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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80화 (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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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각 로리는 아카데미 시절 자신을 더러운 똥개라 불렀던 중하위 귀족 동창생들의 모임을 직접 소집, 참석 중이었다. 렌키스의 로리 시리즈의 패션쇼가 곧 아이얄 패션 스트리트에서 성대하게 치러지는데, 대표가 되어 손 놓고 아무런 손님도 끌지 못하면 욕을, 정확히는 마담 젤레테스의 매를 벌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표의 자격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영업행위를 해야 했다.

자기 딴에는 피눈물 삼키는 업무였지만, 동창생들에게는 성가시고 일방적이기 짝이 없는 패악으로 비춰질 뿐이란 것이 문제였다.

“그날 이뤄질 경매 중 작위가 낮은 것들은 입찰할 생각도 하지 마. 알겠어? 우리 브랜드는 대륙 최강의 생물체에게 공물로 들어갈 패션들을 내세운다고. 다들 알아서 주제를 파악하고 노리란 말이야. 아, 그리고 그 날 드레스 코드는 보라색으로 결정했으니 그걸 지켜. 우리 레이디 로리 컨셉이 보라색이니까. 그렇다고 촌스러운 자줏빛 보라면 죽는다, 너네?”

로리보다 하위 귀족인 동창생들이 무언의 욕을 쏴댔다. 똥개, 더러운 똥개, 불러놓고 제 할 말만 하는 똥개, 사람을 성가시게 하는 똥개 새끼! 그들은 그저 로리가 대공의 딸자식인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그 신분만 아니면 어디 구석에 몰아넣고 사흘 밤낮 매타작을 해도 속이 시원찮을 존재가 바로 로리였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로리는 귀찮은 중하위 귀족 상대영업이 끝났다 생각하며 마지막 와인을 우아하게 마셨다. 한참 후, 발그레해진 로리의 볼을 본 동창생들이 모종의 음모를 생각하며 의뭉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럼, 쇼에서 보자고.”(너희 그 날 모두 와라.)

“부디 살펴 가십시오.”(가다가 칼이나 맞아라.)

“그날의 멋진 모습, 기대하겠습니다.”(그날 관객 없어서 죽상을 지을 네 모습을 못 볼 것 같아 아쉽구나.)

로리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을 한바탕 골탕 먹이려 하는 패거리들이 작정하고 있다는 것을. 비록 로열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녀였지만, 학창 시절에 그녀에게 수많은 수치와 모욕을 당한 동창생들이 그 수가 무려 10명이 넘었고, 그들은 오늘을 똥개 훈련의 날이라 명명하며 잔뜩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창생들의 팀명은 ‘똥개 조련사들’이다. 그들은 로리가 부리는 시종과 마차를 먼저 되돌려 보낼 수법을 쓸 작정이었다. 로리의 호위 기사 저스티스? 그는 이미 수면제를 탄 음료를 마시고 마구간 짚더미에서 쿨쿨 자는 중이었다.

로리는 거나해져선 자신이 데려온 종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가 혀 꼬인 목소리로 저스티스와 시종과 마부의 이름을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대답하는 이 하나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니, 히것들히 다들 허디 간 거햐?”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공의 영애가 그러든가 말든가 각자의 마차를 타고 우르르 귀가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연회장에는 로리와 뒷정리를 담당하는 연회장의 직원들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있었다. 로리의 앙칼진 외침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히것들이 다 허디 처박혀손! 빠져가지고는!”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 시종들, 호위기사. 화가 난 로리는 취기를 이용하여 용감한 패기를 발산시켰다.

“너희들히 헙서도 홍자 걸허간다하!”

때마침 황제의 혼인식으로 곳곳이 축제 분위기여서 거리가 밝았다. 그녀는 취중에서도 술 취한 자신의 모습을 평민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나름 생각이란 것을 했다. 어느 방향의 길이 밝지 않을까? 어느 길이 가장 덜 붐빌까? 그녀는 흐린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고, 행인이 가장 적어보이는 서쪽 방향을 택한 뒤 구두를 벗고 걷기 시작했다. 취한 탓에 걸음걸이가 관절염 걸린 오리와 같았다.

그러나 그녀를 골려주고자 하는 ‘똥개 조련사’들 중에 배신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 이름 베니안 쥴 나트러스. 그는 나트러스 자작가의 외아들로 로리의 미모에 3년 전 부터 흠뻑 취해서 로리가 하는 그 어떤 패악도 눈감고 따라주어 호구라 놀림 받는 남성이었다.

오늘 그는, 이 상황을 알뜰하게 이용하기로 했다.

“영애. 그 방향은 대공저의 방향이 아니잖습니까?”

“끄억…… 뭐니, 넌?”

“베니안 쥴 나트러스입니다.”

“그게 뭐냐고.”

베니안은 자신을 모른 척 하는 로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술이 취했기로서니, 3년간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수업을 들어놓고서도, 뿐만 아니라 매일 자신을 종 부리듯 부려놓고서도, 누군지 모른 척 하다니! 여간 깍쟁이가 아니라며, 베니안은 은근슬쩍 그녀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공저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나트러스가의 마차가 그들을 천천히 따라왔고, 로리는 베니안이 제 허리에 손을 감자 악다구니를 쓰며 그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히 무례한 남자가! 허디 하급 귀족 주제헤 내 몸헤 손을 대긴 대! 못생긴 주제헤!”

마부와 시종들 앞에서 못생겼다는 욕을 듣고 뺨을 맞게 된 베니안은 체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졌다. 워낙 더러운 똥개로 알려질 만큼 성격이 고약한 로리라는 걸 그가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은 귀족가 자제다. 그런 귀족가 자제를 그 시종들이 보는 앞에서 욕설을 하며 모욕을 하는 행위는, 아카데미 때에도 한 적이 없었다.(그때는 지금처럼 술에 취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화가 나고 상심한 베니안은 로리의 손을 세게 잡았다.

“많이 취하셨습니다. 이렇게 걸으셔서는 절대 공저로 못 돌아가십니다.”

“놔, 한 놔? 하우, 진짜! 깎다 만 감자같이 생긴 게!”

“영애! 집에 가기 싫으십니까!”

베니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태 모친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러한 큰 소리를 듣고 살아본 적 없었던 로리였다. 그녀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고개를 비틀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품위 있게 마차에 올라 공저로 돌아가자고 하는 겁니다!”

“지금 날 가르치는 거야?”

3년 내내 참고 살아온 베니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애써 참을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한적한 밤 길거리에다가 술 취해 제정신이 아닌 로리에게 굳이 왜 참아야 하나?

“좀 가르쳐 드려도 되겠습니까? 술이 깨시면 모두 잊으실 테지만 영애는 사실 무례함의 정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그러니 제가 사랑으로 가르쳐드리겠…….”

베니안의 말은 중단되고 말았다. 화가 난 로리가 손에 들고 있던 뾰족한 힐로 베니안의 온 몸을 사정없이 구타했기 때문이었다. 베니안의 시종들과 기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련님이 고관의 영애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으니 말리긴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인 남성인 도련님을 몬스터도 아닌,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로부터 구해내려 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우스운 상황은 금방 끝났다. 누군가가 때마침 그들 곁을 지나갔기 때문이었는제, 그는 아들에게 만들어줄 요리 재료를 살 겸 산책에 나서던 핀이었다.

핀을 본 로리는 구타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듯 외쳤다.

“헛!…… 무, 물러나라, 썩흔 감자!”

그녀는 힐을 주섬주섬 신고 베니안을 마차 쪽으로 내쫓듯 발로 툭툭 차기 시작했다. 베니안은 로리의 갑작스런 행동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핀을 살펴보았다. 훤칠하고 준수하게 생긴 남자, 평민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그런 남자를 보면서 로리가 평소의 건방진 태도를 버리고 움츠러들고 있자, 베니안은 의아했다.

“아니, 영애. 어째서 저런 평민을 보고 그러시는 겁니까?”

그러자 로리가 혀 꼬인 목소리로 배니안의 귓가에 대고 으르렁거렸다.

“빨리 안 꺼져? 추행범으로 신고해버린다?”

베니안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했다. 시종들 앞에서 여자에게 맞은 것도 충분히 체면 구기는 일인데 추행범으로 신고 될 수야 없었다. 그것은 나트러스 자작가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다.

그러나 물러날 땐 물러나더라도, 중요한 것은 짚고 넘어가야 했다.

“영애. 갈 땐 가더라도, 저 사람이 누구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로리는 답답하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으, 왜 즈 분을 몰라, 모르긴? 즈 분은 그 느그도 알아선 안 되는 제국의 핏…….”

조용히 두 사람을 지나쳐 가고 싶었던 핀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큰일이다. 그녀의 주사 때문에 정체가 발설될 위기에 처했다! 핀은 그녀의 말을, 그 무슨 말을 해서라도 필사적으로 막아야했다.

“허, 그러니까 즈분이 그 느그도 알아선 안 되는 제국의, 그, 허, 제국의, 핏빛 강철…….”

“사랑합니다!”

결국 나온 말이란 게 그런 엉뚱한, 본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랑고백이었다. 길가는 청년이 난데없이 로리에게 사랑 고백을 하자, 보고 있던 베니안의 눈이 커졌다.

술 취한 로리는 끊임없이 주사를 부렸다.

“썩은 감자 너 깟 것은 감히 알현하기도 힘든 전대 황…….”

“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빨리 여기서 꺼질 거 아니면 얼른 썩은 감자 너도 예를 갖추어서 핀라이….”

“신분 따윈 얼마든지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아가씨를 놓지 않을 겁니다!”

어쩔 수 없이 핀은 로리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고 자신의 품에 안으며 금단의 사랑극을 찍기까지 했다.

‘젠장! 이렇게 귀찮아질 줄이야!’

일관성 있게 주사를 부리는 로리는 핀에게 있어 그야말로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핀은 자신에게 에드립에 능한 희극 배우의 기질이 있다며 그 상황에서도 속으로 감탄을 하고 말았다. 베니안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대략 어떤 관계인지 짐작했다는 듯 마차에 올랐다. 지고지순하게 3년간 로리를 사랑해온 그였지만, 갑자기 나타난 미청년의 패기어린 고백에 흔들리고 있는 로리의 눈빛이, 베니안에게 이 사랑을 포기하라 일렀기 때문이다.

“영애, 행복하시오.”

“너 히 무례한 썩흔 감자, 감히 힌사도, 우리 폐…….”

“아가씨를 절대, 절대 놓지 않을 겁니다!”

온열석을 수건으로 감아두었던 핀의 가슴이 사정없이 쿵떡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정체가 탄로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핀으로부터 아가씨를 놓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은 로리는 풀린 눈으로 그를 한창 응시하더니, 혀 꼬인 목소리를 냈다.

“폐하가 아닌가아?”

“후우…….”

베니안의 마차가 떠나고 난 뒤 핀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로리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짜증이 몰려와 들고 있던 식재료 봉투를 신경질적으로 구기며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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