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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44화 (44/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44)

어라, 말해 주려는 건가?

“전부를 말할 순 없습니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만 말해도 괜찮을까요?”

“네!”

그게 어디야.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답답해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엔프리제는 잠깐 망설이다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날 더 꽉 끌어안았다.

“정확히 말하면 병이라기보다 체질입니다. 당신께서는… 남들과는 다른, 조금 특이한 체질을 타고 나셨습니다.”

응? 무슨 체질을 말하는 거지.

씬이랑 연결된 거면 혹시 막, 어, 그런 체질인가?

“인간은 태어날 때 두 부류의 인간으로 나뉩니다. 한 부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인간. 또 한 부류는 사용할 수 있는 인간.”

…설마! 나 마법 쓸 수 있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의 경우 생존에 필요한 마력만을 타고납니다. 그리고 이건 점차 고갈되다가 완전히 사라지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인 것 같은데. 하긴 이런 설정은 은근히 있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의 경우 생존에 필요한 마력은 몸에 깃들어 있고, 그 외에 여분의 마력이 깃들어 있는 마력 통로라는 게 존재합니다. 이런 거죠.”

엔프리제가 내게서 손을 뗀다. 그리고 제 셔츠 밑단을 잡았다.

판무도 꽤 읽은 나이기에 단전이라고 부르는 게 어디 있는지쯤은 알고 있다. 보통 배꼽에서 약간 아래에 있는데 만약 그 마력 통로라는 게 거기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물끄러미 예상 지점을 바라보게 된다.

“…….”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나. 엔프리제의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왜 올리지 않나 싶어서 그의 얼굴을 보니 빨갛게 잘 익어서 매우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는 개뿔. 왜 애를 태우는데!

“그, 크흠. 이런 겁니다.”

엔프리제가 셔츠에서 손을 떼더니 제 소매를 걷어 올렸다. 한여름인데도 언제나 긴팔 셔츠를 입고 있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팔목 중간에 묘한 문양 같은 게 있었다.

“이게 마력 통로예요?”

“정확히 말하면 마력 통로는 온몸에, 마치 혈관처럼 퍼져 있습니다. 그중 마력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장소에는 이런 문양이 생깁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제 경우에는 팔목과 그, 배에 있습니다.”

눈이 다시 아래로 향한다.

저 셔츠 그냥 내가 걷어 올리면…. 아니, 그건 성희롱이다. 그러지 말자.

나는 꿈틀거리는 손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말 드물게 마력 통로가 없는데도, 여분의 마력을 생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그게 내 체질이라는 거겠지. 근데 마력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닌가?

내 의문을 알아챘는지, 그저 설명할 차례가 되었는지 엔프리제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마력 통로가 없는 사람은 다량의 마력을 견뎌 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 왜요?”

“마력 통로가 있는 사람은, 통로를 통해 마력을 발산하여 자신이 견뎌 낼 수 있는 정도의 마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마력을 발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몸이 견뎌 내지 못할 정도의 마력이 쌓이면.”

최악의 경우에는 죽게 되는 건가.

그래서 샤페릴한테 차를 먹이는 데 그렇게 집착했구나. 억지로 먹이려고도 하고.

“그럼 제가 먹는 약은 뭐예요?”

“…알고 계셨습니까?”

“다른 건 다 제 마음대로 하게 두시면서, 그 달콤한 차는 매일 한 번씩 꼭 마시게 하시잖아요. 열날 때도 먹이셨고.”

뭐, 원작을 읽어서 아는 거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까.

“…조금 특별한 약초입니다. 몸에 쌓인 마력을 감소시켜 줍니다.”

아까, 여분의 마력이 없는 사람의 경우엔 살아 있는 데 필요한 마력만 타고난다고 했었다. 그렇다는 건, 약초의 양이 조금만 많아도 내 수명이 깎일 수도 있다는 뜻이겠구나.

자하를 믿지 않으면서도 이 저택에 들인 이유는 그거겠지.

“그럼 열이 난 것도 그 체질 때문이에요?”

“왜 마력이 과잉 생산되는지는 아직 구조가 판명되지 않았습니다. 몇십 년, 심하면 몇백 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할 정도의 희귀 체질이라서….”

으음….

다년간의 로판 독자 경험을 통해 대충 감이 잡힌다. 이게 엔프리제가 샤페릴을 납치하고 감금한 이유구나.

아무래도 리베테 가문의 참극은 샤페릴의 체질 때문인 것 같다. 수십, 수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희귀 체질. 연구조차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그런 걸 연구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겠지. 아마도 그 참극의 날에 샤페릴은 그 연구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납치당해 갖은 실험을 다 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을 거다.

그리고 모종의 경로로 그걸 알게 된 엔프리제가 샤페릴을 구해 낸 거겠지.

하지만 리베테 가문은 이미 멸문했고 샤페릴 혼자 두기엔 너무 위험했을 거다. 가문이 있을 때도 그런 꼴을 당했는데 혼자 있는 그녀를 납치해 가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그래서 엔프리제는 샤페릴을 여기에 가둬두고 지켰다.

이제 문제는 그거다. 왜 설명하고 여기에 보호하는 게 아니라, 그녀를 감금하고 사슬까지 채웠냐는 거다.

막 눈을 떴을 때의 샤페릴은 분명 감정적이었을 거다. 하지만 샤페릴은, 원작에서의 샤페릴은 원치 않는 쾌감에 절망하고 엔프리제에게 분노하면서도 오롯이 감정에만 먹혀 있지는 않았다.

분명 시간을 들여 설명했더라면 이해했을 텐데.

엔프리제 혼자라면 솔직히 내가 봐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엔프리제 자신이 감정적이고 타인과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 샤페릴에게 의심의 말이나 저주의 말 같은 걸 들으면 당연히 비뚤어진 반응이 나오겠지. 물론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엔프리제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게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엔프리제의 곁에는 템버가 있다.

템버라면 분명 잘 조율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어쩌다가 원작에서는 파국으로 치달았던 걸까.

“다만 어떤 때 특히 증상이 심해지는지는 문헌에 적혀 있었습니다. 목숨이 위험해질 때, 혹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심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네. 당신께서 열을 낸 건 그 체질이 원인입니다.”

역시 그렇구나.

겨우 그 정도 일로 열을 내다니, 싶었다. 심지어 약으로도 열이 안 내렸었고. 그대로 두었으면 마력 배출은 안 되고 생성은 계속되어서 계속 열이 나거나… 목숨이 위험했겠구나.

그럼 그 열은 어떻게 내린 거지?

“그럼 저 열 날 때 먹인 건 뭐예요?”

“그건….”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기면 그 약을 먹어야 하는 거잖아요.”

“…….”

어라, 또 빨개지네.

설마 열나서 몽롱한 사이에 뭐 엄한 짓을… 할 성격이 아니지. 대체 뭐지.

“그건…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네? 그래도 다음에 또 그러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니, 이 남자야. 그런 대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그렇게 말하면 꼭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단 말이야! 이건 법칙이라고! 클리셰란 말이야!

“말해 줄 수 없는 거예요? 이상한 거예요? 뭐 엄청 징그럽거나 살아 있거나….”

“…그, 당신께서는 끔찍하다고 표현하셨습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끙. 열 때문에 정신이 나갔어서 그런가. 기억이 안 나네.

“괜찮으니까 말해 줘요. 만에 하나의 상황에서 제가 알고 있어야 대처를 하잖아요.”

“…….”

“그, 끔찍하다는 아마 열 때문에 막 나온 말일 거예요. 설령 좀 끔찍하면 어때요? 살려면 먹어야 되는 건데. 그러니까 말해 줘요. 네?”

“…그,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마음의 준비요?”

왜 그런 게 필요하지?

약. 피폐 뽕빨물. 씬을 위한 설정.

…….

그러고 보니 샤페릴이 도망치다 잡혀 올 때마다 열이 나니 어쩌니 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그때마다 엔프리제가 엄한 짓을 하지 않았나?

그러고 나서 샤페릴이 열을 낸 적이 있었나?

…….

…….

…….

“…호, 혹시 저한테 무슨 짓 했어요?”

나도 모르게 가슴께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내가 뭔가를 알아챘다는 걸 느낀 걸까. 엔프리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게…. 제가… 그러고 싶었던 것도 좀 있긴 하지만….”

저기 캐붕 일어났어요.

거기서 수긍하면 어떻게 해?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고 부정해야 정상 아니야?!

“빨리 열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맞습니다. 다만… 자하 경이 다음 날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약으로도 분명 회복해도 괜찮았겠죠. 하지만….”

뭐냐. 열나는 샤페릴이 너무 예뻐서 그랬어?! 이 짐승아!

아니, 이쁘긴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하얀 피부를 붉게 물들인 채 땀에 젖어서 끙끙 앓고 있는 샤페릴. 안에 든 게 나라는 게 좀 흠이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분명 예쁘겠지.

아무리 그래도 막, 어, 그, 시집도 안 간 처자를, 어?!

“너무해요….”

난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흑흑.

그, 처음 하고 나면 막 뻐근하고 아프다고 하던데 그런 것도 없었는데…. 뽕빨 피폐물 여주라서 그런가? 체력은 약해도 그런 쪽으론 또 비현실적으로 강한 건가?

그런 건가!?

“죄송합니다. 괴로워하는 당신을 보니 빨리 편하게 해 드리고 싶어서….”

심지어 억울해.

처음인데 기억도 못 하는 건 너무 하잖아. 나도 나름대로 소설을 보면서, 어, 처, 첫날 밤이라든가 그런 거 상상해 본 적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날아가 버리는 건 너무하잖아?

“어떻게 했어요.”

“…네?”

“전 열 때문에 하나도 기억 못 한단 말이에요. 어떻게 했는데요!”

“어…, 그게….”

괴롭히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번은 예외다. 사람이 정신이 나간 틈을 이용해서 무슨 짓을 한 거야!

부끄러워하든 말든 상관없다. 내가 수치플 시킬 거야!

이렇게라도 복수할 거라고!

“…그, 꼭 말해야 합니까?”

“당연하죠. 동의도 없이 그런 짓을 해 놓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어요? 너무해. 열 때문에 정신 놓은 사람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변태! 짐승!”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빨리 말해 줘요.”

“…….”

빨개져서 한참을 망설이던 엔프리제는.

“저는…, 그날 당신께….”

결국, 순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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