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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117화 (1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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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의 해산일이 다가오면서 황궁 하늘에는 황제 부부의 혼인식 때보다도 더 밝은 마법의 폭죽과 갖은 종류의 허상 장식들이 둘러져있었다. 그런 장식에 마력을 소모하는 자는 마활들이 아닌, 황제 본인이었다. 그만큼 그가 해산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크다는 의미였다.

황제 부부는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장식들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히엘은 핀이 로리와 함께 너무 일찍 돌아간 것을 투덜거렸다. 밤이 되면 이러한 색색의 밤하늘을 봐야 하거늘. 이것을 보고 가야 재미있는데 말이지…… 하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하리가 꾸짖듯 말했다.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요. 다음부터 그런 못된 동영상으로 괴롭히는 짓은 하지 말아요. 동생을 그렇게 여자 친구 앞에서 부끄럽게 만들고 싶었어?”

“응.”

“악마야.”

“그래야 그 패악녀가 좀 웃을 것 같았거든.”

“어머나, 천사 나셨군요!…… 제발 아버지가 되었을 땐 그 장난기 좀 어떻게 해보세요! 그런 자세는 황제 폐하의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그럼 황제 폐하 안 하면 안 될까?”

갑작스러운 말에 하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간을 찌푸렸다. 남은 진지하게 주의를 주는데, 또 농담으로 응대를 하다니…….

히엘은 아내의 화난 기색에 움츠린 시늉을 우스꽝스럽게 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아, 그나저나 우리 공주님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네.”

“공주라고 단정내리지 말라고 했죠!”

“어허, 황후. 화를 내는 건 몸에 좋지 않소.”

히엘은 전면에 펼쳐진 야경을 차단한 뒤 라이트 마법을 지웠다. 그리고 뾰로통한 황후를 침대로 데려갔다. 만삭의 황후는 제대로 눕는 것이 점점 어려워져 옆으로 눕는 습관이 있었다. 히엘은 그녀를 옆으로 눕힌 뒤, 등을 안아주었다. 따뜻한 느낌에 하리는 화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문득 여행을 떠난 세드릭 생각이 났다. 그리고 세드릭이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황제의 심중도 궁금했다.

“히엘, 세드릭이 요즘 바쁘더군요.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많은 것을 배우고……, 혹시 요즘 그 아이와 뭔가 계획하는 게 있나요?”

“글쎄?”

“숨기지 말고 다 말해 봐요. 우린 부부잖아요.”

히엘은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속에 있는 생각을 낱낱이 말하기도, 아직까진 조금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에둘러 말했다.

“흐흠. 힌트는 아까 주었는데.”

“네?”

하리는 히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어서 놀아 누워 그의 얼굴을 보려했다. 하지만 히엘은 그녀가 돌아눕지 못하게 더욱 세게 껴안고 그녀의 향기 나는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며 졸린 듯 중얼거렸다.

“내가 계획하는 건 오직 우리 가족의 평온한 미래뿐이야.”

하리의 배를 만지는 히엘의 손은 세상 어느 것보다 뜨거웠다.

***

그 시각 밀궁에서 한 사람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세드릭이었다. 소년은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황제에게 가야했지만 야심한 시각이라 포기했다.

최근 들어서 마활 탑 히든에게 투명마법을 둘러 달라 청하여 남모르게 궁 곳곳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 재미있었다. 마력 성장 후에 궁에서 머무른 적이 짧았기 때문에 이제야 제대로 둘러보는 느낌이었다.

‘백부의 부탁대로 나는 이곳의 주인이 되겠구나.’

부탁이라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임무였다. 아버지가 통일한 대륙을 다스려야 하다니! 원하는 요리사가 되는 길도 아니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소년은 왠지 그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숨겨져 있던 도전 정신이 ‘한번 해보라’고 소년을 움직이고 있었다.

세드릭은 누운 채로 본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폭죽, 장식은 황제 내외가 머무는 본궁 주변에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한때는 제 부모의 장소였던 곳을 보며, 세드릭은 어미를 생각했다.

‘티에리아, 너는 이 제국을 물려받게 될 거야.’

‘누구도 너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지켜줄 테니까.’

그렇게 안심시켜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그 사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원망스럽고, 야속해요. 하지만 결국은 말씀하신 대로 되는 것 같군요……, 어머니. 저는, 과연, 아버지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까요?’

***

로리는 하녀를 부르지 않고 직접 기어가다시피 해서 거울 앞에 다다랐다. 간신히 의자 하나에 몸을 지탱하여 자신의 모습을 본다. 헝클어진 머리에 초췌한 낯빛,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지내온 지 꽤 되었다. 그래서 거울을 안 본지도 오래다.

‘맙소사, 내가 어쩌다…… 이럴 리가 없어.’

자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다. 한숨을 쉬던 그녀는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서랍 아래쪽에 있는 장신구 함을 뒤져 진주알이 촘촘히 박힌 핀을 하나 집어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그것으로 대충 정리한 뒤 하녀를 불렀다.

“엘리! 물과 수건을 준비해 와!”

스스로 다리에 마사지를 가볍게 해볼 참이었다. 언제나 하녀 혹은 핀이 해주는 마사지를 받기만 했다. 앞으로는 직접 할 계획이었다. 하녀는 기뻐하며 재빨리 준비를 하러갔다.

한참 후 하녀가 물과 수건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하녀의 표정이 이상했다. 로리는 물었다.

“뭘 그리 생각하니?”

하녀는 뜸을 들이다 전했다.

“저, 아가씨…… 에센 님이 오셨는데요.”

어제도, 그저께도, 이 시간에 왔다가 로리가 만남을 거부해서 그냥 돌아가야 했던 핀이었다. 하녀는 매번 ‘아가씨께서 거절을 하신다’ 는 말을 전해주기도 민망한 나머지, 로리에게 간절한 표정으로 긍정적 대답을 바랐다.

그러나 로리는 무시하고 다리 마사지에만 집중했다.

“아가씨. 에센 님이 밖에서 기다리십니다만.”

“뭐해? 안 나가고?”

“들어오라고 할 게요?”

“뭐라는 거야? 미쳤어? 잘리고 싶어?”

“아가씨, 저 그게, 에센 님이 말하길 오늘도 거절하신다면…….”

그때 갑자기 문이 끼이익-소리를 내며 열리고 핀이 들어왔다. 평소 대공 부부가 그를 좋게 보고 있었기에 이런 야심한 시각에 로리의 방에 들어오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눈치 있는 하녀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로리는 마사지 때문에 드러나 있는 허벅지가 민망하여 치마를 내렸다.

그런데 핀이 서둘러 그녀에게로 걸어가, 다시 치마를 홱 걷어 올렸다.

로리가 얼굴을 붉히며 낮게 외쳤다.

“뭐하는 짓이야!”

핀은 묵묵히 수건의 물기를 짜서 그녀의 다리를 닦아줄 뿐이었다. 화가 난 로리는 몇 번이고 그의 손길을 내쳤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로리는 거듭 자신들의 관계가 끝이 났다는 뜻을 내비쳐도 포기를 모르는 이 남자가 미웠다. 싫은 것이 아닌 미운 것이었다. 미래에 대한 꿈결 같은 상상의 여지를 눈곱만큼도 허용하지 않은 핀이 원망스러운 것이었다.

“평생…… 닦아드릴 거라 했잖습니까.”

“필요 없다고 했어!”

“평생 당신의 발을 닦아주고, 평생 당신의 허벅지를 주물러줄 거라고 말했잖습니까.”

“난, 난 고작 그런 거로는 부족하다고! 난 너와 결혼하고 싶어! 네 아이도 갖고 싶고, 나도 저기 궁에 있는 그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단 말이야! 그게 내 진짜 마음이라고!”

로리는 잔뜩 날이 서서 본심을 내지르고 말았다. 핀이 원망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 마음을 모를 것 같습니까? 제가, 아니 내가, 내가 정말 그런 걸 모른 척하고 있는 것 같아?”

“…… 뭐?”

“나도 다 알지만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거뿐이란 걸 알아줬으면 했어. 당신도 내가 그런 남자란 걸 알고서도 고백했던 거잖아.”

“……!”

“하나만 물을게. 당신은 그렇다면 내가…… 필요 없어?”

로리는 도망갈 곳을 찾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핀라이트를 그저 평범한 청년으로 알고 있었을 때에나, 그리고 그가 전 황제란 것을 알았을 때에도, 한결같이 그를 좋아해왔다.

죄 많고 상처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 다가갔다.

그랬던 사람이라서, 핀은 자신을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로리의 다리를 다시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목소리가 나왔다.

“말해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서도 당신은…….”

“…….”

“날 좋아해준 거잖아.”

핀은 마치 동의를 구하듯 서서히 손을 올려 그녀의 입술에 가져갔다. 무슨 말이라도 뱉으라고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 하지만 로리는 그의 손을 치워버렸다. 핀이 서글프게 눈을 내리깔았다. 로리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착각 하지 마.”

“……?”

“좋아한 게 아냐.”

“로리?”

“사랑했던 거야. 사랑했으니까, 당신도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런 미래도 그릴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당신은…….”

나는 당신과 아무런 꿈도 꿀 수가 없다. 만족스러운 꿈이 아니라면 꾸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차마 그러한 말을 뱉을 수 없는 로리는 핀에게서 수건을 빼앗아버렸다.

그리고 이별을 선언했다.

“우린 이제 됐어. 그만 가 줘.”

진심으로 뱉는 이별선언은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욕망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 남자가 백기를 들어주길, 이 남자가 제발 제 뜻대로 해주기를.

어릴 적부터 원하는 것은 뭐든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연애 또한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남자를 연인으로 만드는 것부터 어려웠다. 힘들게 도달한 연애였다. 그래서 이젠 행복만이 남은 줄 알았다. 자신은 누구보다 그 남자의 불행이나 상처를 다 이해할 수 있고 감싸줄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자신도 치유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혼이 그 첫길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 남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가달라고.”

그 남자에겐 이런 투정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드래곤은 호기심이 많은 라브에게 온갖 이야기를 해주었다. 앞으로 황제 주변에 큰 일이 일어날 것이며, 새로운 사르제스의 피가 재위에 오를 거라 했다.

라브는 근심이 깊어졌다. 새로운 사르제스의 피라니. 황후가 낳을 아이를 말함인가? 그 어린 생명이 재위에 오른다면 설마 황제는 죽는단 말인가? 섭정은 불 보듯 빤하다. 그렇다면 제국의 정치는 어지러워질 것이고, 그 탓에 대륙만 시끄러워지리라.

라브는 그렇게 예상하고 드래곤에게 물어보았다.

“앞으로 또 피바람이 불고 저 같은 불쌍한 인간들이 생겨날 테죠?”

드래곤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농담을 하듯 물었다.

“왜? 무서운가? 내가 라브 너만은 안전하게 지켜줄 테니 걱정마라.”

“그거 참 고맙군요.”

라브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드래곤의 말은 그야말로 강자의 농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했다. 저 거대한 생물체란 애당초 인간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저에게 바쳐지는 공물만 무사히 들어오면 만사태평한 존재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느긋하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가만……? 그래. 그러면 되잖아. 저 이는 대륙에서 가장 강해. 그런 자가 대륙을 다스리면 세상은 어지럽지 않을 텐데. 왜 그러질 않는 거지?’

일관적이지 못한 인간들에게 대륙을 맡기는 것 보다야, 어쩌면 드래곤이 대륙을 다스리는 것이 평화에는 더 좋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라브는 제의했다.

“인간들은 어리석습니다. 이참에 당신께서 대륙을 다스리시면 어떨까요? 아주 좋은 생각 같은데요.”

드래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아, 나는 그런 거 흥미 없어. 그냥 예쁜 옷만 입고 즐기고 살고 싶을 뿐이다.”

“아, 예쁜 드레스야 계속 입으시면 되죠. 제 말은 그러니까, 이름만 황제 하시라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들이 알아서 길 테니까.”

드래곤은 가볍게 말하는 라브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왜? 자네가 대리 지배를 하고 싶은가?”

라브는 히죽거렸다. 그러다 드래곤에게 뺨을 살짝 꼬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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