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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63화 (63/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63)

“와, 진짜 예뻐요!”

초록색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청록색은 진짜 예쁜 것 같다. 파스텔 톤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옷감에서 이런 색이 나오지?

거기에 하늘하늘하게 달린 핑크색 리본 장식과 새하얀 레이스, 앙증맞은 장미 자수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여기에 그 핑크색 보석 액세서리를 하면 진짜 잘 어울릴 것 같다.

아까 그 아이보리색 바탕에 프릴과 레이스를 잔뜩 장식하고 연보라색 리본으로 마무리한 드레스도 예뻤는데. 그건 좀 깨끗하고 귀여운 느낌이라면 이건 화사하고 귀여운 느낌이라 좋다.

“이건 아가씨께서 보석을 구매하신 후에 거기에 맞춰 만든 거예요. 마음에 드세요?”

“물론이죠! 어려운 건 잘 모르지만, 이걸 입는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분명히 예쁘겠지, 나.

엔프리제도 좋아해 줄까? 하긴, 엔프리제는 내가 뭘 입어도 예쁘다고 할 사람이긴 하다. 실제로도 뭘 입어도 예쁘지만!

…음, 나 지금 좀 많이 재수 없지 않았나?

나와 샤페릴을 분리해서 말할 때는 분명 괜찮았는데. 나라고 단정 지어서 말하니까 엄청 재수 없어지네.

이래서 여주들이 자기보고 안 예쁘다고 하는 건가?

“여러 벌을 한꺼번에 보는 쪽이 좋다고 하셔서 조금 오래 걸렸네요.”

“아, 아하하하. 죄송해요.”

그야,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지 않나?

현대라면 백화점 가서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로판이라면 가져온 것 다 주세요.

실제 보석들은 막상 눈앞에 두자 돈 아깝다는 생각에 못 했지만, 옷은 어차피 템버가 만들어 주는걸. 원단비만 들어가니까 그렇게 비싸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막상 눈앞에 둔 장관은 생각보다도 더 기분이 좋았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천으로 된, 머리 없는 마네킹에 주르륵 늘어선 드레스들이 눈부시다. 보석이 박힌 것, 자수가 놓인 것, 프릴이 화려한 것, 원단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까지 각양각색이라 보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그게 다 내 거라니.

이래서 사람들이 사치에 물드나 보다. 아직 시착만 해 본 드레스가 일곱 벌이나 있는데 벌써 새로운 드레스가 늘어선 모습을 보고 싶어지다니.

“이걸로 오늘 가져온 건 시착이 모두 끝났습니다. 이번엔 괜찮으신가요?”

치수를 잴 때 지쳐서 헥헥거리던 걸 떠올린 듯, 템버가 심술궂게 웃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괜찮아요. 매일 엔프리제랑 같이 열심히 운동하고 있으니까요.”

오늘 새벽에도 그랬고.

먼저 요즘 새벽잠이 많아진 나를, 엔프리제가 나직한 목소리로 깨운다.

-샤페릴, 일어나요.

하지만 잠이 많아진 나는 정신은 들어도 쉬이 일어나질 못해 이불을 붙잡고 끙끙거리기 일쑤였다. 오늘도 그랬던지라, 가만히 날 내려보고 있던 엔프리제가 옅은 웃음을 품은 채 귓가에 속삭였다.

-얼른 일어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확 잡아먹기라도 하게?

은근히 기대를 품은 마음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자 엔프리제가 톡, 내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겼다.

-저 혼자 갈 겁니다.

…에라이, 이 색기 없는 남자야!

라는 생각에 번쩍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었던 걸까. 눈을 뜨자마자 금색의 눈동자와 떡하니 눈을 마주쳤다.

…조금 전에 한 말 취소. 와, 미쳤다를 나도 모르게 외치고야 말았다.

자기가 잘생긴 줄도 모르는 이 남자는, 새벽부터 색기가 철철 넘쳤다.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카락에 단정하게 단추를 잠근 흰 셔츠. 상체를 숙인 탓이 달라붙은 셔츠 단추 사이 사이로 보이는 하얀 속살.

나도 모르게 눈을 빼앗기고 있는데 꿈틀, 하고 소매를 걷은 팔이 움직였다. 하얀 주제에 튼실하고 핏줄도 쫙 서 있어서 아침부터 남성미를 뿜뿜하고 있는 그를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왜 그러십니까?

-저 지금 좀 죽을 것 같아요.

처음엔 심장이 멎은 것처럼 영 소식이 없더니, 조금 지나자 이번엔 무슨 북이라도 치는 것처럼 쾅쾅 울려 댔다. 이 남자 하나만으로도 핵폭탄에 버금가는 화력을 낼 수 있는 거 아닐까?

일단 나는 새벽 댓바람부터 엔프리제로 인해 뺨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하로웰 경을 부를까요?

아, 잠깐. 잠깐 기다려 봐.

내 눈앞에서 조각이 살아 움직여. 미쳤어. 라고 매일 보는 얼굴 앞에서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이러다가 부정맥이나 심장마비로 죽으면 어떻게 하지? 빙의도 가능했으니까 회귀도 가능하려나?

-샤페릴?

-일단 잠깐 가만히 있어 봐요. 엔프리제의 존재가 지금 제게 제일 큰 위협이에요.

-그게 무슨….

-누가 아침부터 그렇게, 어?! 사람 마음을 막 홀리고 그러래요? 일부러 셔츠도 딱 달라붙는 거 입었죠?!

-늘 입던 건데…, 살이 좀 찐 걸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제일 위의 단추 쪽을 잡아당기는데….

아니, 아니지. 정신 차려. 이걸 말하려던 게 아니었어. 왜 남주들이 속살 속살하면서 집착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집착여주가 되게 생겼어, 이러다가.

아무튼. 더 누워 있다간 코피를 쏟을 것 같다는 코안 쪽이 근질근질한 예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엔프리제가 씩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괜찮으십니까?

-아니요. 일단 제 반경 1m 안으로 접근할 때는 주의하세요.

-네?

이러다가 내가 덮치게 생겼으니까.

아니, 딱히 누군가랑 그런 걸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 없고 스킨십도 아직 낯설다. 누군가와 손을 잡은 경험조차 거의 없는 내게는 그와 살을 맞대고 있거나 가만히 손끝만 닿아 있어도 심장이 쿵쿵거릴 정도로 긴장되고 온몸이 간지러워진다.

그런데 왜 가끔 저 하얀 속살을 만져 보고 싶다거나, 저 모양 좋은 손가락에 입을 맞춰 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19금 소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가끔 영상으로 머리에 자동 재생되기도….

라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감추며 세수하러 들어갔다. 수건을 깜빡했다는 걸 물을 뒤집어쓴 후에 겨우 떠올렸다. 어차피 물인데 뭐 어때라는 마음으로 물기 흐르는 얼굴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엔프리제가 폭, 하고 얼굴에 수건을 덮었다.

-감기 걸립니다.

한여름에 이 정도로 감기가 걸릴… 수도 있지. 이 몸은 연약한 거 같으니.

그래서 운동을 시작한 거긴 했다.

-으픕.

다 끝났나 싶어서 입을 열려다가, 다시 덮인 수건에 입을 막혔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엔프리제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샤페릴. 당신은 조금 더 조심하는 법을 배우셔야겠습니다.

…아니, 누가 할 소릴 누가 하는 거지?

이깟 물 좀 흘리는 게 위험해? 아니면 당신처럼 색기를 뚝뚝 흘리는 게 위험해? 단연 후자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그를 올려 보자,

-이런 모습…, 다른 사람에게는 정말로 보여 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살짝, 뺨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끝으로 닦아 냈다. 일부러인지 무의식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물방울을 제 입술로 가져가다가 흠칫하더니 후다닥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또….

하.

-옷 갈아입으시고 나오십시오. 그,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차피 바로 앞인데요, 뭐. 갈아입고 갈게요.

-그래도….

최근의 엔프리제는 좀 나를 과보호한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도 그랬지만 정도가 더 심해졌다.

또라이 짓을 안 하는 대신 과보호에 힘쓰기로 한 건가. 그건 그것대로 나쁘진 않지만.

-알았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최근에 익숙해진 훈련용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까만 바지에 발목을 잡아 주는 부츠, 새하얀 셔츠 차림이라 어딘지 엔프리제랑 커플룩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엔프리제는 커플룩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엔프리제와 함께 연무장 안에서 가볍게 달린 후 지쳐서 쓰러진 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한쪽 구석으로 향한다. 그러면 엔프리제는 목검을 쥐고 수행을 시작한다.

오늘도 약간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며 보긴 했지만, 그래도 많이 익숙해졌다. 처음 봤을 때는 진짜 턱이 빠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을 떡 벌리고 쳐다봤으니까.

-…후우.

처음에는 검을 휘두르는 자세를 점검한다. 몇십 번인지, 몇백 번인지 모를 정도의 횟수로 검을 휘두른다. 그것도 자세를 바꿔 가며 몇 번이나.

하지만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건 그의 자세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소설이나 만화 같은 데 보면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극에 달한 검사의 검은 아름답다고들 한다. 아마 엔프리제도 같은 거 아닐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기계처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데 문외한인 내가 봐도 깔끔하고 절도가 넘친다.

검을 휘두른 후엔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가상의 적과 싸우는 거 아닐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움직임이나 동선이 바뀌는 걸 보면 그럴 것 같다.

그게 또 다채로워서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때로는 힘 있게, 때로는 물 흐르듯 부드럽게. 배워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지만, 엔프리제가 너무 간단하게 휙휙 움직이니까 의외로 쉬운 거 아닐까 하는 마음에 한 번 도전해 본 뒤로는 가만히 보기만 한다.

검, 무거워. 장난 아니게 무거워.

이 가녀린 팔뚝으로는 무리다. 나중에 근육이 붙은 후에….

근데 여주한테 근육이 붙을까?

이런 건 여주 보정이 안 좋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숨이 한결 가라앉고 몸이 덜 무거워지면 다시 연무장을 돈다. 엔프리제는 검을 휘두르며 나를 주시한다.

그게 최근 새벽의 우리 일과였다.

“아가씨께서 같이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땐 전하께서도 깜짝 놀라셨죠.”

“하하.”

그야 나가자고 나가자고 어르고 달래도 꿈쩍 않는 내가, 뜬금없이 운동을 하겠다니 놀랄 만도 하지.

그래도 해야만 한다.

“체력이 있어서 안 좋을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필요한 순간이 분명 있을 테고.”

바로….

“엔프리제, 부탁이 있어요.”

이런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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