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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성은 완벽하고도 섬세하게 이루어졌다. 참혹했던 폐허는 히엘의 마법에 의해 평화로운 풍경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전과는 그 규모부터가 달랐다. 중심이 되는 주황색 지붕 집에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설산까지, 그 거리가 무려 철새가 약 한 시간 정도 날아갈 수 있을 만큼 길었다. 청록색 능선과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며 숲, 여러 종류의 나무 등 목가적인 풍경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는 이에게 안정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하리는 변한 가공간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마력사용에 지친 히엘과 함께 풀밭에 누워서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을 눈으로 쫓으며 노래를 불렀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그대가 그리운 날, 많은 별을 보며 나는 바랍니다. 슬픔도, 애절함도, 모두 별빛으로 바꿔 줘…….”
이제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언덕 저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고, 또 설산의 꼭대기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히엘이 몇 번이나 말을 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수록, 그 노래를 엔과 세라비에게 배웠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만 시무룩해졌다.
“왜?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옆에 누워있던 히엘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아니, 아니야…… 폭죽 보여줘.”
“또? 폭죽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히엘은 지난 사흘 동안 예전의 가공간보다 더 넓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었고, 피폐에 젖은 여인을 그나마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모습으로 살 찌워 놓았으며, 중간 중간 그녀에게 마법의 불꽃놀이를 보여주었었다. 마력 소모가 상당하여 피곤에 지친 나머지, 폭죽을 보여 달라는 말만 들어도 질리는 것이었다.
“얼른 폭죽 보여줘어…….”
“이 아가씨야. 나 이제 귀찮아. 별빛이고 뭐고 안 터트려 줄 거라고.”
“…….”
“그래도 노래하고 겁 안 먹고 하는 거 보니 이제 좀 진정이 되나봐?”
“응.”
“응? 으응? 뭐야. 버릇없게. 어린 것 같은데 그렇게 반말하면 안 되지.”
“…… 네.”
“너 몇 살인데?”
“스물넷.”
“뭐? 나보다 한 살 어리네. 오빠라고 불러.”
“…… 네.”
기운 없는 목소리였지만 대답은 꼬박꼬박 잘 나왔다. 그런 그녀가 제법 멀쩡해보여서 히엘은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스크롤 업무고 뭐고 다 피곤한데 오늘은 여기서 그냥 하리랑 노래나 하며 지낼까, 생각하다 그만뒀다. 명색이 마활의 탑이다 보니, 자리를 비우면 곤란한 일이 많을 것이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자 하리도 일어섰다.
“넌 여기 있어. 겁먹은 표정 말고 실실 웃으며 있어야 해. 아, 그렇다고 너무 바보처럼 웃진 말고. 아무튼 그래야 그 녀석이 나한테 군소리 안 한다고. 알겠어?”
“그 녀석? 누구요?”
“아, 황제 폐하 말이야.”
그러자 하리는 히엘의 바지춤을 붙잡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핀에 대한 두려움은 그만큼이나 컸다. 히엘은 수염 때문에 거뭇해진 턱을 한 손으로 매만지며 곤란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리가 다리에 찰싹 달라붙자 그는 그녀를 질질 끌며 다리를 뺐다. 그럴수록 하리는 그의 다리를 더 세게 잡았다. 떠나지 말라고 고개를 세게 가로젓는 것이, 아무래도 끝까지 따라올 것만 같은 눈치였다. 재구성을 하면서 그녀를 너무 잘 돌봐줬나 싶은 히엘은 자신의 친절했던 행동에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아, 왜 이래? 미친 여자처럼 굴면 안 돼. 나 이제 가야 한다고.”
“아, 안돼! 히엘! 가지마세요! 무서워요! 걔 아니, 황제 폐하 너무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요! 으흑…… 흐흑…… 흑!”
히엘은 그 모습이 가여웠으나,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그녀의 옆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핑리스.]
수면마법 한 번에 하리는 쓰러졌고, 히엘은 씁쓸히 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
딱딱한 분위기의 어전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황제는 겔사 사건을 일으킨 이중성력자가 궁에 들어왔었던 신성 가이덴 부대 내부에 숨어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것으로 황후에게 독설을 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부친인 대주교까지 불러 책임을 물었다.
대주교는 입궁했던 병사들에게 이중성력을 가질 만한 이가 없다며 황제의 의혹을 깔끔히 자르려했지만, 황제는 그런 대주교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껴 대주교 휘하의 신성 부대도 보름 안에 해체하라 명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가이덴교 자체를 반제국 집단으로 간주할 거라며 경고를 했다. 회담에 참여한 가이덴교파 고관들은 볼멘소리를 했고, 교단보다 대륙의 드래곤과 황제의 편에 선 고관들은 그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주고받는 언사들이 과격해지는 등 신경전이 벌어지는 중에 황제는 자신의 원래 계획을 꺼냈다.
“다툼은 무의미하오. 사르제스의 마활을 십 인조로 추가 재편성하는데 힘쓰시오. 이제부터는 신성 부대처럼 머릿수만 많은 부대는 내버려둘 생각이 없으니까.”
마활 탑인 히에라지엘을 비롯해 고작 세 명만 남은 조직에 일곱 명을 더 추가시킨다는 것은 실행하기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다. 한 사람의 마활을 만들 때 마다 드래곤에게 바쳐지는 공물의 양을 생각하면 아무리 대륙 통일을 목전에 앞둔 사르제스 제국이라 하더라도 경제가 휘청거릴 것이 빤했다. 그러나 안 되면 되게 하는 것이 황제의 고집이었다. 아직 그에게는 대륙의 작은 부분, 정복하지 않고 내버려둔 가장자리 원시부족들과 그들이 가진 신비로운 자원들이 있었다. 여태 직접 전장에 나서서 대륙을 쟁취해온 황제는 두려울 것이 없었고, 그의 절대적인 명령에 모든 이들이 침묵을 했다. 실상 그가 그 악명에 숱한 피를 뒤집어씌우며 스스로의 권위를 높여온 자가 아니라하더라도, 역대 사르제스 황제들은 드래곤이라는 거대 마력 생물체를 등에 업고 있었기에 그 의견에 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제는 그대로 회의를 파했고, 군사 고관들과의 회의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본궁 중앙홀을 바삐 가로질러가는 한 무리의 대신들 속에서 동생을 찾은 히엘은 곧바로 그를 불렀다.
“황제 폐하.”
“……?”
무슨 용건으로 바쁜 저를 부르느냐는 듯 돌아보는 동생을 보며 히엘은 피식 웃었다. 부탁받은 대로 사흘 만에 그 비밀 공간의 재구성을 끝내놓았는데, 지금 저 태도를 보자면 그 부탁을 깨끗이 잊어버린 듯했다. 히엘은 특유의 빈정대는 기질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휴가 좀 주십시오. 제가 황궁 속 변방의 문제로 사흘간 무리를 한 탓에…….”
변방이면 변방이지, 대관절 황궁 속 변방은 어디란 말인가. 대놓고 마법가공간을 일컫는 말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황제의 측근들은 궁금한 기색이었다. 핀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짧게 대답했다.
“휴가는 없소. 앞으로 업무들이 다시 많아질 거요.”
그 업무란 대륙 가장자리 지역을 토벌할 때 사용할 파괴스크롤의 제작이었다. 사흘간 그 은밀한 부탁을 들어줬는데도 휴식은커녕 돌아오는 것은 업무뿐이었고, 히엘은 그만 흥이 떨어져버렸다.
‘호오라? 발걸음을 돌리신다?’
핀의 발걸음이 원래 가려던 길로 가지 않고 제 침소 쪽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그 여자, 하리를 보러 가는 듯했다. 그제야 히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서 마활궁으로 향했다. 동시에 하리에게 걸린 수면마법을 파훼시켜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웃어라, 광녀야. 그러기 힘들겠지만.’
핑리스에서 깨어난 하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폭죽을 쏴주고 맛있는 것을 주던 예쁜 마법사는 온데간데없고, 저 멀리 언덕 아랫자락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무서운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으어, 미, 미친놈이다. 싫다, 싫어.”
하리는 바들바들 떨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갈 곳은 주황색 지붕 집이었다. 현관문을 잠가버리고 제일 작은 방에 들어가, 그 문을 또 잠그고, 침대 위에 올라가, 이불을 둘둘 말고, 어떤 소리도 듣지 않겠다는 듯, 두 귀를 막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가 귀를 세게 막아도, 얇은 유리창 밖으로 들리는 핀의 목소리는 결국 그녀의 귀에 섬뜩하게 꽂히고야 말았다.
“에센.”
“으으, 싫어. 싫어. 미친놈아. 오지 마.”
쿵쿵쿵,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러다가 저 창이 깨지는 건 아닐까? 실제 핀이 그만큼 세게 유리창을 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리는 불안감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에센. 문 열어.”
이제 그는 창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녀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만 말하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유리창 소리가 사라지자 하리는 이불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핀을 한참 보았다. 두려움에 가득한 눈동자는 핀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짓으로 나를 놀라게 만들 건가, 어떤 비극을 줄 것인가……. 그러나 핀의 표정은 늘 그랬듯 차분했고, 그 무표정에 그녀는 두려움을 넘어서 정신이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유리창 쪽으로 걸어갔다. 몸을 떨고 시선이 불안정한 것이 흡사 누가 뒤에서 등을 밀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서서히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강제적인 힘에 이끌려 어쩔 수 없다는 듯 창문을 열어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핀은 혼잣말 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 내버려둬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