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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45화 (45/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45)

“당신의 얼굴을 붙잡고, 그, 입술에… 입을 맞췄습니다.”

흑흑, 내 첫키스.

…어라? 잠깐. 혹시 그건가? 입에 닿았던 말랑말랑한 거. 그럼 입안에 들어왔던 건 약이 아니라….

“…….”

“그리고요?”

“…그, 마력 배출을 위해선 점막 접촉이 필요해서….”

점막 접…! 세상에!

누가 뽕빨물 아니랄까 봐 그런 설정이 있었단 말이야?!

“혀를….”

역시 그건 혀였어!

아니, 근데 침 냄새도 안 나고 달달했는데…? 이게 로판 남주의 힘인가! 체취도 좋더니 그쪽 냄새도 완벽한 거야?!

사기다!

“죄송합니다.”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엔프리제는,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리고요?”

“그리고…?”

“또 뭐 했어요.”

“당신께서… 잠드신 줄 알았는데 저를 끌어안으셨습니다.”

아, 그 무거웠던 게 엔프리제였나 보다.

헉. 그럼 내가 먼저 막 침대 위로 끌어들인 거야? 아니, 아니지! 이건 무효지!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잖아?!

“그래서…, 놓아 달라고 했더니 눈을 뜨시곤 끔찍한 꿈을 꾸셨다고….”

이것도 기억난다.

집에 있었을 때의 꿈을 꿔서 그랬었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꿈이다.

“그리고요?”

“그리고…, 당신께서 손을 놓아주지 않으셔서 곁에 계속 있다가 잠드신 후에 나왔습니다.”

…응? 그게 끝이야?

“끝이에요?”

“네?”

“그 외에 다른 건 더 안 했어요?”

“……! 제, 제가 파렴치한 짓을 하긴 했지만, 그 이상을 할 정도로 이상해지진 않았습니다!”

아, 뭐야. 내가 다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의 이야기잖아.

난 또.

하긴 엔프리제가 허락도 없이 그렇게 큰일을 벌일 리가 없지. 그럼 왜 그렇게 이야기하기 어려워했던 거지?

나한테 뽀뽀했던 걸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랬나.

“그거 저도 다 기억나요.”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설마 제가 그런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긴.

엔프리제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약에 대해 물었을 때 사실대로 말하고 죄송하다고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숨기긴 했다.

“왜요?”

“그… 끔찍하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 파렴치한 짓을 해 놓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이상하다는 거 잘 압니다. 다만 그… 저와의 입맞춤을 그렇게 끔찍한 것으로 기억하시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니, 그건 꿈 이야기였는데요…?”

내가 언제 네 키스가 끔찍하다고 그랬….

흠흠. 키스라는 단어 의외로 낯간지럽네. 내가 해 본 적 없을 때는 남여주를 보며 질질 끌지 말고 빨랑 키스하라면서 막 재촉했는데.

막상 내 일이 되니까 엄청…. 흠흠.

“네. 열에 취해서 꿈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서….”

아니, 그걸 그렇게 오해한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꿈 이야기였어요. 지옥에 떨어지는 꿈을 꿨거든요.”

거긴 내게 지옥이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만하면 편하게 살았다고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나와 바뀌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의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지옥이 천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렇듯.

“대공님이 키, 키…, 그, 입을 맞춘 거 가지고 끔찍하다고 한 거 아니에요. 진짜로.”

“…….”

크, 크흠. 어색해.

“…그럼, 그것도… 부탁해도 됩니까?”

그거라니, 뭐?

…응?

“그거요?”

“…끔찍하지 않으…셨다면.”

…….

“조, 좋다고도 안 했거든요!?”

“그럼….”

“좋지도 싫지도 않아요! 그, 어, 그! 여하간 지금은 안 돼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니까!”

나는 그대로 벌떡 일어나 붓을 들었다. 그리고 후다닥 문으로 향했다.

“어디 가십니까?”

“어, 저기, 그, 아무튼 잠깐 나갔다 올게요!”

“저택 담 밖으로는 가급적….”

“안 나가요!”

비명을 지르듯 대답한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으아아아아아!

내가 무슨 소릴 한 거야!

* * *

튀긴 치킨이 먹고 싶었다. 구운 거나 찌거나 끓인 거 말고. 하지만 이 세계에 치킨이 있을까 싶어서 닭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걸 먹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튀김이 있긴 한지 잠시 시간을 달라던 템버는, 이틀 만에 완벽한 닭튀김을 만들어서 가져왔다.

“진짜 맛있어요.”

“생각하신 그대로인가요? 이런 건 처음 만들어 봐서.”

“네!”

바삭, 하고 씹히는 튀김옷. 최근 금값이 되었던 프랜차이즈 치킨들과 달리 튀김옷이 굉장히 얇아서 더 바삭하다. 그 안에서 톡 하고 튀어나오는 살은 뻑뻑하기는커녕 사르르 입에서 녹는 것 같았다.

뒤이어 식용유인 척 입안을 채우는 육즙의 풍미. 까딱하면 잡내가 나기 마련인 육즙에서는 그저 고소한 풍미만 가득하다.

행복에 겨워 치느님을 영접하고 있는데, 슬금슬금 플리가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플리는 대부분 구운 고기를 먹지. 튀김은 처음 보겠다.

“플리, 너도 먹을래?”

“삐-?”

살로만 이루어진 작은 조각을 내밀자 플리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리저리 살피며 킁킁 냄새를 맡더니 덥석 잡아 제 지정석인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왜 꼭 저기서 먹는 걸까.

“플리 마음에도 들었나 보네요.”

“그러게요. 다행이에요. 여유분이 조금 더 있으니 플리 것을 따로 덜어 줄게요. 이건 아가씨 다 드세요.”

“네!”

아, 치킨 무 먹고 싶다.

이 풍부한 기름 맛이 좋긴 하지만, 치킨 무가 싹 씻어 주면서 입안이 깨끗해졌다가 다시 풍미가 확 차오르는 쾌감도 버리기 어렵단 말이지.

“혹시 피클 같은 거 있을까요? 무로 만든.”

“무 피클…은 없지만, 오이 피클이라면 있어요.”

윽, 오이는 좀.

어지간한 거 다 잘 먹는 나지만, 오이만큼은 잘 못 먹는다. 어쩔 수 없지, 뭐.

“죄송해요. 오이는 괜찮아요.”

“오이 피클은 싫어하세요?”

“으음,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단언하면 좀 그렇겠지?

“그럼… 무 피클을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할게요. 다만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조금 시간은 걸릴 테지만….”

“만들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감사해요, 레이디 템버.”

생글생글 웃던 템버가, 갑자기 한마디를 꺼냈다.

“그런데, 아가씨.”

“네?”

“저는 이 집의 사용인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보통의 시녀와 달리 하녀들이 하는 일까지 다 하고 계시지만…. 그럼에도 완벽하시지만….

갓템버. 사랑합니다.

근데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거지. 의아함을 담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늘 레이디 템버라고 부르시는 게 조금 아쉬워서요. 자하 경도 이제 이름만 부르시지 않습니까.”

…응?

이 세계, 귀족 여성에게는 레이디를 붙이는 거 아니었어? 처음 만났던 주치의도 그랬고, 엔프리제도 날 꼭 불러야 할 때는 레이디 리베테라고 불렀고….

자하도 그랬는데?

“어, 호칭 없이 불러도 되는 거예요…?”

“물론이죠. 아가씨께서는 이 저택의…, 중요한 분이신걸요. 아가씨께서 전하와 함께하시는 동안은 계속 제가 시중을 들 텐데, 계속 레이디라고 부르시면 조금 마음이 섭섭합니다.”

어, 아니, 응?

그치만 나랑 템버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혼자 생각할 때야 솔직히 소설 등장 인물이라는 생각에 그냥 템버라고 부르는 게 익숙해졌지만….

막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건가?

그런데 서운하다잖아.

“어…, 템버?”

“네, 아가씨.”

“이렇게 부르면 돼요?”

“네.”

생글생글 미소 짓던 템버가 입가를 가리며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가씨께서 제가 불편해서 그러시나, 하고 고민도 많이 했는데. 이제 속이 시원하군요.”

“아니,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게 예의인 줄 알고….”

“그러신 것 같았어요.”

환하게 웃어 보인 템버는, 이내 플리가 먹을 닭튀김을 더 가져오겠다며 나갔다. 그러자 마침 가져간 튀김을 다 먹어 치운 플리가 슬금슬금 침대 밑에서 나와 탁자 위로 기어올라 왔다.

“플리.”

“삐-?”

“네 주인은 바본가 봐.”

살만 있는 조각을 골라 플리에게 내밀었다. 냉큼 받아 침대 밑으로 향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플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나를 살피고 있었다.

“내 이야기 들어주려고?”

“삐-!”

말해 보라는 건가. 이 기특한 녀석.

슥슥, 플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도리도리를 시전한다. 싫은가 싶어서 멈췄더니 이번엔 내 손가락에 머리를 비볐다.

“지금도 그렇잖아. 네가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더 해 달라는 거지?”

“삐-!”

“나한테 사람의 마음을 읽는 힘이 있으면 좋을 텐데.”

템버도 은근히 섭섭했던 걸까.

내가 여기에 오고 세 번째로 만난 사람이자, 어떻게 보면 엔프리제보다도 훨씬 더 많이 마주한 사람.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니었나 보다. 템버의 말이 맞다.

나는 그녀가 불편했다.

왠지는 모르겠다. 아기 분 냄새 같은 향기가 그녀에게서 피어오를 때마다 불쾌한 기분이 되었고, 내 마음을 알아채 줄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떠올랐다.

현실의 나는 이미 죽었겠지? 아빠는 별 관심도 없을 것이다. 나랑은 이야기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사람이니까. 할머니는 장례식에 오는 이가 적어 부의금이 적다고 투덜거릴 것 같고, 동생은 뭐든 해 주는 가정부를 잃은 것에 짜증을 부리겠지.

…모두의 반응이 예상 가는데 엄마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가족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엄마에 대해서 알기 싫은 걸까. 그것조차도 알 수가 없다.

“나한테 내 마음을 모두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지도 않고 상처 주지 않을 수도 있을까.

“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건지 위로하려는 건지, 플리가 살짝 내 손끝을 문다. 거의 무는 힘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살짝.

그리고 닭튀김을 들고 후다닥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그만 떠들고 튀김 먹게 놔두라는 뜻이었나?”

…에라, 모르겠다.

나도 치킨이나 먹자. 나는 포크를 들어 큰 조각 하나를 푹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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