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66)
동복형제.
예전에 말한 적이 있었지. 동생이 둘 있다고.
이름이 뭐더라.
하여간 둘째 동생은 황제라고 했고, 셋째 동생도 있다고 했었지. 내가 본 분량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아직도 엔프리제에게 형제가 있다는 실감은 나지 않지만.
“황제… 폐하 말이에요?”
“아니요. 막내 동생인 엘마레입니다. 현재는 왕제의 위치에 있습니다.”
왕제?
낯선 호칭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엔프리제가 보충 설명을 해 줬다.
“왕제란, 황제의 아우를 이야기합니다. 현재 황태자가 없기 때문에 왕제인 엘마레가 제1 황위 계승권자가 됩니다.”
호오. 거참 흑막하기 딱 좋은 포지션이네.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엔프리제가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엘마레는… 핏줄에게도 외면받던 저를 위해 화를 내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저와 당신을 위해 애써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엔프리제가, 문득 입을 닫았다. 아마 말하기 좀 힘든 부분인 게 아닐까.
“비밀이에요?”
“아니요. 다만… 말하면 당신이 화낼 것 같아서.”
화를 내다니, 내가 왜?
고개를 갸웃하자 엔프리제가 꾹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엔프리제 표정만 봐도 그가 엘마레라는 막냇동생을 믿고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했다. 보통 저런 포지션이 흑막 아니면 조력자라는 걸 생각해 보면….
조력자인가 보다.
“알았어요. 다음에 꼭 이야기해 줘요?”
“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엔프리제가 말을 이었다.
“엘마레는, 성격도 좋고 인망도 좋아서 다양한 곳에서 정보를 얻곤 합니다. 그 덕에 저는… 당신을 여기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자 엔프리제가 몸을 일으키더니 내 곁에 앉았다. 처음에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더니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온다.
그게 답답해서 벌떡 일어나 그의 품에 휙, 등을 들이밀었다.
“그냥 와서 안으면 되지 왜 소심하게 그래요?”
“혹시라도 당신께서 싫어하실까 싶어서.”
“아까 그 시선은 그냥… 본능 같은 거예요. 엔프리제가 싫어서 그런 거 아니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요.”
덥석, 나를 끌어안은 그가 가만히 내 등에 얼굴을 묻는다. 까실까실한 머리카락이 등의 옷감을 뚫고 들어와 등을 간질인다.
이거 의외로….
으음, 거슬리네.
“불편하십니까?”
“간지러워서요. 차라리 어깨에 고개를 올리면 안 돼요? 그건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샤페릴.”
“네?”
고개를 들어 날 내려 보는 금색 눈동자와 눈을 맞췄다. 그는 살짝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당신한테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 아십니까?”
“으음.”
손을 올려 킁, 하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스로에게는 나지 않는다. 머리카락 냄새라면 나지 않을까 싶어서, 사르르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한 줌 쥐어 코로 가져왔다.
달콤한 과일 향 같기도 하고, 꽃향기 같기도 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달달한 냄새요?”
“당신을 안고 있으면 가끔 그 냄새 때문에… 이상해질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상해져요?”
항상 얌전히 잘 안고 있다 가던데…?
소설 속에서 본 절륜남의 위상은 거의 잊힐 정도로. 지금 우리 모습을 소설로 만들면 전 연령가쯤 되지 않을까.
가끔 색기를 흘리긴 하지만 그 정도야 전 연령에도 나오니까.
“저도 모르게…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가다가 멈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계속 저를 조심하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목에요…?”
목에 뽀뽀해 봤자 엔프리제한테는 아무 느낌도 없지 않나?
하긴 피부가 보드라우니까 입술에 간질간질한 느낌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나는 슬쩍 손을 올려 단정하게 등을 타고 흐르는 머리카락을 모아 한쪽으로 넘겨 주었다.
“여기요.”
“…샤페릴. 저는 이러라고 말한 게….”
“괜찮아요, 뭐.”
좀 간지럽기야 하겠지만, 금방 익숙해지지 않을까?
게다가 까실한 머리카락보다 차라리 뺨이나 입술이 닿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덜 간지러울 것 같고.
“…….”
잠시 머뭇거리던 엔프리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움직였다. 살짝 떨어져 있던 상체가 서로 맞붙는다. 등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 주는 느낌에 나도 아예 몸을 맡겨 버렸다.
그와 동시에 차갑고 촉촉한 게 어깨에 닿았다.
처음 느껴진 감촉은, 젤리가 피부에 닿았을 때의 느낌과 닮아 있었다. 작은 컵 같은 것에 담겨 있는 젤리를 먹다가 피부 위에 흘렸을 때의 느낌.
뜨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차가워서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며 그의 팔을 꽉 잡았다.
그러자 놀란 듯 엔프리제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기분 나쁩니까?”
“아니요. 생각한 것보다 시원해서 놀랐어요. 엔프리제는 생각한 거랑 비슷해요?”
“…생각한 거보다 더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중얼거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살며시 목덜미 위에 내려앉는다.
살며시 간질이듯이 목덜미를 따라 스쳐 간 입술이 뜨거운 한숨과 함께 열린다.
“달콤합니다.”
“달아요?”
설마…!
소설 속에서 여주의 살결을 보고 달콤하니, 녹아드니 한 게 진짜였단 말인가!
아닌데. 나도 팔이나 다리 같은 곳의 피부를 만져 봤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면 목덜미는 유독 부드러운가?
하긴. 생각해 보면 야생동물도 먹잇감의 목덜미를 노리잖아. 물론 거기가 급소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부드러우니까 그런 걸지도….
궁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목덜미를 더듬거렸다. 입술이 닿았던 곳 위를 손끝으로 더듬자 쪽, 하고 엔프리제가 내 손에 입을 맞췄다.
“잠깐만, 방해하지 말아 봐요.”
“방해입니까?”
“입술 감촉 때문에 집중하게 돼서 잘 모르겠잖아요.”
“그럼 제가 맛보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목덜미 위를 움직이는 손을 잡은 엔프리제가 조심스럽게 옆으로 치워 냈다. 벗어나려고 살짝 손을 비틀자, 혹시 다칠까 봐 걱정이라도 된 건지 손목을 꽉 잡아 고정한다.
잡힌 건 손목인데 왠지 손 전체가 폭 감싸였다.
“엔프리제.”
그를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다리로 내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하더니 왼손으로는 목덜미 위에 남은 몇 가닥 머리카락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치워 낸다.
그러고는 이번엔 목과 등이 이어지는 곳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조금 전까지 분명 차가웠던 입술이 이제는 뜨겁다. 게다가 이상할 정도로 말캉하고 촉촉해서 이상하다.
앞으로 몸을 숙이자 엔프리제의 입술이 따라와서는 목뼈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 묘한 움직임에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으….”
“어떤 느낌입니까?”
“이상해요.”
“간지러운 게 아닙니까?”
“모르겠어요. 뭔가… 말랑말랑하고 촉촉해서 이상해요. 그만해요.”
“조금만 더… 안 되겠습니까?”
싫다고 거부하면 멈춰 준다.
평소라면 거기서 끝났을 텐데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물러서지 않고 더 하게 해 달라 부탁을 한다. 슬쩍 고개를 돌려 뒤쪽을 곁눈질하자 나를 보고 있는 금빛 눈동자가 보였다.
순간 오싹, 하고 등골이 얼어붙었다.
커다란 흑표범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잡아먹힐 것 같은 기괴한 감각.
처음 보는 엔프리제의 모습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낮은 소리만 흘렸다. 그걸 대답으로 받아들인 건지 엔프리제가 눈을 반쯤 내려 깐 채 내 목덜미를 덥석 베어 물었다.
조금 전까지는 살살 감촉을 확인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는데, 베어 물고 나서는 꼬물거리며 무언가가 기어 올라왔다.
따스하고 탄력 있는, 입술보다 훨씬 단단한 무언가.
설마, 이거 혀인가…?
“엔프리제…, 진짜 그만해요.”
엔프리제가 무서운 건 아니다. 어차피 내가 정말로 싫어하면 멈춰 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다만 이 행위가 주는 너무 낯선 감촉을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내 목소리에서 떨림을 느낀 건지 엔프리제가 입술을 떼었다.
“싫습니까?”
“싫다기보다 이상하다니까요.”
“…….”
머리카락을 흩었던 그의 손가락이 슥, 제 입술이 닿았던 곳 위를 더듬었다. 까끌한 손가락의 감촉이 차라리 익숙해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것도 자주 하면 익숙해질 것 같습니까? 포옹에 익숙해진 것처럼.”
그거야… 그렇겠지만.
일단은 다른 단계부터 밟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스킨십을 가볍게 여긴 것 같다. 엔프리제가 이제 그만하라고 할 땐 나도 정말 그만해야지.
생각한 것보다 그의 입술이 주는 감촉이 엄청난 위력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일단은 손부터 할까요.”
“손?”
“목은 아무래도… 본능적인 두려움 같은 게 있어서 더 무섭고 이상한 것 같아요. 심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손가락부터 해 봐요, 우리.”
수영할 때도 심장에서 먼 곳부터 물을 적시면서 천천히 차가운 물에 익숙해지잖아? 그럼 스킨십도 같은 의미에서 심장에서 먼 곳부터 시작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심장에서 가까운 곳에 갑자기 시작한 탓에 뭔가 터질 것 같다.
심장이랄까.
고동이랄까.
“일단 우리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되는 건 지양하도록 해요.”
계속 전 연령 분위기였다가 갑자기 끈적해지니까 적응이 안 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등 뒤에서 낮은 구시렁거림이 들렸다.
“저는… 항상 이러고 싶었습니다. 늘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응, 말했었지. 기억도 하고 있지.
하지만 뭐랄까. 늘 말만 그렇게 하고 막상 진짜로 뭔가를 하지도 않았고, 내가 먼저 뽀뽀라도 하면 넋이 나가는 사람이라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지.
혀, 혀로 막….
그럴 줄은 몰랐지!
“으으, 조심할게요.”
“…….”
잠시 아무 말 없던 엔프리제가 낮은 한숨과 웃음을 흘리더니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나는 그 품에 얌전히 안겨 아직도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음속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이유 모를 애국가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