려 하겠죠.”

그럼 엔프리제의 부담도 조금 덜어지긴 하겠지. 내 동의가 있어야 한다면 뭐….

“조건이 있어요.”

“샤페릴. 거절해도 됩니다. 거절한다고 해도….”

“형님 말이 맞습니다. 거절하신다고 하더라도 교회와 마탑은 더는 레이디 리베테에게 손을 댈 수 없을 겁니다. 대신 제 사병단의 보호를 받으셔야만 합니다.”

사병단?

그런 것에 보호받을 바엔 차라리 여기에서 나가지 않는 게 좋다. 딱히 여기에만 있어도 불편한 것도 없는데.

애초에 지금은 내가 원해서 하는 감금이지만, 그건 내가 원해서 갇혀 있는 게 아니잖아.

“지금 이대로 지낸다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요.”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다만….”

엘마레가 꾹 입을 다물었다.

일부러 뜸을 들이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망설이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건… 본래는 해선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미 폐하께 이야기가 들어간 이상 어디선가 내용이 샌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폐하의 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있고 개중에는 반드시 폐하께 득이 되도록 움직이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하긴.

보면 늘 ‘시녀는 보았다’든가 ‘하녀는 알고 있다’든가 ‘그 시종은 듣고야 말았다.’ 같은 일이 생기긴 하지. 그게 아니더라도 기척조차 없이 숨어 다니는 암살자나 정보 길드 같은 것도 있고.

“문제는 엔프리제 형님께서는 사병단을 가지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겁니다.”

“……?”

슬쩍 엔프리제를 보았다.

대공인데 사병단이 없어? 그럼 영지 치안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거지.

엔프리제는 대답 대신 살짝 시선을 떨구었다.

“현재 블레임 대공의 영지는 모두 황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황가에서 관리한다는 건 방금 말했듯 어디선가 정보 같은 게 새어 나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관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감시도 통제도 어려워지니까요.”

흠.

반란군이라고 부를 정도니 분명 세력이 크겠지. 그걸 엔프리제 혼자서 다 막아 내긴 힘들 테고….

확실히 여기서 계속 머무는 건 힘들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냥 여기서만 지내도 괜찮은데.”

“…죄송합니다, 샤페릴. 하지만 저는 당신에게 더 넓은 세계를 주고 싶습니다. 이 좁은 곳에 가둬 두는 것이 아니라.”

아니, 이 남자는 대체….

피폐 뽕빨물 남주 맞나요? 감금물 남주 맞나요? 왜 날 못 내보내서 난리죠?

보통은 여주가 나가고 싶어 하고 남주가 막아야 정상인데.

에휴. 어쩔 수 없지.

“이해했습니다. 연구에 협조하는 대신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시지요.”

“첫째, 항상 엔프리제가 동행할 것. 저야 뭐 다른 일정이 없으니 괜찮겠지만, 실험 일정은 언제나 엔프리제한테 맞춰 주세요.”

내 생명줄. 놓치지 않을 거야.

“둘째, 실험 전에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제가 거부하면 진행하지 않을 것.”

“그건 당연합니다.”

“셋째, 실험 전에 설명한 내용과 실험 내용이 달라질 경우가 생기겠죠? 그때 엔프리제와 제 동의 없이 진행하면 다시는 연구에 협조하지 않겠습니다.”

엘마레는 납득할 수 있다는 건지, 그냥 무작정 그러는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중요한 조건을 꺼냈다.

“넷째, 저뿐만 아니라 엔프리제의 신변에도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보호할 것. 여기까지가 제 조건이에요.”

내 생명줄은 내가 지켜야지, 응.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뿌듯한 미소를 띤 채 엔프리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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