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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82화 (8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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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내외의 혼인식 축제기간이라 밤하늘에서 소리 없는 마법의 폭죽이 쉴 새 없이 터지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배려로 은은한 멜로디도 궁 안에 감미롭게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히엘은 그런 것들이 다 정신 사납게 느껴질 만큼 기분이 최악이었다.

‘숨바꼭질 하자는 거야, 뭐야!’

물론 자신이 아침부터 고자 될 걱정이나 하며 아내의 속을 긁어놓긴 했다. 그러나 부부일수록 그런 것은 숨기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찌 됐든 이런 식으로 숨바꼭질을 하는 것은 속이 타고 시간이 아까운 일이었다. 그는 어느새 중앙궁 지하의 와인 저장고까지 갔다가, 하리가 보이지 않자 씩씩 거리며 황후의 시종들을 전원 퇴궁 시키려 했다.

그때였다.

“황제 폐하! 황후 폐하를 찾았습니다!”

“그래, 어디 있지?”

“황후 폐하께서는 지금 마활궁에 계십니다!”

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마활궁. 혼인식 기념 휴가로 마활들이 자리를 비운 그곳은 아무도 들르지 않는 곳이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장소 중 왜 거기 숨어있는지? 궁금해진 히엘은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걷는 시간도 아까운 그는 마법으로 이동을 했고, 복잡한 실험실 곳곳을 찾다가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하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리!”

하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법 영상구를 앞에 두고 전송판에다가 무언가를 열심히 입력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 제 남편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히엘은 그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노기 띤 목소리로 외쳤다.

“대체 황금 같은 시간에 지금 여기 숨어서 뭘 했던 거야!”

그가 마법 영상구를 빼앗아 들고, 그녀가 만지고 있던 전송판까지 빼앗으려 하자, 그녀가 필사적으로 막으며 외쳤다.

“잠깐만! 내버려두세요!”

히엘은 기가 찼다.

“적던 것은 마저 적어야 한다고요!”

그녀는 전송판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자신이 하던 것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히엘은 그녀가 무얼 하나 싶어서 마법 영상구 화면을 구경해보았다.

[폐하사랑 - 아, 그때 그 드래곤 뒤에 세 미남 중에 흑인, 그 남자가 바로 폐하의 몰래 낳은 아들이 맞다니깐. 마력 성장으로 커서 그렇게 어른처럼 보이는 거라고.]

폐하사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의 말에 하리가 전송판에다가 분노의 입력을 하기 시작했다.

[제국의국모 - 폐하께서 몰래 보신 아들이라니? 감히 당신이 어떻게 알아? 유전자 검사라도 해봤어?]

[폐하사랑 - 당신이야 말로 어떻게 그 흑인 남자가 폐하의 숨겨둔 아들이 아니란 걸 확신해? 당신이 무슨 진짜 제국의 국모라도 돼?]

[제국의국모 - 그래! 나 황후다, 어쩔래! 어디 한 번 궁에 잡혀 와서 혼나볼래, 엉?]

[폐하사랑 - 웃기시네. 그럼 어디 잡아가보시던가. 황족 사생활 침해 명예 훼손 뭐 그런 걸로 잡아가! 잡아가보라니까? 꼭 신고할 것도 아닌 것들이 저렇게 입만 조잘거려요.]

[제국의국모 - 좋다. 너 어디 사냐. 당장 주소 불러! 우리 남편이 황제거든!]

[폐하사랑 - 아주 제대로 미친년 났네]

마법 영상구 속 커뮤니티 사용인에게 ‘미친년’이라는 욕을 들은 전직 광녀 하리의 혈압은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녀가 전송판을 부서뜨릴 기세로 또 무언가 대꾸를 하려고 하자, 보다 못한 히엘이 그녀로부터 전송판을 빼앗아버렸다.

“주세요, 폐하!”

“여태 이런 거 하느라 안 온 거야?”

“하지만 혼인식을 하기 몇 달 전부터 저런 소문들이 돌았단 말이에요!”

“그 흑인 남자는 히든이라고 말했잖아. 마력이 너무 뛰어나서 머슈타트 광산에서 데리고 온 아이라고 전에도 말했었어. 그런데 뭐가 더 필요해? 나 피부 하얘. 백인인데 어떻게 오리지날 흑인 애를 낳느냐고!”

“하지만 사람들이 폐하를 자꾸…….”

“가지.”

히엘은 전송판과 마법 영상구를 저 구석에 모두 던져버리고 하리의 손목을 잡았다. 싸늘해진 히엘의 표정은 실망에 물들어 있었다. 하리는 그에게 항의했다.

“폐하께서는 저런 안 좋은 소문이 도는데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맨날 돌고 도는 게 황족 귀족들 루머들이야!”

“그렇다고 아무런 대응을 안 하셔도 되는 거예요?”

“무슨 대응? 내버려두면 다시 다른 루머들이 나타나서 싹 사라지는 걸, 뭐! 그건 그거고, 어째서 아무런 시종들도 없이 혼자 산책을 나간 거야?”

그러자 하리가 시무룩한 표정을 했다. 시종들은 너무나 불편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은밀한 험담과 시기에 젖은 눈빛으로 하리를 따돌렸고, 하리가 그들과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라 생각했다.

“왜 혼자 다니느냐고 묻잖아?”

“제 집에서 제가 혼자 다니는 게 뭐 어때서요?”

“뭐? 여기가 얼마나 넓은 줄 알아?”

“알아요, 두 달 간 폐하께서 안 오셔서 혼자 실컷 잘 구석구석 돌아다녔다고요!”

“하리는 황후야. 일개 귀족가의 부인도 혼자 다니진 않아.”

“폐하께서는 혼자 잘만 다니시잖아요!”

“그야 여긴 내 집…….”

내 집이라 그런다고 말하려던 히엘이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 역시 곁에 따라 붙어서 하나하나 다 시중하려 드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지긋지긋해서 순간이동을 밥 먹듯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이 가능하고 혼자 몸을 지킬 수 있는 자신이 있어서 하는 행동이었다. 하리는 달랐다.

“배운 예법대로 행동해줬으면 좋겠어. 나랑 있을 때는 얼마든지 편히 지내도 되지만, 하리는…… 내 아내만 되는 게 아니잖아.”

“네.”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하리였다.

“이제부터 황후답게 처신하겠어요.”

“그…… 래.”

“그리고 다음부터는 제가 가봤자 궁 안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히엘은 미안하여 잡은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리고 사과했다.

“소리쳐서 미안.”

하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벌써 밤이라, 하루가 그냥 지나간 것 같아서 화가 나서 그랬어.”

“어차피 평생 얼굴을 보고 지낼 사이잖아요.”

“평생 휴가는 아니잖아?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 날들이 일 년에 몇 번이나 될 것 같아?”

황제에게 주어진 일들은 앞으로도 산더미일 것이다. 예전의 핀이 그러했듯이 전쟁을 나가야 할 것은 아니지만, 큰 마력을 가진 이상 마활들 일에 뒷짐 지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에는 황제의 업무와 마활 시절의 일들을 함께 해야 할 것이 히엘의 운명이었다.

“침소로 돌아가자.”

“잠깐.”

“응?”

“마법이동 싫어요.”

“걸어가자고?”

하리는 고개를 두 번이나 끄덕이며 산책에의 소망을 드러냈다. 못할 이유가 없지. 히엘은 하리의 손을 잡고서, 방울꽃이 가장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황후궁으로 향했다.

마활궁과 황후궁은 가까운 편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걸어가는 황제 부부의 걸음걸이가 너무나 조용한 탓인지, 청소부들이 그 기척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저들끼리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어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내용이 문제였다.

“멍청해 보이고 뒷배도 없어서 불쌍하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부럽긴 해. 그치?”

“응. 일개 평민 주제에 완전 횡재한 거잖아.”

“그런 평범한 여자가 황후가 될 거였다면 나도 신경 쫌 쓰는 건데, 응? 폐하께 말이야. 호호호!”

“그나저나 그 흑인 마활 히든이 폐하의 아들이 확실하다면서? 마력 성장이라 그렇게 크다던데…… 그러고 보면 황후 해먹기도 못할 짓이야.”

하리의 얼굴이 굳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히엘은 청소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씩 웃다가, 갑자기 마력을 사용했다. 주변의 수증기를 응집시키는 간단한 초보 마법이었다. 곧 청소부들의 머리 위로 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갑자기 나타나 황제를 본 그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히엘은 작은 전격마법을 추가하여 번개를 일으키며 유치할 만큼 우스꽝스럽게 외쳤다.

“우르르쾅쾅!”

황제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청소부들은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꼈다. 그들은 예를 갖추며 자신들의 가벼운 언사를 사죄했다.

“계신지도 모르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황제 폐하!”

히엘은 픽 웃었다.

“계신지도 모르고? 그럼 내가 없을 땐 계속 그런 소릴 지껄이겠단 말이잖아. 너희들 궁 생활 규정이 어디보자…… 투시 가늠 좀 해보고. 시종서 14조 8항, 황족의 사생활에 대해 함구한다. 이를 어길 시 퇴궁 조치 및 그 소문의 파장에 따라 태형에서 황족 재량에 따라 소멸형을…….”

“폐하! 살려주십시오!”

히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살려줘? 아까는 너희들 스스로 죽을죄를 지었다면서?”

“두 번 다시는 그런 망발을 하지 않겠습니다!”

“망발인 걸 알면서 꼭 하는 게 문제지. 음.”

“폐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응? 그런 수다로 스트레스 풀 만큼 너희 일,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잖아? 어떤 방식으로 죽고 싶어? 친절하게 들어줄게.”

듣다 못한 하리가 히엘의 팔을 살며시 잡았다.

“폐하, 저들을 내버려두십시오. 저는 처벌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자 히엘이 하리를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황후, 그게 무슨 말이오?”

“…… 예?”

“저들이 발설하는 것은 나에 대한 소문들인데, 어째서 짐이 아닌 황후가 처벌을 한다, 만다 하는 겁니까?”

“그게, 저…….”

“물 번개 맞은 것들은 들으라.”

“예, 폐하!”

“그저 살려만 주십시오!”

히엘은 항간에 떠도는 자신에 대한 귀찮은 소문을 싹 잠재울 겸 묘안을 꺼냈다.

“처벌이 싫으면 마법 영상구 게시판에 떠도는 방금 그대들이 뱉은 소문과 같은 말들이 하나도 없도록 청소하라. 만약 그 청소가 성가시다면 어디 마활 탑과 나의 관계를 밝혀 서류로 제출해보든지.”

그 말은 곧 현재 마활 탑으로 있는 흑인 청년 히든과 황제 자신의 혈연관계를 증명해보이라는 말이었다.

“폐하, 무엇이든 분부하신 대로 하겠나이다.”

“얼른 썩 정원 문 닫고 나가버려.”

그들은 목숨만은 건졌다고 안도하며 줄행랑쳤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히엘은 하리를 보며 굳은 표정을 활짝 폈다.

“말 안 듣는 것들은 이렇게 다뤄야 해. 알겠어? 그냥 죽여 버린다 하면 그 노동력이 아깝잖아. 죽일 땐 죽이더라도 청소는 시켜놓고 죽여야지. 그래야 일과 업무를 동시에 하는 청소부로 길이길이 남을 거 아냐.”

하리는 눈이 커졌다.

“폐하! 정말 저들을 죽이실 생각입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도 아니고. 괘씸하긴 하지만, 시종 하나 만드는 것도 수고가 꽤 든다고. 시종 쟤네들, 엘리트야. 나름.”

“아…… 헉!”

하리는 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작스럽게 히엘이 손목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바람에 끌려가듯 발을 빨리 놀렸다. 히엘이 데려간 곳은 방울꽃 꽃밭이었다. 드넓은 꽃밭 가운데에는 작은 잔디밭이 담요처럼 펼쳐져 있어 눕기 딱 좋았다.

하리는 놀랄 새도 없이 잔디 위에 눕혀졌다. 그녀의 붉어진 귓가에 히엘이 뻔뻔한 말을 속삭였다.

“달도 예쁘게 떴고, 하늘에 하리가 좋아하는 폭죽도 많이 터지는데…… 하늘, 보면서 할래?”

야외에서 색사를 즐기려는 그의 말과 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리는 질겁했다. 이렇게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대체 뭘 하잔 말인지. 시종들이 자리를 떠났다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다. 담 밖으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히엘이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여 일어날 수 없었다.

“폐하. 어떻게 여기서…….”

“왜? 아무도 없어.”

“하지만 누가 올지도 모릅니다. 황후답게 행동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자고 하시는 건지.”

히엘은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허상마법에는 자신 있었다. 여차하면 꽃밭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투명하게 하는 마법을 이용하여 그 누구도 볼 수 없게 할 수도 있었다.

“오라고 해. 휴가 나간 마활들 아닌 이상 눈치 못 챌 걸.”

“그게 무슨 말씀이죠?”

“마법은 만능이란 말이지. 아무도 우리가 무슨 짓 하는지 안 보일 거야. 우린 걔들이 보일 테지만. 그런 게 또, 묘하게 긴장되고 좋지 않아?”

그의 차갑고 기다란 손가락이 하리의 부드러운 턱을 애무하듯 이리저리 천천히 돌렸다. 하리의 입술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별처럼 빛이 났다. 노골적인 눈빛에 하리가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근데, 소음 차단은 안 둘러놓을 거야. 네가 소릴 참는 모습은 꽤 예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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