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외전2화
하린의 도발적인 발언에 태형은 더욱 짙은 웃음을 보였다. 그 웃음을 보는데 하린은 순간적인 오싹함을 느꼈다.
아 솔직히 이렇게 웃는 건 반칙인데.
필연적으로 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신체적인 변화는 의지로 막을 수는 없었다.
“이게 또 무서운 줄 모르고.”
“무서운 거 모르는 게 제 매력이라면서요.”
코끝을 간지럽히는 그의 언사에도 하린은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과하리만치 그를 긁어댔다.
“커피나 마셔.”
“이거 다 마시면 하는 거예요?”
“발랑 까져서는.”
“누구한테 배운 건데.”
태형이 만족감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꼭 이상한 곳에서 자신을 희생하려 들 때가 있었는데, 이런 일들이었다.
자신은 괜찮다는데 말이다.
물론 그가 왜 이토록 자신을 검열하는지 알았기에 하린은 평소보다 멋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가 만들어준 음료를 다시 손에 들고는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단숨에 꿀꺽꿀꺽 넘겨버렸다.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맛과 뒷맛에 시나몬 향이 잔뜩 풍겨왔다. 그리고는 입가에 묻은 거품을 혀로 훔쳐내며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꽤 도발적으로, 말이다.
그 모습을 보던 그는 헛웃음을 보였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하린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말캉하면서도 기분 좋은 부드러움이 풍겨 나왔다.
하린은 거침없이 그의 다리 위에 앉았다. 감정을 검열하여 보이는 표정과는 다르게 묵직한 느낌은 날것 그대로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그녀는 다리 위에 앉은 채 엉덩이를 미약하게 흔들었다. 정숙하지 못한 행동과 제스처에 놀란 건 태형이었다.
곧바로 그 행동을 혼이라도 내는 듯, 그의 매서운 손길이 이어졌다.
찰싹- 옷 위로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약하게 들렸다.
“아앗.”
“못된 것만 배워서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 이후 키스는 온전히 그가 주도했다. 이제는 참아주지 않는다는 듯이 꽤나 난폭한 키스였다.
아니, 잡아먹을 것 같은 짐승 같은 느낌이라고 정정해야 할듯했다.
치아끼리 닿는 느낌이 들어도 어느 하나 주춤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갈구하고 무언가를 바라듯이 행동했다.
그의 혀가 피아노를 연주하듯 치아를 훑고 지나가고. 간헐적인 호흡과 질척이는 소음만이 자리했다.
“진짜 하고 싶어?”
“네.”
천천히 입술이 떨어지고, 하린은 천천히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봤다. 아까의 평온한 눈동자는 어디로 갔는지 맹렬한 짐승과 같은 그의 눈빛만이 남아있었다.
꼭 목덜미를 사정없이 찢어발길 것 같은 눈빛이었다. 이 난폭한 눈빛에는 묘한 섹시함이 묻어있었고.
거친 숨을 내뱉을 때면 그의 목젖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하아……. 침실로 들어가 있어.”
느릿한 음성 속 명령이었다.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씻고 갈게.”
***
어스름한 새벽,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으나 졸음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날이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들뜨고 시원한 새벽의 공기가 새로운 기분.
시야를 밖으로 돌리니 희고 붉은빛들이 가로등과 함께 반짝였다.
하린은 괜히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차량 내부를 건드리며 소리의 높낮이를 조정했다.
그럼에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가슴 위로 곱게 두 손을 포개 올리며 지그시 눌러댔다.
“저 너무 떨려요. 어쩌죠.”
운전하던 태형이 그런 하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정말 이대로 쭉 가서 비행기만 타면 스위스를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떨리고 설레어서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전에 이따금 태형의 키워준 양부모를 보러 가자며 말이 나왔으나. 입 밖으로 나와도 실행에 옮기지 않아 내심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주 만에 정말 스위스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꿈 아니지?
미국에 있던 그의 양부모는 하던 사업을 접고 소소하게 스위스로 넘어가 요양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몸이 조금 안 좋아진 것도 있고 이제는 자연 친화적으로 살고 싶다고.
비행기를 많이 타본 것이 아니기에 설레는 것도 있었지만, 그가 절대 말해주지 않던 그의 역린과 같던 부분인 양부모를 보러 가는 일은 설렘이 가득했다.
“이제 매번 갈 건데. 진정해.”
그의 말에 열감이 올랐다. 정말 가족 같아서.
뭐 사실 정말 가족이 맞긴 하나, 가정을 이루고 그것에 인정받은 것 같아서였다.
주체할 수 없는 떨림에 손가락이 절로 얽히듯, 하린은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공항에 도착하니, 여럿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하나 밝고 신나는 분위기.
해맑은 미소와 함께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사람들이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태형은 미리 불러둔 기사에게 차를 인계하고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태형의 캐리어는 검정이고 하린의 캐리어는 흰색이었다. 옷도 묘하게 블랙엔 화이트로 맞춰서 입었는데.
묘하게 커플룩으로 보이기보단 그냥 멋있었다. 강태형이라는 사람이 멋있어서 그런가.
“이리 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왔기에, 하린은 표정을 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태형이 가까이 다가와 장난기가 잔뜩 어린 음성으로 작게 속삭였다. 그가 다가오자 그의 스킨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귓가에 그의 호흡이 닿자 몸이 잘게 떨려왔다.
“얼굴이 붉어졌지?”
“그냥 우리 둘이 커풀룩 입는데 좋아서…….”
하린은 아주 작게 쥐 죽은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태형은 잠짓 원하던 대답이 나오지 않았는지 금세 에이, 하며 관심이 줄어버렸다.
“난 또, 저번 여행 생각하는 줄 알았네.”
“네……?”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하린을 두고 그는 유유히 앞서 걸었다.
매번 저러지.
저번 여행이라면 그 전날까지 괴롭히고 또 괴롭혀서 하린이 차마 걸어 나가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었다.
오죽하면 그때의 기억이 거짓말 조금 더 보태 허리 아픈 것밖에 남은 게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말이지.
매번 당하고도, 또 당하는 것이 억울하다가도.
“뭐해. 이리 온.”
유유히 걸어가던 걸음이 멈추고 오지 않는 하린을 챙긴다. 그녀를 바라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며 보기 좋게 눈꼬리가 휘는데, 저 모습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까.
영화 몇 편 보고, 기내식도 먹고, 작은 목소리로 수다도 떨고, 잠도 자다 보니 벌써 스위스 상공에 들어왔다.
분명 불편하고 지루할 거라고 말하던 그의 말과 상충하였기에 하린은 조금 의아한 듯 고개를 비틀었다.
벌써 도착했네.
물론 넓은 자리였기에 자는 데 불편함이 없었기도 했지만, 태형과 함께라면 이 오랜 비행도 이토록 좋을 수 있는지를 상기했다.
더불어 이쯤 되면 자신의 감정도 중증이라는 것도.
곧 도착할 거라는 기장의 안내방송에 하린은 반쯤 누워있던 상체를 쭉 펴며 정자세로 앉았다. 나른한 졸음은 어느 순간에 날아가 사라져버렸고, 그사이에는 들뜸만이 가득했다.
머리 위로 불똥이라도 떨어진 듯 하린은 두 손을 허공에서 흔들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옆에서 아직 잠들어있는 태형을 두고 한참을 속으로 소리를 외쳤다.
아!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시면 어쩌지.
나이 차이 많이 난다고 싫어하시면 어쩌지? 부모님 같은 분이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꾸미고 가지 않는 걸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즐비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비행기는 착실하게 도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들이 하늘에서 조금씩 땅의 면적이 보이기 시작했고.
설레는 감정과 비행기가 육지로 향하며 오는 부압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심장이 위로 올랐다가 바닥을 떨어지는 느낌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강한 느낌에 끙끙대는 것을 보고 있던 승무원이 찾아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혹시 몸이 안 좋으십니까?”
“네? 아…… 괜찮아요.”
옆에서 자고 있던 태형이 승무원의 음성에 눈을 뜨고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디 안 좋아?”
“저…… 진짜 괜찮아요.”
수치스러워.
부끄러움에 차마 얼굴을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정말 괜찮은 것인지 승무원은 면밀히 살피다 돌아갔다.
그러자 태형은 하린의 턱을 부드럽게 쥐고 들어 올려 시선을 마주 봤다. 짙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치자 말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 증폭되었다.
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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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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