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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60화 (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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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에게 엔젤리카 솜이 들어간 이불을 지금 빨리 만들어서 주고 싶어서요. 지금이 아니면 만들 시간도 없을 테고. 앞으로 바쁠 것 같아서요.”

“그런 건 시종들에게 맡기면 되잖아. 그리고 궁에 가면 널린 게 엔젤리카 침구들이야. 세드릭은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을 거라고. 그래도 원한다면 내가 하나 가져와서 줘? 차라리 그게 좋겠다, 그치?”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하리였다. 그녀는 세드릭에게 오직 자신만이 만들어서 줄 수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비록 함께 한 기간이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세드릭은 형제가 없던 그녀 자신에겐 남동생 같았던 아이였다. 다른 누군가가 그 이불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니요. 제가 직접 만들어야만 해요. 솜 넣는 작업은 끝났고 이제 누비기만 하면 되는데, 누빔질은 원래 시간이 좀 가서…… 마법으로 한다면, 정말 편할 텐데.”

끙, 하고 히엘이 앓는 소리를 냈다. 눈치를 살핀 하리가 한숨을 쉬었다.

“에휴…… 못하시면 말구요. 제가 직접 밤새서라도 누벼야겠지요, 뭐."

히엘은 하리가 보통내기가 아니라 생각했다.

“아니, 못하긴. 해보지, 뭐. 이 몸께서 뭔 들 못하겠어?”

히엘은 하리가 정리해둔 그 이불을 펼치고 친절히 웃으며 어떻게 하면 되냐는 듯 하리를 보았고, 하리는 수예서적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 동글동글하고 섬세한 누빔 선을 보여주며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히엘의 속마음은 이미 아기를 만드는 거사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날 밤, 히엘은 밤새도록 이불을 누볐다.

‘젠장, 청혼 첫날에 이게 뭐야! 남편 잃고 독수공방하는 부인네들과 다름없는 밤이잖아!’

***

새벽 아침이 밝고, 히엘의 눈은 핑그르르 돌았다. 그는 뜨는 해마저도 둥글던 누빔 선처럼 생겼다고 생각할 만큼 누비질에 지쳐있었다. 마력의 크기는 셌지만, 바느질이라는 섬세한, 극히 작은 한 땀 한 땀을 작업해야 했던지라 매우 힘들었다. 필요한 부분에는 마력이 아닌, 직접 손과 바늘을 쓰며 하기도 했다. 하리와 이불을 맞잡고 한 땀, 한 땀 꿰매며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도중에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하리 역시 퀭한 눈이었다. 그녀는 촘촘하고 섬세하게 잘 누벼진 이불을 보고 흡족한 듯 웃었다. 그리고 히엘을 두 팔로 안았다.

처음으로 하리가 애정표현을 하자, 히엘의 입이 찢어졌다.

“감사합니다, 폐하!”

“뭘, 이거 가지고 고맙긴. 정 고마우면 뽀뽀 한 번 해줘도 되고.”

솔직히 여기서 뽀뽀 안 해주면 너, 광녀 아니고 악녀야, 그런 의미를 담은 눈빛이 하리에게 꽂혔다. 하리는 고민했다. 뽀뽀하다 무슨 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아닐 것이다. 어차피 아침인데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하리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히엘을 향해 얼굴을 가져갔지만, “흐익읍!” 그 짧은 순간을 못 참고 히엘이 먼저 그녀의 입술을 ‘먹었다’. 그리고는 굳어버린 하리의 몸을 껴안고 벽 쪽으로 천천히 밀어붙였다.

하리는 뒷걸음치다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았고, 히엘은 그녀의 머리를 벽에 붙이며 각오를 다졌다.

“이젠 이불 말고 네 입술 실컷 누벼줄게.”

닫힌 하리의 입술 틈새가 다시 비집어 열렸다. 히엘은 바느질로 쌓인 피로를 새까맣게 잊을 만큼 흥분에 물들어갔다.

“하아, 못 참겠다.”

“네? 모, 못 참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요?”

“넌 그냥 코스로 즐겨.”

“읍, 으음…….”

피로쯤이야 얼마든지 마법으로 풀면 그만이다. 아침에 유독 왕성한 열기를 자랑했던 그는 자신의 ‘정성’으로 하리가 꿀처럼 녹아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엉거주춤 망설이던 하리의 혀가 히엘의 농익은 혀 놀림에 어설프게나마 응답했다. 그러자 실낱처럼 섬세하던 히엘의 입술과 혀가 갑자기 바늘처럼 아찔하게 그녀의 입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하리는 히엘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누비질로 뜨거워진 히엘의 손이 그녀의 목을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그러자 하리가 흠칫 떨었고, 히엘은 그 반응이 순진하고 귀여워서 마주친 입술 밖으로 풉-하고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숨 가득 담아놔. 오랫동안 할 테니까.”

“흡!”

하리는 혼이 쏙 빠질 것만 같았다. 히엘의 몸짓은 나름의 배려와 충실한 욕망으로 잘 엉켜있었다. 쿵쿵쿵쿵, 하리의 가슴은 파도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심장소리를 들은 히엘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손을 가슴에다가 살짝 넣으려 시도했다.

그 직전, 노인처럼 새벽잠 없는 세드릭이 노크를 했다.

“누나. 첫 눈 와요! 올해는 좀 빠르네요. 아침 먹어요. 오늘 통밀스프 해봤는데, 빨리 안 먹으면 굳고 물기 사라져서 맛없으니까 얼른 내려오세요.”

히엘은 대꾸하지 말라는 듯 하리의 입술을 물고 끝까지 하던 일에 집중하려했다. 하지만 하리가 히엘의 가슴팍을 강하게 밀쳐내며 외쳤다.

“으…… 응! 그럴게! 곧 내려갈게!”

히엘은 문을 향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망할, 조카야! 왜 하필 지금이야? 너 인마, 귀엽고 깜찍한 사촌 동생 보고 싶지 않은 거? 내가 쟤를 왜 이 집에 맡긴 거지?’

통탄에 빠진 히엘은 마법 이동으로 궁으로 갈 준비를 했다. 준비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하리를 품안에서 놓아주지 않고 이동하기 직전까지 입맞춤을 하는 그에게서, 하리도 아쉬움을 느끼고 말았다.

“휴, 왜 이렇게 덥지?”

하리는 붉은 얼굴을 두 손으로 진정시키고 얼얼한 입술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

수많은 전쟁터에서 화려한 공을 세워왔던 젤레테스 대공의 저택은 그 주인의 격에 걸맞게 사르제스에서 황궁 다음으로 호화로웠다.

그의 대저택에 오랜만에 결혼한 장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대공의 차녀인 로가드리아 쥴 젤레테스와 함께 결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공의 차녀 로가드리아 쥴 젤레테스는 지루한 표정으로 언니의 말을 들었다. 지루한 표정이긴 하나 남들이 보기엔 도도한 미녀의 차가운 분위기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백설 같은 피부,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 보석 같은 검은 눈동자, 따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붉은 기가 감도는 아름다운 입술을 가진 절색의 아가씨였다. 태어날 때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는 미모덕분에 젤레테스 대공은 자신의 차녀가 장차 황후가 되어야겠다며, 사르제스 국화인 ‘로가드리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었다.

언니의 결혼에 대한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자신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던 그녀는 이제 동생의 결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려했다. 얼른 황제와 결혼을 서두르라는 이야기였다. 로가드리아는 지루함을 못 참은 나머지 대놓고 표정을 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언니는 끊임없이 한 이야기를 또 했다.

“즉 내 말은 로리 너는, 반드시 황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야.”

“언니.”

“난 가끔 내가 핀라이트와 결혼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 아마 그때 결혼을 했다면 지금쯤 자식, 남편 모두 잃고 궁에서 허드렛물 취급당하며 썩어가는 팔자가 되었겠지.”

“언니. 그땐 언니가 핀라이트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죠. 단지 대주교의 딸 리이라한테 밀려서 못 갔다고 표현해야 옳은 것 아닌가요?”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번에야 말로 너는 반드시 황후가 되어서 우리 젤레테스 집안을…….”

“웃기시네!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나는 제국의 황후가 되고 말거예요! 기정사실을 필사적으로 이뤄야 하는 ‘숙제’인 것처럼 말씀하시지 마세요! 기분 나쁘니까!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현재 젤레테스 대공은 황제와의 오찬 알현 요청에 연속으로 거절당한 상태였다. 알현의 주목적이 국혼 성사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판국에 로리는 신경이 매우 곤두 선 상태였다.

“너 그동안 너무 무례해졌구나! 원래 무례하기도 했지만!”

“빤히 했던 이야기를 또 왜 하시느냔 말이죠!”

고관들이며 대륙의 거상들이 제 여식을 황후로 들이려 서로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지만, 젤레테스 가문의 로가드리아가 그 중 가장 유력후보로 인식되어왔다. 그녀를 시기하고 부러워하는 귀족가의 영애들이 많았고,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내내 마치 황후가 된 것처럼 군림해왔었다. 그러나 황제 히에라지엘이 매번 바쁜 일정을 핑계 삼아 거절만 해댔기에 황후의 자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고 로가드리아의 콧대는 꺾이고 말았다.

그녀는 화가 났다.

대체 자신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내년이면 제국 성인 나이인 만 열 여덟 살이 되는 딱 좋은 나이, 모든 귀족가 영애들 중에서의 으뜸을 차지하는 미모,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를 최단기 과정으로 졸업한 경력,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문까지, 그녀는 아쉬울 것 없이 살아왔다. 황녀가 없는 이 나라에 그녀는 황녀,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바로 성격이었다.

신은 공평하게도 그녀에게 모든 것을 준 뒤, 그 모든 것과 바꿀 수 없을 만큼 나쁜 성격을 주고 말았던 것이다.

로가드리아의 별명은 아이얄의 똥개, 조금 더 길게 부르는 별명을 말하자면 ‘아이얄의 미친 똥개’였다. 그녀는 로가드리아 꽃과 같은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지만, 그 꽃의 줄기처럼 성격에 가시가 잔뜩 박혀 있었다.

언니가 돌아가자마자 그녀는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분노를 폭발시켰고, 하인들은 ‘오늘도 한바탕 시작 되겠구나’ 생각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몸을 사렸다.

“망할 놈의 병신 같은 황제새끼가 지가 뭐가 잘 났다고 나를 뻥 차대는 거야! 나이는 스물여섯이나 처먹은 영감에다 다 헐은 걸레 주제에 나 같은 여자한테 황송해하지는 못할망정 뭐? 바빠? 지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허리 굴리기에 주문서 만드는 것밖에 없는 마법사 새끼가 프로페셔널 황제인 양 바쁜 시늉이나 해대면서 이것저것 재기나 하고, 두고 보라지! 계속 이런 식으로 거절을 당할 바엔 직접 쳐들어가서 내 미모와 매력으로 녹여줄 테다! 그렇게 해도 녹지 않는다면 젤레테스 가문의 명예를 걸고 고자로 만들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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