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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67화 (6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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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의 얼굴이 단풍색으로 변했다. 초록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히엘이 재촉했다.

“빨리이. 응응?”

“저, 폐하.”

“차 한 잔 좀 어서 달라니까, 부인!”

엄밀히 말해, 아직 혼인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긴 침소다. 차를 입에서 입으로 옮기는 것을 한 모금도 아니고 무려 한 잔이나 달라고 한다. 이게 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어디까지 행동할 작정인가. 밤하늘의 별을 따러 끝까지 가기라도 할 작정인가! 하리는 긴장한 나머지 딸꾹질을 했다.

“히끅!”

그 딸꾹질마저도 마시고 싶은 히엘이었다.

“나 목마르거든!”

“히끅! 보시다시피 따, 딸꾹질해서, 지금은 좀 곤란 합니다!”

하리는 밖에 있는 시종들에게 구조 요청을 하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히엘은 곤란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널 잡아먹니? 응? 잡아먹어? 그러려고 이러는 거지롱!’

그는 하리 몰래 소음 차단마법을 걸었다. 그리고는 아예 소파에 등을 대고 누워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입으로 차를 받아 마시기 전 까지는 이대로 꼼짝도 않겠다는 의미였다.

‘얼른 안 오고 뭐해, 응?’

순진한 그녀에게 이러한 상황이 어렵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찻잔을 건네준다던가, 아니면 거절을 할 것이리라. 그녀가 뭘 하건, 히엘은 움직임만 느껴지면 바로 그녀를 제 몸 위에 올리고 지난번에 못했던 것을 마저 할 생각이었다. 오늘은 세드릭도 없고, 감히 시종들도 방해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러모로 좋은 상황이라 생각하며 그가 눈을 슬쩍 뜨니, 그녀가 비장한 표정으로 찻잔에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그녀가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히엘은 그 모습이 감동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광녀! 진짜 나의 예상을 너무 기분 좋게 깨주고 있잖아!’

그녀는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이며 히엘에게 다가갔다. 그러다가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해버렸다. 저런, 차를 삼키고 말았다. 다시 차를 입에 담았다. 히엘은 그 찰나도 초조했다. 또 딸꾹질해버리지 말고 어서 와라! 차 좀 마셔보자! 목 좀 축여보자! 나도 네가 먼저 하는 키스 좀 받아보자! 마음이 급해진 히엘은 몸을 슬쩍 하리 쪽으로 뻗었다. 세 번째 찻물을 들이마신 하리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그의 얼굴 위로 천천히 입술을 포갰다. 그들의 입술은 닿았다. 찻물을 주고, 찻물을 마시는, 그런 입맞춤이 이어졌다.

“…… !”

하지만 딸꾹질은 멈추지 않았다.

“히끅!…… 됐죠?”

“음. 아직, 아직 좀 덜 됐어.”

히엘은 머뭇거리는 하리의 목을 끌어안고 그녀를 제 몸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세를 뒤바꾸었다. 눕혀진 그녀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가까워 히엘은 그저 그것을 보고만 있어도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리의 심장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폐하…….”

“히엘이라고 불러. 물론, 이제 말할 시간도 없을 테지만.”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그는 목마른 짐승처럼 하리의 호흡을 모두 마셨다. 가쁜 숨소리, 어설프지만 잘 따라오는 그녀의 혀, 따뜻한 가슴 모두, 남자에게 거센 흥분을 지피고 있었다. 한꺼번에 다 불태워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느낌. 어쩌면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이라서 일까. 아니면 상대가 그녀이기에 느끼는 흥분일까. 히엘은 자신도 잘 몰랐지만 단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드래곤 형씨. 하리만 보라고 맹약을 걸어놨던 형씨의 오지랖에 더는 불만이 없을 것 같아.’

기분 좋게 웃은 히엘이 살짝 고개를 떼고 속삭였다.

“이제 찻물 말고 너 마실게.”

충혈된 눈과 야릇한 말에 하리가 손사래를 쳤다.

“아, 앗, 그런, 안 돼요! 아직 결혼식은 두 달이나 넘게 남았는데! 저를 마시려하시다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킥, 으음…….”

다시 이어지는 입맞춤은 더욱 진했다. 하리는 히엘의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변태가 이끄는 변태나락에 떨어지는 건 아닌지 그녀는 두려웠다. 동시에 설렜다. 히엘의 크고 넓은 손바닥이 그녀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는 하리의 귓가에 허스키한 목소리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큭, 이게 앞으로 내 전용가슴이구나.”

“…… 폐하!”

하리에겐 변태 같이 들린 말이었지만, 드래곤의 오지랖을 생각하면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히엘이 능숙하게 하리의 잠옷을 하나 둘, 풀어갈 때였다. 마계에 있던 마활 한 명이 필기르의 깃털을 통해 연락을 전해왔다.

[경이로운 수치입니다! 당장 여기로 오셔서 좀 확인해주셔야겠습니다, 폐하!]

마력 증폭기와 관련한 실험결과의 보고였다. 히엘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끌어올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력 증폭기에 관한 것은, 지금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앞으로 이어질 긴 시간의 행복을 놓칠 수도 있었다.

“젠장! 간다, 가!”

***

최근 마담 젤레테스는 신이 나있었다. 무려 황제가 밀어주는 드래곤 공물 브랜드에 자신의 딸이 대표로 앉게 된 상황. 굳이 딸을 황후로 앉히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바람둥이로 알려진 황제 아니었던가. 마담 젤레테스는 자신의 딸이 수많은 첩들의 대장이 되느니, 대륙의 패션브랜드를 짊어지는 쪽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리는 성가신 디자인 일을 해야 한다며 여전히 툴툴 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레이디 로리의 회의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무성의함을 보였다. 디자이너들이 조심스럽게 레이디 로리의 컨셉을 물어오면. 로리는 심드렁한 얼굴로 ‘보라색이 좋아, 줄무늬는 싫어’ 라는 단순한 답변만 내놓았다. 마치 하루하루 죽지 못해 이 사무실에 오는 듯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애완견, 라이트릭 에센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서였다. 비록 데리고 다니며 마음대로 휘두르고 주무를 수 있는 진짜 애완견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보조 디자이너로 앉혀다 놓은 게 어딘가? 동그라미 하나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그녀에게 보조 디자이너라는 존재는 그녀의 디자인 업무를 대신하는 심부름꾼이자 사적인 일도 맡길 수 있는 만만한 시종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무려 제국을 이끌었던 황제였다가 한 성격 나쁜 귀족 아가씨의 개 노릇을 하게 된 핀의 표정은 그야말로 말발굽에 짓눌린 진흙반죽 같았다. 세상에, 자신이 괴상한 여자의 보조 디자이너라니.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예술 학교에 다니며 배우고 싶었던 것이나 배우고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것뿐이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히엘의 명령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어떤 은밀한 ‘약점’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

핀보다 더욱 어두운 얼굴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하리였다. 국혼은 이제 약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궁은 그녀에게 밀림과 같이 복잡한 곳이었다. 궁의 예절에 관한 것은 머리가 아팠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가까이 있으려하던 히엘은 무슨 일이 그리 바쁜지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밖에서는 자신의 과거 적 졸업 사진들이 마법영상구 게시판에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그녀는 마법영상구를 우연히 켰다가 또 한 번 자신의 과거 모습을 마주하고 말았다. 사춘기 때, 한창 살이 올라 있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과거 캐내기 글들과 자신을 향한 악성 댓글들도 발견하고 말았다.

[뭐야, 기사에 나온 대로 돼지는 아니지만 썩 그렇게 미인도 아니네? 그냥 좀 어려 보이는데…… 이렇게 평범한 여자가 어떻게 황후가 될 수 있는 거지?]

[올해 벌써 나이가 스물여섯 이라며? 늙었다. 역대 황후들 중에 가장 할망구네.]

[왕따라서 바느질만 하고 살았다나봐, 그래서 친구 하나 없어서 학교 다닐 땐 좀 그랬나봐.]

[내 나이 여든…… 하리 에센이라는 할망구가 끌린다…….]

[듣기엔 정신병원에 입원한 기록도 있다던데. 진짜 황제 폐하 어떻게 되신 거 아니야? 어떻게 미친 여자를 황후로 앉히셔?]

[세상에! 얼마나 지저분한 여잔지 어릴 적 하고 있던 팔찌를 한 번도 풀지 않고 계속 두르고 다닌대. 더러워.]

이놈의 삶은 잠시 평온이 찾아오나 싶으면 그새를 못 참고 또 한 번 해일이 닥쳐왔다. 그 누가 황후의 삶이 부럽다 했는가? 일생을 평민으로 살아온 하리에게 그 충격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악성 댓글의 후유증으로 하리가 가공간에서 비틀거리며 나왔다. 그녀가 황후궁으로 향하는 데 청소를 담당하는 여시종들이 마치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예, 그 소식 들었어? 폐하께서 마활 시절 남 몰래 낳은 아이가 있다는 거?”

“그럼! 들었고말고! 서남쪽 출신의 어느 화끈한 여인이랑 낳은 아이라던데, 원래라면 여섯 살 쯤 되었을 거래! 황태자 공석이 요즘 문제라 마력 성장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더라?”

“어머어머, 폐하께서는! 아직 황후를 정식으로 들이시지도 않았는데 너무하시는 거 아냐? 역시 황제 폐하께서는 그 여자를 그냥 인형으로만 대하시려나 봐.”

“그렇지, 뭐.”

듣고 있던 하리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 아무리 미쳤어도 할 말은 하던 여자였다. 무려 핏빛 강철검에게도 거침없이 쓴 소리를 퍼부어 댄 적이 있었다. 이렇게 아랫사람들이 들으란 듯이 중얼거리는 욕을 그냥 듣고 참기만 할 순 없었다. 하리는 그들에게로 엉거주춤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 특유의 조금 맹하고 작은 목소리로 그들에게 내질렀다.

“데려와 보아라.”

여시종들이 의아한 눈초리로 하리를 보았다. 하리가 재차 말했다.

“그대들이 말한 폐하와 서남쪽 출신 화끈한 여인사이에서 낳은 황손을 식이 거행될 때 까지 데려오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의 목숨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희는 어디까지나 청소 시…….”

“청소 시종이건 무엇이건, 나는 분명 명하였다.”

맹한 얼굴로 사람을 죽이겠다 말하는 그녀에게 시종들은 생각보다 의외라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하리는 그들을 지나쳐 처소로 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엎드려 울었다. 사흘 남은 국혼이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무리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 하늘색 팔찌가 그녀의 눈물에 젖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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