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외전1화
단단한 쿠키가 손끝에서 부서졌다.
졸린 고양이처럼 소파에 누워 게으르게 소파에 늘어져 있으니 행복이 따로 없었다.
리모콘을 들고 손목만 까닥거리며 TV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베실베실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는 뭘 보아도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었는데. 요즘은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냐오옹-
저 멀리서 느릿하게 걸어오는 작은 생명체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오미 조밀하게 생긴 털 뭉치가 하린이 누워있는 소파 위로 털썩 올라가더니, 발치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
긴 털이 하린의 발끝을 간지럽혔다.
간지럼을 느낀 하린은 발끝으로 고양의의 앞발을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치자, 고양이는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어구, 싫어?”
하린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따사로운 햇살, 평화로운 오후, 고양이와 각종 TV 프로그램들.
여러 가지의 일들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하린의 품에 자리를 잡은 것들은 이런 따듯한 것들이었다.
이것이 낙원이라면 낙원이겠지?
전에 하던 일이 다 끝난 지 한 달 정도, 하린은 온전한 휴식을 선택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면서 살아나가는 것 말고,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달콤한 휴식에 눈을 뜨고 보니 이 낙원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평생…… 놀고먹고 싶어…….
물론 태형은 그저 쉬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결혼생활을 누려도 된다고 말하긴 하지만.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바람이 흐르는 대로 물이 떠내려가는 대로 살고 싶었다.
물론 그중 제일 크게는 평생 놀고먹고 싶은 게으름의 요정이 하린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긴 했다.
한동안 잘 먹고 잘 쉬어서 그런가, 홀쭉하던 배가 땡땡해진 것을 보며 하린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이 가지고 싶은데.”
이따금 태형에게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은 해보았지만, 그는 짧은 단어로 하린의 말을 일축했다.
안돼, 라고.
삶이 편해지니 평화로운 지금도 좋았지만,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되기도 했다.
그 미래에는 나 자신과 태형 그리고 그의 얼굴을 쏙 닮은 아이까지 함께였다.
“그를 닮은 남자아이나, 아니면 여자아이도 너무 이쁠 것 같은데.”
매번 이런 말을 하면 태형은 아이가 무슨 아이를 키우냐며, 더 시간이 흘러서 낳아도 충분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발치에 누워있는 고양이도 사실 아이 이야기 이후에 온 거기도 했다. 아이 대신이랄까.
“복아 너도 아빠 닮은 아기 있으면 좋지 않겠니.”
고양이의 이름은 아빠의 성을 물려받아 강복, 통칭으로 복이라고 불렀다.
복이는 제 이름이 나오는 건 아는지 귀만 쫑긋 세우며 꼬리를 흔들지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떤 말을 해야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그냥 포기하고 마음편히 살지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대립했다.
하린은 아까 먹던 쿠키를 바스락바스락 부시며 생각했다. 이렇게 고민한다고 해도 보통 이기는 사람은 한 명이었다.
삑삑삑삑-
도어록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하린은 그 소리를 듣자, 손에 묻은 쿠키 가루를 털고 티슈로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현관이 있는 쪽으로 뛰어가자,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중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의 근사한 얼굴이 보였다.
“왔어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어보자, 태형이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며 웃었다. 꼭 집안에서 주인만 기다리던 강아지 같았다.
태형에게 구두칼을 건네주니, 그는 그것을 받으며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는 상냥한 얼굴로 하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쿠키 먹으면서 TV 보고 있었어요. 복이랑.”
“그래? 잘했네.”
태형은 하린이 원래 있었을 소파 자리를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하린의 입술 끝에 묻는 쿠키 부스러기를 때어주었다.
“먹여도 먹여도 살 안 찌더니.”
그리고는 빵빵해진 하린의 배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드디어 배가 빵실해지는 것 봐.”
“빵실…….”
하린이 태형의 말을 듣고 얼굴이 허옇게 질려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가볍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빼면 되지. 치이.”
운동도 많이 안 하는 것 같은데,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그의 몸을 보며 하린은 입술을 삐죽였다.
“뭐야 유혹하는 건가.”
발 앞에 슬리퍼를 놓아주자 발을 꿰며 집 안으로 들어온 태형이 자연스럽게 하린을 끌어안았다.
자연스럽게 허리에 손을 두르는 그의 손길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런 주제에 발칙하게 그의 목을 끌어안고 숨을 들이켜며 향을 맡았다.
태형이 그 모습을 보며 웃자, 하린도 따라 웃었다.
“달콤한 초콜릿 향이 나네.”
“아얏.”
“달다.”
말을 내뱉고는, 정말 맛이라도 보겠다는 듯이 하린의 뺨을 살짝 깨물었다.
미약한 통증에 코끝을 찡그리니,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하린의 코끝을 툭 치며 욕실로 향했다.
하린은 소파로 자리를 옮기고는 위에 누워있던 복이를 안아 들었다.
평소라면 버둥거리며 도망갈 법도 한데 오늘은 웬일인지, 골골 소리를 내며 하린의 어깨에 대고 앞발을 움직여 꾹꾹 눌러대기 시작했다.
“아빠 와서 기분이 좋아? 나도 좋아.”
고양이를 안아 들고, 태형이 있는 곳을 힐끔거리던 하린은 손을 씻으며 거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태형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시선을 회피하니, 손을 다 씻은 그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하린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뭐 하고 있었어?”
“그냥, TV도 보고 복이랑 놀아주고…… 그랬어요.”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며 태형이 나긋하게 웃었다.
“복이랑 놀아주느라 연락이 한 통도 없었구나.”
아까 했는데. 아……바쁠까 봐 쓰기만 하고 보내지는 않았나?
“뭐라 말하려고 그리 눈동자를 바쁘게 굴리지.”
하린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자, 태형이 그런 그녀의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내 연락 많이 기다렸어요?”
“웃으라고 말한 거 아닌데.”
“헤헤.”
하린이 어색하게 웃어 보이니 그의 커다란 손이 다가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냐옹- 하린만 만져주는 태형의 손길에 질투라도 나는 것인지 복이가 허공에 대고 앞발을 흔들어댔다.
하린과 태형이 허공에서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음을 보였다.
“요것 봐라.”
“그러게요.”
태형이 복이의 털을 쓰다듬고, 턱 아래를 슬슬 긁어주니 골골거리며 소리를 냈다. 인간이고 짐승이고 그의 손길을 좋아하니 어쩔 수 없었다.
복이는 원하는 만큼 만짐을 당했는지, 하린의 품을 뿌리치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자리에서 그루밍 몇 번을 하더니 확 트인 밖이 보이는 자리로 느릿하게 걸어갔다.
“이뻐라.”
“너만 할까.”
하린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말에 태형이 대답했다. 그 말뜻에 상기된 뺨을 한쪽 손으로 훔치며 그를 툭 쳤다.
아이 타령한다고 대리고 온 고양이였지만, 생각보다 동물이 주는 감정적 충만감이 있었다.
물론 종종 이따금 억울함이 생겨서 태형을 길게 노려볼 때도 있긴 하지만…….
“조금 이르긴 한데, 일찍 저녁 먹을래? 배고파?”
“지금은 별로요.”
부엌으로 향하자 태형은 자연스럽게 커피 원두을 뜯었다. 어느 날부터 어디서 커피를 배워왔는지 매일같이 라떼를 만들어주었다.
간 커피 원두를 꺼내니 커피향이 물씬 돌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켜고, 우유를 꺼내어 거품을 만들었다.
사실 캡슐머신으로 내려서 먹는 커피가 더 맛이 있지만 하린은 꾹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준 커피는 그의 애정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근데 왜 매일 만들어주는 거예요?”
“살찌워서 잡아먹으려고.”
대답과 동시에 하린의 앞에 컵이 놓였다. 크림이 위에 올라간 고소한 커피향이 풍겨 올라왔다.
그가 준 커피를 입에 대며 한 모금 마시니 역시나 질 좋은 원두의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컵을 내려놓으며 하린은 두 손바닥에 턱을 괴었다.
“나…….”
이게 왜 먹히는지는 본인은 모르겠으나, 이렇게 하고 두 눈망울을 반짝거리면 대부분 먹혀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지.”
몇 번 당해 본 적 있는 그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하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애교를 떨었다.
“저 오늘 안전한 날이에요.”
지은이 : 퍼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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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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