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화
* * *
그날 저녁, 식사 후 그들은 연못가 정자 위에 있었다.
그녀는 앉아 있었고, 그는 길게 누워 그녀의 다리를 베고 있었다.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철쭉이 눈앞에서 흐드러지고 라일락 향이 바람결에 날아와 달콤하게 너울거렸다.
연못을 바라보며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고 있는데 그가 물었다.
“병원에선 뭐래?”
사빛은 오후에 고양이를 데리고 시내에 있는 동물 병원에 다녀왔다.
그녀의 뒤를 졸졸 따르는 킴은, 그녀가 차 문을 열고 가만히 기다리면 알아듣고 차에 탄다. 그러고는 그녀가 미리 실어 놓은, 강원도에서 올 때부터 함께했던 바구니 안에 몸을 웅크린다.
예전에 시골에서 살 때, 배가 고파 보여 먹다 남은 고기를 한 점 던져 줬더니 먹고는 매일매일 집에 찾아오던 고양이가 있었다.
할머니 눈치가 보여 모른 척하는데 마치 사람인 양 현관문까지 두드렸다. 그때부터 고양이가 참 똑똑하구나 생각하긴 했는데, 킴은 더 똑똑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건강한 편이래요. 예방 주사 맞히고, 바르는 약이랑 먹여야 하는 약 받아 왔고요. 주사는 몇 번 더 맞아야 한대요.”
바깥에서 살던 아이다 보니 실내에서 보살핌받는 아이들만큼 깨끗하지 않을 뿐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고양이 키워 봤어?”
“아뇨.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있고, 도서관에 들러 책도 좀 빌려 왔어요. 하나씩 알아 가려고요.”
킴은 진현당에 오더니 의외로 얌전했다. 한참 동안 없는 듯이 굴기도 했다. 그때 식당에서 만났던 애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지금도 저기 멀찌감치, 정자 난간 위에서 엎드려 자고 있다.
틈틈이 계속 자는 것 같다. 고양이가 야행성이라 그런가 보았다.
그런 애가 관광지 식당에서 오전부터 저녁까지 손님맞이를 그렇게나 열심히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조용하긴 하지만 예민함은 그대로여서 조는 와중에도 그녀의 기척이 느껴지면 발딱 깨어나곤 했다. 그러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졸졸 따라온다.
어쨌든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사빛은 여전히 서두르지 않고 계속 곁눈으로 주시하며 모른 채 두었다.
“좀 있으면 벼농사 시작해야 해서 전체적으로 맡아 진행해 줄 사람을 구할까 해. 농사 잘 모르는 데 일일이 신경 쓰기 힘들어서.”
그의 말에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뺨과 입술을 지분거리며 말을 이었다.
“안 되면 통째로 임대할까도 생각 중이고.”
“아…….”
“집도 봄부터는 이런저런 일이 많아질 테니까 방법을 찾아볼게.”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사빛은 자연스럽게 태 씨 아저씨와 방 씨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그분들이 다시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말하는 모든 일을 그 두 사람이 책임지고 해 왔다. 믿고 맡겨 놓으면 그들이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을 거였다.
그러나 선뜻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그가 말이 없어지는 그녀의 뺨을 톡 치곤 몸을 일으켰다.
“부추전 해 먹을까?”
“배고파요?”
“어제 그랬잖아. 너무 많이 났다고.”
이른 봄이라 텃밭에 있는 달래 쪽파와 냉이, 시금치와 부추가 쑥쑥 자랐다. 더구나 두메부추는 꽃이 예뻐 아저씨가 한편에 여러 줄 심어 놓았기에 올해도 꽤 많이 올라왔다.
예전에 할머니가 마당에 심었던 일반 부추 하얀 꽃도 예뻤는데, 여기 와서 본 두메부추의 꽃은 연보라색으로 좀 더 화사했다.
“그럼 내가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잘라 와요.”
부추는 밑동을 가위로 자르면 금세 또 자란다.
투명한 볼에 달걀 반죽을 만들어 놓고, 찍어 먹을 간장 양념을 만들고 있자니 그가 부추를 가져왔다.
그걸 본 그녀가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너무 많이 잘라 온 거 아니에요?”
“그래?”
그가 멋쩍다는 듯 자기 손의 바구니를 내려다봤다.
“그럼 나머지는 무칠까? 골뱅이 캔 있는 거 따서 내가 무칠게.”
“그럼 우리 송실주도 마셔 봐요. 잘 익고 있나 보게.”
사랑채 작은방 안에 작년 가을에 담가 둔 솔방울 술이 다섯 병 있었다.
“그럴까?”
부엌으로 들어온 그가 개수대 수전을 열어 부추를 씻기 시작했다.
두메부추는 일반 부추보다 키가 많이 작은 대신 잎이 넓고 두껍다.
그녀가 크기에 맞춰 동글납작하게 전을 부칠 동안 그는 남은 부추와 양파에 골뱅이 살을 추가하여 매콤새콤하게 무쳤다.
그들은 두 요리를 소반 위에 얹어서 사랑채로 향했다.
방에서 다섯 개의 기다란 유리병 중에 하나를 들고나와 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하늘이 참 맑았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고 별도 많았다.
그가 젓가락으로 손바닥만 한 부추전을 반으로 찢어 양념에 찍은 후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전을 입에 넣고 씹으니 달콤한 즙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우물거려 삼키고는 사빛이 말했다.
“이 부추를 정약용 선생이 즐겨 드셨데요. 정조 때 실학자요.”
“그래?”
“네.”
그가 이번엔 빨간 양념이 묻은 골뱅이 하나를 부추와 함께 집어 그녀의 입에 넣어 주고 자기도 집어먹었다.
“내 이름이 왜 사빛인 줄 모르죠.”
“닮을 사 자에, 한글로 빛이라며.”
전에 혼인 신고할 적에 한 글자만 한자인 것을 보고 그가 신기해했었다.
“거기에 사연이 좀 더 있는데요. 저기 저 배롱나무요.”
그녀가 사당으로 향하는 방향에 서 있는 큰 나무를 가리켰다.
“응.”
“저 나무를 보고 정약용 선생이 지은 한시 어느 구절에서 따온 말이에요. 원래는 아버지가 거기 나오는 한자 그대로 사광이라고 지었는데, 딸이라서 놀림받을까 봐 할머니가 사빛이라고 고쳐 주셨대요.”
“사광이가 될 뻔했네?”
“네. 저희 아버지 가명 ‘송보’도 정약용 선생 아명 중 하나예요. 어려서 학교에 있던 위인전을 읽고 존경하게 되었대요.”
“아, 정말 좋아하셨나 봐.”
“네.”
“그 한시 구절 뜻이 뭔데?”
“고요하고 그윽한 빛, 시골집을 닮았다…….”
그가 조용한 미소로 그녀의 앞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가만가만 쓸더니 귀 뒤로 꽂아 준다.
“난 참, 너에 대해 모르는 게 많네.”
“당연하죠. 난 24년이나 살았는데 우린 고작 1년밖에 같이 안 살았잖아요.”
그녀의 말에 그가 픽 하고 웃었다.
“아기 어른 같아.”
“애늙은이 말이에요?”
“아, 그건가?”
전에 몸 아이도 그렇고, 외국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이상한 말을 종종 한다. 잘 안 떠올라서 자기 맘대로 막 짓는가 보았다.
나무 국자로 솔방울 술을 한 잔 덜어 주며 그녀가 또 수다를 떨었다.
보름달이 떠서 그런지 이상하게 말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그녀가 보름달과 관련이 깊은 두꺼비의 팔자와 상이라서 그런가 보았다.
두꺼비는 물이기도 하지만 달의 정령이지 않은가?
“이게 진짜 몸에 좋은 술이에요. 신선들이 먹는 신비의 술이래요. 아세요?”
“아니. 왜 신비의 술인데?”
“몸을 몹시 가볍게 만든다고요. 이걸 천 일 동안 마시면 물 위를 걷고 구름을 탈 수 있다고…… 들 말하지만 거짓말이고요. 300일 동안 마시면 500리를 거뜬히 걷는다는 말은 옛 문헌에 있대요. 500리가 얼마큼인지 아세요?”
그렇게 별다른 것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기다란 술병이 바닥을 보였고 밤 10시가 되었다.
옛날에 지어진 집이라 사랑채에 딸린 작은방은 아주 많이 작았다.
천장도 낮아 몸이 큰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사빛이 그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차마 사방이 다 뚫린 마루에서 정사를 나눌 수는 없어서였다. 사랑채 본 방은 자물쇠로 잠겨 있고.
그는 정말 그런 것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래도 그가 활짝 열어 둔 문만큼은 닫자고 하지 않았다. 더위를 많이 타는 그가 술까지 마셨으니 닫으면 많이 답답할 거였다.
그녀를 안고 들어온 그는 그녀의 몸을 3단짜리 서랍장 위에 앉혔다. 이 방의 유일한 가구였다.
그녀 바지의 버클과 지퍼를 내린 그가 속옷과 함께 벗겨 내렸다.
오래된 가구에 부위를 대는 것이 못내 마음 쓰이는데 그는 그녀가 내려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할 새도 없이 양 허벅지를 밀어내고 그곳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흣.”
몸을 지탱하기 위해 서랍장의 모서리를 짚고 있던 두 손 중 하나를 들어 입을 막았다.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잡고 있는 허벅지가 파르르 진동했다.
갈라진 살을 쓸어 올리다 둥근 정점을 잘근 무니 그녀가 몸을 급격히 앞으로 말며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아윽, 하, 하지…….”
하지 말라는 소리가 끝까지 나오지 못했다. 그는 그녀에게 머리가 붙들린 채 야릇한 소리를 내며 돌기를 입 안으로 흡입했고,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간 끝을 혀로 짓뭉개듯 문질렀다.
견디기 어려운 그녀가 허벅지 안쪽과 손가락, 힘을 줄 수 있는 온 부위에 강한 힘을 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맛있어.”
취기 탓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몸과 숨이 뜨거웠다.
그녀의 윗옷 단추를 모두 해체한 그는, 옷 사이로 드러난 가슴 한쪽 끝을 입에 문 채로 자신의 바지를 속옷과 함께 대충만 내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입을 물고 분신의 끝을 탱탱하게 부은 돌기에서부터 죽- 그어 내려 중심에 맞추고 부드럽게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