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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97화 (9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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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웃으며 제 남편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핀이 했던 말 덕분이었다. 핀은 ‘히엘이 너무 기쁘면 사람을 낯설게 대한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히엘이 기쁨을 표현하기가 쑥스러운 나머지, 황후궁에 며칠 동안 들르지 않은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황제가 얼마나 바쁠 것인가. 마법사의 일도 병행하니 열흘 쯤 얼굴을 못 본다 해서 서운해 할 필요는 없었다.

히엘은 미안한 듯 웃으며 물었다.

“화 안내?”

“화라뇨?”

“내가 밉지 않아?”

“왜요? 그럴 수도 있죠. 다 이해해요.”

아내의 온화한 미소에 소름을 일으키는 히엘이었다.

‘광녀…… 웃으면서 화를 내는 중이구나!’

그는 하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화내지 마. 내가 그런 추태를 보이기 전에 말해줬어야지. 그게 뭐야. 나만…… 나만 이상한 아빠 됐잖아.”

하리는 바늘을 바늘방석에 꽂아두고, 히엘의 갈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낀 아내의 손길에 히엘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야 히엘이 언제쯤 눈치 채줄까, 궁금해서 기다려 보려했죠.”

“그럼 ‘주인님, 노예 놀이’ 못하겠다고 말하던 그때 헛구역질이라도 했어야지. 내가 너무 바보가 된 것 같잖아.”

“미안해요.”

“사과 하지 마.”

“…….”

“어설픈 남편이라 미안하다.”

하리는 남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깔끔히 면도된 부드러운 턱, 적당히 멋을 부린 머리모양, 시종들에게 관리를 부지런히 받으며 사는지 피부에는 반들반들 윤까지 나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근심걱정 없는 자의 얼굴이었다. 왠지 이 남자가 얄미워해진 하리는, 어설픈 남편이라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유감을 표했다.

“청혼은 뭐 안 어설펐던가요.”

“하리…….”

“아니, 뭐. 딱히 그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뒤끝 길다?”

“그런가, 그럼 뭐 뒤끝 긴 여자, 하지, 뭐.”

“참, 나.”

그들은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말없이 웃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을 수 있으면서 왜 열흘 넘게 끙끙 앓아왔던가.

히엘은 고개를 올려 하리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췄다. 하리도 고개를 숙여 히엘의 이마에 입 맞췄다. 히엘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하리의 배에 오랫동안 뺨을 비볐다. 바라만 보아도 흐뭇한 배였다. 그는 배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이렇게 엄마랑 아빠는 첫 부부싸움과 네 존재의 확인을 동시에 해버렸지 뭐예요. 얼른 커다오.”

하리는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고개를 든 히엘이 다시 하리의 입술에 키스했다. 열흘 동안 못 보았더니 그리움과 간절함이 많이 쌓여있다. 입맞춤 한 번에 온 몸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입술, 턱, 목덜미 곳곳에 입 맞추던 히엘은 어느 새 손으로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반쯤 드러내며 짙은 애무를 하려했다.

하리는 살짝 꾸짖는 눈을 했다.

“히엘…….”

하지만 목소리엔 달뜬 기색이 가득했다.

“네 가슴에서 벌써부터 아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아내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체취에 깊이 취한다. 부서져라 안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느라 미칠 지경이다. 황의에게 주의를 받았기에 다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오랫동안 입을 맞추며 흥분을 제어하려 노력해보는 것이었다. 간지러운 느낌에 하리는 몸을 떼려 했지만, 그럴수록 히엘은 더욱 달려들었다.

“폐하, 이러시면…… 그런데 바쁘지 않아요?”

“한가해.”

“근데 왜 이제야 온 거에요?”

“몰라. 지금은 그런 거 이야기 하지 말자.”

히엘은 ‘핀이 자극을 하고 갔던 터라 이렇게 와버렸다’는 솔직한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는 하리와 핀이 같이 즐기는 바느질도 꼴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테이블 위의 바느질 도구를 한 손으로 쓸어버리고 하리의 손목을 잡고 침대로 데려갔다.

“히엘, 왜 이리 다급해요? 황의가 주의하길…….”

“알아, 안다고. 그냥 손만 잡고 있을게.”

히엘은 하리를 눕힌 뒤 이불을 덮어주었다. 잠이라면 지겹도록 잔 하리는 일어나려 했고, 히엘은 그러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심각한 투로 말했다.

“황후. 진지하게 말을 들어주면 좋겠어. 가공간은 말 그대로 진짜 공간이 아냐. 내가 혹시 마력 운용이라도 잘 못해서 공간이 축소되기라도 한다면 어쩔 거지? 위험해. 앞으로 거기 가지 마.”

핀과 황후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싫어서 뱉는 순 거짓의 말이었다. 하리는 의아했다.

“폐하? 그럼 여태까진 어떻게 아무런 말씀도 않으셨던 겁니까?”

히엘은 질문을 못들은 척 제 할 말만 했다.

“바늘도 위험하니까 하지 말고.”

“무슨 말씀이에요, 태교로 바느질을 얼마나 많이들 하는…… 읍.”

바느질이 그냥 싫은, 무조건 싫은 히엘은 몸을 포개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하리는 버거워하며 히엘의 두 팔을 잡고 말렸다.

“히엘, 황의가 그러니까 분명 주의를 주었습니다만.”

웃으면서도 단호한 말이었다. 히엘은 겁을 먹고 말았다. 그런데 겁을 먹으면서도 왜 자꾸만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만지는 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리는 약 올리듯 웃는 히엘이 야속했다.

“아…… 히엘, 만지지 말라니까요.”

“잠깐만.”

잠깐만, 가만히 있어봐, 좋게 해줄게…… 히엘은 능글맞게 속삭이며 하리의 쇄골에 입 맞추고 여기저기를 간질였다. 결국 하리는 저항을 그만두고 히엘의 머리를 안았다. 그녀 역시 그동안 남편이 너무나 보고팠었기에, 계속 밀어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부드럽고 달콤하며 야릇한 입맞춤이 점점 진해져간다. 히엘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워졌다. 긴 손가락들이 풍만한 가슴을 터트릴 듯 움켜잡자, 하리는 가쁜 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막았다.

“너무 거칠잖아요. 진짜, 이젠 안 돼요.”

“아니, 아니지. 생각해봐.”

“……?”

“태어나면 나는 한동안 손도 못 댈 텐데, 그 전에 내가 많이 빨기라도 해야 덜 억울하지 않겠어?”

하리는 목, 뺨, 귀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분명 함께 ‘주인님 놀이’를 즐기고, 이런 저런 야릇한 일을 많이 해왔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인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투정을 부리는 아이 같은 히엘의 표정이 모성애를 묘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라고? 아이가 태어나면 손을 못 댄다고? 어째서? 하리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하, 하지만…… 태후께서 유모 알아보라고 하셔서 요즘 고르는 중인데…….”

“하리가 줘.”

“그래도 돼요?”

“안 될 게 뭐가 있지?”

히엘은 유모와 보모의 손에 길러졌고, 강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 수련에 임한다고 제국 곳곳을 떠돌아니던 과거가 있어서 부모와 함께 했던 시간이 적었다. 그를 키운 것은 99%의 타인들과 1% 부모들의 엄한 말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늘 사람의 온기와 관심에 목 말라했다.

“예전에 수련생이던 때, 잠시 마법 재료를 직접 구하고 수업을 듣기 위해 평범한 사가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지. 그때 알았어. 사람들이 제 손으로 아이를 직접 키운다는 것을. 하리에겐 평범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겐 꽤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육아인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싶어.”

“황족이 쓰기엔 가벼운 말투를 쓰신다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응, 그렇지. 여하튼 나는 내 아이가 자연스럽게 컸으면 좋겠어.”

하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히엘은 그녀의 가슴을 느른하게 주무르며 재촉했다.

“어쨌든 지금 너무 참기 힘든데.”

“무슨…… 읏…….”

귀한 과일을 베어 물 듯 가슴이 천천히 삼켜진다. 하리는 짜릿하게 번지는 자극에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히엘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가슴을 핥고 주무르고 비틀다가 앙가슴에 입술을 깊이 박아버렸다.

하리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뽀얀 살결을 부드럽게 지분거리던 입술과 혀는 어느새 가슴에 피어난 붉은 꽃잎을 머금고 깊게 빨아 당기고 있었다.

“아, 히엘…….”

목소리마저 야릇하다. 히엘은 고개를 들어 하리를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눈빛은 완전히 안개처럼 흐리멍덩해져 있었다. 목소리 또한 매우 갈라져있었다.

“미치겠다.”

“폐하, 이 이상은 이제 자제를 하심이…….”

하지만 히엘은 그녀의 말을 못들은 체하며, 손을 풍성한 드레스 안으로 넣고 있었다. 손가락이 은밀한 계곡을 찾으려는 집요하게 움직이자 하리는 다리를 오므렸다.

“이 이상 만지면 정말 화낼 겁니다.”

“안 만져. 그냥 보는 거거든. 얼마나…… 젖었는가 하고.”

“아, 안 돼!”

주인을 닮아 인내심이 부족한 손가락은, 이미 그녀의 샘에 닿아 자극적으로 그 입구를 건드리고 있었다. 입술을 꽉 다물고 눈을 감는 하리의 표정을 보고 히엘은 즐거운 듯 웃다가 짓궂게 말했다.

“안되긴, 지금 얼굴에 미칠 것 같다고 쓰여 있어.”

“히엘…… 아.”

쉽게 달아오른 하리는 이미 손가락만으로 작은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색색거리는 숨결마저도 사랑스러워 히엘은 키스를 하며 그 숨결을 모두 마셔버렸다. 그 뒤 고개를 떼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가자. 저기로.”

손을 빼낸 히엘은 그녀를 일으켰다.

“어디를요?”

“씻겨줄게.”

젖은 것은 네레크(정화마법)를 써서 깔끔하게 만들면 될 일이다. 굳이 욕실로 데려가 씻겨준다는 행동을 하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히엘은 그녀의 옷을 벗기며 쿡쿡 웃었다.

“그렇게 보지 마. 목욕만 할 거라고.”

“진짜요?”

“응.”

“그럼 비켜주세요. 제가 알아서 벗을 게요.”

“큭, 응.”

널찍한 욕조에는 언제나 향가루를 뿌린 물이 채워져 있었다. 욕의를 입은 하리가 욕조에 들어가길 머뭇거렸다.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히엘은 피식 웃었다.

“웃겨. 안 어울리거든, ‘주인님’?”

“아, 하지 마…….”

주인님의 인격과 수줍음 많은 아냐의 인격은 각각 높은 담을 쌓은 채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히엘은 그녀의 이중인격이 재미있었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아무튼, 잠깐 여기 앉아봐.”

하리를 대리석 의자에 앉히고 자신의 거추장스러운 제복을 벗는다. 하지만 셔츠까진 벗지는 않았다. 그는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물을 한 바가지 펐다. 의자에 앉은 하리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이런 저급 마법을 쓰는 날이 올 줄이야. 흠.”

히엘은 바가지에 있는 물을 씨앗처럼 밖으로 튕겨댔다. 허공으로 퍼진 물방울과 물줄기들은 찰나의 형태를 유지한 채 정지되었다. 마치 유리구슬, 유리 조각들이 허공에 떠 있는 듯했다. 그것들이 곧 하리의 몸 주변을 둥글게 감싸기 시작했다. 히엘은 마법명을 설명해주었다.

“워터링이야. 편하고 재미있게 목욕하게 될 거야.”

히엘은 워터링에 위에 푸른색 광구를 만든 뒤, 하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복잡한 마법어를 중얼거렸다. 얼마 후 물줄기는 하리의 어깨 높이로 위치가 재조정되었고, 곧바로 적당한 온도의 물이 안개처럼 미세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리는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에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히엘이 무릎을 굽힌 채 셔츠가 젖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향료를 퍼프에 가득 부었다.

“욕의 같은 건 그냥 벗어. 걸리적거리는데.”

부끄러워진 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퍼프에 거품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욕의를 벗지 않는 아내의 고집이 미운 히엘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주인님 진짜 왜 이러실까?”

“주인님 소리 좀 그만해요! 아이가 듣겠어요!”

“들으면 어때. 애가 뭘 알겠어? 엄마, 아빠가 오붓하게 티격태격하는구나, 하겠지, 뭐.”

히엘은 하리의 욕의를 부드럽게 벗긴 뒤 퍼프 질을 하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촉촉한 솜이 온 몸을 간질이는 느낌, 거기다 히엘의 사랑스러운 시선을 느낀 하리는 그만 온 몸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미치겠네.’

히엘은 다정하게 속삭였다.

“이제 맨날 이렇게 씻겨줄게.”

“폐하, 시종들은 멋으로 있습니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시종들 다 잘라버릴까? 생각해보니 황제 같은 거 너무 지루해. 재미없어.”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히엘은 하리의 가슴에 거품을 묻혔다. 짙은 수증기에 히엘의 몸도 거의 다 젖어버렸고, 그의 갈색 머리카락은 완전히 젖어 검은 색처럼 보였다. 그 머리카락 사이 눈동자는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아주 진지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내의 가슴을 핥으며 미치겠다고 하던 그는, 어느새 진지한 태도로 아내를 씻기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특히나 배에 거품을 칠할 때에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경건해보이기까지 한 그 표정, 수증기만큼이나 짙은 행복감이 하리의 가슴속에 차올랐다.

“히엘.”

“응.”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같은 대답을 들을 줄 알았던 하리는 조금 충격을 받게 된다.

“진짜? 그럼 이 뱃속의 아이가 좋아, 내가 좋아?”

***

레이디 로리의 수석 디자이너 B의 취미는 조금 특이했다. 그녀는 인간의 심리, 마법, 오컬트에 관련한 모든 것을 탐구하길 좋아했고, 신비로운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을 하는 것도 즐겼다. 가령 사람의 잠재의식을 모조리 볼 수 있는 거울이라던가, 먹으면 거짓말만 하게 되는 캔디 등, 그런 신비로운 물건을 수집하고 실험해보길 좋아했다.

그런 그녀가 요즘 애용하는 물건은 바로 ‘구토기’라 불리는 장난감이다. 괴상한 이름을 가진 그 작은 물건의 기능은,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숨겨진 진실, 추잡한 진실이라도 ‘구토기’ 앞에서는 모두 밝혀진다. 그래서 ‘구토기’는 범죄 수사에도 자주 이용되곤 했다.

B는 매일 같이 그 물건을 가지고 레이디 로리로 출근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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