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전에 묵었던. 그 호텔 가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린은 차를 틀어 호텔로 향하게 했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차를 돌려 전에 묵었던 호텔로 향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에게 도망가고 싶었다. 우기익과 있던 시간은 너무 힘들었다.
다른 말로 표현할 자신이 없이 정말로,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내뱉었을지 몰랐다.
그의 체취, 그의 손길. 그저 본능적인 감정에 충실해지고 싶었다고 하면 적당한 답이 될까.
연구소, 우기익의 일기장, 부모님, 트럭 사고 등등. 그와 말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무거워 잠시라도 회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막혀있던 감정의 무언가가 그를 만나 물꼬가 트였다.
그와의 시작이 있던 곳. 사실 태형이 변화를 하기 시작했던 변곡점을 두자면 집이었다.
집, 가족 등 유대감을 두지 않던 그가.
자신이 사는 보금자리에 들이고. 이윽고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하린에게 선사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문득 그 호텔을 다시 가고 싶었다. 거기서 태형의 얼굴을 다시 보고, 느끼고 싶었다.
룸에 들어가자마자, 하린과 태형은 누가 먼저할 것 없이 눈을 마주쳤다.
하린이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입술이 엉켜 든다. 눈을 감고 그의 품에 파고들며 현실에서 멀어지려 했다.
“안아주세요.”
하린은 그를 보며 그에게 졸랐다. 안아달라 조르고, 키스해달라 조르고.
만저 달라 졸랐다.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찾듯 무언가를 찾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태형은 하린의 반듯한 이마와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같이 씻을까.”
그의 눈빛이 진득하게 하린의 얼굴에 안착했다. 하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도 태형도 하린과 비슷한 마음 같았다. 둘은 둘에게 빠져들어 아픈 현실을 피하고 싶어 했다.
태형은 하린을 안아 들고 욕실로 걸어갔다.
익숙한 장소가 아니라, 눈에 익은 장소들.
이곳에서 하린은 세상을 무서워했고. 두려워했었다.
“어딜 봐 여길 봐야지.”
하린의 시선이 밖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하린을 종용했다.
욕실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하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서는 하린이 입고 있는 옷을 하나하나 벗겨주었다.
하린도 또한 그를 따라 그의 옷을 하나씩 벗겨냈다.
둘 다 오롯이 둘을 바라볼 때 그들은 세상의 짐을 덜어두고 가벼운 감성으로 둘의 몸을 취했다.
더욱 집중하고 탐닉할 수 있었다.
살이 엉겨 붙어 질척하게 달라붙는다. 태형은 하린을 욕조에 넣고 물을 틀어 따듯하게 했다.
잘게 떠는 몸을 물로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태형도 욕조 안으로 들어와 하린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하린에게서는 달달한 향이 났다. 물에다 뿌린 향이나는 솔트덕인지. 아니면 하린의 체향인지 모르는 좋은 향에 취하는 것만 같았다.
하린은 그의 목에 자신의 팔을 두르고 그를 더 깊이 안았다. 그리고는 태형의 귓가를 입술로 물고 빨았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배운것보단 본능에 가까운 행위였다. 하린은 자신이 느끼는 열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누가 제발 뭐라도 해줬으면. 저 멀리 자신을 보내줬으면.
하린이 시선을 마주하지 않자, 태형은 무릎을 세워 하린의 은밀한 곳을 문질렀다.
“으음…….”
“눈 마주 봐야지.”
하린의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찌릿한 감각에 아까의 일들은 저 멀리 날아간 것만 같았다.
세상에 태형과 자신 두 사람만 남았다.
제대로 눈을 뜨고 태형을 바라봤다.
“눈 피하지 마.”
젖은 머리. 젖은 눈동자.
하린은 짙게 내리깔린 태형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몸을 비비 꼬았다.
“말을 해야지 하린아. 해달라고 칭얼거리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해줄거야.”
“으응…….”
하린이 본능을 못 참고 허리를 들썩거리자 태형이 엉덩이를 찰싹하고 때렸다.
“내가 뭐라고 했어.”
“해, 주세요…….”
* * *
씻고 나와서 대충 물기를 걷어내고 침대에 누웠다. 신경 쓰던것들이 저 멀리 날아가고 눅진하게 몸이 풀려 잠이 찾아왔다.
“자기 싫은데.”
“졸리면 자. 자도 돼.”
“안아주세요…….”
많은 일이 있었다.
그에게 이것저것 칭얼거리며 대화도 많이 하고 싶었으나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마가 찾아와 하린의 눈과 몸에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태형은 하린의 두 눈을 손을 가려 어둡게 만들어주었다.
그에게서 좋은 향이 났다.
지금 자신에게도 나는 향…….
괜히 그것을 상기하자 기분이 상기되는 것 같았다. 들이오는 수면과 자신의 머리칼을 만저주는 태형의 손길.
오늘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겠다…….
포근한 감각이 하린의 몸을 감싸 안아주는 것 같았다. 이상했다. 그와의 관계도. 지금의 시간도 꿈같았다.
너무 행복해서.
눈이 저절로 뜨였다. 얼마나 잠든건지는 모르겠으나, 아까보다 몸은 훨씬 가벼운것 같았다.
사실 마음이 가벼운 것일수도 있었다. 일이 다 정리된 것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우기익과 관련된 일도 얼추 정리되었으니까.
태형과의 관계도 물론이고.
팔을 움직여 손을 움찔거리는데, 옆자리에 태형이 있지 않았다. 태형이 같은 침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괜히 불안했다. 하린은 그를 찾고자 두리번거렸다. 어둠 속에서 그는 없었다.
대신 희미하게 들려오는 전화소리.
급 잠이 확 깨는것 같았다.
하린은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그는 침실 밖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이 새벽에 누구랑 저리 전화를 하지.
새벽 두시, 이 밤에 누구와 그리 통화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가까이 가니 대화가 크게 들렸다.
“응, 지분 정리 확인해보고. 아니 우기익이……. 응 그것도 확인해보고. 갑작스럽네.”
“……무슨 일 있어요?”
“하린아 그…… 이따가 전화 다시 걸게.”
전화를 받던 태형이 하린을 보고 대충 전화를 마무리 짓고, 끊었다.
그는 말 대신 뉴스를 틀어줬다.
“TV는 왜요?”
“보면 알 거야.”
[오늘 새벽 1시 우기익 서울시장이 자택에서 자살하여 숨진채 발견. 최근 친딸 폭행사건 및 다수의 사건으로 인해 삶을 비관하다가…….]
“우기익이 자살했다고 해.”
“네?”
하린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 두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다시 태형을 바라봤다.
그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 맞다고 말해주는것 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우기익이 죽었다고요.”
슬프거나 그런건 없었다. 그냥, 그냥 조금 많이 허망했다. 평생의 고통이 이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눈물이 나거나 기쁘거나 그런건 없었다.
그냥. 화가 났다.
“되게 우기익 스럽네요. 우기익…….”
모든 것을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 것을 놓으니 삶을 놓아버린 거다. 더이상 답이 없으니까.
돈도. 권력도. 서울시장도. 그 모든 것을 놓는게 싫어서…….
하린은 TV에 눈을 떼지 않고 한참을 서서 그 모습을 봤다. 우기익의 허망한 마지막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억지로 웃었다.
그래야만 할것 같아서였다.
* * *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서울시장은 죽고, 우진화는 건강을 많이 되찾았다. 누구 하나 죽어도 삶을 살아나가는데에는 그다지 달라질것이 없었다.
삶은 동일했으나 본질은 달라졌다.
죽지 못해 살았던 삶에서 죽지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하린의 마음처럼 겨울이 온전히 지나가고, 꽃샘 추위도 지나갔다.
이젠 정말 따듯한 날씨에 얇은가디건만 입어도 충분히 괜찮은 날씨가 찾아왔다.
집 뒤에 조경으로 심어둔 꽃이 조만간 만개할것 같다.
“저기있는 꽃도 조만간 꽃이 필것같아요.”
그 앞 테라스에서 하린과 태형 둘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한창 태형을 생각하며 마셔서 그런가 커피도 이제는 나름 먹을만 했다.
사실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태형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좋았다.
“다음 주 정도면, 필것같네.”
그는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은근히 말을 늘렸다. 평소와 달리 말투가 조금은 늘어져서 하린은 태형을 바라봤다.
“무슨 할 말 있으세요?”
“그 다음주쯤 본집을 갔다오려고 해.”
태형은 NP서울지부를 완성했다.
그리고 우기익이 가지고있던 기술과 회사는 태형이 값싸게 사서 하린에게 넘겨줬다. 사실 그것이 원래 하린의 것이였을거라고.
“그러게요. 미국 다녀오셔야 하는거에요?”
사실 제일 문제는 태형의 후계자 문제였다. 이번에 미국을 가는 것도 사실 그것 때문이었다.
원래는 1년후 한국지사를 완료하고. 본사로 넘어가 정식 후계를 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러나 조금 딜레이 되고있는건 하린때문이었다. 이미 한국지사에서 태형이 해야할 일은 끝났다.
“그 하린아. 같이 미국 갈래? 널 양부모님께 소개시키고 싶어.”
“저요……?”
“응. 이제 소개시켜드려야지. 그리고 혹시 미국에서 같이 살래.”
아무도 먼저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1년 후의 둘의 행방. 원래은 이혼이었으니까.
“계약은 파기야.”
“아저씨…….”
“정식으로.”
태형은 품에서 반지 하나를 꼈다. 그리고는 하린의 손을 잡아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이제껏, 반지를 준 적은 없던 사람이었다.
“이제 아저씨라고도 그만 부르고.”
그는 얼은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하린은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결혼해줄래. 앞으로 행복하게 해줄게.”
“저……. 너무 좋아요.”
눈물이 나올 것만같았다. 정식적인 청혼이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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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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