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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71화 (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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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여자가 대관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히엘은 충격으로 실신할 지경이었다. 국혼이 장난인가? 제국의 황후가 될 여자가 두 달 홀로 뒀다고 의심에 추궁에…….

하지만 그는 그녀가 야속했지만, 적어도 그녀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언제나 그녀가 불안해하고 굳은 표정을 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보여줘야 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보여줘야 하는데!’

히엘은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간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었던 문제인 마력 증폭기에 관해 구구절절 설명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쩐지 변명으로 들릴 수가 있었다. 뭐가 좋지? 어떻게 해야 길게 설명 안 하고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히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데, 하리가 눈물을 훔치며 단호히 말했다.

“전 절대 폐하의 황후가 되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바빴다고! 믿어! 아니, 젠장! 진짠데, 아, 이걸 어떻게 말하지.”

“지금 ‘젠장’이라고 하셨나요! 세상에, 욕까지 하시다니! 그럼 증거를 대보시라고요!”

“즈, 증거!”

“제가 폐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진짜 증거를 대보시란 말이에요!”

백문이 불여일견.

그래! 증거를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세상 그 어떤 증거보다 확실하고 효력이 있는 일편단심의 증거! 하리에게 변심하면 자신의 심장이 드래곤에 의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다면야 그 어떤 구구절절한 변명 없이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기발한 방법을 떠올린 히엘은 잘 자고 있는 핀을 갑자기 소환했다.

하리는 핀이 와도 그저 히엘에게 따지기에만 바빴다.

“역시 증거를 못 대시는군요! 저는 국혼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집으로…….”

“시끄러! 이제부터 그 증거를 보여주면 될 거 아냐!”

곧 부부가 될 사람들이 다투고 있다, 라. 핀은 단잠을 자다 자신이 황후궁의, 그것도 침대에 앉아있는 형의 옆으로 이동해 온 것이 이상하여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히엘, 이왕 나를 이동시켜줄 거면 티에리아에게로 이동시켜 주지, 왜…… 흡!”

핀은 갑자기 입술을 거세게 부딪쳐오는 형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황후가 될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황제, 친형이란 사람이 혀를 들이밀며 키스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읍…… 하아! 뭐, 뭐 이런…… 읍!”

마력 화산에서 내면의 파괴욕을 실컷 해소하고 왔던 핀은 또 한 번 파괴충동을 느꼈다. 징그럽게 남자끼리, 그것도 형제끼리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당황과 분노를 이기지 못한 그가 주먹으로 제 형의 배를 강타해서 떼어내려는 순간, 그의 뇌리에 히엘의 마법어가 은밀하게 전해졌다.

[미안. 보여줄 필요가 있어.]

[윽, 뭘 보여준다는 거야!]

[맹약. 하리가 날 의심해.]

[당연하지, 거짓 맹약이니까!]

[아니야.]

[뭐?]

[그 맹약, 진짜가 됐어. 드래곤 형씨가 진짜로 해줬어.]

[뭐 그런……!]

[아무튼 그러니 넌 그냥 대충 맞춰 주라고! 아니, 아예 나한테 사랑, 애정, 우애, 온갖 걸 다 담아 키스를 해라! 나도 그렇게 할 테니까! 그러면 맹약이 발동되어 내 심장이 어떻게든 되겠지! 물론 죽지 않을 만큼만 해야 하는 거다! 알아듣겠냐?]

[알아듣기 싫어! 그럴 거면 다른 여자한테 할 것이지, 왜 하필 나야!]

[넌 내가 여시종 입술이나 도구로 이용해먹는 파렴치한이 되었으면 좋겠냐!]

여시종 입술은 도구로 이용해선 안 되고, 친 동생의 입술은 마구 이용해먹어도 좋다는 건가? 핀은 어이가 없었다.

[얼른 열심히 해! 안 그러면 하리가 궁을 나가겠다잖아! 나보고 결혼하지 말자는데, 젠장!]

[혀 들이밀지 마! 아무리 그래도 이게 무슨 짓……!]

[시끄러! 넌 장가가봤으니 닥쳐! 내가 유부남 되기 하루 전날, 파혼당하는 황제로 대륙의 웃음거리가 되어야겠냐!]

저 마법어의 대화 시간은 채 5초도 되지 않았다. 형제는 마법어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충실하게 서로의 입술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하리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그녀를 시야에 담은 핀 역시 입술 속으로 들어오는 형의 혀에 충격과 공포를 느끼며 참담하게 눈을 감았다.

‘빌어먹을, 망할…….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나는 이런 의지 절대 없다. 그러니까 날 용서해라, 하리!’

핀은 결국 히엘을 아래에 깔고 엎드렸다. 이제부터 맹약 주관자인 드래곤이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제 형과 농염한 상황을 연출해야 할 ‘위기’였다. 대체 얼마만의 키스인지, 그는 기억도 하지 못했다. 줄줄이 아들을 낳아왔던 부인 리이라와도 제대로 된 키스를 한 번 해보지 못했던 그가, 지금 이 순간 친형과 키스를 해야 했다. 해야만 하리에게 일편단심의 맹약, 그 증거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었지만…….

[어서 드래곤의 맹약을 증명시켜보라고! 하리가 자꾸 나를 의심하고 있단 말이다! 어째서 그동안 소홀했느냐고 따지고 있었단 말이다!]

그의 뇌리에 히엘이 계속해서 마법어로 외치고 있었기에,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두고 보자!]

처음에는 입술을 맞대고 기계적으로 혀만 고정한 채 맞대고 있던 두 형제였다. 히엘은 피곤하고 기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마치 숫처녀라도 된 양 얌전히 누워있기만 했고, 얼떨결에 리드하는 역할을 맡아버린 핀은 이를 갈며 제 포지션을 인정했다. 핀은 히엘의 뒷목을 두 손으로 거칠게 감싼 뒤, 히엘을 숨도 못 쉬게 할 만큼 깊고도 진하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키스가 야해질수록 하리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히엘은 맹약 주관자인 드래곤이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나는지 짜증이 나서 애꿎은 핀의 가슴을 꼬집었다.

[이 자식아! 즐기지 마!]

[그럼 알아서 리드를 하던가! 죽여 버린다!]

[나는 끝까지 너한테 당하는 듯이 해야 한다고! 그래야 후폭풍이 덜 하단 말이다!]

[그럼 누구는 추행범이 되어도 좋다는 건가?]

어마어마한 충격의 장면을 목도한 하리의 초록눈동자는 썩은 고등어처럼 붉게 충혈 되었다. 덜덜 떠는 몸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호흡이 곤란해져 눈을 까뒤집는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졸도를 할 것만 같았다.

‘여, 역시 나는, 나는 그냥, 너희 형제의 금단 짓거리를 가릴 그저 허울 좋은 황후에 불과할 뿐!’

핀은 이왕 이렇게 된 것 드래곤이 빨리 알아차리길 바라며 히엘에게 열심히 키스했다. 혀를 맞대는 것 보다는 귓불을 핥는 것이 비위가 덜 상하여 그렇게 했으나, 히엘이 몸을 흠칫거려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형이나 느끼지 마!]

[안 느끼거든!]

뜻하지 않은 괴상한 흥분에 히엘이 치를 아니, 온 몸을 떨며 눈을 감았다. 핀이 그의 귓가에다 대고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연신 마법어를 날려댔다.

[망할, 맹약 진짜 맞아? 이렇게 짜증나는 짓을 해대는데 왜 안 죽어!]

[진짜거든! 그리고 나 죽일 듯 키스 해대지 마! 그러다가 심장 날아가면 어떻게 하냐! 적당히 죽기 직전까지만!]

죽기 직전까지라…… 감이 오지 않는 핀이 이젠 히엘의 셔츠앞단추까지 풀기 시작했다.

[젠장, 나 유두 성감대다! 건들지 마라!]

[나도 그러기 싫어, 망할. 정말 드래곤이 맹약을 주관해준 거 맞아?]

[왜 자꾸 물어! 맞대도! 맞아! 앗, 흐응, 거긴!]

[…… 그냥 이 참에 드래곤이 눈치 채기도 전에 그만둬버릴까?]

[안 돼, 그것만은!]

“하아…….”

“으음….”

은색 실이 형제의 입에서 떨어져 나갔고, 히엘의 유두는 핀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살짝 비틀려 단단해졌다. 핀은 이제 형의 아랫도리까지 만져야 하나 고민했다. 하리는 남편이 될 남자가 제 동생의 추행에 야한 신음을 흘리는 것을 보고 뒤돌아서서 파혼을 결심했으며, 딱 그때였다.

봄 신상 드레스를 입은 드래곤이 인간 여체로 폴리모프 하여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올 봄의 유행 컬러는 레드. 드래곤은 강렬한 탠저린 탱고레드에 채도 높고 러블리한 파스텔톤 플라워프린트의 드레스를 입고서 대륙의 트렌드 세터임을 과시했다.

드래곤을 본 하리의 눈은 커졌다. 더 커질 눈꺼풀의 여유가 없는데도 커졌다. 그와 동시에 가슴이 한껏 달아오른 히엘이 핀을 발로 차며 숨을 헉헉거리기 시작했다.

“헉…… 시, 심장! 광녀, 나를 잘 봐라!”

맹약의 효과가 슬슬 발동되는 것이었다. 이제 드래곤이 할 일은, 하리 아닌 다른 사람과 키스한 히엘이 죽지 않을 만큼 아파하는 모습을 하리에게 연출해주는 것뿐이었다.

“으헉! 아파! 아프다고! 나 죽는다!”

“무, 무슨, 이게 무슨……!”

히엘은 정말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었다.

“으윽! 심장이……! 으큭!”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드래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 히에라지엘이여. 정말 심장이 아픈가, 하는 물음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주, 죽을 것 같……!”

“폐하!”

“죽어버려, 히엘!”

어쩔 줄 몰라 하는 하리와, 제 형을 죽으라 말하며 연신 입술을 닦아대는 핀의 모습. 그들의 모습에 드래곤이 소리 없는 웃음을 깔깔 웃었다.

[으하하. 인간들은 정말 재미있는 존재로군. 이제 시작해볼까.]

그는 맹약의 주관자로서 본격적으로 그 지배력을 행사하기로 했다. 하리가 아닌 다른 사람(동생)과 키스를 해버린 히엘, 하리가 아닌 다른 사람(동생)에게 유두가 만져져 신음을 내뱉은 히엘, 그는 맹약의 조건 상 응징을 받아야했다. 상황이 상황(근친)인지라 더욱 처절한 응징으로 연출해보일 필요가 있었다.

‘심장은 좀 별로겠지? 흠.’

드래곤은 연출방향에 대해 생각했다. 심장의 고통은 언뜻 하리에게 사기 행위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심장이 아프다 외쳐도 그 모습이 꾀병으로 보이면 허사였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시각적 충격이 덜한 심장고통보다 다른 걸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히엘은 맹약이 무조건 심장파열에 관련된 것이라 믿고 이미 제 가슴을 붙들며 죽어가는 소리를 열심히 내고 있었다.

드래곤은 결심의 표정을 굳혔다.

‘내장 파열이 좋겠군.’

그의 마력이 히엘의 몸 내장에 은밀한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마법 내성이 높은 히엘이었지만, 대륙 최강 마법 생물체의 폭력 마법에는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입에서 피를 쏟고 바닥에 쓰러지는 히엘을 보며 하리는 저 남자를 부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때였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은 히엘이 아련하게 눈을 뜨며 고통의 목소리를 전했다.

“우엑…… 쿨럭, 컥…… 하리, 행복했어.”

하리는 혼인도 하기 전에 과부가 되겠다며 울부짖었다.

“흑, 안 돼요! 폐하!”

히엘은 죽기 직전 경련이라도 일으킬 듯 사지를 파르르 떨었다. 그 누가 보아도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은 여유롭게 웃으며 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새침데기 같은 인간 소녀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중년사내의 음성으로 마법어를 날렸다.

[그대, 키스를 아주 잘하더군.]

핀은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저 드래곤이 얼른 형을 죽여주었으면 했다. 아니면 자신이 다시 마력 화산으로 가서 내면에 쌓인 파괴충동을 다시 한 번 해소하는 것도 괜찮았다.

[여인에게 브리핑해주어라.]

핀은 하는 수 없이 하리에게 아까 저질렀던 괴행의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하리, 진정해. 이 상황은 진짜가 아니야. 단지 쇼에 불과한 거야. 네가 맹약을 믿지 않으니 형이 그 증거를 보여주려 이런 거라고. 어쩔 수 없었던 거 같아. 바보 형을 둬서 미안하다. 이해를 바랄게.”

울먹이던 하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에도 드래곤은 시각적 연출을 하기 위해 히엘에게 은밀한 마법 폭력을 행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히엘은 너무나도 괴로워했고, 하리는 그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흑흑, 많이 아프십니까? 제발 그만해주세요! 드래곤이시여!”

여자의 울음에 약한 드래곤은 폭력을 거두어주었다. 고통이 사라지고 빠른 치유마법에 걸린 히엘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하리에게 말했다.

“봤지, 하리…… 난 네가 의심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아. 하면 이렇게 돼버린다고. 이게 바로 일편단심의 맹약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도 돼.”

하리는 히엘의 일편단심을 이러한 유혈사태로 확신하게 된 것에 크게 유감이었다. 앞으로 히엘에게서 발 뺄 수 없다는 아득한 두려움이 번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목숨을 바친 히엘의 사랑에 기묘한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이 정도 난리를 피우는 남자라면, 내 인생을 맡겨도 되겠어!’

드래곤은 인간들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며 역시 결혼은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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