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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99화 (9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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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방문객으로 인해 세드릭은 코피를 흘릴 뻔했다.

“허억…… 로리 누나.”

방문객, 로리의 옷차림은 사춘기 소년의 혈관을 팽창시킬 만큼 섹시했다. 그녀가 평소 자주 입던 마담 젤레테스 표 연보라 바탕의 레이스, 프릴 범벅 사랑스러운 드레스는 이 순간 그 어디에도 없었다.

로리가 입은 의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라 할 수 있었다.

매끄러운 질감의 붉은 원피스는 그녀의 흠 잡을 곳 없는 몸매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원피스 허벅지 옆 부분이 살짝 터져 있어 검은 스타킹의 밴드라인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났고, 그녀의 미끈한 다리 선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거기다 그녀의 가슴골이 뭇 사내들의 시선을 블랙홀처럼 흡수할 기세로 노출되어 있었다. 탄력 있고 뽀얀 바탕의 가슴은 마치 페어리가 날개를 비벼 가루를 흩뿌리기라도 한 듯 반짝 반짝 윤이 났다. 원래부터 붉은 기가 감돌았던 그녀의 입술은 그윽한 빨간색 물을 들여 더욱 매혹적인 촉감을 자랑했고, 새까맣던 그녀의 속눈썹 주변에는 더욱 짙은 아이라인이 그려져 있어 까만 눈동자가 날카롭게 도드라져 보였다. 늘 깔끔하게 묶여있던 긴 머리카락은 잔머리 몇 가닥만 하늘하늘 늘어뜨린 채 부드럽게 올려 져 있었다. 그 누가 보아도 로리의 모습은, 마력을 뿜어내는 미녀 그 자체였다.

세드릭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다가 의아함을 느꼈다. 섹시한 건 좋은데 어째서 이 시간에 갑자기 방문을 한 것일까? 무슨 심경의 변화로? 혹시 이 섹시한 누님이 내게 유혹을 하려고……?

세드릭이 그러한 망상에 빠져있을 때였다.

“아버지 계시니?”

때 마침 핀이 다락방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로리를 본 그는 불쾌하고 성가신 낯빛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대표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직원들을 퇴근 시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직원의 집에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인지. 핀은 로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로리의 등 뒤에서 마차와 호위기사, 시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로리의 옷차림도 마력 화산으로 사냥을 가자고 할 때와 다른 거추장스러운 옷차림이었다. 적어도 용건은 사냥이 아니리라……. 핀은 경계심을 약간 풀었다.

로리는 명령했다.

“라이트릭 에센,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겠어. 옷 갈아입고 나와.”

핀은 거절을 하려다가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예전에 로리가 세드릭의 아픈 허리를 고쳐준 적이 있었다. 게다가 낮에는 ‘구토기’라는 무시무시한 물건을 대신 찾아 부수어주지 않았던가. 은혜는 갚아야 한다. 가끔은 자신도 로리의 말을 얌전히 따라줄 필요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표 님.”

외출 준비를 하려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핀에게, 세드릭이 졸졸 따라와 질문했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라고 대답하려던 핀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뜬금없이 이 순간, 업무로 바쁜 평범한 직장인 아버지처럼 보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업무 관련 모임이 있어. 깜빡 잊고 있었네.”

“정말요?”

“응. 먼저 저녁 먹고 있어. 문단속 잘하고.”

“정말 일 관련 맞아요?”

오늘따라 아들이 왠지 집요하다 느끼는 핀이었다.

“응, 정말 업무 관련 모임이란다.”

핀은 정말 업무상 외출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정장을 제대로 갖추어 입었다.

세드릭은 한숨을 쉬었다. 어린 소년은 어른들의 세계를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감으로 느끼는 것은 있었다. 아주 날카롭게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의 눈에 비친 ‘섹시한 누나, 로리’는 오늘 밤 아무래도 소년의 아버지를 잡아먹을 것 같다. 그야말로 수컷을 잡아먹을 암 사마귀의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세드릭은 그 암 사마귀에 잡아먹힐 자가 아버지가 아닌 자신이었으면 했다. 절대 이대로 로리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핀에게 미리 경고를 해두었다.

“아버지.”

“응.”

“전 로리 누나가 좋아요.”

루리는 ‘내 여자’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핀에게 너무나 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세드릭은 핀의 눈에 여전히 어린 아들일 뿐이다. 아무리 제 아버지에게 호위 병사며 여자 친구며 뭐든 빨리 데리고 다니라고, 바글거리는 삶을 살라고 닦달하는 잔소리꾼 아들이라 해도 그 속은 꼬마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모정이 필요하기도 하리라. 그렇기에 핀은 세드릭이 한 ‘로리 누나가 좋아요’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했다.

[전 로리 누나를 엄마로 맞아들이고 싶어요.]

핀은 곤란한 듯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녀를 엄마로 삼기엔 시기도, 나이도, 모든 것이 적절하지 않아…… 핀은 그렇게 생각하며 세드릭을 딱하단 듯 보았다. 핀의 반응을 읽은 세드릭은 절망했다.

‘아버지는 틀려먹으셨어!’

소년은 거친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박차고, 로리가 타고 있는 마차의 창문을 홱 걷어 올렸다.

“누나!”

“응?”

“전 누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말은 로리에게 ‘나의 새엄마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들리고 있었다.

“고맙다. 내 편이 되어줘서.”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소년은 설명을 하려고 했으나 이미 핀이 마차를 타러 오고 있었다. 로리는 재빨리 세드릭의 입을 한 손가락으로 막아버렸다. 그리고 ‘내 편이면 내 편답게 곱게 방에 가서 저녁 맘마나 먹고 있으라’는 눈빛을 쏘았다.

핀은 세드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녀올게. 일찍 자라.”

소년의 어깨는 축 쳐졌다. 핀을 태운 로리의 예쁜 마차가 거리 저 편으로 사라져간다. 소년은 눈물을 글썽이며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방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테이블 위의 마법영상구를 보자, 그것을 들고 방으로 갔다.

‘야동 봐야지.’

사랑하는 여인을 아버지에게 빼앗길 것 같은 소년의 위기감도, 은밀한 욕구 앞에서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

마차에 탄 핀은 로리에게서 느껴지는 친숙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그녀가 회사 대표로서 익숙하긴 했으나, 단연코 친숙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오랫동안 알아온 연인처럼 살갑게 느껴지고 있었다.

핀의 이성은 자신의 그러한 기분을 경계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녀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걸까. 어째서 자신이 그녀를 가깝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녀의 전과 다른 야릇한 복장? 전과 다른 짙은 화장? 고작 그 따위 이유로?

‘설마…….’

결국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서, 욕구에 충실하게 되고 마는 남성이라서, 그녀의 야릇한 모습을 의식하고 마는 건가?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눈길이 가는 그녀의 가슴골이라던가, 아슬아슬하게 비치는 허벅지 라인이라던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자극적인 요소들로 그녀를 가깝게 느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로리의 몸을 살피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로리가 사용한 유혹의 무기는 빤히 드러나는 겉모습보다 더욱 은밀한 곳에 숨어 있었다.

‘핀라이트의 후 리이라는 자신의 궁에 로가드리아 꽃을 심어놓고 그 향기가 마법으로 유지되도록 했다지. 후후…… 어떠냐, 강철 검. 내게서 나는 향기가?’

그렇다. 그녀는 핀과 육체적으로 가장 가까웠다 할 수 있는 사람, 리이라의 향기를 훔친 것이었다.

무언가 불편한 얼굴로 귀와 볼을 새빨갛게 붉히고 있는 핀을 지켜보며 로리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남자가 계획대로 착실히 유혹 당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 남은 것은,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곳으로 가서 일에 관해 몇 마디를 나누고 슬슬 본론을 꺼내는 것이었다. 이번 만남의 진짜 목적을…….

관능적인 몸짓, 뇌쇄적 눈빛, 로가드리아의 달콤한 향기, 그리고 그의 입술을 유혹하는 정열의 붉은 입술. 이 모든 것들이 하모니를 이뤄 저 남자를 유혹할 것이다. 그리고 도발에 이끌려 흔들리는 남자를 자신이 먼저 덮쳐버릴 작정이었다. 혹은 자신이 먼저 덮침을 당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은밀한 공간에 단 둘만 남은 남녀가 충동에 휩싸이는 건 순식간이지 않는가.

그렇게 로리는 오늘 밤의 거사를 위해 모든 것을 각오한 상태다. 자신의 선택이기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고, 설사 마담 젤레테스에게 혼이 나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해도 의연할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목표물이 된 핀은 둘 곳 없는 시선을 마차의 창 밖에다 고정시켜놓고 있었다. 긴 침묵이 그 자신도 머쓱했던지 질문이 나왔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로리는 그에게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며 대답했다.

“네가 디자인한 장신구들 수익이 꽤 좋아. 훌륭한 직원에겐 칭찬을 해줘야 하는 법이지.”

핀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디자인한 장신구들이 잘 팔리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한참 후 그들은 아이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최상층에 단 둘이 있게 되었다. 탁 트인 유리창으로 검푸른 대운하가 한 눈에 펼쳐졌다. 몇몇 사람들이 반짝이는 돛단배에 몸을 싣고 밤바람과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운하 밖으로 황궁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고, 그곳 하늘에는 끊임없이 아름다운 시각 마법들이 펼쳐져 있었다.

테이블에 최고급 술이 준비 되었다.

로리는 다리를 꼰 자세로 핀의 잔에 술을 따르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핀은 아까부터 기분이 나쁜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후후, 강철 검……. 일부러 기분 나쁜 표정을 한다 해도 내게 동요하는 게 다 느껴진다고. 그래. 이쯤하면 솔직히, 얼간이나 고자가 아닌 이상 내 흑심을 다 알 테지. 자기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따라온 것 아니겠어?’

속마음을 눈빛에 그대로 드러낸 그녀가 핀에게 명령했다.

“마셔.”

아무도 없는 이곳이다. 평소대로라면 로리는 아마 격식을 차리며 전 황제에 대한 예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핀 또한 회사에서의 태도 그대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만, 몸이 좋지 않아 술은 거절하겠습니다.”

명백히 거리를 두겠다는 신호였다.

그 벽을 눈치 챈 것일까. 로리는 초반부터 쉽지 않다고 느꼈다. 술을 팍팍 마셔주어야 쓰러뜨릴 수 있는데! 할 수 없이 그녀는 잔을 들고 소파에 길게 누워 한쪽 허벅지를 슬쩍 드러냈다. 그리고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찬찬히 핀의 눈동자를 살폈다.

“몸이 좋지 않다니,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그러자 화제를 딴 데로 돌리는 핀이었다.

“낮에 그 기계(구토기), 처리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야 뭐. 사람들이 네 정체를 알게 할 순 없지. 게다가 우리 둘만의 비밀 같아서 은밀하고 좋은데 말이야.”

한쪽 손으로 머리를 괸 채 다른 쪽 손으로는 술잔을 입에 대며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핀은 대놓고 실소를 흘렸다.

‘뭐, 뭐야…… 내가 웃겨? 내가 안 섹시해?’

자존심이 상한 그녀는 조금 더 자신의 매력을 높이고자 향수의 농도를 짙게 강화하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올림머리를 풀어헤친 뒤, 나른히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고백’을 했다.

“사실 난 너를 예전부터 ‘남자’로 좋아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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