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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121화 (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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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즉, 티에리아는 히에라지엘의 마법실험으로 인해 소생할 수 있었다……, 제국민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원래부터 살아있었던 소년은 그 핑계로 히엘의 퇴위 후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사르제스 9대 황제의 신분으로 백부를 맞이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티에리아 네 말은, 젤레테스 대표가 그만두고 나서 공물들이 제대로 안 들어온다고?”

“예. 드래곤께서 요즘 입을 드레스가 없다고 여간 성화가 아니십니다.”

티에리아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히엘을 보았다.

‘황위만 물려주면 될 것을, 드래곤과 관련된 모든 귀찮은 일도 조카에게 그대로 맡기시다니요! 정말 너무하십니다!’

티에리아는 그 말을 꾹 삼켰다. 백부가 왜 제위를 넘겼는지 진즉 알아챘어야했다. 매 시즌 마다 드래곤에게 바쳐야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신상 드레스, 구두는 골치 덩어리였다.

“황제가 되어서 그런 것 하나 처리 못하고, 쯧.”

히엘은 또 히엘 대로 조카를 한심하단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유인 즉, 티에리아가 제 아비 핀라이트와 똑같은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물들이 제대로 안 들어오기로서니, 디자이너를 감금시키면서 제작을 해?”

티에리아는 드래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 디자이너를 감금시켜 무한 제작을 하게 했던 것이다.

“저라고 별 수가 있었겠어요? 드래곤이 그 브랜드 옷만 고집하고 그 브랜드 신상품만 달라고 난리를 치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공물을 넘기는 방법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백부님!”

히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곱게 디자인만 시키면 될 일이지, 왜 가둬놓고 잊어버린 건데? 하나같이 네 아비랑 똑같은 짓만 하는구나.”

“그야 태황태후마마께서 저를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간택전에 나가보라 하시니까, 저도 정신이 없고 해서…….”

후사는커녕 미혼인 세드릭은 제 할머니의 성화로 황후를 선택하느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납치감금 시켜두었던 디자이너의 존재를 새카맣게 잊고 말았고, 디자이너는 궁의 온갖 기름지고 맛난 음식을 먹고 옷을 만들기에만 열중한 결과 거구의 비만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티에리아는 지금, 그 거구의 디자이너를 빠른 시간 내에 날씬하게 만들어달라고 마법사인 백부에게 청하고 있었다.

“후, 조카야. 난 마법사지, 살 빼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빼주실 거라 믿어요.”

“밥을 굶겨.”

“그럼 디자인을 안 한단 말이에요!”

“빵 적게 먹이고 기초 대사량 높이고 하루 두 시간씩 걷게 해.”

“정말 이러실 거예요?”

“너야말로 이럴 거냐? 고작 이런 걸로 나의 평화로운 시간을 깨고 귀찮게 해?”

그들이 다투는 와중에도 거구의 디자이너 아이린 시빌슨은 튀긴 고기요리를 먹고 있었다. 그것도 바삭하고 기름진 껍질 부분만 날름 먹고 나머지 퍽퍽한 살코기는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켰다. 아이린은 황제와 황제의 먼 친척으로 보이는 갈색머리 남자(히엘)가 무슨 말을 하건 관심이 없었다. 피곤한 디자이너 생활보다 호화로운 궁 생활이 제법 몸에 맞았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아, 후식 없나? 진한 치즈 케이크가 먹고 싶은데…….”

아이린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은 두 남자는 기겁했다. 특히나 히엘은 하리가 임신을 했을 때도 저 정도로 먹어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터라 더욱 놀랐다.

“아무튼 티에리아, 너 알아서 해라. 나는 이만 가서 이삿짐이나…….”

“아, 진짜, 이러실 겁니까? 그냥은 못 가세요!”

티에리아는 순간이동을 하려는 히엘을 두 팔로 제압했다. 히엘은 조카가 이토록 날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아, 이제 알겠어. 우리 귀여운 ‘세드릭’. 이제 보니 간택전이 지겨워서 이런 데다 시간을 뭉개려하는 거구나, 그치?”

“그런 게 아니라고요!”

두 사람의 실랑이는 또 시작되었고, 아이린은 고기 튀김 껍질을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방금 저 예쁜 남자가 황제보고 뭔가 익숙한 이름을 부른 것 같은데? 세드릭? 세드릭이라…… 세드릭, 세드릭, 세드릭, 세드릭 에센? 그 전학 온 처음에는 과묵하고 공부 잘 하고 단정하다가 어느 날부터 반항아 행세를 하며 날 꼬시더니 내 첫 키스를 빼앗아버리고 어디론가 날름 튀어버린 그 자식?’

아이린은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황제의 얼굴을 한참동안 살폈다. 마력 성장을 여러 차례 한 황제의 얼굴은, 정말로 옛날 그 소년 세드릭과 많이 닮아있었다.

“원소 뭐 그런 관련 마법으로 저 여자 몸에서 지방질만 빼주시면 되잖아요, 저 진짜 급하거든요.”

“그러니까 디자이너 살찐 거랑 공물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냔 말이야?”

“아, 그야……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니 그렇죠. 디자이너가 건강해야 공물을 오랫동안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그런 이유야?”

히엘은 아이린을 바라보는 조카의 눈빛을 읽으며 의뭉스럽게 물어보았다.

“정말 그 이유냐고. 어쩌면 너, 저 여자가 좋아서…….”

“백부님!”

티에리아는 히엘을 저 구석으로 데려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러지 마시죠!”

“그럼 얼른 진실을 낱낱이 말해. 궁금해 죽겠어.”

“그래요! 좋아해요! 처음에는 공물 때문에 대충 납치를 해서 얼굴도 안보고 잊고 있었는데, 살만 뒤룩뒤룩 찌고 디자인은 안 한다고 보고가 들어오지 뭡니까? 그래서 확인해보니, 맙소사! 아이린 시빌슨! 학창 시절 잠시 사귀었던 그 소녀인 거예요!”

“크큭, 크하하!”

히엘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서? 얼른 이야기해줘, 재미있어 죽겠다.”

“지금은 살이 쪄서 이렇지만, 빼고 나면 꽤나 괜찮을 겁니다. 태황태후께서 추천하시는 다른 어떤 귀족 여인들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있어요. 그래서 황후로 삼고 싶은데…… 저 꼴로는 할마마마께 보이기 좀 곤란하지 않습니까.”

듣다 못한 히엘이 티에리아의 어깨를 콱 잡았다.

“어이, 이봐. 미쳤어? 무슨 도끼야?”

“도끼라뇨?”

“네가 찍으면 여자들이 다 넘어올 거란 생각을 하는 거야? 황제면 여자들이 다 오냐오냐 해줄 것 같아? 물론 황제니 대놓고 재수 없다 소린 않겠지…….”

쉽게 제위에 앉더니 세상만사를 쉽게 생각하는 건가. 히엘은 조카를 못마땅해 하며 자신이 겪은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정 이 여잘 후리고 싶으면 공을 들여라. 직접 살을 빼주면서 정 붙여. 어디 날로 먹으려고.”

그리고 더 듣지도 않고 순간이동으로 세리스로 갔다.

남겨진 티에리아는 아이린을 보았다. 아이린은 황제를 소 닭 보듯 무심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세드릭이 왜 황제가 되었지?’

‘젠장, 살만 빼면 엄청 예쁜 여잔데!’

***

몇 년 전이었다. 드래곤은 라브가 핀라이트의 피습사실을 전하기도 전에 그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히엘의 부탁으로 핀라이트의 안전을 지켰던 자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무엇이든 가능했던 절대자로서, 얼마든지 핀의 목숨을 살려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두 눈에 라브의 모습이 생생히 보였기 때문이다.

라브는 제 고향을 망쳐버린 원수인 그 남자를 안고서 울부짖었었다. 연인인 드래곤을 새카맣게 잊은 듯 처절히 울었었다. 마땅히 증오하고 저주를 해야 할 남자를 사랑해마지 않는 사람처럼 부둥켜안고 울부짖던 라브의 모습은 드래곤의 심기를 어지럽혔었다.

그때 라브는 목숨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핀라이트에게 외쳤었다.

‘안 돼! 안 돼애애!’

그때 그의 눈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싫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몸서리치며 온 몸으로 비통함을 흘리진 못할 것이다. 당시 라브는 온 얼굴, 온 표정으로 드래곤에게 외치고 있었다. 이대로 그가 죽어선 안 된다고, 뭐하느냐고,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이 남자를 살리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느냐고, 드래곤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 모습 자체는, 인간이 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흉기였다. 적어도 라브를 연인으로 삼았던 드래곤에겐 그랬다.

‘감히 한낱 인간 주제에 내게…….’

라브의 모든 행동은 드래곤과 라브의 관계를 일그러트려버렸고, 핀의 죽음을 더욱 굳건히 만들어버렸다.

[피곤하게 살아왔던 인간이니, 휴식을 줘도 될 거야.]

드래곤은 라브에게 그런 ‘위로’를 하며 핀라이트를 절대 소생시키지 않고 자리를 떠났었다.

라브에겐, 절대 위로가 될 수 없는 말이었다.

***

로리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차가운 손이 머리를 쓸어 올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이 생생히 보였다. 핀라이트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금발의 푸른 눈이 아닌 자신의 원래 모습,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놀란 로리는 몸을 반쯤 일으켜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다시 여길 온 거야?”

“보고 싶어서요.”

“우린 끝났다고 했잖아.”

“끝내지 않을 겁니다.”

“뭐?”

“당신이 아무리 끝낸다 해도, 난 당신을 놔주지 않을 거야.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당신이 웃을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거라고. 그러니…….”

“…….”

“날 버리지 마.”

그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머리에서 내려와 턱을 만지고 입술에 머물렀다. 하지만 끝내 키스는 하지 않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부둥켜안을 것처럼 애절한 눈을 하고 있지만, 그녀를 안지 않았다.

안지 못했다.

“나를 절대 잊어선 안 돼, 그 마음에서 날 놔버리면 절대로…… 안 돼.”

로리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잊어선 안 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잊지 않게 곁에 있어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기도 전에 사라졌다.

***

“으흑흑… 흑…….”

잠에서 깨어난 로리는 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다. 반 년만이었다. 이번엔 꽤 오랜만에 꾼 꿈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남자가 나오는 꿈은 절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녀가 말했었다. ‘그 분께서 잠든 아가씨 얼굴을 보시고 그냥 귀가를 하셨다’고. 그랬던 남자는 그날 이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지 못했다.

한동안 방황해야 했다. 방황에 지쳐 일에 미친 듯 빠져보기도 했다. 첫사랑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말에 의지해 무덤덤해져보려고도 노력했다. 그렇게 그 남자를 지우려 애를 썼다. 그러지 않고서는 너무 힘들어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가끔씩 그 남자가 꿈에 나와서 잊지 말아달라고 괴롭히는 것 외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 나날들이었다. 어느 귀족가의 아들과 혼담이 오갔고, 새로운 삶을 위해 레이디 로리의 일도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상대의 절름발이에 대한 험담을 엿들었고, 약혼은 파토가 나버렸다.

그렇게 틀어박혀 지낸지 한 달 째, 그 남자가 또 꿈에 나온 것이었다.

“핀라이트 이 못된……흐흑.”

“아가씨, 왜 우세요?”

하녀가 걱정스럽게 묻자, 로리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예의 쌀쌀한 목소리를 냈다.

“왜 이렇게 실내가 건조한 거야! 마실 물이나 가져와!”

하녀는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그녀가 침울해하며 평소 같지 않게 목소리를 낮출 때는 하녀도 같이 우울해 했었고, 지금처럼 원래 성격을 드러낼 때는 하녀도 좋았다. 그녀가 레이디 로리에서 일을 할 때의 그 활기차고 어딘가 못 돼먹은 성격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대공 부부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가씨, 물 여기 있어요. 날이 밝으면 대광장에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러고 보니 머리 물을 들이는 것도 괜찮겠어요. 요즘 수도는 붉은 머리가 유행한다더군요. 아니면 궁에 가보시는 건 어떠실지…….”

궁이란 말에 로리는 잠시 생각을 했다.

‘요즘 세드릭 그 녀석이 간택전에 바쁘다는데 구경이나 하러 황궁에나 가볼까, 얼마나 예쁜 여자를 고르려나?…… 아무튼 이렇게 처박혀 있진 말아야겠어.’

그녀는 하녀에게 지시했다.

“저번 봄에 입었던 그 드레스 좀 가져와 봐.”

“예! 아가씨!”

하녀가 나가자 로리는 절뚝거리며 거울 앞에 섰다. 낯빛은 조금 어둡긴 해도 여전히 도도한 표정에 아름다움도 최고로 물이 올라있었다.

‘이 예쁜 얼굴을 왜 못 보고 가냐고.’

그 남자를 원망하며 머리를 매만지다가 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흑흑…… 망할, 왜 또 나온 거야, 왜 또 꿈에 나와서 날 괴롭히는 거냐고…… 으흑흑…….”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 남자가 원망스러웠다. 다른 여자들처럼 살고 싶은데, 이젠 실패한 듯했다. 그렇게 자신의 첫사랑을 저주했다. 따지고 보면 당시 자신이 핀에게 그런 무리한 부탁만 하지 않았어도,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괜히 다투었고, 괜히 밤길을 걷게 했기에, 그런 비극이 일어나버린 건지도 몰랐다.

그 생각이 그녀를 가장 괴롭게 만들었다.

진주핀이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평소 같으면 하녀들이 알아서 정리할 때 까지 내버려 두었지만, 오늘은 직접 무릎을 굽혀 주웠다. 동시에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어두운 거울 속에서,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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