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화 강태형
제 어린 시절은 암흑 그 자체였습니다.
고통 혹은 불행 그런 단어를 내포한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빛이 들지 않은 어두움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떤 것을 기억하냐고 한다면 무언가의 감상에 젖어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감정이 결여되어 사는 삶. 저의 삶은 무채색이었습니다. 감정을 느낄 생각도 목표도 목적도 없는 삶.
저에게 삶은 향도, 맛도, 색도 없는 그저 어둠이었습니다.
살면서 한 번쯤, 왜 그토록 저에게 복수에 목을 매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그 대답에 저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었습니다.
이유라.
생각해 보면,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을 겁니다.
저의 첫 양부모는 저를 때때로 괴물이라고 불렀었습니다.
어리고 부모를 잃은 동양인.
동생과 함께 외국으로 보내졌을 때 우는 동생과 달리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울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제가 울지 않은 게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저는 억울하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없었죠.
그저 돌멩이, 혹은 흙처럼 세상이라는 것에 아무런 미련도 꿈도 목표도 없었습니다.
그저 살 수 있으면 사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그 모든 것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삶이라는 굴레 속에서 저는 그저 하나의 사물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저의 첫 양부모는 징그럽다고 했었습니다. 어린 애가 감정도 없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네, 저는 마모되고 있었습니다.
삶을 감정으로 느끼며 사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살기 시작했으며.
누군가와 혹은 타인과 어울려 살기보단 연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에 동조하지 못해도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 갔습니다.
저는 어디에도 같은 종족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무엇도 저와 같은 ‘인간’이 되길 바라지 않았으며. 저 또한 그들과 저를 동일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점차 세상과 단절하며 저와 세상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았습니다. 단단하고 또 단단해 저 또한 그것을 부실 수 없는 그런 벽 말입니다.
네, 저는 제가 만든 세상 속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점차, 죽을 날을 고대하면서 말입니다.
어둠 속에서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저는 세상을 관망했습니다.
시끄러운 세상 밖. 저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아니면 무림 지대의 육식 동물처럼 무언가를 바라봤습니다.
그저 그냥 바라봤습니다. 살아야 해서 그냥 사는 삶. 죽지 못해 사는 삶.
혹은 어둠 속에서 그저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사는 삶.
당신이라면 이런 삶을 버틸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듣게 된다면, 어느 중의 일부는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을 할 것이고. 혹자는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나 역시도 너와 같은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세상에 홀로이 떨어져 있는 고립감을 느꼈노라. 혹은 겪어 왔노라, 라고 말이죠.
그러나 평생의 행복도. 그리고 아픔도 모든 것을 잃은 후의 감정 또한 같을 수 있을지 저는 묻곤 합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잃어도, 그것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물질에 사로잡혀 향락에 취한 후에도 음욕과 사치 그리고 그런 모든 욕구에서 벗어나 태초로 돌아갈 수 있냐고 말입니다.
이후 저의 삶에서는 두 가지의 지각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다니던 저의 삶에서의 지각 변동. 그중 하나는 당연하게도 동생의 죽음이었습니다.
죽음.
항상 제 삶에서는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놀라운 일이었죠.
절망에 가까워져 있는 건 당연히 저였기에, 이러한 불행은 저에게 찾아오리라 생각했었습니다.
항상 밝고 좋은 미래, 목표가 분명했던 아이는 우울감에 집어삼켜져 그만 사리지고 말았습니다.
아주 이상한 일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매번 의문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이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저 상황을 관망했습니다.
세상에 동떨어져, 동생의 죽음을 그리고 나를 바라봤습니다.
신이라는 존재를 생각했습니다.
왜 신은 죽음에 가까워 죽기를 바라는 자신이 아니라, 동생을 데리고 간 것일까.
왜, 내가 아니었을까.
저는 제가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을 죄책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아이를 도와주지 못한 마음. 혹은 이런 사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비관하는 마음.
사실 감정이 결여되어 있던 저였기에, 이것이 진정한 감정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과연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감과 감정에 무감각한 저는, 이 상황을 보고 분노라 지칭했습니다.
물론 화가 끓어 넘치거나,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오거나. 혹은 당장이라도 무언가의 행동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그런 감정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동력을 얻었습니다.
동생의 표현을 빗대어 사용하자면, 목표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전 괴물을 자처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괴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복수하고자 결정한 이후 이 모든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전 무엇을 좆아 이곳에 도달하게 되었을까요.
행복? 아니면 괴로움?
그것도 아니면 장엄한 복수?
저는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허무하고 무에 가까운 심연 깊은 곳 어딘가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꺼내 줄 무언가를 찾았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나를 끌어 올려 주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제 곁에 있지도, 남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계속에서 심연 속에서 허우적거렸으며, 그 무엇도 저에게 환희를 주지 못했습니다.
금은보화, 명예 돈 그 모든 것을 가져도 저는 즐겁지 않았으며. 남들이 가지고자 하는 뜨겁고 위대하고 강렬한 모든 것을 제 것으로 만들어도 똑같았습니다.
나는 가질수록, 그리고 복수에 다가갈수록 공허해졌습니다.
그러던 제게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우하린,
살고 싶다고 말하며 죽기를 자처한 그 여자가 말이죠.
새벽의 바다. 빠져서 죽기를 자처한 주제에 짐승의 눈빛을 하고 있던 여자.
저는 이 여자와 눈을 마주쳤을 때 아주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아주 이상했습니다. 그녀를 구해 준 저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지만 제일 이상한 건…….
그녀의 눈빛. 온도.
새벽의 바닷바람 그리고 소리.
그때야말로 지금껏 관망하던 세상 속, 그곳의 긴밀한 곳까지 들어왔다고 느꼈습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살아오던 저에게 촉각과 통증 향, 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경험 말입니다.
이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감정.
그대들은 알겠죠. 이것이 보통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감정, 맞습니까?
뜨거운 무언가가 등줄기를 타고 이내 목덜미까지 올라와 두 눈과 귀를 막아 버리는 느낌.
심장을 움켜쥔 듯한 느낌.
저는 혼란스러웠고,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깊은 심연 속, 처음으로 희미한 무언가를 본 것 같았습니다. 그녀로 인해 만들어진 미미한 빗금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이내 내가 쌓아 온 모든 성벽을 무너트리라 어렴풋이 저는 느꼈을지 모릅니다.
오랜 기간 쌓아 온 벽은 세상과 나를 단절하게 했으며. 동시에 그 성벽은 내가 되어있었습니다.
평생을 쌓아 온 나의 성벽.
그것이 무너지고 나면 나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내가 무너지고. 나의 날것이 세상에 나오는 일. 어쩌면 저는 이 순간을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나는 그때에도 지금처럼 세상사에 초연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벽이 무너진 후, 나는 나약한 한 마리의 짐승이 될지. 아니면 그때에도 연약한 짐승의 숨통을 물어뜯는 포식자일지.
그도 아니라면 그저 한 명의 인간일지 말입니다.
저는…….
처음으로 염원했습니다. 단순히 살고자 잡은 목표가 아닌 뜨겁고, 살아 넘치는 무언가를 말입니다.
애초의 계획이라면 저와 우하린이 마주 볼 일 따위는 없었을 겁니다.
만일 계획대로 그랬더라면, 저는 마저 남은 삶의 숙원이라고 불리는 복수를 다 끝내고 죽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녀는 우기익의 손에 평생을 농락당하고 망가져 조금씩 죽어 갔을 겁니다.
우기익에게 향한 저의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 우기익을 죽일 때 우하린 역시 같이 피해를 받았을 겁니다. 우진화가 결국 그랬듯이.
그녀의 미래는 사실 그랬을지 모릅니다.
저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쉽고 미리 계획해두었던 길이 아닌.
그날의 행동은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제 행동을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우기익의 손에서 맞아 죽어 가던 우하린을 구했던, 그날을 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하린과 관련된 건 대부분 충동적인 행동에 가까웠고. 저는 매번 혼란스러웠습니다.
‘충동’이라는 것을 겪어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을지 모릅니다.
예, 저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제 성벽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지은이 : 퍼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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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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