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1-1. The scenery of autumn morning (가을 아침의 정경) (14/22)

목차

외전

EXHIBITION

1. The scenery of autumn morning

2. Liebesträume

3. White Christmas

4. Spring landscape with lovers

hidden track

1. The scenery of autumn morning (가을 아침의 정경)

* * *

3년이 조금 안 되게 살았던 것에 비해 짐은 단출했다. 지난 3년간의 허물들은 커다란 상자 다섯 개로 정리되었다. 백성현은 어느새 텅 비어버린 방 안을 돌아보았다.

냉장고 한 구석에 있던 유통기한이 지난 지 오래인 비타민 음료는 결국 챙기지 못했다. 얼마 전 미리 짐을 쌀 때 몰래 챙기려다가 혼이 났기 때문이었다. 미련을 떼려했지만 왜인지 작은 물건 하나하나가 아쉽게 느껴졌다.

그렇게나 외롭고 구차했던 삶을 이어갔던 공간이었다. 새까만 밤들마다 몸을 구겨 넣었던 구석들에 자꾸만 시선이 눌어붙었다.

이곳을 떠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백성현은 방을 나서기 직전, 눈을 감아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익숙한 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 앉아서 그를 기다리는 것이 무척 즐거웠었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어주면 그가 기다리고 서있었다. 초인종이 울리거나 어서 문을 열어달라는 목소리가 없어도, 두어 번의 노크만으로 그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똑똑.

ㅡ바로 지금처럼.

마침 들려온 노크소리에 백성현은 손을 움찔했다. 이미 잠금 장치는 풀어두었지만 바깥에 선 상대방은 당연한 것처럼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백성현은 피식 웃고는 손잡이를 돌렸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니까.”

하얀 이마를 덮은 머리칼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가 옅은 쌍꺼풀이 진 눈을 깜빡이자 기다란 속눈썹이 그늘을 만들었다. 활강하는 콧대와 굳게 다물린 입술은 오늘도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근사했다. 지유환은 백성현의 입모양을 쫓듯 시선을 빗겨 내렸다가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짐 정리는 다 하셨어요.”

공기 중을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백성현은 발걸음을 멈칫했다. 지유환은 자연스럽게 백성현이 품에 안고 있던 상자를 가져가며 은근하게 눈을 마주쳐왔다.

“…응. 그게 끝이야.”

이미 네 개는 내려 보내고 마지막 상자 하나만 남은 상태였다. 백성현은 짐이 다 빠져서인지 평소보다 조금쯤 넓어 보이는 셋방을 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언제 그렇게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고, 나갈 때가 되니 이렇게 아쉬워진다는 게 우스워서 그랬다. 이제는 정말로 방을 나서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았어요.”

“…어?”

“여름방학 때는 거의 날마다 여길 왔었잖아요.”

“…….”

“바깥에 서서 문이 언제 열리나 기다리는 것도 재밌었어요.”

밋밋한 회색 문을 보고 서있는 게 재밌을 리가 없었다. 백성현이 의아한 눈을 하자 지유환은 조그맣게 덧붙였다.

“문이 열리면 형이 있을 테니까.”

“…….”

“이제부터는 제가 문 열어주겠네요.”

그런 말을 해놓고 아무렇지 않게 씨익 웃고는 등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다.

백성현은 멍하니 서 있다가 손잡이를 놓고 그 뒷모습을 바쁘게 뒤쫓아 갔다. 텅 빈 셋방을 뒤로 하고 나서는 발걸음은 전에 없이 가벼웠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는 상자를 도로 가지고 가려고 했지만 지유환이 버티고 선 탓에 빈손으로 내려가야 했다. 이건 제가 들게요, 하는 목소리는 마치 겁 없는 아이를 나무라는 것처럼 엄격하기까지 했다.

짐을 실은 차가 향할 곳은 한 곳 뿐이었다. 백성현은 분주하게 옆을 스쳐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걸쳤다. 작게 열린 창틈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것 또한 삶의 새로운 한 조각이었다.

* * *

예전에 스쳐가듯 말했지만 지유환의 집에는 빈 방이 있었다. 당연한 것처럼 그 방은 앞으로 백성현이 지낼 방이 되었다. 내부는 아무것도 없이 휑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방문을 연 백성현은 놀란 듯 굳을 수밖에 없었다.

미색 실크벽지와 부드럽게 물결치는 헤링본 커튼, 딥블루 톤의 세련된 침구부터 오직 저를 위해 새로 들여놓은 듯한 가구들까지. 원래 살던 원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근사했다. 거의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듯해서 백성현은 멍하니 지유환을 올려다보았다.

“…해서, 세탁기는 저쪽에 있어요. 일단 기본적인 구색은 맞춰봤는데 마음에 안 드시면 언제든,”

“……고마워.”

침대 옆 콘솔에 놓인 두어 개의 시집이나 창가에 자리한 화분 등 구석구석 신경 쓴 기색이 역력했다. 지유환이 어떤 마음으로 빈 방이었던 이 방을 채워나갔을까를 생각하니 목 안이 간질간질하게 차올랐다. 입모양을 읽어냈을 그는 잠시간 대답이 없다가 가만히 물어왔다.

“마음에 드세요.”

백성현은 그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행이네요, 하고 읊조리는 목소리는 잔뜩 누그러져 있었다.

“그럼 짐 정리 할까요.”

삐걱거리던 매트리스는 진작 가져다버렸고, 낡은 철제 책상 같은 것들도 얼마쯤 돈을 주고 버렸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건 정말로 전공 서적이나 옷, 생필품 같은 것들밖에 없었다. 24년간 숨 쉬고 살아온 증거라기엔 너무도 간소했다.

지유환은 상자에서 꺼낸 책들을 책장에 진열하기 시작했다. 따로 뭐라 말하지 않았는데도 키대로 줄을 세워 예쁘게 꽂아 넣고 있는 걸 보니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풀릴 대로 풀린 표정을 갈무리한 백성현은 옷이라는 글자가 쓰인 상자 두 개를 차례로 풀고 옷장을 채워나갔다. 그제야 정말로 이사를 한 것만 같은 실감이 몰려왔다.

여기가 앞으로 지낼 보금자리인 것이다. 이제는 두 사람이 살아갈.

“이건 전공 교재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칸에 넣어 둘게요.”

1학년 때 교양으로 잠깐 들었던 심리학 교재를 들어 보인 지유환이 말했다. 백성현은 조그맣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바로 아래 칸에 놔두면 돼.”

* * *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던 이불을 내린 백성현은 새까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일자로 누워도 보고, 모로 누워도 보았지만 도무지 의식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백성현은 폭신한 침구 위에서 몇 번이고 몸을 뒤척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잠이 안 오지….”

짐을 완전히 정리하는 데에는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바쁜 하루였으니 분명 베개에 머리가 닿는 순간 잠들어 버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일찍이 지유환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게 벌써 한 시간 전의 이야기라는 것에 있었다. 평소라면 이미 자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자꾸만 불편하게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마음 편히 잠들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문을 향했다. 저 문만 열고 나가면 이 집의 주인, 그러니까 그가 사귀고 있는 남자가 버젓이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같이 잤었는데.”

자취방에서는 지유환과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낮잠을 자곤 했었다. 조악한 매트리스 위였지만 지유환의 숨소리를 듣다보면 어느새 잠이 들곤 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네댓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이 오지 않는다며 쪼르르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아.”

억지로 눈을 꼭 감은 백성현은 포근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긋한 섬유 유연제 향기에 묻혀 열심히 양을 세고 있는 와중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울렸다. 겨우 흐릿해졌던 의식이 단번에 말끔해졌다.

“…….”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한 그는 별 시답잖은 광고 문자가 와있는 것을 보고는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불면으로 인한 뒤척임은 그 이후로도 한 시간 가량 지속되었다. 잠에 들 듯 말 듯 한 경계에서 백성현은 결국 체면이니 뭐니를 다 포기하고 말았다.

AM 1 : 26.

깜빡거리는 전자시계를 본 백성현은 베개를 들고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깥에 있는 사람 때문인지도 몰랐다.

바닥에 발을 내디딘 백성현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간접조명이 켜져 있는 거실 통로를 따라 걸어가니 지유환의 침실이 나왔다. 약간 열린 문틈으로 주홍색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깨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말을 하면서 들어가야 좋을까. 혹시 자고 있는 걸 방해하는 건 아니겠지. 무수한 걱정들을 뒤로 하고 심호흡을 한 백성현은 그 틈을 열었다.

지유환은 독서등을 켜 둔 채로 침대 헤드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종종 끼고 있는 안경의 유리알 위로 빛이 번졌다. 인기척을 느낀 그의 시선이 백성현에게로 옮겨갔다. 백성현은 품에 안은 베개에 더욱 힘을 주며 우물쭈물 거릴 뿐이었다.

“…….”

“성현 형?”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한 그 부름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자니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백성현은 아무 말 없이 척척 걸어가서 중얼거렸다. 시선은 땅에 꽂힌 채였다.

“잠시, 나랑 얘기 좀 해.”

“이야기?”

“…….”

“어떤 이야기할까요.”

읽고 있던 책에 책갈피를 꽂아 넣고 페이지를 닫은 지유환이 부드러운 어조로 물어왔다.

“여기 앉으세요, 형.”

허락과도 닮은 그 말에 백성현은 지유환의 옆 자리로 몸을 앉혔다. 그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향이 훅 밀려왔다. 불편하게 곤두서있던 신경이 간질거림으로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백성현은 지유환의 옆자리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베개를 꼭 끌어안고만 있었다. 이내 옆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잘 안 와요?”

정곡을 찔린 나머지 백성현은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어느새 안경을 내려놓은 지유환이 시선을 맞춰왔다. 그의 눈매가 나른하게 접혔다.

“재워달라고 오신 거예요.”

어차피 다 들킨 마당에 더 이상은 숨길 것도 없었다. 백성현은 안고 있던 베개를 베고 이불을 끌어올려 그의 옆자리에 재빨리 누워버렸다. 머리맡을 울리는 나직한 웃음소리에 얼굴에 열기가 몰렸지만 오히려 잠자리라고 하면 지유환의 침대가 더 익숙했다. 코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린 백성현은 이불을 칭칭 둘러멨다.

어떻게 조작을 한 건지는 몰라도 독서등의 조도가 낮아졌다. 이윽고 사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옆자리를 가득 메우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슬쩍 눈을 들어 확인하기도 전에 백성현은 이불 째로 끌어 당겨졌다. 지유환은 그대로 백성현을 제 품 안에 한가득 가두었다.

“…어어.”

멍청한 소리를 내고 있는데 지유환이 머리칼 위로 입술을 꾹 눌러왔다. 긴밀하게 좁혀진 틈 사이로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정말 같이 사는 것 같아.”

이불 째로 그의 품에 안긴 나머지 바르작거릴 수도 없었다. 지유환은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우리 그냥 매일 밤마다 같이 잘까요.”

“…뭐?”

“형이 불편할까봐 따로 침대를 들여놓긴 했는데.”

백성현은 어렵사리 고개를 들어 지유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연스럽게 코끝을 맞대어 온 지유환이 애교라도 부리는 것처럼 고개를 양옆으로 느릿하게 저었다.

“사실 같이 자고 싶었거든요.”

진심이 가득 담긴 눈이었다. 백성현은 반쯤 충동적으로 이불 속에서 팔을 빼내어 지유환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었다. 언제 만져도 부드러운 머릿결이라고 생각할 즈음 지유환이 그 손길을 느끼듯 눈을 사르르 감아 내렸다.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자 기다란 속눈썹이 움찔대며 떨렸다. 백성현은 그 빚어낸 듯 한 얼굴을 빤히 보다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귀엽다.”

190이 넘는 남자가 이렇게나 온순하게 느껴질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백성현은 천천히 손을 내려 그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조심스럽게 두 뺨을 꼭 잡고 코끝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쪽, 하고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지유환의 눈가가 움찔 떨렸다.

그 눈가를 매만지던 백성현은 문득 부끄러움이 치솟아 올라 이제 자겠다는 듯 스르르 자리에 누웠다. 두세 번 정도 숨을 들이마시고 내셨을 즈음 지유환이 검지로 뺨을 간지럽히듯 긁어왔다.

“자는 척 하시는 거예요.”

“…….”

“안자는 거 다 알고 있는데.”

그 말에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자 이불을 목 밑까지 끌어내리는 듯 한 손길이 느껴졌다. 뭘 하려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계속 자는 척을 하는데 다시금 느릿한 음성이 들려왔다.

“계속 자고 있어요, 형.”

사실 자는 건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벙긋한 순간 홧홧한 숨이 입술을 덮어왔다. 지유환은 한 손으로는 백성현의 목을 감고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아올렸다. 그저 머금고 핥아 올릴 뿐인 따뜻한 입맞춤이라 마음이 뭉근하게 달아올랐다. 그러던 와중 그가 예고 없이 아주 천천히 파고들어 혀끝을 살살 건드려왔다. 그에 감질이 나는 건 도리어 자는 척을 하고 있던 백성현이었다.

“…….”

지유환은 달콤한 것을 녹여먹듯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물었다가 놓았다. 부드러운 혀끝은 점막을 간질이듯 상냥하게 움직였다. 백성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꼭 쥐고 그 간지러운 입맞춤을 받아내고 있었다. 쪽, 쪽하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침실을 울렸다. 이번에도 느릿하게 입술 위를 두드리던 혀끝이 입 안을 침범해왔다.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쉰 백성현은 그제야 두 팔을 뻗어 지유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 지유환을 무시하고 이번에도 혀끝을 가볍게 두드리기만 하고 뒤로 빠지려던 뜨거운 혀를 감아올렸다.

온 신경이 그와 숨을 나누고 있는 혀끝으로 집중되었다. 백성현의 허리 아래를 가리고 있는 이불을 끌어 낸 지유환은 헐렁한 상의 안으로 따뜻한 손을 집어넣었다. 잘록한 허리 위를 나릿하게 쓰다듬던 그는 고개를 틀어 입안을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그대로 자연스럽게 저를 몸 위로 올리려는 것을 힘으로 버틴 백성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물렸다. 이런 걸 예상하고 그의 침실로 온 것은 아니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그 사이로 생긴 좁은 틈으로 축축한 숨이 오갔다.

“성현 형.”

지유환이 손가락을 내어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백성현의 입술을 훔쳐 주었다.

“어…, 응?”

백성현은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한 느낌에 겨우 대답을 내놓았다. 입술을 지분거리던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목께를 훑고 있었다. 지유환은 먹이를 앞에 둔 포식자처럼 느른하게 웃으며 속닥였다.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겠다는 것처럼 어엿한 어조였다.

“여기, 제 침대 위인데.”

“…….”

“먼저 와서 누운 것도 형이고.”

명백한 의도가 담긴 말이었다. 달라진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미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목 뒤가 오싹오싹 할 만큼 동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백성현은 머뭇거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입을 뗐다.

“…그, 러면. 내가,”

입매에 달라붙는 진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백성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놓으며 지르듯이 말했다.

“빨아…줄까.”

백성현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상체를 일으켜 무릎걸음으로 지유환의 허리께로 자리를 옮겼다. 허리 양옆에 손을 짚고 나서야 위를 보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모르겠다는 듯 눈매를 좁힌 지유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음은 일방적으로 그가 해주었던 기억밖에 없어서 잘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백성현은 천천히 지유환의 하의를 끌어 내렸다. 거부감은 애초에 없었다.

그렇게 브리프에 손을 가져다대려는데 지유환이 들릴 듯 말 듯하게 혀를 찼다. 그는 백성현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어 제 몸 위로 가뿐히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버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멀뚱하게 눈을 감았다 뜨는 백성현을 앞에 두고 지유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별로, 나 혼자 좋자고 형한테 그런 거 시키고 싶지가 않아서.”

지유환은 백성현의 입술 모양을 덧그리다가 미세하게 손톱을 세웠다.

“입술이 이렇게 작은데. 걱정이 더 될 거예요.”

저번과 비슷한 이유를 들은 백성현은 지유환의 과보호가 여기까지 미친 것을 깨닫고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왜인지 자꾸만 얼굴이 달아오르려고 해서 애써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가… 해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

“힘들면 알아서 입에서 뺄게.”

“…….”

“그리고, …잘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번엔 힘으로 못하게 막지 말라는 말을 덧붙인 그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얼굴을 한 지유환을 내버려 두고 아래로 내려갔다. 괜히 심술이 돋아 상의를 끌어올려 드러난 하복부에 쪼듯이 입을 맞추자 단단하게 짜인 복근이 꿈틀거렸다.

한숨 같은 숨소리를 들은 백성현은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저렇게 태연한 얼굴을 했으면서 이미 아래는 잔뜩 부풀어 있었다. 백성현은 브리프 위로 그의 성기를 두어 번 쓸어내렸다. 그 미숙한 장난 같은 손짓에도 흉흉한 크기의 성기가 부피를 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대로 입안에 넣으려다가 백성현은 단단하게 선 기둥 위로 뺨을 가져다대어 보았다. 몇 번쯤 고개를 보비작 거리던 그는 난 데 없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에 멈칫했다. 반사적으로 위를 본 백성현은 귀여운 걸 본다는 것처럼 눈매를 좁힌 지유환과 눈이 마주쳤다. 그 넉넉한 손길이 기분이 좋아서 백성현은 기둥 위로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서서히 상체를 일으킨 지유환은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었다.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간 백성현은 다리 사이에 자리하게 되었다. 피가 몰려 잔뜩 부풀어 오른 귀두와 위협적으로 불거진 핏줄 같은 것들이 보였다. 백성현은 가만히 살덩이를 훑다가 천천히 선단을 머금었다.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물감에도 백성현은 양손으로는 기둥을 훑으며 살덩이를 삼켜갔다. 그렇게 입 안 가득 성기를 물었음에도 반 정도나 겨우 들어간 것을 보고 백성현은 질린 듯한 눈을 했다.

- …잘 할 수 있어.

왜 그런 말을 해서. 백성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흔들며 구음을 이어나갔다. 스치듯 바라본 지유환의 복부가 윤곽대로 조여들었다. 그는 지유환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는 것을 느끼며 다시 깊게 물었다. 고작 몇 번 고개를 움직였을 뿐인데 불거진 핏줄이 입술 점막으로 느껴질 정도로 크기를 키운 것이 느껴졌다. 입술 틈에서 억눌린 소리가 새어나왔다.

“…흐, 으욱. …으.”

제대로 잘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번에는 무리해서 깊은 곳까지 집어넣었다. 목젖을 치받는 압박감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라 생리적인 눈물이 차올랐다. 순간 지유환이 머리맡에서 더운 숨을 내쉬었다. 그 호흡에 온 몸에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아.”

백성현은 목구멍에 집어넣었던 기둥을 살살 빼내면서 살덩이를 빨아올렸다. 저번에 그가 이렇게 해주었을 때 유독 느꼈던 것을 기억해낸 탓이었다.

귓가를 만지작거리던 다정한 손길이 잦아듦과 동시에 목구멍을 긁는 듯한 낮은 숨소리가 머리맡을 울렸다. 다시 성기를 입안에 넣고 고개를 움직이려는데 입가가 아릿하게 아파왔다. 지유환은 허리를 움직이지도, 저가 그러했듯 입안에 박아대지도 않았는데 머금고 있는 것만으로 입술이 아려왔다.

그래도 그가 이걸로 기분이 좋아진다면 부피감으로 인한 압박쯤은 견딜만한 것 같기도 했다. 백성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눈을 들어 지유환을 올려다보았다. 두꺼운 귀두가 입에서 빠져나감과 동시에 숨이 트이는 소리가 났다. 붉게 부어오른 입술로부터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백성현은 조심스럽게 혀를 내어 선액이 흐르는 선단을 핥았다. 뜨거운 혀로 기둥을 길게 쓸어내린 뒤 다시 입을 벌린 순간 지유환이 제지하듯 고개를 붙잡았다.

“하아…. 이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네.”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가 더욱 탁하게 잠겨 있었다. 지유환은 손수 백성현의 치켜 올라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자상하게 속닥였다.

“울면서까지 하라고 한 기억은 없는데.”

“…….”

“괜찮으세요.”

입가가 따끔따끔한 것이, 결코 괜찮다고 할 수는 없었다. 지유환은 엎드려있던 백성현을 일으켜 품에 안았다. 벅찰 정도로 세게 끌어안긴 그는 지유환의 무릎 위에 앉아 단단한 가슴팍에 고개를 비비적댔다. 아까 전부터 줄곧 이러고 싶었다. 물씬 밀려오는 체향이 녹아내릴 만큼 달콤했다. 백성현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물었다.

“…기분 안 좋았어?”

지유환이 해주었던 구음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었다. 제 것을 물고 있는 창백한 얼굴이 선정적이어서 더 그랬는지는 몰라도 입에 박으면서 절정에 닿았을 정도였다. 지유환은 목뒤를 매만져주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어요.”

“…….”

“형이 내 걸 빨고 있는데.”

노골적인 표현이 고막을 파고드는 듯한 오싹한 느낌에 백성현은 부어버린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지유환은 곧바로 그 습관을 제지하듯 입술 사이를 가르고 손가락을 물려주었다. 백성현은 그 손끝을 자연스럽게 혀로 핥아 올렸다. 무리해서 그의 것을 삼켰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듯 눈가는 아직 축축했다. 지유환은 곤란한 듯 속삭였다.

“형은 왜 이렇게 매번 울어요.”

“…….”

“어떻게 해줄까요.”

우는 아이를 달래듯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해주겠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일단은, 이렇게 있을래….”

지유환은 빈틈없이 백성현을 끌어안고 작게 떨리는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느릿하게 물었다. 맹목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입모양에 고정된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다음은,”

“네.”

입안을 헤집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백성현은 마침 시야에 들어온 도톰한 입술을 나릿하게 핥았다. 조도가 낮은 조명 아래에서도 분홍빛이 도는 입술에서는 향기가 날 것만 같았다.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 지유환의 손이 잠옷을 벗기는 것이 느껴져 백성현은 망설이다가 허리를 들어주었다. 지유환은 부드럽게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순식간에 속옷까지 벗겨냈다. 지유환은 웃음기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재워달라고 온 거 맞으세요.”

“…….”

“이렇게 젖어서 잘 수는 있겠어요.”

지유환은 빳빳하게 서 있는 성기를 커다란 손으로 느릿하게 훑었다. 그의 말대로 선단은 이미 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백성현은 지유환의 무릎 위에 앉은 채로 허리를 비틀었다.

“흐, 으…!”

“내 거 빨면서, 여기까지 세우고.”

“아…! 잠, 깐만….”

백성현은 지유환의 말에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의 것을 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저도 모르게 흥분했던 것이 진짜여서 더 그랬다. 지유환은 귓불을 깨물고 책망하듯 말했다.

“좋아서 운 거였나 봐요.”

성기를 쥔 손에 압박이 가해졌다. 백성현은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는 것처럼 지유환의 목을 끌어안았지만 역효과로 작용한 듯 아래를 훑는 손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허리가 덜덜 떨렸다. 커다란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려는 찰나 지유환이 손을 풀고 다정하게 말해왔다.

“형은 혼자서 잘 안 하시죠.”

“…으, 응.”

사실이었다. 백성현은 성적으로 담백한 편이었기에 스스로 성욕을 처리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저번에 지유환과 잠자리를 가진 이후로 사정을 한 적이 없는 것도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지유환은 백성현의 어깨 위로 입술을 맞추며 픽 웃었다.

“보고 싶어요.”

이미 사정 직전까지 갔던 흥분은 그가 손을 거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백성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애틋하게 지유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여기서 마스터베이션을 해보라니. 평소였다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의 무릎에 앉은 지금은 머리 한 쪽이 마비된 듯 제대로 된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손은 쓰지 말고.”

“그…럼 어떻게…….”

지유환이 부추기듯 백성현의 콧잔등을 쓸어주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는 듯한 손길이었다. 그 와중에도 허리는 계속해서 움찔움찔 떨렸다. 백성현은 울 것 같은 심정으로 망설이던 최소한의 이성을 놓았다. 조심스러운 허릿짓이 이어졌다. 떨리는 몸짓으로 잘 짜인 복근에 대고 성기를 지분거리자 성역을 침범하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으, 흐으…,”

아무런 저지도 없었으므로 백성현은 계속해서 허리를 추어 올렸다. 그의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인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아, 으읏….”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분명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창백하고 매끄러운 피부에 대고 이런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생소한 흥분감에 자꾸만 이성이 흐려져 갔다. 어느새 지유환의 성기도 복근에 바짝 닿을 만큼 발기해서 살덩이가 맞부딪히며 튕겨 나오기를 반복하기까지 했다.

“흣, 나 손, 쓸래, 흐읏….”

지유환은 어두워진 눈동자로 백성현이 하는 양을 보다가 그의 성기를 한번 길게 쓸어주었다. 백성현은 허리를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몸을 휘며 신음했다. 스치듯 마주친 검은 눈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이제 그 눈이 흥분에 잠긴 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흐, 아…!”

휘어지는 등을 솜씨 좋게 안은 지유환은 백성현의 윗도리를 끌어올려 고개를 묻었다. 유륜 주위를 핥던 뜨거운 혀는 단숨에 유두로 옮겨갔다.

“…읏…!”

방문을 열 때만해도 그의 무릎에 앉은 채 이런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백성현은 반은 본능적으로 지유환의 것에 제 것을 가져다 대었다. 뜨겁고 커다란 살덩이와 맞닿자 모든 신경이 그 끝으로 쏠렸다. 한손으로는 다 잡히지 않을 게 뻔해서 양 손으로 성기를 겹쳐 쥔 순간 지유환이 낮게 혀를 차는 것이 들렸다. 왜인지 그 소리에도 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흥분이 됐다.

“손은 쓰지 말라고 했잖아요.”

다정한 어조와는 달리 딱딱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백성현은 아래위로 움직이려던 손을 움찔하고 놓았다.

지유환은 연한 색을 띠는 백성현의 성기를 보다가 선단을 검지로 나릿하게 문질렀다. 그 조그만 손길도 곤혹스러울 만큼 자극적이라 백성현은 퍼뜩 몸을 튀고 지유환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숨은 점점 거칠어져갔다. 매번 흥분감이 쌓이면 오래지 않아 극치에 닿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열감이 내내 몸 안에 넘실대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지유환은 끈적한 선액이 묻어난 손가락을 보면서 곤란한 듯 뇌까렸다.

“이렇게 질질 흘려서는.”

백성현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좋아해서 괴롭히고 싶어진다고 했던 그의 말을 어렵게 상기해보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은 듣기가 힘들었다. 백성현은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손을 내려 제 것을 가리려고했다. 그럴 틈도 없이 깍지를 껴서 손을 옆으로 치워낸 지유환이 나지막이 물어왔다.

“원래 이렇게 많이 흘려요?”

“…흐읏.”

“그렇게 참을성이 없으세요.”

“아니야….”

“그럼?”

“참을, 수 있어….”

백성현은 붙잡히지 않은 나머지 한 손을 등 뒤로 짚고 고개를 젖혀 숨을 몰아쉬었다. 지유환은 잘 했다는 것처럼 하얀 목에 입을 맞춰주었다. 지유환의 커다란 손이 다시금 상을 주듯 백성현의 것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손길은 녹아내릴 듯 다정했지만 갑작스러운 억울함도 함께 치밀어 올랐다.

“…하, 윽, 으읏.”

이건 마스터베이션이 아니라 지유환이 주는 자극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가까웠다. 그가 말한 혼자 하는 모습이란 혼자 헐떡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임을 이제야 알아챘다. 손을 못 쓰게 한 시점부터 하나의 통제를 걸었다는 것을 눈치 챘어야 했다. 그렇게 또 사정 직전에 닿았을 때, 지유환은 묽은 액체를 흘리고 있는 구멍을 틀어막았다. 이제는 아프기까지 한 아래를 느끼며 백성현은 이를 사리물었다.

“아파….”

마음과는 달리 눈가를 축축하게 적신 백성현이 허리를 흔들며 지유환과 시선을 맞췄다. 그 까만 눈에 또 아랫도리가 동했다. 이제는 어떻게든 이 열감을 해소시키고 싶다는 생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백성현의 눈길이 지유환의 모양 좋은 입술에서 멈췄다. 그는 천천히 지유환의 머리칼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 런데, 네가.”

“…….”

“어디, 흐으… 박고 싶으면….”

백성현은 숨을 고르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네 입에다 하라며.”

손을 쓰지 않을 방법은 하나 더 있었다. 의외로운 것을 들은 듯 눈매를 기울인 지유환은 손을 뚝 멈췄다. 그 대신 그는 천천히 자세를 앞으로 기울였다. 자연스럽게 백성현의 등 뒤로 부드러운 시트가 닿게 되었다. 교미 전 짐승처럼 몸 위로 올라탄 그는 보란 듯이 입을 작게 벌렸다. 축축하고 음습해 보이는 입 안과 혀가 고스란히 보였다. 이어진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내 입에 박고 싶다고?”

백성현의 눈매가 조금 흔들렸다. 그는 상체를 들어 지유환의 입술에 소심하게 쪽쪽거리다가 보일 듯 말 듯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몸짓을 보던 지유환이 느리게 웃음을 흘렸다.

참을 수 있다고는 했지만 아까 전부터 자꾸만 몸이 배배 꼬여서 생리적인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허락의 말 대신 허리 아래로 단단한 팔이 들어왔다. 하반신이 끌어당겨진다는 자각과 함께 엉덩이가 들리고, 단단하게 발기한 살덩이가 곧바로 지유환의 입에 삼켜졌다.

“하으읏…!”

가지런히 아래를 향한 예쁜 속눈썹에 감탄을 흘리기 무섭게 아래를 조여 오는 뜨거운 입안이 느껴졌다. 백성현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튀었다.

“잠, 깐…. 만, 흐으…!”

빳빳하게 일어선 성기의 선단부터 삼킨 지유환은 끝까지 입에 넣고 고개를 움직였다. 뜨겁고 습한 입안에 백성현은 상체를 휘며 밭은 호흡을 삼켰다. 그가 세게 빨아들일 때마다 온 신경이 새로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지유환이 그러했듯 최대한 허리를 가만히 두려고 해봤지만 자극이 전기처럼 튈 때마다 통제에서 벗어난 몸은 움찔거리기 바빴다. 고개를 뒤로 젖힌 백성현은 저도 모르게 그의 입에 하반신을 느리게 치대기 시작했다. 지유환은 고개를 흔들면서 허벅지 안 말랑한 살을 가지고 놀 듯 꾹꾹 눌렀다.

그가 뜨거운 혀로 귀두의 갈라진 틈을 짓뭉개는 순간, 백성현은 가쁘게 쉬던 숨을 멈추었다. 허벅지 안쪽이 바르르 떨림과 동시에 애써 눌러왔던 성감이 치솟았다. 백성현은 다급하게 버둥거리며 지유환을 밀어내려했지만 사정이 더 빨랐다.

“안, 돼…! 잠깐, 흐윽….”

목 안 깊은 곳까지 집어넣은 채 절정에 맞은 백성현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허리를 뒤로 뺐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지유환을 올려다보았다.

“미안, 빨리 뱉….”

그 때, 지유환의 목울대가 느리게 오르내렸다. 애초에 삼킬 생각이었던 건지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굳어버린 백성현을 보며 낮게 웃음을 터뜨린 그가 작게 속닥였다.

“받아먹으라고 목구멍 안까지 넣는 건 줄 알았는데.”

그 말에 백성현은 얼굴은 물론 목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건 그저 정신없이 허릿짓을 해대다보니 입 안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은 것뿐이었다.

백성현은 지유환의 집요한 시선을 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지유환의 입에 넣은 것만으로 가버린 것도 벌써 두 번째였다.

대놓고 시선을 피하는 백성현을 보던 지유환은 커다란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쌌다.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였다.

“형은 제 입 안, 정말 좋아하시네요.”

“…….”

“이 정도면 먹을 만한 것 같기도 하고.”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백성현은 몸을 휙 돌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와서 죽을 것만 같았다. 지유환은 이불에 파묻힌 백성현의 하복부를 힘주어 끌어안기만 했다. 그 힘에 딸려가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바닥을 짚고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버티려고 해도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백성현은 또 한 번 본의 아니게 지유환과의 체격차를 느끼곤 이를 사리물었다.

“근, 데…. 왜,”

고개를 돌려 왜 이런 자세인건지 물어보려고 한 순간 하나의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곧바로 백성현의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었다. 그는 재빨리 자세를 휙 돌려서 침대 헤드로 몸을 물리려고 했다. 그 전에 지유환이 단단하게 골반을 붙잡은 것이 먼저였다.

“잠, 깐만. 오늘 못 하는데….”

“…….”

“이틀 뒤면, 개강…이라고….”

처음 관계를 맺고 나서도 이틀간은 계속 누워있었던 것이 뇌리를 스쳤다. 오늘 끝까지 하는 건 절대 무리였다. 게다가 분위기가 여기까지 흐를 줄 알았더라면 잠이 안와도 꾹 참고 방 안에서 얌전히 누워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세에선 지유환이 자신의 입모양을 볼 수 없었다. 그가 저를 볼 수 있도록 고개를 돌리려고 한 순간 입 안으로 손가락이 들어왔다. 이내 목줄기 위로 떨어지는 음성에 백성현은 작게 신음했다.

“자세 안 무너지게, 잘 서있어요.”

“…아…으읏.”

등허리의 잘록한 선을 훑던 손길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배꼽 아래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백성현은 엎드린 채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끝까지 들어가면 여기로도 만져질 것 같은데.”

“…….”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백성현은 그 웃음기 섞인 말에 반사적으로 다리를 잔뜩 오므렸다. 만져질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혀를 꾹꾹 눌러오는 손가락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더 입안을 장난치듯 헤집던 지유환은 이내 긴 팔을 뻗어 젤을 꺼내들었다.

“뭐, 알아보면 되죠.”

그 말에 백성현은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진득한 액체를 짜는 소리가 귓구멍 안으로 질척하게 달라붙었다. 몸은 여전히 단단히 붙잡혀있었기에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지유환은 긴장으로 움찔거리는 볼기를 잡아 벌리고 그 사이로 젤을 흘렸다. 끈적한 젤이 구멍부터 회음을 거쳐 허벅지 안까지 은밀하게 흘러내렸다. 낮게 혀를 찬 지유환은 젤로 범벅이 된 손가락으로 구멍 위를 둥글게 문질렀다. 백성현은 제 뒤가 방금 전부터 얼마나 야하게 움찔거리고 있었는지 모를 것이었다. 재촉하듯 조여드는 입구를 보며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 흐으,”

뭔가가 들어오고 있다는 걸 느낀 백성현은 시트 위로 얼굴을 묻었다. 점성 있는 소리가 사지를 끈끈하게 결박해오는 것만 같았다.

질척해진 구멍은 순식간에 중지를 삼켜냈다. 지유환은 기다렸다는 것처럼 달라붙는 내벽을 일부러 꾹꾹 눌렀다. 내벽의 요철이 차지게 감겨왔다. 그는 백성현의 목 뒤로 촉, 촉, 하는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진작 넣어줄 걸 그랬네요.”

“…으, 흐읏….”

“이렇게 좋아하는데.”

곧바로 모양 좋게 올라붙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라는 것처럼 세차게 도리질치는 것이 보였지만 아래는 착실하게 손가락을 삼켜가고 있었다.

“아, 니야…. 아니, 흐으….”

지유환은 그 하얀 목줄기를 부드럽게 쓸어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웃음기가 다분히 섞인 음성이었다.

“아래 입, 조금 더 벌려야죠. 아직 너무 좁잖아요.”

“아, 하으, 읏…!”

안을 휘젓던 손가락이 아슬아슬하게 극점을 스쳐갔다. 공기에 오롯이 노출된 살갗이 일순 조여드는 것만 같았다. 저도 모르게 무릎에 힘을 준 백성현은 흥분감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 앞에 벌벌 떨었다.

내벽을 늘리는 손가락의 개수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났다. 지유환은 몸을 들썩거리는 백성현을 내려다보다가 앞뒤로 유연하게 움직이던 손목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안을 몇 번쯤 쑤시듯 박아 넣자 백성현의 허리가 잔뜩 비틀렸다.

“아…! 흐윽…!”

가쁜 숨을 터뜨린 백성현은 시트를 꼭 쥐었다. 그 몇 번의 삽입에 순식간에 지유환이 제 안을 짓찧어대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건만 몸을 섞었던 때의 쾌감이 떠오르자 자꾸만 발끝이 곱아들었다.

이윽고 세 네 개쯤 되는 듯했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이유 모를 허전함을 느끼기도 전에 회음부 위를 뭉툭하게 쓸어오는 뜨거운 살덩이가 느껴졌다. 백성현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그 와중에도 지유환은 친절이라도 베풀 듯 다시금 백성현의 입안으로 손가락을 물려주었다. 젤이 묻어있지 않은 매끈한 손가락이었다. 등 뒤에서는 콘돔을 씌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프면 세게 깨물어요.”

“…흐…으.”

“아플 때만.”

“잠, 까…, 흑…!”

그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지유환은 허리를 감고 하반신을 느리게 밀어 붙였다. 백성현은 입을 벌린 채로 얼어붙었다. 아무리 풀어줬다고 해도 부피감은 처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뜨거운 살덩이가 열상을 새기듯 안을 파고들었다.

“아, 흐…. 아파아, 흐으….”

입에 물려진 손가락을 꼭 깨물자 밀고 들어오는 속도가 조금쯤 느려졌다. 그래도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통증을 그대로여서 백성현은 다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색색거리는 듯한 젖은 숨이 물려둔 손가락을 타고 번져왔다. 다물린 턱을 쓰다듬어주던 지유환은 빠듯함에 눈을 찌푸리며 결합부를 내려다보았다. 비문은 주름 하나 없이 완전히 열려 제 것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백성현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을 만큼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장면이었다. 왜인지 손가락을 깨물던 잇새의 힘이 빠져나갔고, 순간 지유환은 흐트러진 백성현의 자세를 추어올리며 안으로 푸욱 밀고 들어갔다. 바르작거리던 백성현의 몸이 놀란 듯 튀어 올랐다.

“아…! 흐…, 윽, 아, 파….”

지유환은 백성현의 귓등을 입안에 머금고 빨아올렸다. 그의 음성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빨아주는 것도 못 참고… 제대로 서 있는 것도 못 하고.”

“…흐, 아….”

“가만히를 못 있죠.”

백성현은 수치심에 몸을 반쯤 뒤틀었다. 지유환은 이제부터는 얌전히 있으라는 것처럼 머리칼을 어루만져주면서 벌써부터 제 것을 찰기 있게 씹어대는 내벽을 느릿하게 짓이겼다. 극점을 비껴가는 추삽질에 다시 백성현의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천, 천히…, 제발, 흐으….”

자꾸 미끄러지는 백성현을 보다 못한 지유환은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어 그의 몸을 직접 뒤집었다. 살덩이를 물고 있는 채인 터라 내벽이 온통 짓이겨지며 뒤집힌 백성현이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잠, 깐, 흐읏…!”

두 다리를 모아 잡고 위로 들어 올린 지유환이 추삽질을 재개했다. 백성현은 방금 전 입안에 넣었던 흉기 같은 성기가 제 안을 갈급하게 파고드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입술 점막으로 느껴지던 핏줄, 목구멍을 치받던 귀두 같은 것이 이번에는 아래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지유환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흐려진 백성현의 표정을 내려다보며 깊게 처박았다. 빡빡하기만 하던 안이 점점 움직이기 수월하게 조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지유환은 상체를 기울여 백성현에게 밀착하고, 잘했다는 듯 통통하게 부어오른 전립선 위를 세게 비벼주었다.

그 뭉근하게 후벼 파는 감각에 백성현은 마른 숨을 터뜨렸다. 이내 살덩이는 빠져나갔지만 백성현은 그 쾌감을 쫓듯 제 안에 든 성기에 느끼는 지점을 맞춰댔다. 고통을 상쇄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위였지만 그 모습을 보는 지유환의 눈매는 좁아들었다. 고통스럽던 신음에 열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아흐, 으…! 흐으,”

“…성현 형.”

“읏…! 흐…아, 으응. 유, 환…, 흐읏.”

저를 부르면서 내벽을 맞춰대는 것을 보다 못한 지유환은 감각점 위로 세게 처박아 넣었다. 그에 위로 들린 하얀 허벅지가 바르르 떨렸다.

“흐, 으…. 그거, 하, 지…, 마,”

하지 말라는 말과 달리 선액을 뚝뚝 흘려대는 반응은 솔직했다. 그게 마치 방금처럼 세게 휘저어달라는 것만 같아서 지유환은 잇새로 숨을 내보냈다. 애써 허릿짓을 가라앉힌 그는 다시금 결합부로 젤을 쏟아 부었다.

“좋아죽는 건 알겠는데.”

“흐, 으읏….”

“솔직하게 굴어야, 제가 박아주지 않겠어요.”

“…아, 니, 잠까…, 잠깐만, 흐으.”

“어디가 제일 좋아요?”

그대로 지유환은 백성현을 안아들고 제 몸 위로 앉혔다. 그 어느 때보다 깊숙이 밀고 들어오려는 것에 백성현은 히익,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어딘 지, 모르…, 흐으, 아…!”

“그럼….”

지유환의 위로 올라탄 자세가 된 백성현은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지유환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어깨를 붙잡힌 지유환은 태연하게 속삭였다.

“직접 알아봐요.”

“내가… 하라, 고?”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유환은 고개를 끄덕이곤 하는 양을 보겠다는 듯 느긋한 눈으로 백성현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울 것처럼 흐려진 얼굴로 백성현은 이내 이를 사리물었다.

천천히 몸을 내리기 시작했지만 얼마만큼을 제 안에 넣으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반 이상을 삼키기는 겁이 났다. 백성현은 혹시나 제 체중이 결합을 깊숙이 할까봐 바들바들 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잔뜩 들린 엉덩이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오는 손길이 느껴져서 백성현은 입매를 늘어뜨렸다. 안달이 난 것은 마치 저 혼자뿐인 것만 같았다.

결국 반도 삼키지 못하고 다시 빼내기를 반복하던 그는 도와달라는 것처럼 지유환에게 눈을 맞췄다. 지유환은 모른 척 견갑골 위를 가만가만 쓸어오기만 했다. 움직여주지 않을 거란 걸 알아챈 백성현은 낮은 숨을 토해냈다.

그렇다면 먼저 움직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백성현은 욕설을 삼키며 골반에 힘을 주어 그의 것을 꾹꾹 조였다. 곧바로 느긋하기만 하던 표정에 실금이 갔다.

“유, 환아….”

느끼는 곳을 찾듯 허리를 움직여도 간지러움만 더해질 뿐이었다. 백성현은 애원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유…환.”

“…….”

“씨, 발, 좀….”

그 때에 백성현은 즐거운 듯 휘어지는 지유환의 눈매를 봐버렸다. 욕설을 뱉은 입술을 나무라듯 물어뜯은 지유환은 내벽을 꿰뚫는 것처럼 아랫도리를 쳐올렸다.

“흐앗…!”

쿨쩍거리는 젖은 소리가 침실을 울렸다. 그 기세에 못 이겨 백성현의 몸이 다시 시트 위로 무너졌다. 지유환은 이번에야말로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쾅쾅 박아 넣기 시작했다. 백성현은 정신없이 흔들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온몸이 벌벌 떨리는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대로 성감이라는 것이 짓이겨지다 못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지유환은 난폭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우아하고 날렵하게 잡혀있던 몸선은 흥분으로 잔뜩 부푼 흉곽 때문인지 위협적으로만 느껴졌다. 온몸이 짓찧어지는 듯한 아득한 쾌감이었다.

꽉꽉 물던 내벽이 일순 풀리고 경련을 하는 것을 느끼며 지유환은 더 깊숙한 곳으로 귀두를 처박았다. 그는 백성현이 사정을 하는 동안에도 봐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허리를 밀어붙이던 그가 느른하게 중얼거렸다.

“벌써 갔네….”

“하으…, 으읏….”

울컥울컥 쏟아진 정액이 아랫배를 타고 내려가 허벅지를 죄 적셨다. 지유환은 성기를 빼내고 정액을 긁어 다시 백성현의 입구에 치덕치덕하게 묻혔다. 젤과 정액으로 범벅이 된 구멍을 언뜻 벌리자 붉은 속살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 안이 다시 넣어달라는 것처럼 민감하게 움칠거렸다.

“더 받아먹을 수 있죠?”

콘돔을 벗겨낸 지유환은 성기를 길게 훑으며 수음했다. 백성현은 멍하니 그가 손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지유환은 이미 정액과 젤이 뒤섞여 번들번들한 회음 위로 귀두를 느릿하게 쓸었다. 백성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지유환은 낮게 웃음을 흘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이내 비문 주위로 더운 액체가 쏟아졌다. 지유환이 질척한 입구에 사정을 한 것을 깨달은 백성현은 가쁜 숨을 삼켰다.

지유환은 흐물흐물해진 구멍을 둥글게 문지르며 속삭였다. 구멍은 마치 마킹이라도 당한 것처럼 체액에 온통 덧씌워진 상태였다.

“안 예쁜 데가 없네….”

그 목소리에는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귓등을 발갛게 물들이고 죄 없는 시트만 잡아 뜯던 백성현은 다시 그의 손가락이 안을 잡아 벌리는 것에 허우적거렸다. 그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필사적으로 뒤로 물려 침대 헤드에 기대었다.

“안 돼. 여기서 더 하면,”

지유환은 이유를 묻듯 진득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나 개강 못해…. 저번에도, 이틀이나 누워있었단 말이야….”

“아.”

“허리도 엄청 아팠고….”

다행히 그런 종류의 핑계는 지유환에게 그나마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편이었다. 뭔가를 저울질 해보듯 침묵을 지키던 지유환은 피식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도리질치는 백성현이 마치 위험에 몰려 오들오들 떠는 토끼처럼 보여서 마냥 봐주고만 싶었다는 게 그 나름의 이유였다.

“알았어요.”

백성현은 녹아내릴 듯 웃는 예쁜 얼굴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넣는 것만 아니라면 아까 하다만 구음이든 저번처럼 허벅지로 하는 것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러 긴장된 마음으로 그 입을 보는데 지유환이 제 뺨을 두 번 톡톡 두드렸다. 사르르 웃는 눈매와 함께 보조개가 폭 패었다.

“여기, 뽀뽀.”

침대 헤드에 바짝 붙어 앉아있던 백성현의 눈이 멍하게 흐려졌다. 다시 몸이 번쩍 들린다 싶더니 또 지유환의 무릎 위에 앉혀졌다. 백성현은 홀린 듯이 보드라운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선명하고 맑았다.

쪼는 것같은 뽀뽀가 녹아내릴 듯한 입맞춤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지유환은 백성현을 가볍게 안아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 자세로 몇 걸음 걷다보니 아랫도리가 복근에 속절없이 쓸렸다. 지유환의 눈이 다시금 집요해졌다. 백성현은 토끼눈을 하며 그의 어깨를 몇 번이나 두드렸다. 정신 차리라는 듯한 힘없는 주먹질에 지유환은 피식 웃으며 눈길을 거뒀다.

다시 침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장난처럼 입술을 맞대었다. 숨을 얽는 행위는 마치 영혼에 대한 인사 같았고, 온몸을 감싸온 체온은 벅차도록 사랑스러웠다. 말소리는 입술에 잡아먹히기를 반복했지만 그걸로 좋았다. 밤새도록 셀 수 없이 많은 단어들을 삼켰다. 어느 결에 잠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눈을 떴을 때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의 침실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옆에서는 곤히 잠든 숨소리가 들려왔다. 타인의 기척이 이토록 다정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잡고 있는 손을 보고 있노라면 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백성현은 부드럽게 흔들리는 커튼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멈춰놓고, 흘러가는 초침을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렇게나 완전하게 무해한 아침이었다.

< - The scenery of autumn morning (가을 아침의 정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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