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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30화 (30/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30)

“왜 안 돼요? 혹시 이상한 거 먹이셨어요?”

설마 열을 내리기 위해 금단의 약 같은 걸…!

아니, 하지만 미열이었는걸.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 내렸을 텐데. 굳이 위험한 약 같은 걸 먹일 이유가 있나?

“설마… 저 혹시 이상한 병 같은 거 있어요?”

혹시 지병이 열이 나면 많이 위험한 건가?

그냥 미열로 보였을 뿐, 사실은 그 이후로 점점 열이 더 심해졌을 거라든가…. 그때에 듣는 특효약이 있는데 그게 뭐 되게 혐오스러운 거라거나.

그렇다면 이 반응도 이해가 가긴 한다.

생각해 보니 그거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었지. 앞으로 열나면 그걸 또 먹어야 하는 건가?

그래도 맛은 있었는데.

“…이 아이랑은 인사를 나누셨습니까?”

뭐야. 수상하다.

대놓고 말을 돌….

…….

“누, 누구예요, 얘?!”

미쳤어. 이 미친 귀여움은 대체 뭐지!

눈빛은 나름대로 날카롭고, 눈가도 깊어서 조금 무서워 보이긴 한다. 하지만 머리에 복실복실한 솜털과 조그마한 몸집, 그리고 등은 회색에 배는 흰색이라는 미친 색 조합!

거기다가 새까만 꼬리에는 땡땡이 무늬가….

“너, 너는 대체 누구니.”

“삐이-? 삐리리 삐!”

어제 들었던 그 소리다. 피리 소리 같던 울음소리.

설마 얘가 그 남자랑 그렇게 싸운 건가?

“어제 날 구해 준 게 너야?”

“삐리리리! 삐!”

흐앙. 미쳤어. 너무 귀여워.

살며시 손을 뻗자 새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엔프리제의 손에서 내 손으로 옮겨 탄다. 발톱이 나름대로 날카로운 건지 살짝 아프긴 했는데, 이내 내 손가락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듯 조심스럽게 꼬옥 감싸 쥔다.

…흐어엉. 성격도 사랑스러워.

“얘는 이름이 뭐예요?”

“글쎄요. 아직 없습니다. 그제 데려온 참이라.”

“그제?”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생겨서….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면 제게 알림을 주도록 템버에게 맡기고 갔었습니다.”

아, 그래서 어제 내가 알림을 보내지 않았는데도 엔프리제가 달려왔던 거구나.

나는 새의 머리 위를 살살 손가락으로 긁어 주었다. 기분 좋았는지 녀석이 눈을 감더니 살며시 내 손가락에 몸을 맡겨 왔다.

흐어엉, 귀여워.

“얘는 뭐예요?”

“난쟁이매새라는 종류의 매입니다.”

“매요?! 얘가?!”

얘가! 맹금류라고?!

“사냥도 곧잘 합니다. 이래 봬도 발톱도 날카롭고 용맹스럽거든요.”

엔프리제가 사르르 웃어 보인다.

아니, 저건 좀 질투 나긴 하네. 나한텐 잘 웃지도 않더니 왜 새를 보면서 웃어 준대.

“크흠.”

“이름은… 당신이 지어 주시겠습니까?”

“제가요? 레이디 템버가 주인이라면, 그분이 짓는 게….”

“어제는 잠시 맡겼지만, 주인은 접니다. 여길 보시겠습니까?”

엔프리제가 살짝 고개를 숙여 새의 목덜미 쪽을 헤집었다. 순간 엔프리제 머리카락에서 확, 하고 시원한 향이 풍겨 와서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내 반응에 놀랐는지 엔프리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았다.

“어….”

“…….”

“죄송해요. 그, 대공님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아니, 이렇게 말하면 오해하지!

근데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는 걸 어떻게 해? 나도 왜 뒤로 물러났는지 모르겠는데!

잠시 날 바라보던 엔프리제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나한테서 후다닥 물러났다. 그러고는 홱 고개를 돌린 채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빨갛게 물든 귀는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죄송합니다.”

“네?”

“갑자기…, 가까이 다가가서 기분 나쁘셨겠군요.”

“아니, 진짜 아니에요! 제가 대공님이 가까이 오는 데 왜 기분 나빠해요? 제가 대공님을 얼마나 좋….”

…….

응? 왜 말이 안 나오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뭐 어때서? 처음도 아니잖아?

책 읽어 달라고 조를 때도 대공님이 좋다고 말했는데, 왜 지금은 안 나오지? 뭐지? 내 목에 문제가 생겼나?

“아, 아.”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 줄임말 같잖아!

어쨌건. 목소리는 잘만 나오는데 왜 좋아한다는 말은 안 나오지?

“제가 대공님을 얼마나 조…, 조….”

“조?”

“조…류는 귀엽죠!”

“아, 네. 귀엽죠.”

아니, 이게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아니라고 해야 속이 시원한데? 솔직하게 그냥 말하라니까!

이러다가 나 버림받으면 어째? 또 자기 싫어하는 줄 혼자 착각해서 의심병 돋으면 어쩌냐고!

“그러고 보니, 족쇄는 이제 안 하나요?”

“…….”

엔프리제가 내 손목을 본다.

손목과 발에 있는 족쇄야 그 남자가 끊어 버렸지만, 목에 있는 족쇄는 남아 있었을 텐데 그것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날 믿어 줘서 풀어 준다는 걸까?

“당신은….”

무언가를 말하려던 엔프리제가 멈췄다. 그리고 다시 홱 고개를 돌리더니 제 입가를 가렸다.

“샤… 샤페릴은 이제 저한테서 도망가지 않으실 거 아닙니까.”

…….

“으, 으아아아아아아!”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빽 소리를 지르는 내게, 놀란 새는 도망갔고 엔프리제는 다가왔다. 나는 마치 방어라도 하듯 내 앞에 팔로 엑스 자를 그린 채 그에게 외쳤다.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세요!”

“네…?”

“이름! 부르지 말라고요!”

으아아아아.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이런 미친! 이 남자는 자신의 위험도를 알고는 있는 걸까? 갑자기 저렇게 얼굴 빨개져서 이름 부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다 설레게 된다고!

“그렇게… 싫으십니까?”

으아아, 그것도 하지 마!

왜 갑자기 축 늘어진 강아지처럼 기운 빠진 얼굴로 그러는 건데! 막 사람이 빛나 보이잖아! 하지 말라고!

“대공님은, 대공님의 위험도를 알아야 해요!”

“네?”

“그렇게 잘생긴 얼굴이랑 분위기 쩌는 목소리로 사람을 그렇게 부르면! 어?! 되겠어요!?”

“이름을… 부르는 게 안 되는 겁니까?”

“당연하죠! 심장 터질 뻔했잖아요!”

잠시 생각하던 그가, 이내 뭔가를 깨달았는지 확 얼굴을 붉혔다. 이번엔 채 가릴 새도 없이 붉어져서 나까지 다 봐 버렸다.

그제서야 내가 무슨 소리를 내뱉었는지 깨달은 나 역시 덩달아 빨개졌다.

“으, 으아아아아! 나가요! 나가세요!”

“하지만…!”

“나가란 말이에요-!”

나는 소파 위에 뒹굴고 있던 쿠션을 잡아 그에게 휙 던졌다. 만화나 소설 보면 다들 잘만 맞히던데, 안타깝게도 그 잘난 얼굴은 가리지 못한 쿠션은 엔프리제의 품에 안착했다.

“제가… 이름을 불러서 설레셨습니까?”

아니, 그걸 왜 물어보는데!

원래 피폐 뽕빨물은 그런 생각 해도, 어?!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끙끙대다가 나중에 다른 거 보고 오해해서 혼자 앓는 게 정석이라고! 왜 그런 걸 막 상대한테 물어보는데!

이, 이!

“맞으니까 빨리 나가라구요!”

아니라고 할랬는데애!

내 얼굴은 걷잡을 수 없이 더 빨개졌고, 엔프리제는 씩씩거리는 날 멍하니 보더니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툭, 하고 손에 들려 있던 쿠션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큰일 났습니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데 다리가 안 움직입니다.”

그따위 귀여운 소리를 지껄였다.

“그, 그, 그럼 내가 나갈 거예요!”

나는,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는 엔프리제를 두고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샤페릴!”

“으아아아아!”

부르지 말라고오!!

* * *

“허억, 헉….”

한참을 폭주하던 나는, 저택 어딘가에 있는 복도에서 멈췄다.

오랫동안 방에서만 생활해서 그런지, 원래 샤페릴의 체질이 저질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것 같다. 심장이 진짜 폭발할 것 같은데.

복도에 그냥 드러누워서 쉬기는 그렇고 어쩌지.

잠시 망설이다가 일단 벽에 기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황을 파악했다.

복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니 여기는 최소 2층인 것 같다. 계단을 오른 기억은 없지만, 계단을 몇 번 오르내렸다면 이토록 지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잠시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한 남자가 저택에 다가오는 게 보였다.

녹색의 긴 머리카락인데도 불구하고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큰 키에 마른 몸이라 그런가.

벽에 기대 있던 몸을 일으켜 창가에 바싹 붙었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턱선 같은 건 갸름해서 꽤 단정해 보인다.

엑스트라나 남조인가?

어제의 일 때문에 내 호위로 부른 거라면 너무 얄쌍하게 생겼다. 뭔가 학자 분위기인데.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시선을 느낀 건지 남자가 내 쪽을 올려다보았다.

오, 잘생겼다.

엔프리제와 샤페릴로 인해 미모 역치가 한없이 올라간 나이기에 감탄을 뱉어 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생겼다. 한국에 가면 어지간한 아이돌은 쌈 싸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엔프리제는 약간 사나운 인상인데 저 남자는 너무 유하다. 역시 학자 느낌이다.

녹색 머리카락이라. 이세계물 보면 의외로 녹색 머리카락은 숲의 종족인 경우가 많던데. 엘프라든가, 정령이라든가. 저 남자도 그런 종류인가?

아, 그러고 보니 이 저택 숲 속에 있잖아. 혹시 숲의 생명체!

좀 궁금하긴 하네.

남자는 멈춰 선 채 내 쪽을 한참이나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정도 높이 차이면, 아마 눈만 빼꼼하게 보일 것 같은데. 내가 누군지 알고 저렇게 보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한참 서로 시선 교환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저택에서 나왔다.

“…힉.”

엔프리제. 역시 엔프리제가 저 남자를 부른 걸까.

처음에는 남자를 보고 있던 엔프리제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나도 모르게 휙 창문 아래로 몸을 숙였다.

뭐랄까. 아직 마주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지금 마주치면 또 얼굴이 빨개질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미 전력 질주로 인해 빨개진 상태겠지만.

“망했어. 이제 엔프리제 얼굴을 어떻게 봐.”

놀려 먹을 땐 좋았는데, 내가 놀림 받을 만한 상황이 오니까 좌절된다. 아니, 내가 마음이 없으면 그냥 넘겨 버릴 수도 있긴 한데.

어쩌다가 나는 엔프리제한테 이토록 설레게 된 거지.

이게 다 저 남자가 나쁘다. 책 속 등장 인물인 주제에 왜 잘생기고 예쁘고 귀엽고 다 하냐고.

“…아가씨, 거기서 뭐 하세요?”

갑자기 들려온 템버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 산책을 좀.”

“저택 안에서요…?”

…….

황당하다는 듯 날 바라보는 템버의 모습에, 나 역시 아까의 엔프리제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제발 누가 나한테 쥐구멍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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