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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20화 (20/123)

감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님! (20)

크흡, 미쳐따. 완전 미쳤어!

TV에서만 보던 수플레를 내가 직접 먹어 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이렇게 맛있다니!

폭신폭신하게 생겨서 한없이 부드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단하다. 그런데 내가 먹어 본 그 어떤 케이크보다도 촉촉하다. 너무 달지도 않고 진짜 맛있어….

“입맛에 맞으세요?”

어지간하면 내가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먹는 동안은 나가 있는 템버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포크로 케이크를 푹 찔렀다.

“그런데 이건 차갑네요?”

“네?”

“아, 아니에요.”

원래 차갑게 먹는 건가 보다. 크흠.

음식에 대한 기억은 일부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먹어 본 적 없다는 걸 알면 좀 그러니까. 나도 좀 무리가 있는 설정인 건 알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원하는 걸 먹을 수가 없는걸!

“플리는, 제게는 아직 얼굴을 보여 주지 않네요. 이제 아가씨랑은 많이 친해졌다죠?”

“아직요. 그래도 부르면 나와서 간식을 먹기도 해요.”

플리 이야기가 나오자 엔프리제가 떠올랐다. 나는 대체 왜 그랬을까….

사람마다 어떤 대상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 다르다. 나야 플리랑 계속 붙어 있으니 정도 들었고 엔프리제 닮았다는 생각에 마음도 가긴 했지만, 엔프리제는 다르겠지.

처음부터 내 요구 사항을 들어주기 위해 데려왔을 뿐이니까.

게다가 볼 때마다 위협적으로 구는데 좋아질 리도 없겠고. 너무 내가 내 중심으로 생각했다는 자각이 들자 괜히 자괴감이 들었다.

괜히 오지랖 부리다가 여기서 쫓겨나면 어쩌지. 샤페릴이라면 분명 안 그랬을 텐데.

“전하께서 플리한테 질투가 나시나 봐요.”

“…질투요?”

응? 동물한테…?

잠시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템버를 바라보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동물이건 사람이건 수컷이기만 하면 무작정 질투하고 보는 집착남도 있었지. 엔프리제도 그런 걸까.

“전하는… 너무 어린 분이세요. 어렸을 때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을 놓치셨죠.”

“왜요?”

“누구도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았거든요.”

그건 핑계라고 생각하는데.

글쎄, 나 역시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어서일까? 그럼에도 나는 제대로 사회생활을 했고 누군가를 납치해서 감금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다. 하다못해 동물을 질투한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가 아직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그런가요.”

“전하께서 아가씨만큼 솔직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왜 이런 짓을 했어야 했는지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샤페릴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제대로 이야기했다면 분명 무언가가 바뀌었을 것이다.

하긴, 소설 진행을 위해선 오해와 고구마가 어느 정도 있어야 재밌으니 그렇게 설정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각각 다른 법이니까요. 저같은 성격인 게 꼭 좋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게다가 나도 원래 이런 성격은 아니었고.

생각해 보니 내가 남의 성격 가지고 뭐라고 할 건 아니구나. 제대로 사회생활 했다고는 해도 친하게 지낸 사람은 없다. 그냥 트러블 없이 조용히 지냈다는 것뿐이지.

이렇게 생각한 걸 그냥 입 밖에 내게 된 것도, 원하는 걸 바로바로 이야기하게 된 것도 이 몸에 빙의한 뒤부터였다.

내게 주어진 환경, 내게 주어진 조건들이 바뀌고 나서야. 그리고 엔프리제는 내 부탁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잘 들어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엔프리제도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바뀌었으니 그도 곧 바뀔지도 모른다. 내가 그의 곁을 떠날 생각이 없으며, 빙빙 돌리고 꼬는 건 잘 못한다는 걸 알게 되면.

나를 믿게 되면.

“아가씨는… 가끔 기억을 잃으신 분 같지 않아요.”

헉.

“그, 그래요?”

“저보다도 인생에 대해 잘 아는 분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칭찬인 걸까, 욕인 걸까. 템버가 한 말이니 분명 칭찬이겠지만….

글쎄. 나는 내 과거를 알고 있으니까. 그녀의 말이 마치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기에 저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로 들린다.

“과찬이세요.”

“…언젠가 분명 전하께서도 아가씨께 솔직해지실 날이 오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은 템버는, 내게 가벼운 묵례를 하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잠시 포크를 쥔 채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 * *

“지난번엔… 제가 말이 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들어오자마자 사과의 말을 날리는 엔프리제는, 어찌나 긴장했는지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살짝 입가에 미소가 스미는 게 느껴져 황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 말씀대로 저ㄱ…, 아니, 그, 플리는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물건 대하듯 저것이라고 말한 제가 잘못했습니다.”

의외네.

이럴 때 남주들은 보통 자존심 때문이라도 사과하지 않던데. 엔프리제가 독특한 걸까. 아니면 옆에서 템버가 뭔가 말을 더한 걸까.

“아니에요. 저야말로 대공님께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서 죄송해요. 제가 플리한테 정이 들어서 그랬나 봐요.”

솔직히 납치 감금한 건 맞지만, 어쨌든 내 생활비는 모두 엔프리제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얹혀살면서 집안일 하나 안 하는 주제에 사상이나 생각에까지 이래라저래라 할 주제는 못 되지.

평범한 피폐 뽕빨물에 빙의했었으면 이렇게 편하게 지내지도 못했을 텐데.

“아닙니다. 단지… 처음에는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랬고, 그다음에는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름을? 역시 마음에 안 드나.

“왜요?”

“…당신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리고 매일 부르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입니다.”

설명이 참 조악하다. 대체 이걸로 뭘 알아들으라는 거지.

템버가 한 말이랑 합쳐서 생각해 보자.

템버는, 엔프리제가 플리를 질투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플리의 이름을 지어 주고 부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는 건….

“…혹시 제가 플리만 이름으로 부르고 대공님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서 질투 나신 거예요?”

아, 정답인가 보다.

엔프리제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얼굴이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알기 쉬운 남자라 편하구만.

“대공님도 이름으로 불러 드려요?”

“…그, 아니요.”

응?

그게 질투 났다면서 왜…? 나도 속으로는 이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만큼 차라리 엔프리제라고 부르는 게 좋은데.

“싫으세요?”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마음의 준비요?”

엔프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으로 입가를 막은 채 중얼거렸다.

“저번에 당신께서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 느낀 거지만…. 심장에 해롭습니다.”

…아니, 니가 더 해로워요.

내가 왜 저번의 경험을 잊고 그냥 솔직하게 다 말하지! 를 또 외치고야 말았을까. 그렇게 막 어, 쑥스러워하면서 그런 말 하면 내가 막.

어휴.

“그럼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말해 주세요.”

“네.”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입이 미쳤나 보다.

어떻게든 이 두근거림을 벗어나려고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다. 왜 그런 걸 물어보고 난리야?

하지만 뜻밖에도 엔프리제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아마도 좀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거기서 왜 또 진지하게 대답하는 건데! 처음에 비꼬면서 비아냥거리던 놈은 어디 가고!

왠지 모르지만 다리가 근질거려서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에 손으로 허벅지를 문지르고 있는데, 플리가 다가오더니 또 적의를 드러냈다.

“…….”

평소라면 같이 노려봤을 엔프리제였지만, 흘끔 나를 보더니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이내 억지로 만들어 낸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게도 미안하다.”

…으아아.

지구 뿌셔, 라는 말이 이런 거 때문에 나온 건가. 뭔가를 격하게 부수고 싶은데.

나는 들끓는 파괴 충동을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내 손목과 발목에는 여전히 사슬이 달려 있다. 그 말인즉 나는 엔프리제처럼 방 밖으로 도망갈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지. 지금 이 공간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왜 그러십니까.”

“그, 그러니까….”

왜 하필 그 순간 내 눈에 화장실이 보였을까. 아니,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내가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화장실뿐이었으니.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엔프리제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내 얼굴도 빨개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전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좋겠군요. 그…, 그때 말씀하신 손톱 장식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그것도 같이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엔프리제는 후다닥 방을 나가 버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왜 내가 하필 거기서 화장실을 입에 담은 거지? 엔프리제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중요한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볼일이 급하다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는, 그런 눈치 없는 캐릭터로 볼 거 아냐? 난 그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

“으아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치밀어 오르는 파괴 본능을 풀 곳이 없어 침대 위로 다이빙을 했다. 파닥파닥 팔다리를 휘두르다가 그걸로도 성이 차질 않아 베개를 퍽퍽 두드렸다.

그때마다 찰그랑거리며 움직이던 사슬이 퍽, 하고 팔을 후려쳤다.

“아파! 으아아!”

열불이 더 끓어오른다. 이 끓어오르는 마음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두 발로 선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플리를 들어 올렸다. 뒤늦게 내 행동을 눈치챈 플리가 벗어나려 꼬물거렸지만, 나는 그런 플리를 꽉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플리! 난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끼유! 끼끼끼! 삐! 삐이! 꺄아-!”

그렇게 한참이나, 나와 플리가 아우성치는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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