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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111화 (1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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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가을 풍경이었다. 나무들이 곳곳에서 자주색 잎사귀를 날리며 아련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는데 그 기이한 현상은 마법예술을 하는 이들의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몇몇 학생들을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와 가을의 정취를 탐했고, 또 몇몇은 다가오는 연극 무대를 준비한다고 대사연습에 한창이었다.

핀은 학교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문득 잔디밭에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회사에 갈 일이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회사 가는 건가?”

누군가가 등을 치며 말을 걸어왔다. 라브였다. 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예전 라브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조금 친절한 느낌의 대답이 나왔다.

“그렇습니다만.”

라브는 핀의 달라진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라브는 얼마 전에 맞았던 손님, 드래곤을 생각하고 있었다. 라이트릭 에센과 외모가 똑같은 드래곤은 라브에게 ‘라이트릭 에센의 쌍둥이 형제’가 되어있었다.

“네 형제가 맛이 들렸는지 나를 두 번이나 찾아오던데, 내가 따끔하게 혼을 내준 적이 있었거든? 아무튼 너 형제 관리 좀 해야겠다.”

핀은 의아했다. 형제? 그것은 세드릭을 말함인가?

“혼을 내다니,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전부터 제 형제에 대한 이상한 질문을 하시던데, 제 동생을 본 적 있습니까?”

“아, 동생이었어?”

“…….”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아니, 말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이군.”

“……?”

“네 동생이, 우리 가게에 왔었거든. 나 그날, 몸이 으스러지는 줄 알았는데.”

핀은 순간 라브의 멱살을 쥘 뻔 했다. 세드릭이 그런 창기들이 우글거리는 가게에 가서 라브를 안았다? 드래곤의 라이트릭 에센 변장 사건을 모르는 핀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세드릭이…… 그 아이가…… 당신을…… 그럴 리가…….”

핀은 세드릭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드디어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여자애와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음험한 가게에서 남자를 찾다니!

“이름이 세드릭이야? 말을 통 안 해서 이름까진 몰랐네. 아무튼 손님 중에서 그렇게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은 처음이었어.”

라브는 말을 하다 잠시 멈추고 오지랖을 펼쳤다.

“설마 그 돈, 네가 블랙 유니콘 부대에서 힘들 게 번 돈으로 내는 건 아니겠지?”

“실례하겠습니다.”

핀은 자신의 가정교육이 완전히 망해버렸다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은 회사에 가야할 때가 아니었다. 세드릭을 혼내기 위해 집으로 가야했다.

***

요즘 세드릭은 새로운 연애에 빠졌다. 상대는 누구인가. 한때 좋아했던 루비? 아니다. 한때 사랑했던 로리? 아니다. 죄수복이 섹시하던 여자 디아세라? 더더욱 아니다.

디아세라는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녀는 황궁감옥에서 수감되어 있어서 얼굴을 직접 보려고 해도 너무 어려웠다. 게다가 만난다 하더라도 나이 차이가 많아서 곤란했다.

그래서 소년은 차선책으로 디아세라와 닮은 여자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더 덜 예쁘긴 하지만 학교 후배인 아이린이 적당한 듯했다. 또래 소녀를 후리는 방법은 어떤 것이 좋은가. 상처받은 반항아의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다. 세드릭은 그 연기로 아이린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데 성공했다.

어느 날 오후였다. 세드릭은 아버지가 집을 비운 시간을 이용해 아이린을 집으로 끌어들였다. 키스란 걸 해보기 위해서였다. 소년은 소원대로 그녀와 키스를 할 수 있었다. 한참 열심히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년을 불렀다. 아버지, 핀이었다.

“세드릭!”

난데없는 목소리를 듣고 세드릭은 화들짝 놀라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아이린이 날래게 창밖으로 치마를 휘날리며 뛰쳐나가주었다. 세드릭은 아이린의 눈치와 빠르기에 감탄하여 눈빛으로 찬사를 건넸다.

핀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몹시 노한 채 아들을 취조하기 시작했다.

“최근 네 또래의 소년들이 출입하면 안 되는 곳에 갔어?”

세드릭은 타액이 묻어있는 입을 손등으로 훔치며 대답했다.

“그런 적 없는데요.”

핀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가늘게 웃었다. 용의자를 보는 형사의 눈빛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그런 곳’에서 너를 봤다는데.”

세드릭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떡 벌렸다.

“아버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맹세코 소년들이 출입하면 안 되는 그 어떤 이상한 곳에도 가본 적이 없어요. 대체 그곳에서 저를 보았다고 말한 그 사람 이름이 뭔데요?”

핀은 거침없이 대답해주었다.

“라브. 라벤더. 피부가 새하얀 남자다. 성인들만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지. 분명 그 사람이 너를 봤다고 했어.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 너는 정말 모른 척 할 건가?”

“모르겠는데요.”

“티에리아…….”

핀은 아들의 본명을 부르며 탄식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그 귀엽고 순수한 티에리아가 어느 순간부터 사춘기 티를 내며 아버지에게 거짓말이나 해대는 막 나가는 아들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그 창기 라브가 일하는 곳에 드나들다니! 핀은 아버지로서 화도 나고, 당황스러웠다.

“정말 라브라는 사람을 본 적 없어?”

세드릭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요!”

“안되겠구나. 당분간 학교는 못 나간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제가 학교에 못 나가야 하는데요!”

“근신이다. 궁에 가 있어.”

“아버지?”

“뭘 잘못했는지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되면 나를 불러도 좋아. 백부께 연락해라. 오늘부터 거기 가있어. 만약 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쩌면…… 요리 학교도 못 다닐지 모르겠구나.”

이 커다란 오해의 사태를 만들어낸 자, 드래곤은 그 시간 마력 화산에서 느긋이 배를 긁으며 마법영상구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는 라브를 떠올리고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음…… 오늘 거기 또 갈까.]

***

진눈깨비가 휘날리는 날이었다. 아주 예전부터 핀의 집 근처에는 핀의 극비경호를 맡는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현재 비상 상태였다. 난데없이 핀의 집을 노리는 수상한 자가 자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마력자였다. 잠복 병사들은 그 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잡은 뒤 자신들이 머무는 주택 안에 감금 시키고 목적을 캐물었다.

“네 녀석의 정체를 말해라!”

“어째서 그 집에 갔던 거지?”

잡힌 마력자는 억울한 표정이었다.

“저는 그냥 아가씨의 부탁으로…….”

“아가씨?”

“로가드리아 아가씨의 부탁으로 그 분을 살피러 왔습니다만.”

마력자는 로리가 보낸 자였던 것이다. 어째서 로리는 핀의 집에 마력자를 보낸 것일까.

핀은 로리에게 ‘허벅지가 완치될 때까지 당분간 회사에 나오지 말라’고 했었다. 말 잘 듣는 로리는 꼼짝도 않고 젤레테스 공저에서 지냈다. 방문하겠다던 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핀은 학업, 일, 아들의 근신 문제로 바빠서 로리에게 갈 시간이 없었다.

로리는 그를 기다리다 목이 빠지다 점점 화가 났다. 분명 그 남자와 연인이 된 것 같긴 한데, 무슨 연인이 이렇단 말인가. 그 남자는 집에 얌전히 있으라는 말 외엔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이대로 흐지부지 되는 건가? 혹시 그 남자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끊어버린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다시 싹 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로리는 레이디 로리의 휴일에 자신이 부리는 마력자를 하나 보내 핀의 집을 살펴보라 일렀던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낱낱이 말한 마력자는 그제야 병사들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마력자는 로리에게로 가서 말했다. 지금 그 집에는 라이트릭 에센 그 남자 하나뿐이라고. 로리는 궁금증이 생겼다.

“뭐? 에센이 없다고? 그 집 학생은 어디 갔지?”

세드릭을 말함이었다.

“아, 이웃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어디 잠시 가있다고…… 최근에는 라이트릭 에센 혼자 지내는 것 같습니다만.”

로리는 설마 세드릭에게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곧바로 시종에게 마차를 준비하라 일렀다.

‘아들 문제로 내게 뜸했던 거라면, 내가 명색이 애인인데 안 둘러볼 수는 없는 거겠지. 세드릭은 언젠간 내 아들이 될 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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