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72)
뭐지.
처음 받아 본 것도 아닐 텐데 왜 저렇게 감격하는 거지. 당황해서 슬쩍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소리 하나 없이 울고 있는 금색 눈동자에 순간 눈을 빼앗겼다.
우는 사람 보고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너무 예쁘다.
몸을 일으켜 살며시 그의 얼굴을 잡았다. 그는 순순히 내 손에 이끌려 고개를 들어 주었다. 잠시 그대로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마치 자석에 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사르르 감긴 눈꺼풀 위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대로 쪽, 쪽 하며 엔프리제가 흘린 눈물 자국을 따라 입술을 움직였다. 내가 하는 대로 얌전히 눈을 감고 있는 그가 몹시도 귀엽게 느껴졌다.
“울지 마요. 왜 울어요.”
“너무… 행복해서 울었습니다.”
“뭐 이런 거 가지고 울 정도로 행복해해요? 나랑 뽀뽀했을 때도 울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으면서.”
짓궂게 말하며 손끝으로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 냈다. 살짝 열려 있는 색 엷은 입술이 얄미워서 톡, 하고 손끝으로 튕겨 냈다.
“무슨 기대를 하는 거예요?”
“아무 기대도…. 다만 당신께서 제게 주는 모든 것이 그저 너무 행복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질 않아서… 그래서 그랬습니다.”
눈물로 흐려진 금색 눈동자가 열린다. 그게 또 예뻐서 씩 웃었다.
“엔프리제,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여리네요. 울보고.”
“실망하셨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다만, 정말로 내가 실망할 게 걱정된 것인지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가를 훔쳐 주며 웃었다.
“왜요?”
“멋있지 않아서. 당신께서는 제가 멋있고 잘생겨서 좋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엔프리제는 진짜 바보예요. 그래서 귀여워.”
팔을 뻗어 그를 끌어안았다. 나는 일어서 있고, 그는 앉은 채라 내게는 품에 안긴 그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왜 엔프리제에게 마음을 주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어요.”
만약, 내가 눈을 떴을 때 봤던 게 엔프리제가 아니었다면.
“눈을 떴을 때 보인 게 엔프리제보다 훨씬 더 잘생기고 멋지고 성격 좋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자였다고 하더라도 분명.”
나는 그 사람을 소설 속 사람으로만 봤을 뿐. 이렇게나….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잔잔한 호숫물이 배의 옆면에서 일렁거리는 물소리. 먼 곳에서 들려오는 새의 노랫소리. 내 품에서 들려오는 억눌린 울음소리.
내게 당신이 천국이었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내가 천국일 수 있기를.
“엔프리제가 못생겼어도, 목소리가 이상했어도 저는 분명 당신을 좋아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분명 저는 당신에게서 좋은 점밖에 찾아낼 수 없게 됐을 테니까요.”
엔프리제의 등을 토닥이며 눈을 떴다. 그러자 그 역시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마주 보았다.
아, 이거 그거다.
키스 타이밍.
그렇게 생각하며 살며시 고개를 내리려고 했는데.
“삐-삐리리리 삑!”
“잠, 셰리?!”
멀리서 들린다고 생각했던 새의 노랫소리는 아무래도 셰리의 것이었나 보다. 제 주인이 울고 있으니 단숨에 날아온 것이겠지만.
문제는 내 자세가 불안정했다는 걸까.
그대로 옆으로 넘어지면서 나는.
“으, 으아아!”
“샤페릴!”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던 모습을 보여 주고야 말았다.
* * *
“물에 빠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
일단 배에서 내려 높이가 좀 있는 평평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침울해진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엔프리제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지만, 나는 그에 대답해 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쪽팔려….
셰리가 앞에서 퍽, 하고 치는 바람에 그대로 배 위에 쓰러졌다. 다행히 옆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 뒤로 넘어져서 물에 빠지는 일은 피했지만…. 놀란 엔프리제가 셰리를 잡으려 손을 놓았다가, 도저히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내 뒤통수부터 감싼 덕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은 피했지만.
그렇지만.
벌러덩 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치마가… 훌렁….
“슈미즈가 안에 있어서 아무것도 못 봤으니까요. 정말로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건 나도 알아. 아는데!
그래도 벌러덩 넘어지던 그 추태는 봤잖아! 치마가 훌렁 뒤집어진 것도 봤잖아!
그것도 딱 키스 타이밍 잡고 있을 때!
“…샤페릴?”
“미안한데 잠깐만 그냥 내버려 둬 주세요….”
나는 글렀어. 이제 평생 뽀뽀도 제대로 못 할 거야. 흑흑.
“…….”
왜 하필 그 타이밍에!
만날 들러붙어서 꽁냥거리면서도 키스 타이밍이 잡힌 적이 없었는데. 완전 딱이었는데! 분위기도 좋고!
근데 왜!
“…아.”
앞으로 그런 타이밍 잡힐 때마다 내 벌러덩이 기억날 거 아냐? 이제 분위기 잡기 다 글렀어. 글렀다구.
흑흑.
“읏.”
읏?
무슨 소리야, 이게.
홀로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던 내 옆에서 엔프리제가 무언가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묘하게 색기 있는 소리를 냈다.
대체 뭐 하는 거지.
“…뭐 해요, 엔프리제?”
“…아니, 샤페릴은 생각할 게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이걸 먹으려고….”
무릎 위에 올려 둔 파이 그릇을 보여 주며 웃은 엔프리제가 먹던 파이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 다 만들어진 건 먹어 볼 수가 없어서 맛도 못 봤는데.
맛있으려나.
“괜찮아요?”
“네. 맛있습니다.”
“나도 하나 먹어도 돼요?”
“…….”
잠시 나와 파이를 번갈아 보던 엔프리제가 슬쩍, 제 뒤로 그릇을 밀었다.
“안 됩니다.”
“왜요?”
“샤페릴이 제게 준 선물이지 않습니까. 저 혼자 다 먹을 겁니다.”
“그걸 다요?”
아니,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게 크기가 거의 파운드 케이크만 하다. 틀이 그런 거밖에 없어서.
근데 이 많은 걸 혼자 다 먹겠다고?
그럼 난 뭐 먹어?
“한 조각만 줘요.”
“싫습니다.”
“제가 준 거잖아요!”
“제가 받은 거잖습니까.”
아니, 이 남자가?!
설마! 인터넷 글에서 보던 전설의 식탐남인가?!
아닌데. 지금까지 몇 번 같이 밥을 먹었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보통 내가 맛있다고 하면 거의 손도 대지 않다가 내가 다 먹었다 싶으면 먹곤 했는데.
뭐지. 정말로 내가 준 선물이라서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건가?
아니, 근데 내가 준 거잖아? 그럼 중점은 ‘나’여야 하잖아! 난 뭐 먹으라고!
“저도 점심은 먹어야죠.”
“템버가 피크닉 가방에 흰 빵도 몇 조각 넣어 두었더군요. 샤페릴은 그걸 드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왜 못 먹게 해요?”
생각해 보자.
보통 남주들이 어떨 때 저런 반응을 보이던가. 내가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에 몰래 한 입을 먼저 먹은 엔프리제가 묘한 소리를 낸 것도 신경 쓰인다.
그게 맛있어서 낸 소리가 아니라면.
…설마?
“맛없어서 그러죠?”
“아닙니다.”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다.
의기양양하게 네 생일 선물이야! 하고 줬는데 맛대가리가 없으면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엔프리제의 성격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의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자, 엔프리제가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포크를 들어 파이 안의 고기를 찍어 내게 내밀었다.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직접 드셔 보십시오. 맛있습니다.”
안에 든 건 나도 맛봤지만, 맛있었다. 하지만 파이지 안에 넣고 다시 익히면서 질겨지거나 맛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덥석 그가 내민 포크를 입에 물었다.
“…….”
“정말로 맛있습니다.”
으, 으음.
맛있다. 차갑게 식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오븐 안에서 구운 덕에 오히려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파이지 안에 싸여서 익어서 그런 거겠지.
게다가 수분이 파이지에 어느 정도 흡수돼서 그런가 더 되직해져서 입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까지 든다. 맛있엉.
그럼 정말로 맛있다고 저러는 건가.
“으음.”
“그럼 이렇게 할까요? 샤페릴이 빵을 한 입 먹을 때마다 제가 이렇게 고기를 한 입씩 먹여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냥 제가 먹을래요.”
“오늘은 제 생일이잖습니까. 이 정도 어리광은 들어주세요.”
“…….”
그, 그것도 그런가?
뭔가 미심쩍어서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엔프리제가 씩 웃었다. 그 짓궂어 보이는 미소에 결국 홀랑 넘어갔다.
“아.”
빵 한 입을 베어 물고 입을 벌리자 쏙 하고 고기가 입으로 들어온다.
…으음, 이게 어미 새에게서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의 기분이 이런 건가. 나쁘지 않은데. 이러다가 버릇 나빠져서 하루 종일 침대 위에 누워 입만 벌리고 있게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안으로 날아드는 고기를 열심히 받아먹었다.
* * *
“잘 다녀오셨어요, 전하.”
“응.”
“별일 없으셨고요?”
별일….
엔프리제는 엷게 웃으며 바구니를 주방 선반 위에 놓았다.
셰리의 기습에 당황한 샤페릴이 발랑 뒤집어졌을 때는, 아쉽고 또 귀여웠다. 그녀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도 그 귀여움을 돋보이게 하는 데 한 몫을 했지만.
“응.”
“좋으셨나 보네요. 다행이에요.”
웃으며 피크닉 가방을 열던 템버가 놀란 듯 살짝 입술을 열었다. 가져갔던 그릇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혹시 파이, 겉에 빵 부분도 다 드셨어요?”
“응.”
“세상에…. 딱딱할 것 같아서 다른 빵을 넣어 둔 건데….”
“괜찮아.”
생각에 빠진 샤페릴에게 말을 걸 계기를 찾기 위해 미트 파이를 한 입 물었다. 맛있다고 이야기하며 이야기의 물꼬를 틀 생각이었는데.
-읏.
생각보다 훨씬 딱딱했다. 거기다가 안은 질척했다.
안에 든 고기소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는데, 딱딱한 파이 탓에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오고야 말았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잇몸이 욱신거렸다.
-…뭐 해요, 엔프리제?
그렇게 묻는 그녀에게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서 둘러댔다. 혹여 포크를 주면 파이지를 찔러 볼까 겁이 나 먹여 주겠다고 했다.
그때의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이란.
그래 놓고선 얼마 지나지 않아 헤실헤실 웃으며 넙죽넙죽 받아먹는 것도 귀여웠다. 사랑스러웠다.
“맛있었으니까.”
심장이 아플 정도로.
엔프리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미소를 띠며 그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