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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로리의 남자 직원 세 명 중 핀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성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게이. 그들은 요즘 여유로운 회사 사정덕분에 시간이 남아돌아 잡담을 하는 것에 재미가 들려 있었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수다만 떨기 바빴다. 그러다 소재가 떨어지자 주변에서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신상에 관한 잡담이 역시나 가장 재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잡담 희생양에 선택된 자는 말단 직원 라이트릭 에센, 즉 핀이었다.
그들은 아직 핀이 출근하지 않자 불성실한 직원이라는 등의 가벼운 흉을 보다 본격적인 수다에 돌입했다.
“라이트릭 에센도 이쪽(게이) 사람 같지 않아?”
“그러네.”
워낙 이쪽 바닥에 게이들이 많다보니 그들은 핀까지 게이가 아닌가, 의심했다. 심증과 물증은 많았다. ‘남동생이랑 단 둘이 산다’면서 꿀단지라도 집에 모셔 놓았는지 귀가가 매우 빠르다. 사실은 남동생이 아니라 애인인지도?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대표 로리에게도, 이성적으로 음흉한 눈길을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수없이 대표의 발을 닦으면서도, 늘 대표에게 살기어린 눈빛만 보내지 않았던가.
그 외에 그들이 핀을 의심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의 소지품들이었다.
“그거 봤어? 저번에 그 도장 지갑도 모자라서 동전 지갑도 바느질로 만든 걸 들고 다니더라.”
“게이가 맞다니깐? 안 그러게 생겨서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 가끔 보면 애매한 게 많거든? 물론 여성스럽다고 해서 다 게이는 아니지만, 뭔가 냄새가 난단 말이야.”
“그치? 게이 같지? 아, 이걸 어떻게 확인하나?”
그때 레이디 로리의 수석 디자이너 B가 자신의 보물을 꺼냈다. 그 보물은, 그 어떤 진실도 다 나오게 하는 마성의 물건, ‘구토기’였다.
두 남자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팀장 님. 그것은……?”
수석 디자이너 B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물건으로 진실을 확인해볼까?”
렌키스의 로리 시즌이 지나 여유롭기도 하겠다, 생활의 자극이 될 만한 뭔가가 궁하기도 하겠다, 그들은 라이트릭 에센에 대한 성취향성을 들추기 위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대화를 듣던 여직원들은 라이트릭 에센이 게이가 아닐 거라 주장했다. 그들은 미남을 아끼는 여성으로서,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를 청아하게 바꿔버리는 미청년 라이트릭 에센을 게이로 만들기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직원들은 게이가 확실하다며 그들의 주장과 대립했고, 그들은 결국 싸움을 일으키게 되었다.
결국 수석 디자이너 B의 중재로 싸움은 저녁 내기로 바뀌었다. 여직원 대 남직원! 과연 승리는 누구의 차지인가. 그들은 하나같이 흥미진진한 표정들이었다.
그 시간 로리는 대표실에서 심드렁한 눈을 한 채 마법영상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렇게나 작심하고 핀에게 데이트를 가자고 했건만, 핀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 절망에 빠진 것이었다. 가문이면 가문, 재산이면 재산, 미모면 미모, 젊음이면 젊음, 무엇 하나 아쉬울 점이 없던 그녀가 요즘처럼 절망적인 적은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면 뭐 하는가.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눈길 한 번 주질 않는데.
그녀가 보는 마법영상구에서 마침 요리절 특집 프로그램이 나왔다. 요리절은 사흘 간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사르제스의 명절이다.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요리절을 기념하기 위해 직접 황실을 찾아가는 전례 없는 일을 했다.
[황후 폐하가 이토록 친근한 음식을 만드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호호. 이것은 내가 어릴 적 어머니께서 많이 해주었던 거라오.]
황후는 프로그램에 직접 나와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또 그것을 황제에게 맛보게 하기도 했다. 황제는 아주 맛있다고 말하며 웃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마주한 방청객들은 환호를 했다.
하지만 정작 로리는 황제의 웃음이 어딘가 어설프다고 생각하며, 한쪽 입 꼬리를 씩 올려 비웃었다.
“참, 나! 맛없다고 온 얼굴에 써놓고선 웃는 것 봐라. 황제 폐하 너도 새 신랑 짓 해먹기 참 힘들겠다, 야…… 하필이면 저런 평범한 계집애한테 장가가서는 뭐하는 짓이냐? 뭘 보고 반한 거야, 대체? 쇼윈도 부부지? 그치? 내가 척 보면 척이라니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마법영상구를 꺼버렸다. 혼인을 치러 유부남이 되어버린 황제에게 미련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녀는 그저, 누군가의 즐겁고 행복한 한 때를 구경하는 짓 자체가 그저 배알이 뒤틀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영상구도 재미없고 이젠 뭘 한다? 저것들 감시가 좋겠군.’
그녀는 직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유리벽 밖을 보았다.
이미 직원들은 ‘구토기’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모의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들은 뒤늦게 출근한 핀을 한 자리에 앉혀두고 빙 둘러싸서 심문 아닌 심문을 퍼붓고 있었다.
로리는 핀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말자고 작심했었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집음 마법을 둘러 유리벽 바깥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수석 디자이너 B가 웃는 얼굴을 하면서 핀을 혼내고 있었다.
[에센, 말단직원인 주제에 너무 지각하는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핀은 사과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자신을 빙 둘러싸고 있는 직원들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아니, 일어나지마. 일단 앉아보라고. 혼내려는 건 아니고, 할 말이 있어.]
[무슨…….]
[앉아봐, 앉아봐.]
핀이 다시 자리에 앉자 직원들 모두가 그를 보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냈다. 그들이 너무 빽빽하게 핀을 둘러싸고 있는 탓에, 핀의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이게 된 로리가 눈을 찌푸렸다.
‘안 보여, 이것들아!’
답답하지만 잠자코 직원들이 무슨 작당을 하는지 이야기나 들어보기나 한다. 무슨 꿍꿍이로 저들이 저리도 핀을 둘러싸는지, 일단 들어나 봐야 참견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수상한 마력을 느낀 로리였다.
‘이 마력은 뭐지?’
사무실에서 가장 강한 마력을 가진 로리는, 뭔가가 핀의 근처에 있다고 느꼈다.
‘이 기분 나쁜 마력의 정체는 뭐지?’
그 마력의 정체는 수석 디자이너 B의 ‘구토기’가 가진 기본 마력이었다. 그나마 로리가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기에 ‘구토기’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로리보다 낮은 마력을 가진 핀은 ‘구토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핀의 성취향성이 궁금한 직원들은, ‘구토기’를 작동시켜 핀의 등 뒤에 몰래 가까이 놓아두었다. 이제부터 핀의 정신은 벌거벗은 것처럼 모두에게 노출된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런 상황을 모르는 핀은 직원들의 질문공세에 무기력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평범한 질문만 했다. 남동생이랑 산다는데 어디서 사는 거야? 어떤 요리를 잘 해? 대표님이 좋아, 싫어? 그러한 질문에 핀은 (구토기의 힘 때문에)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이얄 서쪽 지구에 삽니다, 가장 잘 하는 요리는 토마토 냉수프입니다, 대표님이 싫었지만 지금은 싫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질문의 대답이 나오자 로리는 ‘구토기’를 없앨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샌가 핀의 대답 하나하나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직원들이 뜸을 들이다가 진지한 표정을 했다.
[에센, 이제부터는 솔직히 대답해야 할 거야.]
[예?]
[뭐, 솔직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솔직해지겠지만.]
[아무튼 에센의 대답에 따라 오늘 저녁 값이 달려있다고.]
[아, 좀 조용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질문할 거니깐!]
짧은 웅성거림이 지난 뒤, 한 남자 직원이 무슨 중대한 일인 듯 질문했다.
[에센, 남자랑 키스해본 적 있어?]
핀은 머리가 백지 상태가 되었다. 형의 혼인식 전에 형과 키스를 한 적도 있었고, 라브에게 키스를 당한 적도 있었다. 난데없이 몰아친 남자와의 키스를 운운하는 질문에 핀은 순간, 알 수 없는 폭력성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망할 놈의 직원들이 전부 할 일이 없는지 왜 사람을 둘러싸고 이런 질문을 한담? 그는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직원들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진실을 말했다.
………?
진실을 말했다.
진실이 나오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해…… 본…… 저억…… 이…… 이…… 있…… 습…… 니……다.]
찝찝한 기분이다. 마치 누군가가 목울대를 건드려 강제로 진실을 구토하게 만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핀이 가진 약간의 마력은 그나마 자신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남직원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고, 여직원들은 허공으로 사라지는 저녁 값에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두 번째 확인 사살 질문이 핀에게 꽂혔다.
[남자? 누구?]
핀은 입을 막아야 했다. 더 이상 남자와의 키스에 대한 진실을 이대로 입 밖으로 터트려선 안 된다. 네, 저는 남자랑 키스했고, 그 상대가 제국 8대 황제인 히에라지엘이랍니다, 라고는 절대, 절대로 뱉을 수 없었다.
하늘이 쪼개져도 뱉어낼 수 없었다.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은 핀뿐만이 아니었다.
‘젠장, 멈춰! 듣기 싫어!’
로리 역시 귀를 막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집음 마법은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뇌로 전해져오는 것이다. 귀를 막아봤자 소용이 없었다. 귀에 시멘트 반죽을 바른다 해도 들리고야 만다는 게 문제였다.
[으읏, 이게 무슨…… 처, 첫 번째 키스는…….]
[꺄아! 첫 번째래!]
[두 번째 상대도 있다는 말이잖아!]
[시끄러, 에센이 진실을 말하려 하잖아!]
[처, 처, 처……엇…… 번째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말하기 싫은 핀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가려 했지만, 남직원 두 명이 우악스러운 힘으로 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려 못 일어나게 했다. 핀의 주먹은 울기 시작했고, 그 입은 진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현 황제라고 말해선 안 돼, 절대 안 돼, 아아…….
[제…… 친…… 흐…… 혀…… 형…… 님…….]
[꺄아! 근친! 금단의 사랑!]
[남동생이랑 산다더니, 형님이랑 사는 거였구나!]
[어머머머! 충격적이네!]
남직원들은 고양된 표정으로 다음 질문을 거침없이 던졌다.
[그럼 두 번째는 누구랑 한 거야? 응?]
핀은 혀를 깨물기 시작했다. 급기야 듣다 못한 로리가 대표실 밖으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무슨 짓거리들이야, 이 한심한 것들아!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할 시간에 드래곤이 좋아할 드레스 만들 궁리나 하라고! 바보 같은 것들!”
“가, 가…… 같은 학교…… 하, 하, 학우…….”
그녀의 입에서 폭언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진실은 나오고야 말았다.
“하아, 이 무슨!”
‘구토기’에 의해 진실을 쏟아버린 핀은 이를 악 물었고, 로리의 가슴은 커다란 바위를 얹은 듯 철렁 내려앉았다.
‘이봐, 핏빛 강철 검! 남자랑 키스라니! 그것도 친형님이라니! 학우라니!’
그렇지 않아도 핀을 포기하려 했던 로리였다. 핀이 토해낸 ‘사실’을 듣고 난 뒤 돌이킬 수 없는 큰 충격에 폭주를 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소리를 치는 그녀는 흡사 미친 개와 같았다.
“이런 망할 것들아! 다음 시즌 준비 안 해? 앙? 게을러터진 것들! 디자인을 그렇게 열성적으로 했어봐! 드래곤이 보물을 내려주며 좋아하겠다! 이 x같은 xx들! 왈왈…….”
그녀는 독한 말을 쏟아낸 후 대표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버림받은 여자처럼 가슴을 구슬프게 움켜잡았다.
‘뭐? 게이? 게이여서 내가 사냥을 가자고 했을 때에도 심드렁했던 거야? 그나저나 히에라지엘 황제, 그렇게 맹한 평민 집안 계집이랑 결혼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근친 동성애를 눈감아줄 만만한 여자가 필요했던 거야! 아까 마법영상구에서 본 황제의 표정, 제 아내의 요리를 먹던 그 표정이 왜 그렇게 썩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여자를 후리던 바람둥이 짓도 전부 동성애를 가리기 위한 속임수였던 거야!’
그렇게 오해의 골은 깊어져 땅 속을 팔 지경이었다. 불현듯 로리는 중요한 걸 깜빡했다는 걸을 깨달았다.
‘위험한 물건을 제거해야겠다.’
‘구토기’를 핀으로부터 멀리 치워버려야 한다. 핏빛 강철검의 정체를 알릴 수도 있는 물건을 그냥 내버려둬선 곤란하다. 아무리 핀에게 상처를 받았다고는 하나, 그런 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불과할 뿐이다. 대륙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전 황제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는 위험을 제국 귀족으로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 밖으로 나가 ‘구토기’를 찾아내어 그것을 발로 밟아 부수어버렸다.
“나쁜 것들! 누가 이딴 것 회사에 처 들고 오래? 잘리고 싶어, 이 바보 같은 것들!”
‘구토기’의 주인인 수석 디자이너 B는 사색이 되었다.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로리는 다시 대표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핀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다, 한 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후후후, 이대로 물러나란 법은 없지. 핏빛 강철 검…….”
그녀는 디자인 북을 펼쳐 어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섬세함도 없고 개성도 없으며 성의만 가득한 어떤 그림이 완성되어갔다. 갈색 머리카락, 새카만 색 정장을 입은 한 남자의 모습, 바로 핀의 모습이었다. 그 옆에는 왕관을 쓴 여자의 그림이 있었다. 핀라이트의 후(后)였던 리이라의 모습이었다. 그림에서 리이라는 죽기 전 모습 그대로 만삭이었다. 전 황제 내외의 주변에는 작은 남자 아이들도 있었다. 로리는 그림을 보고 야심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제국의 핏빛 강철 검이 누구겠어? 무려 전 황후를 네 차례나 임신시킨 다산 왕 아니겠어? 그 여우같은 히에라지엘이 제 동생을 후린 것이지, 강철 검 저 놈은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분명하다고. 내가 다시, 나의 섹시함으로 강렬히 유혹을 해버리면, 그는 다시 여잘 좋아하게 될 지도 몰라. 그동안 나는 너무나 소극적이었던 거지. 후후후…….’
로리는 유리창 밖 직원실을 보았다. 여전히 남직원 두 명이 핀을 빙 둘러싸고 서서 질문 을 퍼붓고 있었다. 핀은 남자와 키스한 사실을 뱉어버린 것에 당황한 나머지,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여운 시선으로 그 모습을 보던 로리는 다짐했다.
‘나 오늘 밤, 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모습으로 너를 제대로 유혹하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