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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57화 (57/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57)

몸이 뜨겁다.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어도 목이 타는 듯한 목마름을, 몸 안을 홧홧하게 달구는 열기를 참아 내기엔 너무 버거웠다. 열에 들뜬 목소리가 나직하게 엔프리제를 불렀다.

안타까운 듯 나를 보고 있을 그를.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지금 약을….”

약으로 해결될 열이 아니다.

지난번의 미열도 약으로 잡지 못했는데 지금이라고 다를까. 나는 그보다 더 빠른 방법을 알고 있다.

당신과 입술을 겹치면 이 열기가 가라앉을 거라는 걸.

그렇게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상체를 일으키며 떠나려는 그의 제복 코트를 꽉 쥔 채 매달렸다. 눈치채지 못하고 일어나려던 그의 움직임 때문에 순간 몸이 비틀거렸다.

“이런.”

나와는 전혀 다른, 겉보기엔 말라 보이지만 단단하게 근육이 붙어 꽤 두툼한 팔. 침대 위라 넘어져도 아프지 않을 텐데 그는 구태여 내 몸을 그 팔로 감쌌다.

열기가 더 피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그렇게 보시면….”

당신을 보는 나는, 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지금껏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망각한 채 들떠 있던 어리석은 자신을 비웃는 눈일까? 아니면 열에 들떠 멍해져 버린 눈일까.

그는 난감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서는 무언가가 일렁였다. 금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황금 물결로 가득 차 찰랑거렸다. 흐린 시야 사이로도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얼마나 지나면 질릴 수 있을까?

어쩌면 평생 질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끝에, 그의 피부가 닿았다. 내 몸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그의 피부는 차갑게까지 느껴졌다. 손끝을 식혀 주는 냉기에 더 기분이 좋아져 엷게 웃었다.

“시원해….”

갈라진 목소리가 멋대로 흘러나온다.

열 때문에 머릿속의 필터가 고장 난 건지도 모른다. 하긴, 최근의 나는 계속 그런 상태였지. 당신이 얽히면 나는 이성을 잃고 감정적이 된다.

스스로의 바보 같음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읏.”

엔프리제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아득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색 짙은 입술 위로 스멀스멀 피가 배어 든다.

피.

눈꺼풀 뒤에 엉겨 붙은 끈적한 광경이 다시 선연해진다. 그걸 잊고 싶어 고개를 내저었다. 털어도 털어도 사라지지 않는 광경.

나는 매달리듯 엔프리제를 보았다. 새하얀 이 위로 번져 가는 그 액체를 바라보다 충동적으로 입술을 겹쳤다.

“……!”

그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 주지도 않았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곤혹과 욕망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본능이 알아챈다. 그가 또 자신을 억누르고 있음을.

당신은….

사랑하는 나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상처 입히고 싶다. 아니, 상처 입히더라도 가지고 싶다. 그런 모순적인 감정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겠지.

언제나처럼.

“후…, 아….”

살짝 떨어진 입술.

그저 입술만 겹쳤기 때문일까. 열은 전혀 내리지 않는다. 열기 가득한 입김이 두 사람 사이에 서렸다가 사르르 허공에 녹아내린다.

내 몸속의 열기는 여전히 내 속을 태우고 있다.

받아들여 주면 편해질 수 있을 텐데. 당신이 지금 나를 원하는 만큼, 나도 당신을 원하고 있는데. 조금만 더….

아쉬운 마음에 그의 입술을 혀끝으로 살살 두드렸다.

열어 줘요. 나를 받아들여 줘요.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내 몸을 끌어안은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반대로 붉은 입술에서는 힘이 빠졌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하얀 이가 비쳐 보인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 혀가 그의 입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으음….”

그의 품 안에서 파르르 몸을 떨었다.

지난번보다도 더 빠르게, 더 많은 열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간다. 그와 동시에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그 기묘한 감각에 신음하며 덜덜 떨자 결국 참지 못한 그가 내 턱을 잡았다.

지난번엔 뭔지도 모르고 받아들였던 말캉한 살덩어리가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내가 그토록 갈구해도 열어 주지 않던, 철벽같은 남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망설임을 버린 걸까. 아니면 망설임 끝에 결국 본능이 이긴 걸까. 그는 마치 거친 침략자라도 된 것처럼 혀로 내 안을 유린했다. 어느 한 곳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꼭 감은 채 내 안을 더듬는 모습이 어쩐지 필사적으로 보인다.

당신은, 내게 이런 걸 하고 싶었구나. 이런 걸 참고 있었구나.

이토록 날 원하고 있었구나.

그게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몸 안에 쌓여 있던 마력이 빠져나가며 서늘함과 오싹함, 그리고 몸을 채우고 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열감이 뒤엉켜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열은, 뭘까.

마력이 쌓여서 생긴 열은 마치 큰불 같다. 모든 것을 태우려 날름날름 내 안을 먹어 들어간다. 몸 안이 온통 불길로 휩싸여서, 뜨겁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열은… 다르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은은하게 비치는 촛불?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 뜨겁다. 하지만 격정적으로 내 안을 집어삼키는 느낌도 아니다.

아아, 그래. 비유하자면 용암 같다.

느릿하게, 끈적하게, 뜨겁게.

불길처럼 빠르고 성급하지 않다. 그러긴커녕 오히려 너무 느려서 초조해진다. 무언가, 좀 더 다른 게 있는 것 같은데 빨리 내보여 주지 않고 느긋하게 제 속도를 지키며 흘러 든다.

그래서 뜨겁지 않은가 싶었다가도,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그건 어떻게 보면 마력이 주는 열기보다도 더 뜨겁다. 끈적해서 쉬이 꺼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오싹한 감각 속에서도 내 몸의 심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후우….”

내 웃음이 보이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덜덜 떠니 괴로운 게 아닐까 걱정되었던 걸까.

그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마주친 금색의 눈동자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생각에 잠겼던 그는 결국 살짝만 몸을 앞으로 숙이면 닿을 정도로, 호흡이 서로 뒤섞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던 입술을 떼어 냈다.

몸 안의 열은, 많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떨어짐이 아쉬워 두 팔을 뻗었다. 여전히 달아올라 있는 손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대공님.”

“…네.”

“더 해 주세요.”

“하지만… 당신은….”

나는.

당신이 내게서 건네받은 마력을 어디까지 견뎌 낼 수 있을까. 그 선을 넘어서면 분명 나는 그 이후로 당신과 이런 행위를 하지 않으려 하겠지. 당신이 아픈 건 싫으니까.

그가 찡그린 얼굴로 나를 본다. 나 역시 그를 마주 보았다.

본능이 속삭인다. 그가 지금 얼마나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지 알고 있냐고. 사랑하는 여자가 이런 걸 해 달라는데 그걸 참아 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냐고.

이 이상을 바라게 된다고, 엔프리제 자신이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경험이 없어도, 말로 하지 않아도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뜨거운 숨결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참지 않기를 바랐다.

“제발…. 부탁이에요.”

눈을 깜빡이자 내 안에 가득 차 있던, 뜨거운 무언가가 뺨을 타고 또르륵 흘러내렸다. 아무래도 계속 시야가 흐렸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내 말에, 엔프리제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게 보고 싶어서 일부러 눈을 꾹 감아 고인 것을 모두 흘려 냈다.

하지만 여전히 몸 안을 채운 열기가 다시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뜨거워서… 괴로워요. 네?”

당장이 괴로워서만은 아니었다.

현실을, 계속 보지 않고 있던 현실을 보게 되면서 나는.

마력이 차오르는 건 어쩌면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를 당신으로 채우고 싶어.

나는 지금 당신이 필요해.

그래서 흐린 시야로 봐도 어여쁜 남자의 귓가에 다시 속삭였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몸 안의 열기를 몰아내려 숨을 토해 냈다. 그 숨결이 남자의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날 끌어안은 몸이 움찔, 떨리더니 예쁜 얼굴이 다급하게 가까워졌다. 입가를 가볍게 핥는 붉고 말캉한 살덩이를 맞이하려 혀를 내밀었다.

붉은 살덩이가 서로 뒤엉킨다. 배운 적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서로를 본능적으로 탐한다.

엔프리제. 당신도 지금 나와 같을까?

내가 당신을 원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원하고 있을까? 샤페릴이 아닌, 나를?

“하….”

아까와는 달리 눈을 감지 않은 채 날 직시하는 남자를, 나 역시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일렁이는 금빛에 붉은색이 뒤섞인다.

입안에서 우리의 숨결이 뒤섞이듯.

당신은 예상이나 했을까? 나와 이렇게 될 거라고. 최소한 그와 처음 만났던 날의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저 책 속의 인물. 작가가 만들어 낸 이상의 남주.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당신은, 다른 이유로 나와 이리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고백했듯 샤페릴과 당신의 시작은 그리 좋지 못했으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작은 분명 해피 엔딩이었을 것이다.

당신이라는, 이리도 서툴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녀 역시 처음엔 당신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그랬을지 몰라도 천천히 당신에게 사랑을 느꼈겠지.

그리고 지금보다는 좀 더 늦게… 서로가 서로를 원하게 되었겠지.

미안해, 엔프리제. 당신에게서 샤페릴을 빼앗아서. 그 자리를 나 같은 게 대신해서.

하지만.

그래, 이제는. 당신의 여주인공은 내가 되었어. 내가 당신의 여주인공이 되었어.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입술을 겹쳤을까. 얼마나 서로를 탐했을까. 입안이 서로의 타액으로 가득 차 겹친 입술을 타고 흘러내린다. 내 안에, 당신이 모르는 곳이라고는 한 곳도 없어진다. 빠져나가는 열기가 점점 잦아들었다.

몸에 쌓여 있던 마력이 거의 빠져나간 거겠지.

몸이 안정되어서일까.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견디지 못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문득 처음 만났던 날의 그가 떠올랐다.

엔프리제.

나는, 당신을…. 당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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