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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74화 (7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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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어요.”

“꿈이라니?”

“실은 어머…….”

세드릭은 꿈에서 어머니인 리이라를 만났다. 그녀는 악과 한에 받쳐 제 아들에게 아버지를 죽이라고 울부짖었었다. 소년은 그 꿈이 불길했다.

그리고 늘 불안을 태평함으로 가장하는 듯 구는 제 아버지도 신경 쓰였다.

“무슨 꿈인지 말해줄 수 없는 거야?”

“예. 아버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일단 그런 것은 넘겨두고 제 말을 들으세요. 아버지께서는 절대 혼자 계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아버지를 지킬 호위병도 매우 중요하지만,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분도 이제부턴 중요해질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아직 스물다섯 살이시잖아요? 그러니 앞으로 절대 연애를 안 한다는 보장도 없을 테고.”

“티에리아.”

핀은 아들의 본명을 부르며 횡설수설을 막은 뒤, 그 근심 가득한 작은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천천히 쓰다듬다가 갑자기 이불을 내려 제 가슴을 보여주었다. 세드릭의 눈이 커졌다. 소년은 제 아버지의 가슴위에 수건으로 고정시켜놓은 온열석을 보고는 궁금증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연애라니. 난 지금 이거 추스르는 것도 힘들어.”

“그건 뭐죠? 다치신 거예요?”

“몸이, 그러니까 심장이, 다시 돌아왔다. 히엘이 찾아주더군. 그래서 이레 동안 쉰다고 한 거야.”

“그랬던 거군요.”

“너도 알다시피 난 바빠. 나름 이 삶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기도 하고. 연애 같은 문제는 네가 신경 쓰기에는 아직 좀 이르지 않을까 하는데.”

“여자 친구든 뭐든 아버지한테는 아버지를 지켜드릴 분이 필요해요!”

“난 내가 지켜. 여태 그렇게 살아왔고. 호위병사 같은 것도 필요 없어.”

“아버지는 아무것도 몰라요!”

갑자기 팽 화를 내며 돌아서는 세드릭을 핀이 놀란 눈으로 봤다.

“아버지는 절대 혼자 계셔선 안 돼요! 불길하단 말이에요! 위험한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에요!”

“어째서? 무슨 말이야?”

“아니, 됐어요! 그냥 잊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정체를 숨기시며 사셔야 하는 이유를!”

수많은 죄를 저질러 온 사람이었기에, 불안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혼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람이었다. 세드릭은 그가 늘 불안했다.

“형들, 그리고 어머니, 등등. 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잃었어요. 더 이상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고요!”

세드릭이 방을 나가며 문이 세게 닫혔다.

아들의 마음속에 깃든 불안감을, 핀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나오는 태도라 혼란스럽기만 했다.

***

국혼이 치러진 경사스러운 날 밤, 부지런한 황궁 마법사들이 작은 식물 하나, 하나에 전부 향기 강화 마법을 둘러두었다. 사탕처럼 달콤하고 꿈결처럼 은은한 향기에 취해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며 황제 부부의 미래를 축복했다.

‘신기해.’

하리는 자신이 황후가 되었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이 결혼을 축복한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과거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당시만 해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궁의 가공간에 바느질 선생으로 감금당하는 것부터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운명이 이토록 신기한 방향으로 흘러가다니. 마치 제각각으로 빛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는 폭죽의 꼬리 같았다.

하리가 하늘을 보며 들뜬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조용히 침소 문이 열렸다. 그 어떤 시종도 앞세우지 않고 혼자 들어선 사람, 몸소 쟁반에 와인을 담아 들고 온 그는, 이 날의 주인공 중 하나인 히엘이었다. 오늘 밤 그 어떤 의무감도 그를 괴롭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생글거리는 웃음에는 해방감이 가득 차 있었다.

“기다렸지?”

“폐하.”

사실 히엘은 체력과 마력이 고갈 난 상태였었다. 핀을 위해 소생, 치유마법을 쓰고 무사히 귀가시키는 등 온갖 뒤처리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떠한 때인가. 무려, 첫날밤이다. 황제로서는 후계자를 만들어야 할 임무에 충실해야 할 밤이며, 남편으로서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최고의 쾌락을 선물해주는 것이 미덕인 밤이다. 오늘 같은 날, 결혼식 전날처럼 쿨쿨 자서는 곤란하리라. 그런 연유로 그는 히든에게 받을 수 있는 온갖 활성마법은 있는 대로 모조리 다 받아 두어 활기 찬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역대 제국 황제들 중 잠자리를 위해 전투 전에나 두른다는 체력강화마법을 받는 황제는, 히엘뿐이었다.

덕분에 궁의 돌바닥까지 부서뜨릴 수 있는 체력을 가지게 된 그는 결심을 다졌다. 오늘 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리 에센의 몸과 마음을 사탕 공장의 사탕 물처럼 뜨겁고도 달콤하게 녹이리라.

그는 잔에 와인을 부으며, 불타는 제 결심과는 상반되는 공주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술은 할 줄 알아? 워낙 곱게 커서 입에도 안 대봤지? 그러니 조금만 마셔.”

사실은 조금만 마셔도 정신이 달로 날아가는, 도수가 엄청 센 걸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는 음흉함을 숨긴 눈으로 하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잔을 내밀었고, 그것을 받아든 하리는 히엘이 건배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히엘은 술을 일절 손대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팔짱을 끼고 히죽거리고만 있었다. 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폐하께서는 안 드세요?”

“응응. 난 술을 못하거든.”

그랬다. 제국의 ‘공주’, 제국의 탕아, 제국의 바람둥이 히엘은, ‘이 순간’ 술을 못했다. 왜 못하는가? 간이 안 좋아서? 마력을 정제해야 해서? 알레르기가 있어서? 한 때 최고 마법사의 자리에 있느라 스트레스가 많아 알콜 의존증 치료를 받은 적 있어서?

그 어느 것도 답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술을 마시면, 너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30금 변태가 되어 버릴지도 몰라…….’

가뜩이나 하리에게 변태, 괴한 취급을 받는데 첫 날 밤부터 본래의 섹스 취향을 드러내며 순진한 부인의 정신을 붕괴시킬 필요는 없었다.

하리가 서운한 표정을 했다.

“그래도 이런 날 같이 드셔야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한 잔도 못 드세요?”

“응.”

시무룩하게 잔을 내리는 하리였다. 히엘은 상큼한 맛의 새빨간 과육을 한입 깨물며 하리와 같은 서운한 눈초리를 했다.

“왜 안 마셔, 광녀?”

“저 혼자서는, 안 마실래요.”

“마시자아?”

“러브샷 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렇구나아. 그럼, 뭐…… 마시지, 뭐.”

어쩔 수 없이 히엘은 딱 한 잔만 마신다 생각하고, 잔을 들었다. 마력 여유만 있다면, 알콜도수 빼는 마법이라도 쓰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 모금만 마셔도 훅 가는 술이거늘. 곧 그들의 손이 보기 좋게 엇갈려 서로의 입에 잔 끄트머리가 닿았다. 그윽한 향을 즐겨야 할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히엘은 흑심에 가득 차서 조건을 걸었다.

“한 번에 다 마시는 거야, 알겠지?”

“네!”

“자, 하나, 둘, 셋!”

하지만 정적만 흐를 뿐, 둘 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 히엘이 한쪽 눈썹을 살짝 들며 웃었다.

“왜 안마실까, 우리 부인?”

“폐하께서는 왜 안 마셔요?”

“부인이 다 마시면 마시려 했지.”

“저도 폐하께서 다 드시면 마시려고 했지요.”

말끝을 흐리는 하리의 표정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주사가 있다는 것을. 과거에 에센 부인이 딸에게 괜히 통금시간을 두었던 것이 아니었다. 에센 부인은 술에 취해있던 스무 살의 딸을 딱 한 번 본적 있었고, 그날 아이얄 서쪽 지구 보안청의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던 딸을 집으로 보내기 위해 상당한 보석금을 내야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상당한 보석금을 내야 할 만큼 하리가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것.

하리는 그 흑역사를 숨기고 있었다.

“사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고요.”

“그렇구나아.”

히엘은 협상에 들어갔다.

“술이 약해서 한 번에 다 마시는 건 무리군. 그럼 반잔 쯤 마시자. 괜찮지?”

반잔 정도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 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서로의 팔이 교차되었다.

“자, 하나, 둘, 셋!”

후룹, 하고 하리가 마셨고, 히엘은 제 입에 들어온 반잔의 술을 그대로 하리를 안고 침대로 눕히며 모조리 그녀의 입안으로 쏟아 넣었다. 마치 표범이 먹이를 낚아챌 때나 낼 법한 빠른 몸짓에, 하리의 표정이 불에 덴 듯 아찔함으로 물들었다.

“으풉, 읍! 너무 하셔요!”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하리의 몸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간 히엘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부지런히 침대 맡의 유리 주전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잘 담아두었겠지.’

그는 시종들에게 유리 주전자 속에 술을 담아두라고 시켜두었다. 술이라는 것은, 적당히 마시면 중추신경흥분, 강심작용, 두려움을 없애줄뿐더러 상대와의 분위기도 부드럽게 만들어 섹스에 더할 나위없는 좋은 친구역할을 했다. 히엘은 자신이 마시진 못할지언정 적어도 하리에겐 적당히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으음.”

맑은 술은 히엘의 능글맞은 ‘목을 축여주겠다’는 말과 함께 부지런히 하리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흡사 수상한 종교를 만들어 여신도들을 희롱해대는 퇴폐교주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지만, 제국의 ‘공주’가 뿜어내는 미모와 그에 상반되는 야수 같은 기세에 하리는 이미 반쯤 넋을 잃고 입에 들어오는 모든 액체를 의심도 없이 마셔버렸다. 보람찬 미소의 히엘이 키스를 날리며 작게 속삭였다.

“마시는 것만 봐도 달아.”

“아음, 폐하.”

“침대에서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긴 싫은데.”

“히엘, 이라고 부르면 되겠죠?”

히엘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키스를 했다. 여태 해왔던 키스와는 차원이 다른 농도 짙은 키스였다. 하리는 빠르게 흡수되는 술기운에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히엘의 가슴에 손을 가져가 막았다.

“흐음, 저기, 너무 급하잖…….”

“하아, 응, 큭. 그랬나. 그런데, 이건 급한 축에도 낄 수 없다고.”

손이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다가갔다. 이러한 행위에 익숙지 않은 하리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너무 떨고 있어서 지켜보기에 측은함마저 들었다. 이 얼마나 여리고 순진한 사람인가. 히엘은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며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긴장하지 마.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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