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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제의 은밀한 욕구-6화 (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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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엔은 어떻게 폐하께서 그 여자와 사귈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거야?”

“이봐, 세라비.”

“응?”

“넌 처음부터 내게 반한 뼛속 깊은 ‘그쪽 취향’이라 잘 모르나 본데.”

“응? 뭘?”

티티팅, 그렐이 한 차례 우스꽝스럽게 연주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엔은 연주를 중단하고서 어떤 중대 발표라도 하듯 진중하게 외쳤다.

“남자 여자가 폐쇄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면 눈이 맞고 사랑에 빠질 확률이 높다고! 그것도 젊다면! 잘생기고 예쁘다면 무조건이야!”

그제야 세라비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터 사랑이 제조되는 거구나.”

“그렇지. 노래나 계속 할까?”

“응! 샤라랄랄! 샤바라랄랄! 아, 근데 아무리 황제 폐하라고는 하나 일단은 유부남…… 황후 폐하는 어쩔 건데, 엔?”

“하리랑 아직 사귄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사귀면 뭐 어때? 황후 폐하도 모르는 가공간이야. 원래 바람은 피는 것 보다 안 들키는 게 중요하다고.”

이런 말을 하는 여자가 정작 내 연인이란 말인가! 세라비는 한탄과 동시에 농담을 했다.

“엔, 오! 가여운 내 사랑, 일찍 죽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낄낄대는 그녀들의 웃음 속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희미하게 가려졌다.

***

세라비의 ‘사랑이 제조 된다’는 말처럼 하리의 운명이 달콤하게 흘러갈까? 지난 한달 간 핀이 죽음의 방에 간 적은 없었다. 황제란 신분은 그가 한 달에 단 두 시간도 마음 편히 여가를 보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만큼 여러 행사, 사건, 온갖 압박을 주어 그를 팍팍하게 몰아갔다. 무엇이든지 칼 같이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그의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죽음의 방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죽은 황태자 대신 둘째 아들을 황태자 자리에 올렸고, 제국 대도시에 있던 셀바히트 대교당을 통째로 가이덴교회로 바꾸어, 그것을 도시민들에게 알리는 축성식에 몸소 참관했다. 그 교회의 주교로 콧대 높은 가이덴 대주교의 제 1사제를 앉히는 것과 대주교의 축복마력을 교회에 두르는 것, 그런 모든 일들이 전부 황제의 압력과 조율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또한 그는 갑자기 대륙의 마력분화구가 폭발한 재해며 그에 따른 피해 보상에 대한 논의도 해야 했다. 매일 같이 회의가 이어졌다. 분화구의 마력방출을 막아야 하는 문제를 마활들과 회의했고, 마력을 흡수하고 사는 드래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공물을 모을 방편도 짜내었다. 아직 사르제스령이 되지 못한 변두리 땅들의 전쟁도 남았는데 그 모든 일정들을 미루고 한 회의며 일들이었다. 그 어떤 것이든 잡음이 없어야 했고, 핀은 온 신경을 집중하여 최종결정을 내리는 등 황제로서의 칼 같은 치세를 보여주었다. 그런 와중에 바느질방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것쯤이야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바쁜 시간이 지난 뒤, 그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들은 바로 황후를 포함한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핀을 환영하기는커녕 지친 표정으로 맞이할 뿐이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핀을 기피하는 눈치였지만, 감이 좋은 그는 가족들에게 섭섭함을 느끼기 보다는 자신이 몰두할 다른 일을 쉽게 찾아갔다.

그것은 자신의 침소에서 혼자 마법영상구를 보는 것이었다. 그는 예술인들이 만든 극을 구경하는데 쓰느라 꼬박 이틀을 새웠다. 어디까지나 감상이 아닌 ‘구경’이었다. 왜냐하면 감상에 들 수 있을 만큼 극이란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깔끔히 하고자 노력하지만 뭔가에 온 감성을 내던지고 즐기는 것만큼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희극, 비극, 온갖 것이 제 눈앞에서 스쳐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는 문득, 마법영상구 앞에 붉은 단발머리 남자 배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뭔가를 떠올려냈다. 바느질 선생의 붉은 단발머리, 그녀의 얼굴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는 망설임 없이 죽음의 방으로 향했다. 죽음의 방에 딸려있는 정원은 여전히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실제 꽃들과 가공간의 꽃들은 그 섬세함이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핀은 그러한 꽃들 대신,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디 한 잎도 밟지 않겠다는 듯 디딤돌만 정확히 밟으며 걸어갔다. 방에 들어선 그를 맞이한 것은 어떤 대난장판이었다.

어지러운 천 조각, 실 뭉치들이 제멋대로 엉켜있고 쪽가위, 자, 초크 등 온갖 바느질 도구들이 굴러다녔다. 그 엉망이 된 방 한 가운데 한 생물체가 핀에게 등을 보이며 뭔가를 허겁지겁 삼키고 있었다. 하리였다. 하리의 옆, 마법 생물 핀시도 새하얀 털 곳곳에 붉은 뭔가를 묻히고 마치 입맛을 다시듯 부리를 딱딱대고 있었다. 시침핀을 제 몸에 꽂는 것이 그 마법 생물의 식사였지만,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는지 핀시는 지금 인간의 음식을 미친 듯이 삼키고 있었다. 시녀장도, 엔도, 한 달 간 황제가 이곳을 들르지 않자, 청소하길 포기한 것이고 최소한의 식사만 준 것이었다.

핀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의 방을 관리하는 이들은 어차피 죽을 이들이라 아주 자유롭게 불성실했다. 그는 모두 포기하고 하리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단발이었던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은 어느새 어깨에 닿아 있었다.

“에센.”

하리라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핀은 그렇게 성으로만 그녀를 불렀다.

“에센.”

그녀는 두 차례에 걸친 황제의 부름에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핀은 웃으며 하리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를 올려다보는 초록색 눈동자는 매우 흐리멍덩했다. 거기다 눈 밑 칙칙한 기운은 턱까지 내려올 기세로, 누가 봐도 폐인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붉은 소스가 묻은 면 요리를 사흘 굶은 거지처럼 씹고 있는 지저분한 입술, 음식물을 마저 삼키지 않은 그 입술에서, 웃음과 함께 밝은 목소리가 나왔다.

“흐헤, 핀, 왔니? 여긴, 천국이구나. 네가 날 천국에 데려다 주, 준 거네. 으하하하!”

그 누가 보아도 미쳤다고 할 만한 모습이었다. 지난 한 달 간 죽음에 떨며 스스로를 놓아버린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천국 가려고, 나, 이거 만들었어! 이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갑자기 자신이 만든 퀼트 작품을 보여주려 했다. 그 문제의 작품은 바로 그녀가 뒤집어 깔고 앉아 식사를 하던 바닥깔개였다. 접시를 치우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그 대형 너비의 퀼트 작품이 들린 바람에 면 요리가 거침없이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핀의 구두에도 붉은 소스가 묻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인상을 찌푸린 핀이 구두에서 시선을 들 때였다. 찡그려있던 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이건……!’

천조각과 누빔으로 만들어낸 패브릭 예술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그야말로 눈부신 천국의 풍경이라 할 수 있었다. 구름이 넘실대는 바닥 위, 풍만한 몸에 온화한 미소의 주홍머리 천사가 붉은 머리 여자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패브릭 물감으로 번짐 효과를 쓴 여자아이의 뺨은 잘 익은 과일 빛처럼 발그레했다. 두 천사 모녀의 머리 위에는 구름이 솜으로 표현되어있었고, 따사로운 색조의 패브릭 조각으로 만든 무지개도 걸려있었으며, 무지개에는 은실과 금실로 수를 놓은 빛줄기 여러 가닥이 지상으로 빗방울처럼 흘러내리며 반짝였다. 날개달린 아기천사들은 나팔과 성수를 뿌리며 놀았고, 구름 바닥 위에 피어난 천국화 로가드리아는 꽃술에 성수 방울을 진주알처럼 품으며 세밀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무엇하나 흠 잡을 데 없는 환상적이면서도 자연스럽고 섬세한 표현력이었다. 네모, 세모, 단순한 도형이 아닌 곡선의 도형들을 하나하나 이은 것 하며 천사의 옷 주름 하나 까지도 꼼꼼히 표현한 이 작품에, 핀은 그만 소리 없는 탄성을 뱉고 말았다. 여태 이런 따스한 작품을 황실에서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림으로 그리기에도 까다로워 보이는 대형 작품을 각종 천조각과 톡톡 튀는 재료들, 바느질로 완성시킨 자가 정녕 눈앞에 음식을 지저분하게 먹고 있는 폐인의 꼴을 한 에센이란 말인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핀은 하리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네가 한 거야?”

“응. 왜? 예뻐? 너 줄까? 안 줘. 나 살려줬으면 줬을 텐데. 흥…….”

천한 욕설들이 흘러나왔다. 핀은 그녀의 정신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초보인 자신은 평생에 걸쳐도 못 만들 작품을 이런 폐쇄 공간에서 한 달 만에 뚝딱 만들어낸 것이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는 당장 시녀장을 불러 하리가 만든 작품을 흠집이 나지 않도록 세탁 시키고 엔에게 청소를 시켰다. 그리고 그 작품 덕분에, 그는 하리의 죽음을 일시적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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