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 남편-41화 (41/74)

41장. 사는 게 다 그렇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흘리려 노력해도 가슴 끝에서 목구멍을 타고 오르다 잦아들고 말았다. 밖으로 토해져 나오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효은은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정면으로 올려다보지 못하고 반대편 벽에 새겨진 못 자국만 멍하니 바라봤다. 자국은 멀어졌다 가까워지다 끝내 흐려져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할아버지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녀를 안고서 한참을 울었다. 아이고, 아이고. 그들의 입에서 내뱉어진 곡소리가 머릿속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아이고, 아이고.’ 엄마를 보낼 때 할아버지는 지금 그녀의 자리에 앉아 이 ‘아이고, 아이고.’를 듣고 또 들었을 것이다. 울 수도 없는 자리구나. 목 놓아 아파할 수도 없는 자리가 이곳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일어나. 뭐라도 좀 먹자.”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남자가 눈에 잡혔다.

“효은아.”

승재야. 분명 이름을 불렀다 생각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두려웠다. 나 이제 말을 못 하는 걸까. 왜 이러지. 승재야. 녀석을 바라보며 눈으로 물었지만 승재는 대답 없이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그녀가 지키던 자리를 현철과 기수가 대신해 주었다.

‘다행이지. 유언 같은 건 못 들었으니까.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런 말들을 들었으면 더 아팠을 거 아니야.’

효은은 분수를 바라보고 앉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말들을 가슴으로 쏟아 내고 있었다.

정희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서울이었다. 이도와 묵었던 호텔에서 나와 쇼핑을 하는 중이었다. 그와 잠드는 공간을 꾸밀 아기자기한 가구들 앞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쉬러 들어간 할아버지는 점심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으셨다고 했다. 뒤늦게 그걸 알아채 미안하다며 정희 아주머니는 효은을 붙잡고 응급실 바닥에서 한참이나 울었다.

119가 별장에 도착해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이송해 가는 순간에도 그녀는 태호의 곁에 없었다. 왜. 왜 기다려 주지 않았어? 왜.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따질 수도, 칭얼거릴 수도 없어 효은은 병원에 도착해 흰 천으로 덮어 놓은 할아버지의 몸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그러니까…… 제발…….’

‘보호자 되시나요? 다른 분은 안 계신가요? 장례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양복을 입은 남자가 사무적으로 물었다. 효은은 넋이 나간 상태에서 이도의 번호를 눌렀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소리만 연거푸 흘러나왔다. 누르고 또 눌렀다. 답이 없는 곳을 향해 살려 달라 외쳤다.

결국 정희의 전화를 받고 온 사람은 승재였다. 효은은 녀석을 보자마자 끌어안았다. 난 왜 너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다행이야. 이제 혼자가 아니야. 효은은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죽이야.”

분수대 앞 테이블 위에 뜨끈한 죽 그릇이 놓였다. 곧 효은의 손에 숟가락이 들렸다. 승재의 동작은 단호했다. 고소한 죽 냄새를 맡자 효은은 배고픔이 몰려왔다.

‘이게 사는 거구나. 살아 있는 거구나.’

또 입을 열어 보았지만 말은 뱉어지지 못했다.

‘답답해 죽을 것 같아.’

효은이 표정에 뜻을 담아 녀석을 올려다봤다.

“잠깐 그럴 수 있대.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할머니 보낼 때 엄마도 그랬어. 다 그런 거야. 이렇게 보내 드리면 되는 거야. 자책할 필요 없어.”

효은이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죽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쌀을 갈아 만들어 걸릴 것이 없는 죽이 목을 타고 내려가지 못했다. 효은은 그대로 토하듯 죽 봉투에 대고 모든 걸 뱉어 냈다.

“……괜찮아.”

승재는 가만히 효은의 등을 두드려 줄 뿐이었다.

분명 죽을 삼킨 적이 없는데 자꾸만 신물이 올라왔다. 효은은 화장실의 마지막 칸에서 변기를 붙잡고 앉아 속을 비워 내고 있었다. 나오는 건 없었다. 반복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대신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방법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았다. 그녀는 변기 뚜껑을 닫고 탈진하듯 그 위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온몸의 피가 모조리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이대로 잠들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금 이도는 어디쯤이야?”

“입국 명단에 들어가 있는 건 확인했어요. 오고 있는 중일 겁니다.”

“독일이라고?”

“……네.”

“누구를 만나러 간 거야?”

날카로운 물음에 대답은 조금 늦게 흘러나왔다.

“……새언니…… 생부라고 합니다.”

“쥐새끼 같은 놈. 주식 때문이겠지. 우리한테 나쁠 건 없어. 자세한 건 더 알아봐. 시간이 없다는 거 알지? 정신 차려. 알겠어?”

다그치던 여자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세면대의 물소리가 들렸다. 효은은 눈을 감고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려지지가 않았다. 언제나 꿈속에서 엄마를 잃고 우는 그녀를 안아 주던 단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그녀의 얼굴을 애틋하게 쓰다듬던 한 남자뿐이었다. 그녀를 등지고 앉아 한참 만에 ‘사랑해’란 글씨를 써 내려가던 사람. 호텔방을 나서려다 다시 돌아와 아쉬운 듯 그녀의 입가에 입술을 맞추던 사람. 지금 그녀의 전부를 채우고 있는 사람. 그는 그녀의 곁에 없었다.

세면대의 물소리가 끊기자 효은은 눈을 떴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쳤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 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제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듣는 건 아주 지치는 일이었다. 어찌 이리도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만들고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 것일까. 단 한 명이라도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미워했다면 그 사람을 붙잡고 앉아 이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떨쳐 내 버릴 수 있었을 텐데. 할아버지는 그것마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왜 남편은 안 보여?”

“일 때문에 늦나? 재벌이라잖아.”

“아무리 재벌이라도 옆자리를 지켜 줘야 하는 거 아니야? 효은이한테는 할아버지뿐이었는데. 혹시…… 벌써 끝난 사이 아니야?”

“야, 들어. 조용히 해.”

“그렇잖아. 급하게 결혼한다고 한 것도 그렇고. 남자를 제대로 사귀어 본 적도 없는 애가 갑자기 결혼한다고 해서 뭔가 있겠다 싶더니. 이런 거면 재벌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지금도 봐. 효은이 옆자리 지키는 건 한승재잖아. 난 저 둘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들 혜린이 결혼식 간다고 하지 않았어?”

승재가 친구들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끊어 냈다.

“어어. 참, 날도 이렇게 잡은 건지……. 암튼 장례식장 왔다가 결혼식장 가려니까 기분이 좀 그렇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와 줘서 고맙다. 효은이는 쉬는 중이라 못 깨우겠어.”

“그래, 그래. 네가 잘 위로해 줘. 그럼, 우린 간다.”

빈소 뒤쪽에 마련된 골방에 있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가 확성기라도 갖다 댄 것처럼 크게 들렸다. 누가 찾아오기라도 하면 소리를 듣고 곧바로 뛰쳐나가도록 만든 것이라 추측할 정도였다.

효은은 눈만 뜬 채 누워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조리 들었다. 그녀가 깨닫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 가슴속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조금씩 걷혀 갔다. 사는 게 다 그렇지. 승재의 말을 떠올리며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아 보았다. 제발 잠이 들길 빌었다.

* * *

재영이 몰고 온 차를 확인하고 이도는 곧장 몸을 실었다. 빈소가 마련된 강원도로 향하기 위해선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급하게 직항 표를 구했지만 비행시간까지는 한참이 남아 있었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최대한 빠르게 경유할 수 있는 코스로 몸을 움직였다. 여러 대의 비행기를 옮겨 다니며 재영을 통해 효은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전화는 받지 않았다. 그가 받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받는다고 한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네 옆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 줄 수 없는데. 왜, 무슨 일 때문에, 내 곁에 있어 주지 못했냐고 물으면 대답이나 할 수 있을까.

이도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슴이 불에 지져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상무님.”

재영이 룸미러로 이도를 바라봤다.

“회장님……이십니다.”

신호가 걸리고, 뒷좌석으로 핸드폰이 건네졌다. 그의 것은 먹통이었으니 이리로 걸었겠지. 일부러 받지 않았다. 효은의 전화가 아니면 모두 끊어 냈다. 노인은 무엇을, 이제 와서, 더 잔인하게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이도는 붙잡은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 어디냐?

“…….”

― 이도야…….

“…….”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 누구와 어떤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효은이 보고 싶었다. 그를 갈기갈기 찢어 상처 낸다고 해도 얼굴을 마주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그랗고 연한 두 눈동자가 그를 바라봐 주길. 이도는 빌고 또 빌듯 두 손을 그러모았다.

“울지도 않고……, 말을 못 하고 있어요.”

당연한 것처럼 상주의 자리에 서 있던 승재가 효은의 상태를 전했다. 이도는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을 눈빛으로 물었다. 조용히 닫혀 있는 골방 안에 효은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 그곳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붙잡았다.

이제 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뻔뻔하게 그녀의 옆을 지킬 것이다. 그녀가 모두 알게 된다고 한들, 그는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껍데기라도 붙잡아 옆에 두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사람을 붙잡는 방법은 그가 직접 겪어 봤으니 어렵지 않았다.

이도가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간 빛이 한 여자의 인영만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들었다. 문을 닫지 않고 이도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효은은 무릎을 세운 채 앉아 있었다. 벽을 향해 고정되어 있던 고개가 이도 쪽으로 움직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도는 입이 열리지 않았다. 텅 빈 눈동자가 그에게 닿았다. 곧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도는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나…… 너무, 무서웠어요.”

드디어 효은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