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 *
그날 밤, 커튼 사이 창밖으로 끄트머리가 약간 허문 둥근 달이 보였다.
아주 옅은 구름만이 잠시 그 위를 덮었다가 금세 옆으로 비켜났다.
마치 얇은 대백색 천이 소리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안개가 낀 듯도 하고.
그쪽을 바라보며 누워 색색거리는 사빛의 등 뒤엔 벌거벗은 이훤이 달라붙어 있었다. 한쪽 팔과 다리로 이불처럼 그녀의 맨몸을 덮은 채였다.
사정을 마치고도 뭣이 아쉬운지 빼내지 아니한 남자는, 그녀의 몸과 시트 사이에 들어가 있는 한쪽 팔로 불룩한 가슴을 감싸듯 끌어안고 있었다. 덕분에 사빛은 숨을 쉴 때마다 묵직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때, 그녀의 허리를 덮고 있던 바깥쪽 손이 아래 부위로 향했다. 그러더니 튀어나온 부분을 장난처럼 톡톡 건드린다.
늘어져 있던 사빛이 화들짝 놀랐다. 하지 말라고 몸을 틀어 보았지만 큰 몸에 눌려 있는 작은 몸은 힘을 쓰지 못했다.
그가 계속 만지작거리자 그녀에게서 옅은 비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자극이었는지 이훤의 손짓이 좀 더 짙어졌다.
사빛은 꽁꽁 묶인 채 숨을 할딱대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비비고 뭉개는 감촉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아, 으응. 하, 하지.”
귓불은 물론 양 볼까지 뜨겁게 달구어졌다.
안 그래도 크게 부푼 것을 동글동글 굴리다가 위아래로 쓸다가 다시 굴리는 손. 그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졌다. 그녀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아, 이, 이건. 너, 무.”
말이 뚝뚝 끊어지며 제대로 된 의사 전달을 할 수 없었다. 뭔가 서서히 차오를 때는 괴로워 등허리를 떨다가 몇 번을 휘청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안에서 풍선처럼 뭔가가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하듯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자지러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머릿속이 깜깜하고 눈앞은 하얬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하지 못하고 거친 숨만 가쁘게 쌔근덕거렸다.
자극된 몸이 간헐적으로 튀었고, 쥐가 난 듯 뇌가 저릿저릿했다. 심장이 둥둥거리며 온몸의 세포가 모두 분열된 듯한 느낌. 둔부는 물론 허벅지까지 덜덜 떨렸다.
오르가슴이었다. 현실에서 이 정도로 크게 터진 건 처음이었다.
자신이 물이 많은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꿈에서 이런 상태가 정상인 건지 걱정되고 궁금하여 남몰래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녀는 그 다름 중에 상위에 있는 것 같았다.
사빛은 그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지금처럼 크게 터질 때는 마치 그 자리에서 실수라도 한 느낌이었으니.
인터넷으로 알아본 뒤로 그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실수는 아님을 알았지만 터질 때마다 번번이 수치스러운 건 여전했다. 나 막 밝히고 그런 사람 아닌데.
물론 섹스를 좋아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저는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몸만 그렇게 반응하니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그래서 이 물 풍선이 터진 것 같은 것만은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가 작정하고 붙들고는 괴롭히니 별수 없었다.
질척이는 젖은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사빛이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었다.
그가 느릿하게 같은 부위를 만지고 있었다.
그에게 막혀 있어서인지 미끄러운 물이 한 번에 흐르지 않고 느릿하게 허벅지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한 번 파정 후에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던 그의 몸이 꿈틀거리며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두 체액으로 흥건한 안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의 몸은 금세 흉포해졌다. 내부를 가득 메우며 그녀의 몸을 벌렸다.
“아으음.”
자극된 아래가 벌어지며 잇새로 억눌린 신음이 흘렀다.
그가 그녀의 몸을 바닥에 눕히며 뒤에 올라탔다. 시트에 납작 엎드린 자세가 된 그녀의 뒤에서 그가 몸을 길게 빼냈다가 다시 깊게 밀어 넣었다. 잠시 넣은 채로 두더니 또 길게 나갔다가 깊게 들어온다. 그러고는 짓이기듯 둥글렸다.
사빛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참의 느릿한 허리 짓 후 그녀의 몸을 돌려 눕힌 그가 느린 행위를 반복하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자꾸 아기 얘기를 하시네.”
숨 쉬는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극에 천천히 함몰되어 가는 그녀와 달리, 그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거 왜 하는 거냐고 묻고 싶을 만큼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퀭한 눈으로 그의 눈을 마주했다. 코끝에 키스한 그가 그녀의 한 다리를 자신의 팔에 걸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그녀의 몸에 짓쳐 들었다. 그러다가 또 느릿느릿해지는 움직임.
그런데 무슨 말일까. 할아버님이 아기를 원하신다니. 겉으로 보기엔 아이를 예뻐하고 그러실 분은 아닌데, 대를 이을 손주를 바라시는 걸까?
한참 느릿하게 움직이던 그가 또다시 빠르게 속을 파고들었다. 몸이 격하게 흔들리자 그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 주었다. 덕분에 자유로워진 다리를 바닥에 내리는데 그가 잡아서는 제 허리에 감았다.
나머지 한 다리도 자기 몸에 단단히 엮고는 빠르게 치대기 시작했다.
“아, 으, 응. 아, 아.”
거세진 추삽질에 사빛의 입에서 교음이 터졌다. 그도 잠시 대화를 잊고 행위에 집중했다.
호흡도 조금씩 빨라지는 듯하다. 젖은 살들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공간에 퍼지며 귀를 사정없이 철썩철썩 때렸다.
한참을 빠르게 몸을 부딪쳐 오던 그는 절정으로 치달으려는 순간 또 갑자기 몸을 느리게 했다. 사정감을 조절하는 듯하다. 이제는 아주 능수능란하였다.
거칠게 헐떡이던 사빛이 긴 숨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기요.”
“음. 너도 아기 가지고 싶다며.”
그가 한 손으로 윗몸을 지탱한 채 한 손으로 그녀의 가슴 끝을 매만졌다. 그러더니 빳빳해진 몽우리를 입에 쏙 넣었다.
“아, 음, 아기, 는. 음.”
간지럽고 짜릿해서 도무지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는 곧 다른 쪽도 입에 넣었다. 축축해진 한쪽은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아아, 응.”
그녀가 허리를 뒤틀었다. 그래도 뭐든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으니 이건 말을 해 줘야 했다. 여기에서의 침묵은 거짓말과 같았다. 그와 거짓말하지 않기로 불과 몇 시간 전에 약속하지 않았던가.
“아기는, 다음, 음, 에. 아!”
“뭐라고?”
바짝 솟구친 멍울을 이로 잘근거리던 그가 하던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사빛이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아기는…… 나중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가 윗몸을 세웠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한 사빛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아기는 나중에 가지려고요. 저 사실…… 약 먹고 있어요.”
그의 반듯하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무슨 약?”
“피임약이요. 결혼 전부터…….”
그녀의 대답에 그의 입이 길게 다물렸다. 화난 걸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녀를 한참 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시선에 사빛의 눈망울이 심하게 흔들렸다.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다.
꿈속의 그가 떠올랐다. 그가 그때처럼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갑고 딱딱하게 나를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슴에 치미는 무언가에 울컥한 기분이 드는데, 그가 나직하게 물었다.
“아기, 가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었나?”
사빛이 진심을 담아 설명했다.
“네, 가지고 싶어요. 그렇지만 언젠가, 엄마가 될 준비가 되면요.”
“엄마가 될 준비가…… 뭔데?”
그가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또 물었다.
사빛은 입을 달싹거리다 결국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고 또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지난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 한 그에게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절실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또다시 무책임할 수 없었다.
아기는 모든 위험이 사라진 후라야 비로소 원할 수 있었다. 그래야 지킬 수 있었다.
이훤은 내내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빛은 울음이 날 것 같았다.
“음, 좀 더 안정되고…… 좀 더 건강해지고…….”
눈을 피하며 어물거리는 그녀의 설명에, 멈춰 있던 그가 다시 느릿한 허리 짓을 시작했다.
지그시 내려다보며 천천히 움직이던 허리가 점차 속력을 내더니 격한 마찰로 부위를 뜨겁게 했다.
“아, 흣.”
한계까지 차오르는 묵직한 감각에 허리를 떨며 사빛이 신음했다. 잠깐의 긴장으로 다소 뻑뻑해졌던 안이 금세 또 질퍽해졌다.
아픔 속에서도 쾌락이 진동하였다. 절절 끓는 새빨간 진창에 뒹구는 듯한 기분이었다.
뜨거워지는 얼굴로 한참을 앓다가 또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늘게 눈을 들어 올렸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움직이는 그를 바라보며 사빛은 슬펐다. 상처받은 걸까?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이럴 땐 자신의 말솜씨가 좀 더 유려하고 능수능란하지 않음이 너무 아쉽다.
그에게 상처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꿈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였다.
“아기를, 위해. 음, 윽.”
와중에 또 바보 같은 말을 뱉고 말았다. 왜 이렇게 말을 못 하는지.
사과하고 싶은데 여기서 사과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별로였다.
그가 몸을 더욱 깊이 기울이곤 빠른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아. 아아.”
또 터질 것 같은 감각이 차올랐다.
그는 숨 쉴 틈조차 없는 행위로 두 몸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후, 동공이 확장되는 그녀가 더는 견딜 수 없는 곳까지 다다라서야 몸을 겹치고는 뜨거운 체액을 쏟아 냈다.
“하-”
그의 입에서도 진한 탄식이 흘렀다.
달라붙은 뺨과 뺨 사이가 둘이 내뿜는 열기와 땀으로 질척했다. 맞붙은 두 심장이 격한 뜀박질을 하고, 남자의 체액이 들어차는 사빛의 허리가 경련하듯 파들거렸다.
한참, 웬만큼 쏟아 낸 그가 느릿느릿 여운처럼 비비다가 천천히 몸을 빼냈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허전함과 함께 비릿한 풋내가 사빛의 코로 밀려들었다. 고향 뒷산에 밤꽃이 지천으로 필 적에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그가 협탁에 팔을 뻗어 티슈를 몇 장 뽑아 대 주었다. 그녀가 받아서 마저 닦으며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는 그녀의 윗몸을 팔에 감아 안고, 위로 들리는 그녀의 얼굴로 고개를 내려 진한 입맞춤을 했다.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 주고 눈가에 맺힌 눈물도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큰 가슴에 그녀를 푹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