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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108화 (10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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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핀은 결국 토해내고 말았다. 한때 마음속 깊숙이 머물러있던 하리에 대한 감정을 끝끝내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진심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좋아서, 좋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함께 있으려 했어! 그런 친구야! 그랬던 친구라고! 뒤늦게야 알아버렸다고!”

듣고 싶지 않은 히엘은 경고했다.

“관둬. 그딴 말 하지 마. 이제와 내 어쭙잖은 기분이나 충족시키려고 날 자극하지 말란 말이다!”

“가끔은 형이 하리를 알지 못하던 그때 그냥 내가 안아버렸으면 하고 후회도 했었어!”

참지 못한 히엘은 그대로 핀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핀은 히엘에게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자꾸 기억나고, 어두운 표정이면 신경 쓰이고, 좋아했으니까, 좋아서 그랬던 거야! 하지만 내가 날 잘 몰랐어, 내 감정을 알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던 것뿐이야! 하리가 날 싫어했으니까, 하리가 좋아하는 사람이 형이었으니까 아무 말도 못했던 거라고!”

그간 히엘의 신경을 은근슬쩍 자극하던 의심들이 기어이 진실의 모습으로 터져 나왔다. 하리가 갇혀 있던 동안, 핀은 히엘이 종종 ‘그녀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도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핀은 이중성력의 이유로 그녀를 죽이려고도 했었다. 그랬던 그가 설마, 설마, 이토록 적나라하게 숨겨왔던 마음을 표시할 줄은, 히엘은 정말 몰랐다.

히엘은 핀을 치려고 올렸던 주먹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만해. 그만 말해. 더 말하면, 너 이제 궁에 못 와.”

“궁에 못 가더라도 상관없어. 다시 하리를 보지 말라고 해도 상관없다고!”

“말 다했어?”

“하지만 이건 알아야해! 하리가 아무 생각 없이 밝게 웃었던 게 손에 꼽을 정도란 걸! 형은 나처럼 다른 곳으로 나가있어야 할 일도 없으면서, 늘 궁에 있으면서, 하리한테 왜 옛날만큼 신경 써주지 못하는 거야! 예전에는 형만 찾고, 형 이름만 불러댔지만, 지금은 형 이야기만 하면 신경 쓰는 얼굴이 되어버린다고! 형의 속을 잘 모르겠다고 고민스러워 한다고! 아이를 가진 여자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한테 잘 살 거라고 했었잖아! 그럼 좀 잘 살란 말이야! 울리지 말고!”

그녀를 좋아했던 시절의 미련은 버린 지 오래다. 죄책감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단지 그녀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치유되었던 것을 생각 한다……. 핀은 그녀가 어두운 얼굴을 하거나 우는 것이 싫었다. 가슴이 너무나 아렸다.

차분하게 듣고 있던 히엘이 입을 열었다. 서늘한 감정이 담긴 말이었다.

“하리에 대한 네 감정, 좋은 자극이 됐다.”

“그럼 이제 하리한테 잘해.”

히엘은 웃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사랑한 여자는 하리뿐이다. 여태 그 어느 여자도 하리만큼 자신의 관심과 호의를 받아본 적 없었다. 그렇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잘해? 그래, 더 잘해줘야겠네, 하리가 싫어해서 금연까지 했는데, 그치? 더 잘해줘야 겠지?”

“그깟 금연은 무슨!”

“미쳤던 거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했고, 그 끔찍한 팔찌도 풀어줬고, 평생 그녀만 사랑하겠다고 드래곤에게 맹약까지 했어! 매일 같이 그녀의 목욕도 시켜줬지! 그녀의 취향이라면 무엇이든 다 수용했어! 그게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함께 즐겨줬다고! 이 정도인데, 이 정도로 하리를 사랑하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해, 내가!”

“그런 건 잘해주면서 그럼 왜 어젠 그랬는데! 왜 결정적일 때는 나 몰라라 방치하는 건데! 그런 점이 짜증난다는 거야! 맹약이며 뭐며 해주면 뭐해! 정말 울고 있을 때 왜 우느냐 한 번 묻지 않고,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그러고 있느냔 말이야!”

“네 앞에서 할 수는 없는 짓이니까!”

“뭐?”

“나도 하리가 우는 게 싫어, 싫다고! 왜 우는지 묻고 싶고, 울지 말라고, 무엇이든 울게 했으니 내가 뭔가 잘못한 거 같다고 용서 빌려고 했어! 네가 하리한테 가자고 하지만 않았다면, 네가 그 자리에만 없었다면 벌이라도 서고, 그녀에게 채찍이라도 맞았을 거야!”

히엘은 분노로 내지르다 저도 모르게 나온 채찍이라는 단어에 이 심각한 중에도 황당한 웃음이 절로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있는 걸 왜 신경 쓰는데? 불편하면 비켜 달라 하고 하리한테 사과하면 되잖아! 내가 하리 손목 잡았을 때 빼앗으면 됐잖아!”

“젠장, 네가 날 얕볼 것 같으니까!”

“뭐?”

“그래, 망할! 자존심이 상했어! 잘 살아 보이겠다고 한 사람은 난데.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이 터지는 걸 어떻게 하라고!”

“……?”

“너처럼 오는 여자 걸리적거린다고 뎅강 목이라도 잘라야 하냐? 하필이면 마활이라 마계에서도 졸졸 따라올 수 있는 여자더라, 집무실에 까지 찾아오더라! 쫓아내려 했어, 무시하고 하리한테 가려고 했다고!”

여자? 마활? 졸졸 따라와서 집무실? 핀은 히엘이 또 예전처럼 방탕한 여자관계를 가지나 싶어 분노로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뭐? 마활…… 출신 여자라고? 그 여자가 집무실에 왔다고?…… 또 예전처럼 그 버릇 못 버리고 논 거야?”

히엘은 하리가 디아세라와의 일까지는 핀에게 말하지 않았단 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무슨 그 버릇을 못 버리긴 못 버려! 내겐 외도를 하면 몸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맹약이 있다고! 지금 나 멀쩡한 거 안 보여? 멀쩡히 칼질 하는 거 안 보이냐고!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여자가 그냥 드래곤 떼 달라고 해서, 무시하려다 계속 귀찮게 굴 것 같아서 빨리 처리해주고 온 거야, 맹세코 하리를 울릴 만한 일은 한 적 없다고!”

“…….”

“망할, 왜 내가 이걸 너한테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히엘이 짜증을 내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발로 세게 찼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핀의 허리춤에 잘 둘러져있던 큰 수건이 하필 이 때에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훼에에에엥……. 바람이 불 수 없는 공간인데도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와 형제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히엘은 핀의 하체를 보더니 ‘우리 동생 많이 컸네?’ 라는 말을 표정으로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핀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다시 수건을 주워서 허리에 두르며 조용히 명령했다.

“말해.”

“뭘!”

“지금 당장 하리한테 가서 그대로 설명하고 용서 빌라고.”

“닥쳐, 네가 이래라 저래라 그러지 않아도 하러 갈 거야!”

히엘이 회색 공간을 폐쇄하려 할 때였다. 핀은 순간 꼭 해두어야 할 말이 생각났다. 하리를 좋아했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었다. 그러니 히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지금 누구를 마음에 새로 두었는지 알리고 오해를 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히엘에게 말했다.

“잠깐, 나 할 말이 있어.”

“뭐!”

“나…….”

“너, 뭐?”

“사람 생겼어.”

“무슨 사람?”

“그러니까, 사람.”

핀은 살짝 난감한 표정이었다. 히엘은 한참 생각하다 그가 아직도 전 황후 리이라의 유령을 잊지 못하는 줄 알고 입을 열었다.

“설마?”

“그래. 그렇게 됐어.”

핀은 최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누었던 상대인 로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한숨을 쉬는 히엘이었다.

‘궁상맞은 녀석 같으니, 어쩐지 아내의 환청이 들린다는 둥 어쩐다는 둥 말하더니 결국 쯧…….’

그는 조심스레 핀에게 충고를 했다.

“그건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다.”

“무슨 말이야? 형이…….”

로리를 붙여준 건 형이었잖아?

“정신 차려. 너와 어울리지 않아. 넌 세상을 살아가는, 살아있는 남자야. 살아있는 사람과 만나도록 해.”

“무슨 말이야, 그게? 그녀는 살아있어.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중요해! 네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아…… 확실히 그건 좀. 나도 걱정이 되긴 해. 티에리아에게도 미안하고.”

“미안하면 지금이라도 관 둬. 네 갈 길을 찾아봐.”

그렇게 오해는 산처럼 쌓여갔다. 핀은 히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두었다.

“어쨌든, 하리에 대하 그런 마음은 다 옛날 감정이니까.”

“그래. 궁에 와. 바느질 해.”

“고마워.”

배시시 웃는 핀이 히엘은 너무나 죽이고 싶도록 귀여워서, 추가사항을 붙였다.

“단, 오늘 내 기분을 들쑤신 죄가 있으니 무기한 근신한 뒤에.”

무기한 근신, 즉 오지 말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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