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위반-69화 (69/75)

#외전3화 우하린

“당장 내일 모래가 출국인데 아직도 생각만 하면 어떻게 해.”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듯 그의 음성도 조금 변했다. 아까의 평온한 음성이 아닌 뭐랄까,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태형에게는 당장 섹스가 아니라 하린의 의견이 더 필요했다. 그건 그 이후에 하면 된다.

그 역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태형의 한국 지사는 이미 마무리한 지 오래. 한국에 계속 남아야 할 이유는 없어졌다.

원래 계획이었다면 이미 본사로 넘어가서 경영승계를 받아야 한다고 했었다.

미국으로 아직도 가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하린이었다. 태형은 이제 그녀와 함께 미래를 그리며 살기를 바랐고.

그렇기에 조금은 성급하게 프러포즈를 하며 그녀를 자신의 옆에 묶어 두고 싶어 했다.

하린과 함께 미래를 그리고. 그녀와 삶을 공유하며 늙어 가기를 원했다. 그러기에 같이 미국에 가서 살기를 그는 바랐다.

“뭐가 그리 걱정이야.”

하린이 프러포즈를 거절한 순간 모든 뒤의 일들이 애매해졌지만.

하린은 점차 자신에게 대답을 바라는 태형의 말을 들으면서도 괜히 시선을 회피했다. 그가 어떤 말을 할지는 너무 잘 알았다.

무슨 말을 원하는지도. 그러나 아직은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기에, 하린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당장 해 주지 못했다.

대신.

“키, 키스해 주세요…….”

다른 말을 꺼냈다. 하린은 얼굴을 붉히며 말까지 더듬었다. 평소 하지 않는 말을 하려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회피를 위한 말이긴 하면서도 그가 만족해할 수도 있는 말. 그리고 하린 역시 잠시는 생각에서 벗어나 회피하고 싶었다.

취하고 싶었다.

강태형이라는 사람에게 말이다.

“하여간.”

그는 하린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았기에 입꼬리를 올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가 잘게 웃을 때 앞에 몇 가닥 나온 머리칼이 살랑거렸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하, 하고 싶어요.”

“그래. 원하면 해 드려야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하린을 그대로 안아 들었다. 하린은 갑작스레 올라간 몸에 놀라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침대까지 가는 길 그의 걸음에 따라 몸이 위아래로 반동이 생겼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아래가 그의 하반신과 맞닿아 쿡쿡 찔리는 느낌에 하린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해 줄 거야.”

“그게…… 아닌데. 너무 커져서 느껴져요…….”

“원래 큰 건데.”

그는 나른하게 웃으며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녀의 입술 위로 입술을 겹치며 장난치듯 짧게 입맞춤했다.

하린은 눈꼬리를 살살 접으며 웃으니 그 역시도 피식 웃고는 다시 입술을 포갰다.

숨이 들이마시고, 이내 내뱉는다. 숨결을 공유하며 그의 것을 받아들이고 이내 그의 숨결까지도 받아먹고 싶었다.

그의 혀가 입 안으로 침투하여 하린의 이를 핥고 입술을 빨아댔다.

하린이 숨도 못 쉬고 키스하자 태형은 천천히 입술을 떼며 웃었다.

“숨 쉬어야지.”

“네에…….”

“배운 대로 해 봐.”

하린이 그에게 배운 것처럼 입술을 맞대고 그의 입술을 빨아먹을 때, 태형은 천천히 하린의 몸을 타고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손결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하린의 몸이 점차 힘이 들어가며 경직되었다. 그리고 이내 아래에 입고 있던 것이 내려가며 질척한 손길이 침투했다.

“으……으읏.”

“집중해야지.”

저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 다리를 오므리자, 태형이 소리가 나도록 허벅지 안쪽을 찰싹 때렸다. 다리를 모으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하린은 으,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그의 앞에서는 말 잘 듣는 순한 강아지가 되고 싶었다.

평생 사랑받고 싶었다.

“……이쁘다고 해 주세요.”

“이뻐, 아가.”

“좋아요. 너무 좋아요.”

태형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며 문지르는 하린은 좋아 못 견디는 것처럼 몸을 비틀었다. 태형은 그것을 보며 하린의 팔을 위로 잡아 고정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하린의 표정을 보는 태형은 느릿하게 웃었다.

“힘 풀어야지.”

* * *

“짐승, 짐승.”

“어떻게 사람이 두 번 세 번을 해요.”

“그러게.”

정사가 끝나고 다 씻고 나온 둘은 젖은 머리였다.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물이 이따금 떨어졌다.

심지어는 얼마나 했는지 벌써 저녁 시간을 훌쩍 지났다.

“다른 남자들도 아저씨 같아요?”

순진무구한 표정을 하며 물어보는 하린을 힐끔 보던 그는, 이내 머리를 말리려는 듯 머리칼을 털었다.

“모르지.”

“궁금하…… 아, 퍼요!”

“콩알만 한 게 뭐가 궁금하다는 거야.”

괜한 도발을 하는 하린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태형은 듣다가 하린의 반듯한 이마를 검지로 툭 때렸다.

“다른 남자들도 아저씨처럼 많이 하는지 궁금해서요……!”

아프지 않게 때렸는데, 아프다는 듯이 한쪽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는 하린을 보며 태형은 눈을 길게 떴다.

“어린 게 못 하는 말도 없지.”

“치.”

“그런데 언제까지 아저씨라고 부를 거지. 분명 저번에…….”

“이, 입에 안 붙는 걸 어떻게 해요.”

아이고 아파라, 하면서 시늉을 하던 하린이 괜히 자기가 불리한 말이 나오자 문지르는 손을 내리고 바람 빠지듯이 웃었다.

자기가 이렇게 행동하면 태형이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악한 하린의 행동도 귀여워 보이는 것을 보니, 태형은 자신의 상태가 꽤나 중증이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계속 버릇 들여야지. 봐봐 나보고 말해 봐.”

태형은 서 있던 다리를 구부리며 하린과 시선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눈을 맞대며 말했다.

“여보.”

“여, 보…….”

“똑바로.”

“……여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눈동자를 굴리는 하린을 보며, 태형은 그녀의 턱을 손바닥으로 다정히 쓸어내렸다.

“자기야, 라고 해 봐.”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할 때는 언제고요…….”

“그때는 우리가 이런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말 돌리지 말고.”

“……부끄러워서 말 못 하겠어요. 히잉.”

“그럼 오빠라고 해 보던가.”

입술을 쭉 내빼는 하린을 보며 태형이 결국 못 참고 장난을 쳤다.

“분명 초반에 만날 때는 오빠로 부르고 싶어 했었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는 거지.”

“……오늘 혼자 잘래요. 같이 안 잘 거예요.”

“알았어, 알았어. 안 놀릴게.”

결국 놀릴 만큼 다 놀린 태형은 더 놀릴 것이 없을 때에서야 그만했다.

대신 미안하다며 하린의 젖은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손수 말려 주었다. 하린이 졸린다고 하니, 잠자리까지 손수 정리해 주었다.

하린이 눕자 그 옆에 누운 그는 하린이 잘 자기를 기다리는 듯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토닥였다.

심장박동수와 함께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손길은 기분이 좋았다.

몸이 나른하고, 그와 있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린아.”

“네.”

수마가 하린의 눈두덩이 위에 올라앉았을 때, 그는 하린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장난치지 않은 진중한 음성.

“내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까.”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평소와 같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네가 말하는 대로 기다릴게. 차분하게.”

“……미국에서 돌아오실 때까지요.”

많이 미룰 생각은 없었다. 조금만 더, 딱 그 정도. 태형은 그 말이 썩 괜찮은지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 빨리 돌아와야겠네.”

* * *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태형은 침대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옆 그가 누워 있던 자리 쪽으로 손을 뻗어 더듬거렸지만 역시나 그가 있던 자리는 차갑게 남아 있는 후였다.

하린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우지…….”

가는 모습은 보려고 했는데.

멍하니 침대에 앉아 한참을 주위를 살피고 이내 천천히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집 안 곳곳이 그의 향으로 도배되어 있어서, 그가 없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으나, 그가 옆에 없다는 생각에 벌써 가슴이 무거웠다.

최근 그와 있는 시간은 너무 즐거웠지만, 매번 찾아오는 짙은 우울감은 괴로웠다.

이것이 왜,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한 번도 오지 않았던 무기력증이 하린의 온몸을 잡아 이끌어 내리는 것만 같았다.

축축 소나기를 맞은 솜처럼 몸은 무거웠으며 지나다니는 곳마다 몸에 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태형과 있을 때면 이런 기분을 덜 느끼거나 느끼지 않지만 그와 있는 시간이 즐거울수록, 홀로 있는 무기력은 심해져만 갔다.

부엌으로 향한 하린은 버릇처럼 커피 캡슐 하나를 짚어 커피를 내렸다.

처음에는 마시지도 못하던 커피를 이제는 아침이면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태형의 옆에서 그의 보고 자란 하린이었기에 그의 습관 행동 하나까지 닮아 가고 있었다.

점심으로 다가가고 있는 시각, 하린은 시계를 힐끔 바라보며 태형에게 연락을 남겼다.

「깨우죠. 지금 읽어났어요(;′⌒`)」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곧바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더 자라고 안 깨운 거야.]

“그래도, 가기 전에 많이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럼 어제 많이 봤어야지. 곧바로 잠들던데.]

“그, 그건 아저씨가…….”

[또, 아저씨.]

“자, 자기가.”

바로 튀어나오는 타박에 바로 정정하니 그가 기분이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 잘하네. 어제도 그렇게 했었어야지. 피곤했는데 기운이 좀 나네.]

얕은 그의 숨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에 하린은 절로 미소를 보였다.

“지금은 눈앞에 바로 없잖아요, 시선에 놓인 상태에서 내뱉으면 되게 창피하단 말이에요.”

[더 불러 줘.]

“자기.”

[더.]

“……여보.”

[잘하네. 돌아가서도 해 줘야 해.]

“부끄러운데.”

[연습해, 또 아저씨라고 부르면 혼낼 거야.]

“어떻게 혼낼 거예요~?”

[궁금하면, 어디 한번 해 보던가.]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7703

© 퍼플독

※ 본 전자책은 <툰플러스>가 저작권자와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