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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48화 (48/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48)

“…제가 저번에, 당신의 마력 과잉 생성은 체질이라고 말씀드렸었죠?”

“네.”

“과거에도 몇 번, 그런 체질을 타고난 이들이 있었다고.”

“네.”

“마력이라는 건, 마법사들도 몸에 받아들일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우연히 마력을 과잉 생성하는 체질자들의 경우 점막 접촉을 통해 타인에게 마력을 넘겨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

완전 좋은 거 아니야?

어렸을 때 자주 보던 마법물이라든가, 판타지물 같은 거 보면 마력 많은 애들이 다 해 먹던데. 다른 것도 마찬가지고.

뭐든 밑천이 많으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다.

“다만 마력이라는 건 본래 자신의 몸 안에서만 흐르는 것입니다. 그걸 타인에게서 넘겨받으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력과 충돌하게 되죠.”

“어…, 그럼 마력 통로가 없는 사람이랑 하면요?”

“…….”

아, 이건 위험했나.

이러다가 자기 마력 통로 파 내고 온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애초에 없앨 수 있는 건가, 저거.

“상대의 몸에 마력이 과하게 쌓여 결국 몸이 견디지 못하게 되겠죠.”

…아니, 그, 알았으니까 그렇게 무섭게 말하지 말아 줄래요. 눈에서 불똥 튀어요. 좋게 말해도 다 알아들어요….

“대공님.”

“네.”

“절대 제가 하겠다는 뜻이 아니었어요. 이야기의 흐름상 궁금해졌던 것뿐이에요. 전 그런 거 아무나랑 할 생각 없으니까요. 알죠?”

“그럼… 전 왜 괜찮은 겁니까?”

“그야.”

첫키스 상대고. 아무나가 아니고.

그, 흠흠. 좋아하는 사이고.

“…이야기 빨리 마저 해 주세요.”

“마력이 충돌하면 최악은 사망, 그렇지 않더라도 상당한 고통이 따릅니다. 마력 통로 보유자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마력이 크면 클수록 더 부작용이 심해지죠.”

“그럼… 잠깐. 대공님은 괜찮아요?!”

딱히 아파 보이진 않았는데? 혹시 참았던 건가? 그러고 보니 다음 날 좀 상태가 이상했지….

“저는 괜찮았습니다. 아마 보유 마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겠죠.”

“어… 그래요?”

“네. 제가 마검사가 되지 못했던 건, 간단한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마력조차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는 건 타인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마력뿐입니다.”

오호.

그럼 어느 정도까지는 엔프리제가 받아 줄 수 있다는 거구나. 그럼 엔프리제의 마력 보유량이 어느 정도 늘어나면 다른 방법을 또 찾아야….

어느 정도가 돼야 고통이 생기려나.

“대공님.”

“네.”

“하나만 약속해 줄 수 있어요?”

이 남자의 경우 거짓말은 못 하지만 참는 건 잘하는 성격인 것 같다. 얼굴에 티가 안 나거든, 참는 건.

그러니까 꼭 필요한 약속이었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혹시 부작용이 나타나면 꼭 말해 줘야 해요. 참지 말고.”

“…….”

저 봐. 거짓말은 못 한다니까.

“제 감정이 사랑이라고 불릴 만한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게는 너무 낯선 감정이고, 타인에게 이런 감정을 품어 본 것도 처음이라서.”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내 진심을 전한다. 제발 알아주기를 바라며.

“그래서 저는 대공님이 저로 인해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너무 슬플 거예요.”

“…저 역시 당신께서 괴로워하시는 건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방법도 있잖아요. 그때 돼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약을 마시면 되니까요.”

“…혹은 다른 남자와 그런 행위를 하거나요?”

“아, 그건 싫어요.”

남자라는 생물이 내 인생에서 좋았던 적이 그리 없다. 초등학교 때 날 잘 챙겨 주던 담임 선생님이 있긴 했지만,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성함도 잘 기억 안 난다. 그 외에는 일부러 모아 놓은 것처럼 이상한 놈들뿐이었다.

누가 보면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알 것 같을 정도로.

그러니까 남자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엔프리제는 다르다.

엔프리제만 다르다.

“전 대공님이 아니면 이런 거 할 생각 전혀 없어요.”

슥, 하고 엔프리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있는 힘껏 발돋움하고 팔로 그의 목을 감아 고개를 숙이게 해 눈높이를 맞췄다.

뭐가 시작될 건지 알아차린 것인지 그가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한다.

그러게 누가 사람 의심하래?

“다른 남자 앞에서도 대공님 칭찬만 하는 데 아직도 제가 의심스러우세요?”

“하지만, 전….”

“대공님이 어떤 평가를 받으시는 분인지 전 몰라요. 하지만 제가 본 대공님은.”

깜빡, 하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바로 앞에서 보는 금색 눈동자는 더 예뻤다.

그때도 이 눈동자를 봤었으면 더 좋았었을걸. 분명 어둠 속에서 예쁘게 빛나고 있었을 텐데.

“늘 제가 말하는 그대로의 사람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멋있고, 예쁘고, 귀엽고 혼자 다 해 먹고.”

“다 해 먹….”

“성격까지 완벽한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또 있겠어요?”

처음에 도발했을 땐,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한 거였다. 혀, 혀를 넣는 건 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입술 정도는 핥아 주겠노라고.

그런데 막상 눈앞에 두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쪽, 하고 입술을 가볍게 부딪치고 그를 놓아주었다. 내가 지금의 우리 상황을 지켜보는 독자였다면 분명 여기서 ‘그걸로 끝내?! 거기서 확 자빠뜨려야지!’ 따위를 외쳤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이게 한계다.

“그, 크흠. 이제 이해했죠? 전 스스로 이런 걸 대공님한테 할 정도로는 대공님을 좋아해요!”

“…….”

어, 응?

“대공님?”

“…….”

굳었나? 기절했나? 눈 뜬 채로 기절한 건가?

분명 나는 놔 줬는데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 있다. 저러다가 픽 쓰러지는 거 아니겠지? 자하도 집에 갔는데, 이 남자 쓰러지면 나랑 템버로는 못 옮길 텐데?

“대공님? 정신 차려 봐요, 대공님.”

누군가 그랬다. 정신을 잃으면 뺨을 세게 쳐 보라고.

하지만 나는 사람을 때려 본 적이 없다. 대체 어느 정도로 때려야 세다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잠시 망설이다가 있는 힘껏 그의 뺨에 손바닥을 날렸다.

“윽!”

쫘아악, 하는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딱! 하는 소리가 났다. 너무 세게 때렸는지 때린 내 손이 아플 지경이다. 이 정도면 확실히 정신 차렸….

아, 움직인다.

“…….”

맞아서 홱 돌아간 고개를 느릿하게 내 쪽으로 돌리던 엔프리제의 뺨이 살짝 부어올랐다.

…어, 나 설마 처형당하는 거 아니지?

“대공님…?”

“아무래도… 저는 지금 백일몽을 꾸고 있는 모양입니다.”

“네?”

“조금… 자는 게 좋겠군요.”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좀비 같다. 저렇게 잘생긴 좀비는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아니, 이게 아니라.

“대공님! 꿈 아닌데요!”

“…….”

하지만 엔프리제는 대답 없이 서재를 나가 버렸다.

“…이게 뭐지?”

왜 이런 끝이 되는 거지?

어이가 없어서 나는 엔프리제의 뒤를 쫓아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잠시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 * *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아니, 꿈속인 게 틀림없었다.

저택의 카펫이 이렇게 푹신푹신했던가. 샤페릴의 사슬이 끊어지고 감금을 그만둔 뒤에 바꾸긴 했었다. 그녀가 다니기에 좀 더 좋도록 좋은 품질의 카펫으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게 현실에 존재할 리 없었다. 그의 몸이 둥둥 뜨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푹신한 카펫이라니.

“…….”

뺨이 어딘지 뻐근했다. 이것도 꿈이라서 그런가? 살짝 뺨 위에 손을 가져다 대자 뜨끈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샤페릴이 여길 쳤었던가. 정신 차리라면서 불렀던 거 같기도 한데.

아니, 때린 거라면 이렇게 아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먹먹한 무언가가 얼굴과 몸 안에 가득 차서 아프긴커녕 간지럽게 느껴졌다.

감각도 없고, 샤페릴도 그렇고.

분명 꿈이겠지. 자고 나면 깨어날 꿈.

…그럼 안 자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현실의 샤페릴도 보고 싶었다. 꿈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해 주는 샤페릴도 좋았지만, 설령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 주지 않더라도 밝고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샤페릴도 보고 싶었다.

“…….”

엔프리제의 손이 이번엔 제 입술로 향했다.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그 장면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였다.

있는 힘껏 발돋움하던 작은 몸. 목이 휘감기던 가늘고 긴 팔. 반짝이던 눈동자와 몽실거리며 움직이던 붉은 입술.

그리고, 그 입술이, 제 입술에.

와 닿던 그 순간.

“……!”

이상한 일이었다. 이 전부가 꿈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입술만이 타는 듯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었다. 힘껏 얻어맞은 뺨보다도 입술이 더 뜨겁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꿈에서도 이런 뜨거움을 느끼는 게 가능했던가?

“대공님!”

샤페릴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몹시도 사랑스럽고.

동시에 그에게 현실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그게 꿈이 아니라고? 현실이라고? 정말로….

샤페릴이 자신의 의지로 내게 입을 맞췄다고?

“대공님, 정신 좀 차려 봐요. 겨우 뽀뽀 한 번으로 이렇게 넋이 나가면 어떻게 해요?! 더한 것도 해 놓고!”

더한 거라니.

순간 엔프리제가 계속 지우려고 애썼고, 최근 겨우 떠올리지 않게 되는 데 성공한 장면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어둠 속, 고통스러운 듯 침대 위에서 앓던 샤페릴.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반쯤은 그녀의 고통을 덜어 주고 싶었고 반쯤은 그걸 핑계로 제 사욕을 채우고 싶었던 그날 밤.

“…아.”

“아?”

“아…!”

엔프리제의 얼굴이 뒤늦게 달아올랐다. 샤페릴의 손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뺨은, 한층 더 빨갰다.

“죄송합니다, 잠시…!”

겨우 이 모든 게 현실임을 깨달은 엔프리제는 달렸다. 조금 전에 자신이 나왔던 서재로.

그리고 곧바로 작은 창고 안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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