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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118화 (11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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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거리는 벌레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을 것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핀은 실연의 아픔에 허우적거리는 지금, 거리의 이런 무거운 분위기가 싫었다. 누군가가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라도 불러줬으면 했다. 그는 한참을 걸어 다른 거리로 갔다. 적당히 술을 마실 곳을 찾다가, 문을 연 가게가 없자 상점가에서 술을 몇 병을 샀다.

그런데 어느 골목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엔 추레한 몰골을 한 사내 셋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젠장,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건 다 그 놈 때문이라고. 그렇지 않아? 전쟁만 아니었다면 영지를 물려받고 귀족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데, 이게 다 그 놈 때문이야…… 그 죽일 놈의 핀라이트 때문이라고.”

“그래, 그래. 리샤프, 지금은 진정하고. 우리 언젠간 녀석의 무덤을 찾아 파헤쳐 오줌을 싸버리자고.”

“오줌 가지고 되겠어? 나는 녀석의 가슴뼈에 쇠말뚝을 박아 저주를 할 거야. 그렇게 하면 영혼이 소멸된다지, 아마? 녀석은 다시는 태어나지 못할 테지, 후후. 하찮음 짐승으로도 못 태어나게 하고 싶어.”

“어이, 자네들. 뭔가 잘못 알고 있나 본데 핀라이트는 죽지 않았어. 정말 모르는 거야? 그놈은 죽은 게 아니라고…… 그렇게 갑자기 죽을 리가 없잖아. 제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거야. 듣기로는 어느 시골에서 평범한 사람처럼 잘 살아가고 있다던데?”

“큭큭, 크하하! 우리 당장 그 시골로 가보자고! 당장 가서 녀석의 가죽을 벗기고 생살을 도륙내보자고! 으하하! 생각만 해도 짜릿하군.”

“리샤프, 자네 너무 많이 마셨어.”

포로 출신 인간들이 그들의 밑바닥 인생을 한탄하며 핀라이트를 욕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핀도 세상에 섞여 살아가면서 수십 번, 수백 번이나 자신을 저주하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이제와 상심할 것은 아니나, 오늘은 유달리 아팠다.

그런 과거만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실연의 아픔을 겪을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니 집 앞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였다. 그는 핀을 보고 반갑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핀과 비슷한 큰 키, 떡 벌어진 어깨,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짙은 금발, 옅은 눈동자. 핀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아버지.”

그는 추가 마력성장을 받은 세드릭이었다.

“너……? 설마 히엘이?”

“그레요. 백부님의 도움이죠.”

핀은 아들이 추가 마력성장을 받았단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에 당황스러웠다. 연인과의 일로도 충분히 힘든 핀은 이제 화를 낼 힘조차 없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주방 테이블에 자리했다. 실내는 매우 어두웠다. 자신의 복잡하고 어두운 표정이 드러나길 원치 않는 핀이 어떤 불도 켜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술이 올라왔다. 세드릭은 핀이 잔을 하나만 준비하자 웃으며 부탁했다.

“저도 주세요.”

“그래, 이제 못 마실 나이도 아니구나?”

핀은 아들에게 빈정거리며 잔을 하나 더 주었다. 세드릭은 한 잔을 가볍게 비웠다. 그간 히엘 덕분에 제국 곳곳을 돌아다니고 경험을 해서인지 술을 마시는 게 익숙해보였다. 그는 아버지를 걱정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세요?”

핀은 아들이 너무나 괘씸한 나머지 비웃을 힘도 없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냐고? 상의도 없이 추가 마력성장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질문인가? 본래 세드릭은 황태자 시절부터 두 차례나 마력성장을 받았고, 그때마다 목숨을 걸어야했다.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이 마력성장이었다. 핀은 제국과 황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마력성장을 시켰던 것에 내내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지금 아들의 추가 마력성장으로 그 죄책감은 점차 분노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는 싸늘하게 물었다.

“네 의지니?”

세드릭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제가 이제, 사르제스의 황제가 되어야 하니까요.”

“멍청한 소리!”

핀은 거칠게 외쳤다.

아들과 겨우 평범한 삶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은 다시 궁으로 가서 이 제국을 물려받겠다고 한다……? 핀은 우선 히엘이 미웠다. 그러나 히엘에 대한 분노를 잠시 제쳐 두고 아들을 다그쳤다.

“위험한 일을 너 혼자 결정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세드릭도 할 말이 있었다.

“백부님께서는 원래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돌려주는 것뿐이라 하셨어요!”

“그런 자리를 네가 원한 건 아니었잖아! 단지 요리사가 되고 싶던 것 아니었어? 나는 네가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게 싫다.”

“아니, 원하고 있어요. 바라고 있었던 거예요. 그냥 상황 때문에, 단지 포기하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다시 돌아온 기회니까, 놓치기 싫었어요.”

살짝 취기가 돈 세드릭의 눈빛은 깊고 진지했다. 목소리엔 조금의 떨림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 말에 핀은 눈을 내리깔았다.

“경솔하구나…… 그런 위험한 일을 너는…….”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일은 없어요. 그거 아세요? 제가 황제가 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게 뭔지? 바로 아버지가 이렇게 겁 없이 혼자 사시는 거예요, 있는 대로 죄를 지어놓고……!”

세드릭은 거칠게 날아오는 주먹에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소년’은 아버지를 노려보다가, 아버지가 눈을 피하자 그대로 그곳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죄는 제가 다 없애드리죠, 황제가 되어서…… 반드시!’

***

황제는 황후가 언제라도 최상의 상태에서 기분 좋게 해산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두었다. 하늘에서 소리 없이 아름답게 퍼지는 폭죽, 궁 안을 가득 채우는 은은한 향기, 귓가를 간질이는 감미로운 멜로디, 매 시간마다 나오는 훌륭하고 다양한 간식 등 모든 마법 상태를 꾸준히 유지시켜 두었다. 세간에서 황제가 애처가 짓을 하기 위해 흑마법을 배운 건 아닌가 하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주변을 질식시킬 정도로 반복한다면 안 하니만 못한 것, 하리는 멈추지 않는 멜로디에 질려 급기야 역정을 내고 말았다.

“작작 좀 하란 말이에요! 이렇게 부담을 주니까 아이가 도리어 안 나오는 거라고!”

“가, 갑자기 왜 화를 내…… 무섭잖아, 하리.”

히엘은 임신한 여자가 드래곤보다 무섭다고 생각하며 겁먹은 강아지처럼 움츠러들었다. 황의들이 예견한 날짜보다 사흘이나 지나있어서 예민하긴 할 것이다. 그 흔한 가진통이 온 적도 없으니 아이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될 것이다. 그렇게 아내의 불안을 헤아린 히엘은 따스하게 손을 어루만져주며 사근사근 말했다.

“조명을 더 낮춰줄까?”

“필요 없습니다! 음악이랑 이런 폭죽 다 꺼주십시오! 폐하!”

그녀의 무서운 목소리와 표정에 히엘은 오금이 다 저렸다. 아내가 S(sadist)기질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신경질적인 적은 없었는데……. 시무룩한 그는 실내에 작은 불빛 하나만 켜두고 모든 허상, 허음, 허향의 효과를 제거해주었다.

그제야 언성을 높였던 것이 미안했는지 하리가 히엘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는 계속 불안에 떨고 있었다. 히엘이 그녀를 소파에 앉히며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조급해 하지 마.”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알아. 생각처럼 안 된다는 거. 막상 다가오니 두렵지?”

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훌쩍였다. 히엘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듣자하니 낳을 때 어마어마하게 고통스럽다는데, 두렵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겠지, 남자의 거시기 맞는 것 보다 더 아프다고 하잖아? 그런 것은 모두 내가 달래주어야 할 일이야.’

히엘은 이럴 때일수록 능청스럽게 굴어야한다는 생각에,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농담을 시작했다.

“그럴 땐, 얼마든지 내 머리를 미리 쥐어 뜯어버려도 돼…… 윽!”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히엘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하리의 손에 잡아당겨졌다.

“어머나! 내가 무슨 짓을!”

하리는 제멋대로 구는 손에 매우 당황했다.

“이 손이 왜 주인의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구는 거지! 어머머! 미쳤나봐!”

남편은 남편이기 전에 제국의 황제였다. 아무리 이 남자가 제 입으로 머리를 쥐어 뜯어버려도 된다고 말한다고 냉큼 그러다니? 제정신인가? 하리는 화들짝 놀라 손을 내렸으나, 히엘은 그 손을 다시 잡고 제 머리카락을 쥐게 했다.

“쥐어뜯으라니깐.”

“히엘…….”

“어서.”

“잘못했어요.”

“아냐. 나는 좀 쥐어 뜯겨도 싸.”

쥐어 뜯겨도 싸다니? 하리는 히엘의 말이 빈정거리며 화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히엘, 장난이라니까요…… 살짝 잡은 건데, 아팠어요?”

“아니, 하나도 안 아픈데.”

히엘은 웃으며 상체를 숙여 하리의 볼록한 배 위에 머리를 댔다.

“실컷 때려.”

그때였다. 하리 대신 뱃속의 아이가 히엘의 귀에 발차기를 날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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