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123화 (123/123)

<-- 123 회 -->

황제의 결혼을 축하하느라 떠들썩한 귀족 무리들 사이에 있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로리는 그 자리를 빠져나온 뒤 황궁 가장 자리의 숲을 걷고 있었다. 고요한 곳에 오니까 마음이 차분해졌다. 오늘 이 결혼식에 온 것은, 단지 티에리아의 결혼을 축하하는 목적만은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게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다.

티에리아, 즉 세드릭은 핀라이트의 아들이었고, 그러므로 오늘 같은 경사스러운 날엔 혹시나 핀라이트의 영혼 혹은 에테세르가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것이었다.

‘어디선가 보고 있기를.’

그 남자의 영혼이나마 눈에 담고 싶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남자가 이 튼튼해진 두 다리를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로리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다가 가볍게 뛰기도 하고 황궁 저 멀리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다보니 어느새 나무 미로의 숲 입구에 다다르게 되었다.

‘슬슬 집에나 가볼까.’

그 무렵이었다. 한 소녀가 나타났다. 얼굴이 아름답지만 얼굴보다 입고 있는 드레스가 더 아름다운 소녀였다. 그런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이제 보니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이 레이디 로리, 즉 로리 자신이 운영했던 드레스 회사의 옷 아닌가. 게다가 그 얼굴은…… 대륙 최강의 생물체라 알려진 드래곤의 인간체 모습이었다.

로리는 드래곤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드래곤 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드래곤은 시침을 떼는 것이었다.

“어머, 여기 드래곤이 어디 있지요? 레이디께서는 농담도, 호호호!”

연기력도 엉망, 말투도 엉망인 드래곤을 보고 로리는 그만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그녀는 조금 더 드래곤에게 다가가 심문을 하듯 말했다.

“드래곤 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다니요?”

“어머머, 제가 드래곤이 맞으면 제 손에 잼을 지지겠어요.”

“드래곤이 맞으시니까 손에 잼도 지지실 수 있는 거겠지요! 어차피 드래곤 님께서는 잼을 지져도 어마어마한 마력 때문에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실 거 아니에요?”

“어쨌든 나는 드래곤이 아니에요!”

“내기하죠! ‘드래곤 님이 맞으시다’에 한 표!”

“내기 좋죠! 내가 ‘드래곤이 아니다’에 두 표를 던지겠어요!”

로리는 눈빛을 빛냈다.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갑자기 로리가 드래곤과 얼굴을 가까이 맞대며 내기의 조건을 제시했다.

“제가 이기면 손에 잼을 지지지 마시고 다른 걸 해주시겠습니까?”

“어차피 나는 드래곤이 아니니 들어주지 못하겠지만, 일단 말이나 해보세요.”

로리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멍청한 드래곤이라니. 자신은 젤레테스 대공의 차녀로 엄연히 귀족이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드래곤으로 추측되는 소녀는 황궁 시녀보다 못한 신분으로 보인다. 아름답지만 귀족의 품위는 느껴지지 않는 조금 가벼운 드레스 차림이 그 증거였다. 그런데도 소녀는 자신을 가끔씩 ‘나’라고 지칭했다. 그거야말로 이 소녀가 드래곤이라는 정확한 증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로리는 이상했다.

‘무언가 이상해. 일부러 어설프게 날 속이는 느낌이란 말이지.’

로리가 드래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자, 드래곤은 계속 채근했다.

“얼른 이 내기에서 이기면 하고 싶은 걸 말해보라니까요?”

“딱 봐요. 딱 걸렸어! 당신께선 드래곤이 맞아요! 나보다 낮은 신분인 주제에 내게 ‘말해보라’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없지요! 그런데 당신께선 방금 제게 ‘말해보라’고 하셨지요?”

드래곤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둔한 감탄사까지 뱉었다.

“아차차! 내가 이런 실수를!”

로리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드래곤의 연기력은 개도 웃을 정도로 하찮은 수준이었다.

“거봐요. 드래곤 님. 도대체 제게 왜 이런 유치한 장난을 치시는 건지요?”

드래곤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야 레이디 로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아니겠소?”

“제 소원을 왜 드래곤 님께서 들어주시는 건가요? 제가 드래곤 님께 무슨 예쁜 짓을 한 거라도 있는지?”

“아무렴! 있고말고.”

“그것이 뭔지요?”

드래곤은 갑자기 자신이 입은 레이디 로리의 드레스를 촥 펼쳐서 로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노래하듯 말했다.

“그대는 한때 내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매해 책임지고 공물로 올린 데 가장 열성인 사람 아니었던가!”

말이야 맞았다. 로리는 레이디 로리의 대표로서 드래곤이 입을 드레스를 책임지고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

“지금 뒤늦은 보답을 베풀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요즘 들어오는 공물 드레스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책임자인 아이린 시빌슨이 결혼 준비와 체중 감량에 영혼을 팔아 드레스를 걸레보다 못한 수준으로 만들지 뭔가! 나는 자네 회사의 드레스를 원해…….”

드래곤은 푸념했다. 로리는 드래곤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새 집에서 놀다보니 살만 찌고 늙어가는 노처녀 백수였는데 잘 됐군요. 제가 다시 드레스를 책임지고 공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고맙네! 그대는 화끈해서 좋아! 얼른 소원을 말해보게!”

로리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망설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소원은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이뤄줄 수 없는 것이었다.

핀라이트, 그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로리는 그 소원 대신 다른 소원을 말했다.

“듣자하니 드래곤 님께서는 최근에 티에리아 황제에게 남성용 드레스 공물도 어마어마하게 요구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공물 양이라도 좀 줄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로리는 결혼하는 티에리아에게 특별한 선물을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공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티에리아의 수고라도 덜어줄 요량으로 그렇게 부탁했다. 드래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만은 안 된다네. 내 비록 인간 암컷 행세를 즐기지만 인간 수컷 옷이 끌릴 때도 많아서 말이지. 게다가 티에리아가 직접 고른 남성용 슈트들은 하나 같이 멋들어져서 말이지. 다른 소원은 없는 겐가?”

다른 소원이 생각나지 않는 로리는 픽 웃었다.

“정말이지 드래곤 님께서는 옷에 미쳐도 너무 미치셨습니다.”

“나도 안다네. 다른 소원은 정말 없는 겐가?”

로리는 슬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져서 드래곤을 떼 낼 궁리를 했다.

“소원 같은 건 없습니다. 제가 아쉬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로가드리아 저 여자는 스스로를 노처녀라 하지만 아직도 젊긴 젊다. 그리고 아름답다. 신분도 높고, 부유하며, 절름발이라는 콤플렉스에서도 벗어났다. 그래서인지 최근엔 구혼자도 늘어났다. 게다가 성격도 예전처럼 이상하지 않았다. 겉만 보자면 그녀는 사르제스 아니, 대륙에서 황후와 견줄 만큼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여자였다.

“그래. 자네가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다는 건 잘 알겠네. 하지만 난 그럴수록 그런 자의 부족함이 뭔지 캐묻고 싶어지지…….”

로리는 오늘따라 드래곤이 무진장 질척인다 생각했다. 무성의한 말이 나왔다.

“정 그렇게 제 소원을 들어주고 싶으시다면 핀라이트 그 남자나 살려주시든가요.”

“가능하군.”

“……예?”

“가능해.”

로리는 넋 놓은 표정이 되었다. 세상에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게 가능하다니?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의심을 하는 중에도 그녀는 실낱같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지상 최고의 마력 생물체니 죽은 사람 살리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야.’

기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래곤이 소녀의 모습에서 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가 변한 인간 남성체는 레이디 로리에서 일을 하던 당시 핀라이트의 모습 즉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미청년의 모습이었다.

로리는 울상을 했다.

“지금 저랑 장난하시는 겁니까?”

드래곤은 로리의 속도 모른 체 하며 제 몸을 빙글빙글 돌려 으스대었다.

“어떤가? 이 정도 실력이라면 핀라이트와 똑같이 생기지 않았는가?”

로리는 이를 갈았다. 못된 놈의 드래곤! 살아있을 적 그 남자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은 모습의 남자로 변해 사람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그 현실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눈이 그렁그렁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더 이상 드래곤과 상대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뒤돌아섰다. 드래곤도 그녀를 더 잡지는 않았다.

그녀는 울면서 어디론가 걸었다. 드레스 자락 밖으로 구두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튼튼한 발, 절지 않는 다리가 참 예쁘다. 더 이상 절름발이가 아니지만, 갑자기 이 다리가 무의미한 것 같아 싫었다.

이 다리를 봐주고 기뻐해줄 그 남자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작은 연못가에 다다랐다. 연못을 지나가는데 표면이 누군가의 모습이 비쳤다. 그 남자의 모습이었다. 아니,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로리는 뾰로통하게 외쳤다.

“드래곤 님! 저는 장난할 기분이 아니에요!”

로리는 드래곤에게 욕지기라도 뱉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몇 개월 전, 다리가 낫던 그 밤 거울이나 연못 표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도 결국은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제발 저한테 못된 장난 좀 치지 말아달라고요, 흑흑!”

하지만 드래곤은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의 발걸음이 닿는 연못가에 계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그녀가 결례를 무릅쓰고 드래곤에게 다가가 그 가슴을 마구 때렸다.

“장난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무리 당신께서 드래곤이라 해도 이런 건 정말, 정말 참을 수가 없어!”

한참 웃으며 그녀의 주먹질을 버티고 있던 드래곤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 그녀와 눈 맞추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드래곤이 아니에요.”

“웃기지……!”

“난 핀라이트랍니다.”

“하아……?”

“드래곤이 나의 영혼을 이 새로운 육체에 담아 주었다고요.”

그게 무슨 말인가. 드래곤이 핀라이트와 똑같은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 그 껍데기에다가 핀라이트의 영혼을 담아주었다고? 로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말도 안 돼.”

드래곤은 갑자기 그녀로부터 점점 거리를 넓히며 놀리듯 말했다.

“정말 말이 안 될까요?”

그는 아예 로리에게서 뒤돌아서서 저 멀리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 로리가 있었던 나무 미로로 다시 가는 것이었다.

‘미친 드래곤 같으니! 그 남자라면 당신 같은 이상한 말투 쓰지 않는다고! 어설픈 연기 집어치워! 악질 같으니!’

드래곤이 장난을 치는 건지, 아니면 정말 핀라이트가 맞는지. 로리는 반신반의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드래곤을 뒤쫓고 있었다.

“드래곤 아니, 핀…… 드래곤, 핀, 핀…… 핀!”

그녀의 혼란이 깊어질수록 나무 미로도 점점 깊어졌다. 어느 순간 로리의 시야에서 남자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로리는 거친 숨을 내쉬며 어느덧 나무 미로의 한 가운데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나무 미로의 한 가운데 높은 단상이 있었다. 로리는 고개를 들어 단상 위를 보았다. 계단으로 올라가야만 단상 위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보일 것 같았다.

짝, 짝, 짝.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로리는 고개를 돌렸다. 핀라이트의 모습을 한 드래곤이 있었다. 드래곤은 한참 박수를 치면서 단상 위를 향해 턱짓을 했다.

“아주 잘 따라왔군. 저기로 가봐.”

로리는 다시 드래곤에게 다가가려했다. 하지만 드래곤의 모습은 다시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자신이 핀라이트라 말하던 것도 모두 거짓말이 아닌가? 로리는 자꾸만 드래곤에게 놀림당하는 것 같아 몹시도 불쾌했다.

“안 가겠습니다.”

“가보라니까.”

“이번에도…… 이번에도 내게 장난을 치면 당신이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가만 두지 않겠어!”

“그래, 그래.”

로리는 드래곤을 노려보다가 단상 위를 향하기 시작했다. 계단에 한 걸음 내딛었다. 처음은 천천히 걷다가 나중에는 단상 위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져서 뛰다시피 하게 되었다.

헉, 헉, 거친 숨을 내쉬다보니 드디어 단상 위에 올랐다. 어른 서너 명이 누울 수 있는 좁은 곳, 그곳에는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 어, 어떻게!”

검은 머리카락이 길어 허리까지 내려오는 남자였다. 감은 두 눈 중 한쪽에는 흉흉한 칼자국이 있었다. 로리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진짜 핀라이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드래곤의 장난이라면?

로리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드래곤이 허공에 붕 떠올라 로리에게 말해주었다.

“심장을 만져보게.”

로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실망하고 말았다. 핀라이트의 심장은 미동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냥 잘 보관된 시체에 불과하지 않은가. 로리는 드래곤을 노려보며 물었다.

“왜 심장을 만지라고 하시는지요?”

“뛰게 만들고 싶은가?”

“대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지요. 하지만…… 설사 심장이 다시 뛴다 해도 드래곤의 장난이라면 저는 다시 내려가겠습니다.”

“장난이 아닐세.”

로리는 허공 위에 떠있는 드래곤에게 재차 물었다.

“정말 장난이 아닙니까?”

“아닐세.”

“그럼 말씀해주십시오. 이 남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드래곤은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핀라이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로리는 미심쩍어하며 핀의 심장을 만졌다. 하지만 여전히 뛰지 않았다. 드래곤이 피식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려면, 내가 한 짓을 똑같이 하면 된단다.”

즉, 입맞춤 하란 뜻이었다.

드래곤은 다시 허공으로 떠오르며 로리에게 예법을 갖춰 우아하게 인사했다. 그간 공물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예쁜 드레스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드래곤은 완전히 사라지려다가, 무언가 잊은 것이 있어 덧붙여 말해주었다.

“아, 참. 그 옆에 드레스 보이는가?”

로리는 드래곤이 가리킨 드레스를 보았다. 누워있는 핀라이트의 옆에 구겨져있는 드레스인데, 유행이 한참 지난 촌스러운 분홍색 드레스였다. 드래곤이 그 드레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핀라이트의 영혼이 직접 고른 드레스일세. 그가 깨어나면 입히고 밖으로 나가면 된다네.”

드래곤은 그 말을 남기고 완전히 사라졌다. 로리는 그 드레스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핀라이트의 영혼이 직접 고른 드레스라고? 왜 남자 옷이 아니고 여자 옷인가. 게다가 이 촌스러운 디자인에 색깔은? 로리는 문득 핀이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떠올렸다. 그러자 이 촌스러운 드레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오로지 이 남자의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이 중요하다. 이 남자가 제대로 깨어나서 이 촌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단상 아래로 내려가, 자신과 함께 영원히 행복해지는 것,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였다.

로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핀라이트는 많이 어려 보였다. 곧 서른을 향해가는 로리 자신보다도 더 어려 보였다. 만약 핀이 깨어나면 이런 늙어가는 연인의 모습에 실망스럽지는 않을까? 로리는 잠시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드레스 차림이 뭔가 이상하진 않은지 고쳤다. 그것도 모자라 드레스 속에 감춰진 주머니에서 작은 화장품을 꺼내 입술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후, 후우…… 떨리는군.”

모든 준비가 끝난 그녀는 핀라이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이젠, 이 남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차례다. 그를 뭐라고 부를까. 가명인 라이트릭 에센? 아니면 핀라이트? 아니면…….

“정말 오랜만이야, 폐하.”

로리는 수줍게 말하며 고개를 서서히 내렸다. 그들의 입술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세상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들어왔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눈을 뜬 로리는 그의 눈을 보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그 남자의 눈은 웃느라 예쁘게 휘어져있었다. 로리는 그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자, 일어나. 이제 나가야지.”

============================ 작품 후기 ============================

완결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