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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114화 (114/123)

<-- 114 회 -->

로리는 자신이 없었다. 이 남자와 키스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너무 짜릿해서 힘들 지경인데, 이 이상 가는 것은 두려웠다.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입맞춤으로도 그녀는 핀이 주는 흥분에 정복되어버린 것이다.

“이 이상은 더는 안 돼.”

“쉬잇, 잠시 동안만은 막지 말아달라고…… 말했잖아.”

다시 예전의 신분이라도 된 듯 명령하는 그에게 로리는 더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뜨겁고 촉촉한 입술이 점점 속옷의 경계에 다가가는 것을 얌전히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덜 마른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상쾌한 향료 향기에 온 감각이 취하기 시작했다. 로리는 눈을 서서히 감으며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헤집어 넣었다.

“핀라이트…….”

진짜 이름이 불린 핀은 잔잔히 미소 지으며 부드러운 가슴 위에 뺨을 비볐다. 그러다 점점 깊은 가슴 계곡에 입술을 가져갔다.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나오는 살결을 맛보는 것처럼 혀로 간질였다. 야릇한 느낌을 이기지 못한 로리가 몸을 비틀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핀의 입술이 그녀의 가슴에서 가장 봉긋이 솟은 그곳을 삼켜버렸다.

“아…….”

“벌써부터 그런 소리는 이릅니다.”

“뭐……라고?”

“조금 더 가르쳐줄게.”

핀은 어둠 속에서도 그린 듯 선명한 미소를 밝히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듯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

황제를 둘러싼 소문은 예전부터 무수했다. 그러나 요즘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성질의 소문이 돌고 있었다. 황제가 흑마법에 손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히엘은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증명을 하듯 본궁보다 마활궁을 더 자주 찾았다. 원래부터 그곳을 자주 드나들긴 했지만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는 시기이기에 황궁의 눈들은 더욱 민감하게 황제의 발걸음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리는 황후로서 황궁에 떠도는 자그마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황제에게 무슨 실험을 하느냐 물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히엘은 정말 아무런 실험도 하지 않는다고 잡아 떼 듯 말했다. 어느 날은 맹세코 흑마법에는 손대지 않는다며 드래곤과 태어날 아이에게도 맹세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하리는 황제를 믿기로 하고 더는 묻지 않았다.

‘그나저나 세드릭이 문제야.’

세드릭은 밀궁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있었다. 하리가 만나려고 해도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 세드릭이 사촌동생의 태동을 느끼고 싶다고 꼭 배를 만질 기회를 달라고 했고, 하리는 태동이 왕성한 이때야말로 딱 좋다 싶어 소년을 만나길 바랐지만, 소년은 책에 미친 것인지 세상에 마음을 닫기라도 한 건지 그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세드릭 걱정을 하고 있는 그때 황제가 찾아왔다. 벌써부터 오래 산 부부처럼 그녀는 남편의 얼굴만 보아도 어떤 상태인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밝은 히엘의 얼굴은 마력이 충만해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사소한 점으로 황제가 흑마법 실험에 빠져있지 않는다는 것은 증명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폐하.”

하리는 히엘이 욕조에 몸을 담그러 가는데 졸졸 따라다녔다. 그녀가 지나치게 가까이서 눈을 빛내고 있자 히엘은 부담스러웠다.

“왜?”

“씻을 거죠?”

“응.”

“들어가도 돼요?”

“같이 씻으려고?”

“아뇨. 저는 아까 씻었어요.”

히엘이 워터 링 마법으로 씻겨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하리는 늘 이른 시간에 먼저 씻는 습관이 있었다. 히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씻은 아내가 왜 욕조에 들어와 굳이 함께 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욕조에서 즐기고 싶은 거야?”

그가 배시시 웃으며 놀리듯 말하자 하리가 찌릿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하늘거리는 속옷 차림이 되어 욕조 물을 첨벙거리며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남편의 몸을 강하게 안았다. 히엘은 산 같은 하리의 배에 맞닿는 것을 느끼며 코피를 쏟기 일보직전이었다.

‘이 상태로 즐기려는 거야? 내 아내는 임신을 해도 어쩜 이리 도발적인 거지!’

하지만 히엘의 예상은 틀리고 말았다. 갑자기 하리가 히엘을 안은 채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맑고 다정한 목소리로 꿀처럼 달콤하고 아름다운 가사를 읊조리자, 히엘은 이게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여자, 날 욕조에서 잠들게 할 셈인가?’

그때였다. 뭔가가 히엘의 배를 건드렸다. 꿈틀, 꿈틀, 꿈틀, 그것은 하리의 노랫소리에 웃음이 섞여가자 더욱 잦아졌다. 꿈틀, 꿈틀, 꿈틀, 꿈틀.

그제야 히엘은 하리로부터 몸을 떼고 손으로 그녀의 배를 만져보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배! 태동이었다. 하리가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설명해주었다.

“따스한 물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면 꼭 움직이더라고요!”

히엘은 기쁨에 겨워 하리의 배에 키스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내 딸은 목욕과 음악을 함께 즐길 줄 아는 녀석이구나!”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은 히엘은 그렇게 우겨댔다.

***

핀은 자신이 아버지로서 완전히 실격이라 생각했다. 아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계획은 로리의 방문을 계기로 그리고 자신의 연애욕심 등으로 물 건너가고 말았다.

‘티에리아. 다음 쉬는 날은 반드시 네게 가마.’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는 혼자만의 약속을 했다.

***

기나긴 근신 기간동안 세드릭은 밀궁에서 제왕학 서적들을 파고 있었다. 역대 사르제스 황태자들의 소유였던 그 책은 형식적인 것 일뿐, 실제로 읽힌 적은 없어서 새것과 다름없었다.

한 때는 티에리아 델 사르제스라는 황태자의 이름으로 제위에 오르는 것을 준비하던 소년이었다. 새삼 제왕학 서적을 보니 만 가지 상념이 스쳐지나갔고, 그래서 한 장 한 장 제대로 읽다보니 반나절쯤은 금세 지나가곤 했다. 아버지가 말하던 이상한 이야기 같은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오늘도 밀궁에 틀어박혀서 그 서적을 파고 있었다. 마법과 과학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은 특히나 어린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한참을 책 읽느라 정신이 없는 세드릭의 어깨를 누군가가 가볍게 쳤다. 히엘이었다. 이렇듯 백부는 언제나 마법이동으로 조용히 접근하곤 했다.

“재밌니?”

“그냥 할 게 없어서 읽은 것뿐이에요.”

무덤덤한 대답을 들은 히엘은 웃었다.

“사춘기잖아? 우리 귀여운 조카.”

“그럴 나이네요.”

“뭐 때문에 이렇게 근신인지 정말 안 가르쳐 줄 거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데.”

세드릭은 계속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아버지와 저와의 오해인 것 같으니까요.”

“뭐, 그래. 그럼.”

히엘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세드릭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세드릭은 계속 무덤덤한 태도로 독서를 하려고 했지만, 백부가 생글생글 웃기 시작하자 점점 부담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예쁜 얼굴을 불만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한참을 생글거리던 히엘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조카야.”

“네?”

“네 부탁 하나 들어줄래?”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릴게요.”

히엘은 그 대답이 기특하단 듯 웃었다.

“그게 말이야, 내가 요즘 생각하는 게 하나 있거든. 그게 바로 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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