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6화 완생
오늘 그는 정사 중에 결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계속해서 물어봤다.
다 끝나고 물어도 될 것을 꼭 굳이 관계 중에 물어보는 것은 그의 짓궂은 장난이었다.
다 끝난 후 하린은 태형에게 길게 눈을 뜨며 말했었다.
“소소하게 작은 성당에서 언약을 맺고 싶어요!”
아주 짓궂어지는 것을 보면, 저 장난스러운 성격을 어찌 숨기고 살았을지 몰랐다.
하린은 원래 화려하고 큰 결혼식을 원한 적 없었다. 뭐 결혼이라고 한다면 생각했던 모습은 조금 우울한 그림에 가까워서였기도 했다.
자신이 이렇게 원하는 사람과, 행복한 결혼식을 할 거라고는 불과 몇 년 전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하린은 항상 화려한 결혼식보단 소소하고 행복한 작은 결혼식을 원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현되었다.
아침부터 흰색 원피스를 입으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태형이 아침 일찍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팅하고 나왔다. 하린은 그가 미리 준비해 둔 흰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머리에는 작은 꽃망울이 달린 핀을 했다.
결혼식장은 하린이 말하던 대로 작은 성당이었다. 미리 그가 준비해 둔, 성당에서 작은 언약식. 거창하고 대단한 건 없었다.
그렇지만 하린이 평소 원하던 것을 실현해 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둘은 그 성당에서 언약을 맺고, 평생 행복하기를 빌었다. 신의 존재 그 무엇을 믿었고 또한 믿지 않았던 둘이 진심으로 신게 빌었다.
인생에서는 고통의 총량이 있다고 했다.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 둘이 만나는 것이기에 더 이상은 고통은 없기를 하린은 진심으로 바랐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기를.
둘의 삶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이제와는 다른 삶으로 조금 더 사람다운 삶을, 그의 옆에서 부족함 없는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작은 결혼식은 태형이 하린의 이마에 키스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찌 그 큰 부를 축적하고 이런 작은 결혼식을 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남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당사자들이 행복하면 된 것이고. 즐거우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크고 작은 것들을 겪으며 살아온 둘이 융합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보단 이런 소소한 결혼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작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기억 말이다.
* * *
그로부터도 또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생각보다 많은 일이 생기고 벌어졌다. 태형의 양부모를 뵈러 미국에 가기도 했으며, 미국에서 진화를 보기도 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진화였기에, 진화는 여태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 유학 자금을 다 충당할 수는 없기에 일부는 하린이 도와주기도 했다.
우기익이 싫었던 거지, 진화가 싫었던 것은 아니니까.
또 다른 일로는 성이 바뀌기도 했다.
이제는 우하린이 아니라, 최하린이었다.
친부모를 찾았으니 더 이상 우기익의 성씨를 쓸 필요가 없었다.
이름까지 바꿀까 하여 찾아보니, 하린이라는 이름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이름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이름까지 바꾸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바뀐 게 있다면.
하린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했다. 전에서부터 쓰던 ‘그’ 책이었다.
하린도 조 대표의 변화를 보고 자신도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와는 비슷하지만, 또한 다른 것.
그녀가 원하던 것은 세상에 희망을 주고 싶었다. 이런 삶을 사는 자신도 결국 행복을 원하고 있었다고.
다른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위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라는 사람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도 살다 보면 살 만한 세상이 온다고 말이다.
책 출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진화의 친구 중, 한 명이 출판사 대표의 딸이었고. 그 출판사와 연결되니 바로 계약도 체결할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하린의 작품이 잘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하린은 그 말을 그다지 믿지는 않았다.
「대박, 언니 완전히 미쳤어. 언니 작품 사람들이 엄청나게 봐!」
그러나 하린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이슈였다.
전 서울 시장의 이야기가 담겨 있던 것은 상관없었으나, 그 정치인이 갑작스럽게 자살한 전 시장이라는 것이었고.
더불어 주인공이자 집필한 작가가 그의 학대받은 딸, 이라는 내용은 충분히 파격적이었다.
자서전적인 내용이 담긴 이 소설책은 불티나게 팔렸으며 언론에서도 다뤘기에 베스트셀러로 올라가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생각보다도 더 여론이 집중되어 하린은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이제 뭐가 하고 싶어?”
“계속 이렇게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와 비슷한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하린의 작품을 보고 공감했으며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리고 비슷한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조금 더 살아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언가 자신이 만든 것을 남에게 알려 주고, 그것을 사람들이 공감해 주는 일.
하린에게 있어서 처음이었다.
“부조리함도 알리고 싶고. 영화 같은 것을 만들어 본다든가…….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나씩 해 봐, 시간은 많고 하나씩 하면 되는 거지.”
그러는 사이 태형은 이제 아예 한국에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동안은 그도 다시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긴 했었지만.
결국 하린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녀의 모습을 더 많이 보고자 한국에 남기로 했다.
대신 원래 후계를 받기로 하던 건 이어받는 대신 일부 전문 경영인을 세우고, 자기는 조금 더 뒤로 물러나는 형태를 하는 것으로 양부모와 이야기했다고 했다.
이제 슬슬 하린은 인기 아닌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린의 계획은 점차 구체화되어 가고 있었다.
“저…… 받은 유산으로 보육원을 만들어도 되어요?”
“네 돈인데 왜 나한테 허락을 받아. 하고 싶으면 해야지.”
“알겠어요. 그런데 이제 자기는 한국에서 뭐 하려고요?”
“그냥, 하린이 네 옆에서 도와줄까 하는데.”
우기익이 과거 기술을 훔쳐 달아난 것을 일기장 등으로 법원에 제출하여 소명을 했다.
그리고 하린이 최하린이 되면서 그 과정에서 우기익이 부당으로 취득한 재산 등, 원래 하린에게 가야 했었던 재산이 원주인을 찾아갔다.
하린은 이 돈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고민 끝에 유산으로 받은 돈으로 보육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또 한 달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같이 아침을 먹고 평화로운 오전 방금 잠에서 깬 하린이 오두방정을 떨며 뛰어나왔다.
“자기! 자기, 미쳤어요!”
“뭐가.”
“제 작품이 영화로 나올 수 있다고 해요! 어쩜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죠? 한 번쯤이야 생각으로만 하던 일인데. 너무 신기해요.”
“그야 네 삶이 파란만장해서 그렇지.”
태형은 태연하게 하린에게 커피를 주며 평이하게 말했다. 하린은 그저 기분이 좋은 듯 출판사 쪽에서 받은 자료를 살펴보며 태형이 있는 쪽으로 건네주었다.
태형이 저렇게 심드렁하게 나와도 자신을 위해 얼마나 생각해 주는 사람인지를 알았기에 서운함 그런 감정은 있지도 않았다.
“여기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인데. 벌써 연예인까지 섭외 가능하다고 하네요. 되게 자금력이 빵빵한 회사인가 봐요.”
“그래?”
“혹시 여기 어딘지 알아봐 줄 수 있어요?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아서.”
받자마자 하린도 이래저래 회사를 확인해 보았으나 딱히 정보를 알 수 없었다.
태형은 미묘하게 웃음만 지을 뿐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도 그렇다고 하린이 가지고 온 자료도 보지 않았다.
“자기?”
“거기에 최근 유명한 배우들 소속되어 있지 않아?”
“어…… 맞아요. 혹시 아는 회사에요?”
“거기에 하린아 네가 보통 말하던 배우들 다 있지 않던?”
“맞아요. 팬분들이 드라마화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막 올리던 그 배우들이 다 들어가 있…….”
하린은 태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이내 끄덕 거리던 고개를 멈췄다. 그리고 태형을 바라보며 턱을 갸웃거렸다.
“왜 뭔가 당하는 느낌이 들죠?”
“보통 사람이 당하는 느낌이 들 때는.”
그는 그런 하린의 모습을 보며 손에 쥐고 있던 커피 잔을 입에 댔다. 그리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어 했다.
“당하는 것이 맞는 경우 맞아. 아가야.”
“설마……?”
느릿하게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며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하린은 말 그대로 설마하니 하는 생각으로 내뱉었는데, 그것이 진짜라고 말하는 태형에 놀라 입을 막았다.
“아 원래는 미팅 때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었는데.”
“……!”
“하린이 네가 너무 기대하니까 차마 더 거짓말을 못 하겠네.”
상상도 한 적도 없었다. 그가 요즘 뭔가 다른 것을 준비하려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갑자기 영화 제작사나 엔터 사업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으니까 말이다.
“자, 여기.”
그는 서재에 잠시 들려 전에 확인하고 있던 자료들을 하린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하린의 책 내용의 각색 방향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었고.
회사 소개서 등 여러 자료가 다 같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이게.”
그리고 맨 위에 명함.
그곳에는 하린이 출판사 통해서 받은 자료에 들어 있던 것과 같은 회사명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명함에 시선을 돌렸다.
대표 이사, 강태형.
“내가 이번에 만든 회사.”
“왜 갑자기 영화 사업을 하는 거예요.”
“말했잖아. 나는 그냥 한국에서 남아서 네가 하고 싶은 일 도와주려고 한다고.”
“그런데 이제 자기는 한국에서 뭐 하려고요?”
“그냥, 하린이 네 옆에서 도와줄까 하는데.”
“……자기.”
하린은 태형에게 받은 자료를 손에서 내려놓으며 그에게 다가가 안겼다. 그는 그런 하린의 모습을 보며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 주었다.
그리고 뒷머리를 쓸어 넘겨 주면서 다독였다.
“말했잖아. 네 옆에서 너를 위해 살아 보겠다고.”
“놀랐어요. 생각도 못 했는데…….”
“내 삶의 이유는 너야.”
하린은 고개를 들어 올려 태형을 바라봤다. 다시 봐도 잘생기고 멋진 남편.
이런 사람이 내 옆에서 자리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하린은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사랑해요.”
“사랑해.”
그러자 태형은 그녀의 침입을 환영한다는 듯 하린의 허리를 당겨 안으며 하린의 입술에 더욱 진한 키스를 했다.
격한 키스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자료 하나가 떨어졌다.
태형이 하린에게 건네주었던 자료 중 하나였다.
[원작자 최하린 작품 이름 <계약 위반>]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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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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